올해의 다크호스이자 최고의 화제작으로 손꼽히는 샌드폴 인터랙티브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이하 33 원정대)'는 등장과 동시에 전 세계 게이머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눈길을 압도하는 비주얼은 물론, 턴제 RPG의 한계를 새롭게 정의한 전투 시스템까지 더해지며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기에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스토리까지 갖추며, '웰메이드 RPG'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이런 게임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어떻게 이런 게임을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지스타에서 그 의문을 일부나마 풀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33 원정대'의 서사를 책임지는 제니퍼 스베드버그-옌 수석 작가가 지스타 컨퍼런스, 지콘에 연사로 나선 것이다. 지콘 강연에 이어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매력적인 세계관과 캐릭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리고 전 세계 팬들이 궁금해할 여러 질문에 대해 제니퍼 스베드버그-옌 수석 작가로부터 직접 답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 메인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주의 바랍니다

▲ 샌드폴 인터랙티브 제니퍼 스베드버그-옌 수석 작가


Q. 찾아보니까 게임을 꽤 좋아하는 것 같다. 플래티넘 트로피를 따는 데 많은 시간을 쓸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까지 한 게임 중 최고로 꼽는 인생 게임이 있다면? 그 이유도 함께 알려달라.

" 맞다. 트로피 헌터다(웃음).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데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니 정말 고르기 힘든 것 같다. 그래도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문명 6'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4X 전략 게임으로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고 규칙이나 승리 조건이 다양한 점 등이 매력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문명 발전에 따른 레벨링과 다양한 전략 요소들, 그리고 데스로봇까지 전부 좋아한다.


Q.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직책이 수석 작가이다 보니 내러티브가 두드러지는 게임이 취향일 것 같았다.

" 물론 그런 게임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디스코 엘리시움도 정말 재미있게 즐겼다. 리드 작가인 로버트 쿠르비츠와 지콘에서 대담을 하기도 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른 게임들도 좋아한다. 엘든 링, 갓 오브 워, 언차티드 시리즈, 그리고 챈트 오브 세나르도 정말 재미있게 즐겼다. 장르적으로는 퍼즐부터 액션, 스토리 게임, 소울라이크, 턴제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게임을 다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두 다 다르고 흥미로운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에 다른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게임은 다른 사람의 창의성을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멋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모든 게임에서 정말 멋지고 흥미로운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게임이 대본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스토리텔링을 한다고 느낀다. 텍스트 기반인 디스코 엘리시움도 좋아하지만, 에디스 핀치의 유산이나 스트레이 같은 게임도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텍스트나 컷신을 사용하지 않고도 다른 방식으로 스토리텔링하기 때문이다. 컷신 등을 쓰지 않고도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이런 게임들은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다.



Q. '33 원정대'의 경우 전투 시스템은 물론 서사에 대해서도 호평이 자자하다. 이런 독창적인 세계관과 서사를 구축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하다. 영감을 받은 게 있다면 함께 알려주면 좋겠다.

" 비법 소스나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두 가지 요소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논리고, 다른 하나는 공감이다.

'33 원정대'의 스토리나 캐릭터,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논리적 접근이었다. 페인트리스를 예로 들어보자. 페인트리스라는 초월적 존재가 매년 1년씩 수명을 줄게 하는 세상이 있다고 했을 때 사회는 어떤 식으로 발전할까?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할까? 보통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세계관이 만들어지면 이제 사람들의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고마주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종국에는 어떤 행동을 취할지, 이 모든 것은 논리적인 사고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33 원정대'의 서사와 세계관이 매력적인 이유도 이런 치밀한 사고 실험에 기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캐릭터를 설정할 때 그냥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세계에서 어떻게 살고 있으며, 조상은 누구인지, 부모님은 어떤 사람인지 등장하지 않는 부분까지 상상하면서 만들었다. 사회나 가족의 존재가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쉬운 건 아니다. 이런 접근 방식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캐릭터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완전히 이해해야 하고, 논리적 접근에 더해 깊은 공감이 필요하다.

이렇게 만든 캐릭터는 자연스럽게 플레이어의 공감을 이끌어낼 뿐 아니라 작가 입장에서 스토리를 짜거나 게임 플레이 요소를 고민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된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면, 어떻게 행동하고 말할지도 알게 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Q. 캐릭터 하나를 만드는 데도 엄청난 공을 들였을 것 같은데, 그중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있다면?

" 원하는 답변은 아닐 것 같은데, 못 고르겠다(웃음). 모든 캐릭터를 다른 이유로 좋아한다. 정말이다. 자기 아이는 다 예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모든 자식(캐릭터)이 다 예쁘다. 오히려 묻고 싶은데 어떤 캐릭터가 가장 좋았나?

(주인공 원정대원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시몽이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고 전하자)

아, 정말 멋진 캐릭터다. 좋게 봐줘서 나 역시 기쁘다.

▲ 히든 보스로서 엄청난 위엄을 보여준 시몽


Q. 구스타브가 죽는 액트 1의 전개는 충격적이었다. 과감한 선택이었다고 보는데 이렇게 한 이유가 있나?

" 시작은 가벼운 농담이었다. 기욤이랑 전작을 작업할 때 "액트1 끝날 때 메인 캐릭터가 죽으면 충격적이겠다" 하고 농담한 게 발단이었다. 당시에는 그냥 웃고 넘어갔는데 '33 원정대'를 개발하면서 기욤이 다시 그 얘기를 꺼냈다. 개인적으로 그런 충격적인 전개를 좋아하기도 했고, 내부에서도 힙하다는 의견이 나와서 구스타브의 죽음이 결정됐다.

그렇다고 무작위로 결정한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 논리와 공감이 캐릭터의 죽음에도 적용돼야 한다. 뜬금없는 죽음은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구스타브는 여러모로 최적의 캐릭터였다. 마엘의 보호자였고, 그의 죽음은 논리적으로 납득되며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또한 마엘의 정신적 성장에도 중요한 사건이었다. 마엘은 처음엔 페인트리스 처치보다 탐험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구스타브의 죽음으로 심경이 변화하며 본격적으로 여정에 나선다.

그리고 플레이어에게도 '죽음의 의미'를 강조하고 싶었다. 게임 주인공은 잘 안 죽는다는 인식이 있지 않나. 구스타브의 죽음으로 이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동시에 캐릭터들이 느끼는 상실을 플레이어도 함께 느끼길 바랐다.

▲ 여러모로 큰 충격을 선사한 구스타브의 죽음


Q.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욕설이 해외에 알려진 것처럼, '33 원정대'도 쀠땅(Putain)이라는 단어가 유명해졌다(웃음). 영어 음성에서도 F-word로 바꾸지 않고 '쀠땅'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메자미(Mes amis), 모나미(Mon ami) 등도 같은 방식인데 의도가 궁금하다.

" 몰입을 돕기 위해서였다. 비주얼적으로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비주얼에서만 그치지 않고 더 프랑스적인 풍미를 주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운드와 음성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언어를 통해 이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고, 그 결과가 욕설이었다(웃음). 욕은 사회적으로도 원초적인 말하기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메자미, 모나미도 같은 이유다. 프랑스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넣은 표현들인데 다행히 이런 부분을 좋게 봐준 것 같아 기쁘다.

▲ 프랑스적인 풍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쀠땅'으로 녹음했다고 설명했다


Q. 신생 개발사임에도 흠잡을 데 없는 한국어 번역 퀄리티를 보여줬다. 로컬라이제이션 비결이 있을까?

" 좋게 봐줘서 감사하다. 다만 이건 우리보다 로컬라이제이션 스튜디오인 Riotloc에 공을 돌리고 싶다. 열정을 다해준 덕분에 좋은 번역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비결이라 할 만한 건 딱히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개발사와 로컬라이제이션 스튜디오 간의 긴밀한 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스토리가 중요한 게임이다 보니, 우리가 직접 스튜디오에 방문해 스토리 전개 방식과 번역 방향을 긴밀히 논의했다. 이런 과정들이 좋은 번역을 만든 비결 아닌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뤼미에르(Lumière) 번역도 예가 된다. 루미에르라고 표기할 수도 있지만 프랑스어 느낌이 잘 안 살아서, 스튜디오 측에서 '뤼미에르'라고 하면 실제 발음은 아니더라도 느낌을 살릴 수 있다고 제안해줬고 우리도 동의해 그렇게 결정됐다.



Q. 일본 작품은 주인공 연령대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어린 경우가 많다. '33 원정대'는 주인공들을 30대, 즉 '33 원정대'로 설정했는데 이유가 궁금하다. 물론 40대는 힘들겠지만(웃음), 38 원정대나 35 원정대도 가능했을 것 같다.

" 기욤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캐릭터에 끌린다. 너무 어리면 경험이 부족하고, 너무 많으면 여정을 떠나기 힘든 나이다. 그런 면에서 30대는 최적의 나이였다. 세상을 어느 정도 경험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여정을 고민할 수 있는 나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30대 중 몇 살로 할지인데, 33이라는 숫자가 멋있어 보여서 그랬다. 게임을 해봤으면 알겠지만 거석에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어떤 숫자가 가장 좋을지 거석에 띄우는 식으로 테스트해본 결과 33이 가장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몰입하기 좋은 나이라는 점도 있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고 있는데, 이 시리즈를 즐겨온 게이머들이 이제 30대가 된 만큼 그런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다고 봤다.

▲ 세밀한 나이 설정은 거석에 띄우면서 가장 멋져 보이는 걸 선택했다


Q. 국내에서는 엔딩을 두고 말이 많았다. "정사(Canon)가 무엇인가"라는 논란인데, 수석 작가로서 정사가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을까?

" 정사는 없다. 이게 정사고 저게 비정사고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엔딩 모두 상호보완적이며 함께 해석해야 완성된다고 본다. 둘 다 씁쓸하고 서로 다른 대가가 따르도록 한 것도 같은 이유다.

나는 스토리텔링을 악수에 비유한다. 개발자, 즉 게임이 손을 내밀고 플레이어가 다시 손을 내밀어 함께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캐릭터와 여정을 함께하며 자신만의 선택을 내린다. 그런 의미에서 플레이어는 각 엔딩에서 선택을 내린 캐릭터의 '공범'이라고 생각한다(웃음).

각자 걸어온 삶도 다르고 선택한 이유도 다르기 때문에 어느 엔딩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 마엘의 행복이 베르소의 행복이 아니듯, 베르소의 선택 역시 루네가 바라던 선택이 아니다


Q. 이어서, 어느 엔딩이고 뒷맛이 씁쓸했다. 모두가 행복한 해피 엔딩은 정말 불가능했을까?

" 저마다 행복의 기준과 정의는 다르다. '33 원정대'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행복이 다른 상황에서 모두가 행복한 해피 엔딩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 다른 누군가의 불행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엔딩은 넣지 않았다.

그래도 해피 엔딩을 원한다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What It Sounds Like' 같은 해석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노래를 듣자마자 마엘과 베르소가 떠올랐는데, 만약 해피 엔딩이 있다면 이 노래의 가사가 의미하는 바가 거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다. 공식 입장은 아니다.



Q. 여담이지만, 수석 작가 아닌가. 본편에서는 데상드르 가문에 이입할 수밖에 없어서 작가 진영이 '나쁜 쪽'으로 묘사되는데 왜 그렇게 했나(웃음)?

" 정말 작가 진영이 악당일까? 지금까지 플레이어는 페인터 의회 소속인 데상드르 가문의 관점으로만 그들을 봤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관점의 차이는 매우 흥미로운 요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에서는 영웅이 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는 악당일 수도 있다. 다시 묻고 싶다. 작가 진영이 정말 악당일까? 우리는 모른다. 데상드르 가문이 말한 정보만 보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Q. 수석 작가로서, 소설이나 만화, 영상물과 비교했을 때 게임만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나?

" 게임을 TV나 책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앉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자세가 아니라,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방식 말이다.

TV나 영화, 책은 대부분 뒤로 기대어 '이야기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본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앞으로 기대어 앉아 직접 전투하고 탐험하고 선택지를 고른다. 이런 차이가 몰입의 차이로 이어지고, 게임이 스토리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Q. 끝으로 후속작을 기다리는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 후속작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양해해주길 바란다. 다만, 우리 게임을 좋아해주는 팬들을 위해 'Thank you' 업데이트를 준비 중이다.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업데이트이며 무료 업데이트이니 꼭 즐겨주길 바란다.

끝으로 우리 게임을 즐겨주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정말 매우,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의 성과는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결과다. 모든 플레이어 덕분이다. 한국 커뮤니티의 지지와 관심, 사랑에도 감사드린다. 전 세계 게이머들이 우리 스토리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놀랍고 영광스러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