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임에 필수 요소는 아니지만, 명작이라 평가받는 게임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자유도입니다. 게임의 디자인이 얼마나 정교한지는 그 게임의 자유도를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이템 선택이 되었든, 스토리 상의 선택지가 되었든, 플레이어의 움직이는 동선이 되었든, 다양한 방면에서 플레이어의 선택이 게임과 치밀하게 상호작용을 하면 플레이어는 게임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스토리 측면에서 플레이어의 자유도에 대해 말할 때 빠지면 안 되는 대표 게임들의 개발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폴아웃: 뉴 베가스'와 '펜티먼트'를 통해 정교한 내러티브를 선보인 옵시디언의 조쉬 소여 스튜디오 디자인 디렉터. '발더스 게이트 3'로 시네마틱 연출의 힘을 증명한 라리안 스튜디오의 제이슨 리터보 시네마틱 디렉터. 그리고 '킹덤 컴: 딜리버런스'로 시스템을 통한 서사를 구축한 워호스 스튜디오의 마틴 클리마 총괄 프로듀서.

이들은 14일 GCON 2025 무대에서 '플레이어의 선택과 내러티브의 확장'을 주제로 패널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각기 다른 게임에서 얻은 노하우를 관객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창작자로서 ‘플레이어의 선택’에 대한 철학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1 개발자가 정의하는 플레이어의 ‘선택’
‘선택’을 빼놓고 자유도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플레이어는 여러가지 선택을 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가 하는 ‘선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마틴 클리마는 '선택'이 게임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영화처럼 이야기가 이미 정해진 것과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다음 행동을 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는 이렇게 플레이어가 직접 행동을 정하고 그 결과가 게임에 바로 나타나는 것, 이것이 게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조쉬 소여는 플레이어가 '선택은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선택이 온 세상을 뒤바꿀 정도로 큰 영향을 줄 필요는 없지만, 플레이어가 무언가를 선택했을 때는 분명한 반응이 따라와야 합니다. 무엇을 골라도 결과가 똑같다면 플레이어는 자신이 속았다고 느낄 겁니다.”

조쉬 소여는 플레이어의 선택으로 예상된 결과가 따라오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뜻밖의 일’이 함께 일어날 때가 게임에 대한 흥미를 가장 크게 불러일으킨다고 전했습니다.

제이슨 리터보가 선택에 대하여 강조한 점은, 선택에는 반드시 ‘중요한 무언가’가 걸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플레이어가 선택하려는 순간에 ‘이건 중요한 결정이구나’라는 걸 알게 만들어야 하고, 선택의 결과가 바로 나타나든지, 혹은 나중에 나타나든지에 상관없이 선택에 따른 결과는 확실히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옵시디언의 조쉬 소여 스튜디오 디자인 디렉터

2 정해진 길을 따르는 스크립트, 스스로 선택지를 찾는 놀이터
플레이어는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면서 게임에 더욱 빠져들게 됩니다. 그래서 게임을 디자인할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플레이어에게 주는 것도 치밀한 계산이 필요합니다.

조쉬 소여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개발자가 미리 몇 가지 길을 정해놓고 이를 따르게 하는 스크립트 방식, 다른 하나는 게임의 규칙 안에서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방법을 찾는 놀이터 방식입니다. 조쉬 소여는 ‘히맨’ 게임을 예로 들면서 두 가지 방식 모두 플레이어가 거부감 없이 잘 즐긴다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마틴 클리마는 스크립트 방식보다 놀이터 방식을 더 선호했습니다. 스크립트 방식은 정해진 길을 따라가면서 숨겨진 정답을 찾아야 하는 ‘퍼즐 게임’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겁니다. RPG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에게 과제를 주고 스스로 해법을 찾게 하는 것이 게임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쉬 소여는 놀이터를 주는 방법은 게임 디자이너에게 매우 힘든 일이지만, 그 자체 만으로 게임 속 세상을 진짜처럼 느끼게 만드는 훌륭한 장치라고 말했습니다.

▲ 워호스 스튜디오의 마틴 클리마 총괄 프로듀서

3 '선택의 환상'과 플레이어 자유의 균형
플레이어에게 선택지가 주어지는 데, 실상은 플레이어가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선택의 환상’이라고 불렀습니다. 일종의 트릭인 셈입니다.

제이슨 리터보는 좋은 예시를 하나 이야기했습니다. ‘OOO은 이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문구였습니다. 이 문구는 플레이어의 선택이 당장 큰 영향을 주거나 이야기의 골자가 바뀌지 않더라도, 플레이어는 ‘내 선택이 게임 안에서 계속 영향을 주고 있구나’라고 느끼도록 만듭니다.

조쉬 소여도 이 의견에 공감했습니다. 그는 플레이어의 선택이 매번 세상을 바꿀 필요는 없다고 말하면서 NPC가 살아있는 듯 선택에 반응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플레이어에게는 눈 앞에서 보이는 작은 리액션이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미는 작용보다도 더 크게 느낀다는 겁니다.

마틴 클리마는 "선택이 아무리 많아도, 모든 플레이어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야기의 '중심 기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중요한 이야기 순간에는 잠시 플레이어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 이야기가 끝나면 다시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다고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자유로운 방식과 정해진 이야기를 섞을 때 생기는 문제점도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데스 스트랜딩'에서 아주 슬프게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이야기 직후에, 갑자기 '피자 배달' 같은 엉뚱한 퀘스트를 받으면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감정이 깨질 수 있다고 예시를 들었습니다.

▲ 라리안 스튜디오의 제이슨 리터보 시네마틱 디렉터

4 선택의 미래, 변화할 방식과 변하지 않을 가치
기술의 발전에 따라 플레이어의 선택에 들어가는 트릭도 늘어나지 않을까? 강연의 마무리는 선택의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이어졌다. 조쉬 소여는 기술이 발전하면 게임 속 '놀이터(샌드박스)'가 더 진짜처럼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가 자신을 표현할 방법도 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마틴 클리마는 자동화 기술이 게임 만들기를 도와주더라도, 게임이 플레이어와 이야기하는 고유한 '게임의 언어'를 잃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플레이어들이 자기 경험을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게임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제이슨 리터보는 기술이 사소한 부분까지 도와줘서 선택을 더 진짜처럼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기술과 관계없이, 만드는 사람의 '진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다음의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결국 스스로를 움직여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만든 선택지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면, 플레이어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셰익스피어를 읽는 이유는 그 단어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도구를 쓰든, 게임은 우리를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면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