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일본과 중국의 대립 과정에서 급부상한 단어가 있다. 바로 '한일령(限日令)'이다. 한국인이라면 제법 익숙한 단어일 것이다. 지난 2017년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자 중국 당국은 한국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통상 압박을 가했으며, 특히 중국 문화 콘텐츠 수출의 핵심이던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게임 산업에서 한한령이 가져온 가장 큰 타격은 외자 판호였다. 중국에 게임을 서비스하기 위해선 일종의 서비스 허가증인 판호가 필수인데, 한한령 당시 중국은 한국 게임에 대한 외자 판호 발급을 사실상 전면 중단했다. 최근 들어 조금씩 발급 사례가 나오고 있지만, 한한령 이전과 비교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을 겨냥한 한일령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이미 영향이 직격탄으로 나타났다. 개봉 중이던 '귀멸의 칼날'의 관객 수가 급감했고, 개봉 예정이던 '짱구는 못말려'와 '일하는 세포'의 중국 개봉이 잠정 연기됐다. 이 외에도 지난달 28일 상하이에서 열린 '반다이남코 카니발 2025' 행사에서는 오오츠키 마키의 공연이 도중 중단됐으며, 29일 예정돼 있던 하마사키 아유미의 공연 역시 명확한 이유 없이 취소됐다. 일본 가수들의 공연 취소가 잇따르면서 엔터테인먼트 전반에 대한 압박이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게임은 어떨까. 일본 게임의 외자 판호 중단도 치명적이지만, 업계와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중국 게임 내 일본 콘셉트 및 일본 IP와의 협업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작된 엔터 산업 압박, 게임은 어떻게 될까?
한한령 시기 중국은 한국 게임의 외자 판호 발급을 사실상 멈추며 강력한 압박을 가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일본과 미국 게임들이 수백 개의 외자 판호를 받는 동안, 한국 게임은 10여 개에 그쳤다.
최근 몇 주 사이 한일령이 본격화하고 있는 만큼, 우선적으로 일본 게임의 중국 내 출시, 즉 외자 판호의 발급이 전면적으로 중단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게임 산업과 관련해서 가장 직접적으로 압박을 줄 수 있는 요소인 동시에, 앞서 언급한 일본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가하는 중국의 압박을 고려하면 한한령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다.

이 외에도 현재 서비스 중인 게임들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압박이 가해질 것이라는 분위기도 있다. 어느덧 서브가 아닌 메인으로까지 급부상한 서브컬처 장르에 있어서 일본적인 요소, 콘셉트는 이제 하나의 문법으로까지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서브컬처를 표방한 모바일 게임들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어떤 식으로든 일본풍 도시나 캐릭터를 쓰는 걸 볼 수 있을 정도다.
한일령이 단순한 통상 압력이 아닌 일본과 관련된 요소에 전방위적으로 가해지는 조치라는 걸 고려하면 이는 여러모로 치명적이다. 한창 일본에 날을 세우고 있는 만큼 일본풍 등의 콘셉트가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지만, 한일령이 이제 막 시작된 만큼 가능성은 적지 않다.
실제로도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이와 관련해서 벌써부터 우려하는 분위기다. 현재 서비스 중인 게임의 일본풍 지역, 캐릭터는 그렇다 치더라도 향후 추가될 예정이었던 일본 콘셉트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붕괴: 스타레일'이 대표적인데, 다음 업데이트 예정 지역으로 점쳐지고 있는 에도성(Edo Star)의 경우 에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풍 지역이기에 업데이트 계획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3.8 버전 업데이트 소식을 전하면서 "향후 게시 예정이었던 캐릭터 예고 코너의 게시 일정이 조정될 예정"이라고 밝혀 단순한 의혹에서 모종의 조치가 취해진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명일방주'의 상황도 비슷하다. 몬스터 헌터 콜라보 2탄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일본풍은 아니지만 일본 대표 게임과의 콜라보라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가 그래도 이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영역에 더 가깝다면, 거의 확실시되는 부분도 있다. 바로 일본 성우 더빙에 대한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중국에서는 현재 일본 엔터테인먼트와의 관계를 끊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중국 게임의 '일본 성우'를 쓰지 않겠다는 뉴스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까지는 공식적으로 일본 성우 금지 조치가 취해진 건 아니지만, 한한령 당시 한국 연예인들의 중국 방송 출연 금지 조치를 고려하면 충분히 있을 법한 조치다.
중국&일본 합작 게임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일본과 중국이 합작해 개발 중인 게임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재 일본과 중국은 게임 쪽으로는 긴밀히 협업하는 관계로, 일본 IP 게임이 중국 개발사를 통해 개발·서비스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서비스 중인 게임도 문제지만, 개발 중인 게임도 이번 한일령의 여파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난 TGS 2025에서 화제를 모았던 '몬스터 헌터 아웃랜더스'를 들 수 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게임으로, 원작의 헌팅 액션을 모바일 플랫폼으로 거의 완벽하게 재해석했다는 평가와 더불어 자원 수집, 제작, 기지 건설 등의 생존 요소를 통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 바 있다. 그랬던 '몬스터 헌터 아웃랜더스'지만, 한일령으로 인한 영향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임 콘셉트상으로는 일본과 다소 무관하지만, 캡콤의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2020년 중국 출시 하루 전 갑작스레 연기된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이 있다. 중국 정부는 과몰입 방지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이유로 들었지만, 이후 4년 가까이 지나 2024년에서야 출시된 점을 고려하면 한한령의 여파였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한국 게임사의 중국 서비스와 중국 개발사의 일본 IP 게임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중국 정부가 일본 관련 요소 전반을 압박하는 흐름을 보면 '몬스터 헌터 아웃랜더스' 역시 개발·출시 일정에 영향이 불가피해 보인다.
중국 정부는 일본 여행 자제 권고, 대형 여행사의 일본 여행 상품 판매 중단, 일본 영화 상영 잠정 중단, 일본 가수 공연의 연이은 취소 등 일본 관련 산업 전반에 걸쳐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해소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격화되는 양상이다.
한한령이 본격화된 지 8년이 지난 지금, 겉으로는 완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그 영향은 유효하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한일령은 한한령 이상의 파급력이 예상된다는 분석도 나오는 만큼, 앞으로의 여파를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