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 30년이라는 시간은 한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한국 게임 산업은 이 한 세대 안에 태동과 급격한 성장, 그리고 성숙기를 모두 압축적으로 경험했다는 특수성을 지닌다. 성숙기 다음이 쇠퇴기가 아닌 새로운 도약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12월 29일 공개된 넥슨재단의 다큐멘터리 3부작 '세이브 더 게임(SAVE THE GAME)'은 산업의 지난 30년을 복기한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기록물이다.

기록은 타이밍이 생명이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며 든 첫 번째 감상은 안도와 아쉬움의 공존이었다. 영상 내에서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가 언급했듯, 넥슨 고(故) 김정주 창업자의 육성이 담기지 못한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조금 더 일찍 기록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1세대 개발자들의 증언을 지금이라도 남길 수 있었기에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과거 현장에서 장인경 마리텔레콤 대표를 만나 한국 게임 산업 초기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의 여러 증언을 들으며 정리되지 않은 역사를 기록하고 싶다는 욕심을 가졌다. 그렇기에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든다.

개인적 기억을 잠시 빌리자면, 1999년 초등학생 시절 새마을금고를 찾아가 넥슨에 '바람의나라' 한 달 정액권을 결제를 위해 송금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게임 속에서 첫 직업으로 주술사를 택했고, '지존(99레벨)'을 달성해 '헬파이어' 마법을 처음 시전했을 때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다큐멘터리 2부 '온 더 라인(ON THE LINE)'은 바로 이 시절,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과 PC방 문화의 확산 속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온라인 게임 산업을 조명한다. 2부는 넥슨이라는 기업의 성공담을 넘어, 그 시대를 함께 호흡했던 수많은 게이머의 집단적 기억을 산업적 맥락 위로 끌어올린다. 이는 부분 유료화 모델의 정착과 라이브 서비스 노하우 축적 등 한국 게임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결정적 변곡점들을 짚어낸다.


1부 '세이브 더 게임'은 한국 게임 산업의 태동기를 조명한다. 게임은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 타 주력 산업의 성장사가 신화처럼 널리 회자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간 게임 산업의 초기 역사는 체계적인 기록의 부재로 인해 대중에게 많은 부분이 물음표로 남아 있었다. 이 부분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1987년 '신검의 전설'이 나올 당시, 정품 구매는 낯선 개념이었고 불법 복제가 만연했다. 2025년 현재 게임이 때로는 '중독'이라는 프레임으로, 때로는 핵심 수출 산업으로 다뤄지는 것과 달리, 당시에는 산업으로서의 인식조차 희미했다. 1부는 이러한 척박한 환경을 개발자들의 덤덤한 증언으로 채우며 '대한민국 게임 산업의 시작은 이러했다'는 모습을 전한다.

2부는 넥슨이라는 특정 기업의 비중이 높아 게임 산업 다큐보다는 '넥슨의 자서전'처럼 비친다. 1부가 전체를 다뤘던 것에 비하면 2부는 다소 협소했다. 모든 것을 담아내는 것도 무리겠으나, "어떤 면을 다루지 않았다"라는 아쉬움이 일각에서 나올 수 있겠다.

한국 게임 산업사에서 넥슨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스스로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 자체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어 납득은 간다. 다만, 1부가 '발굴'과 같아 의미가 더해졌다면, 2부는 '재조명'에 그쳤다는 평가다.

3부 '굿 게임(Good Game)'은 아쉽다. 1, 2부와 달리 내레이션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극의 흐름을 이끄는데, 이는 담담하게 사실을 전하던 전반부의 톤 앤 매너와 충돌하며 집중을 방해한다. 내용 면에서도 과거의 비화를 발굴해 낸 앞선 파트와 달리,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현재의 게임 문화를 재정의하는 수준에 그쳐 정보의 신선함이 떨어진다. 외국인이 한국 게이머를 분석한 것이라면 모를까. 자화자찬으로 스스로의 격을 높이려는 시도처럼 보여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1, 2부처럼 관조적인 시선을 유지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패키지 게임은 실패했는데, 온라인 게임은 성공했다는 시각은 바꿀 필요가 있다.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다가 결국은 성공하는 스토리로 바라봐야 한다. 만약 패키지 게임이 없었다면, 온라인 게임의 성공도 힘들었을 것이다"

영상에 출연한 남영 한양대학교 과학기술사 교수의 이 발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를 확장해 해석하면, 현재 국내 게임 산업이 겪고 있는 진통 역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우리 게임 산업은 지난 30년간 그래왔듯 앞으로도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와 그 시작점을 복기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기록 속에 미래 성공을 위한 단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쉬운 부분은 있으나, 잊힐 뻔한 우리 게임 산업의 태동기를 생생하게 복원해 낸 넥슨의 '세이브 더 게임' 프로젝트가 남다른 의미를 갖는 이유다.

한편, 본 다큐멘터리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독점 공개 중이며 향후 시청 플랫폼이 확대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