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CES 2026 미디어데이 이튿날, 사건은 이렇게 전개됐다.

CES 2026 미디어 세션에 레고 그룹이 참여한다는 내용을 뒤늦게 알아버렸다. 취재 계획을 너무 업무에만 초점을 맞췄나. 자율 취재의 여건이 되는 흔치 않은 시간, 내심 기대했던 제품 전시회의 출품작들이 게이머들에게 그리 흥미롭지 않겠다는 판단과 함께 출장 전엔 궁금했던 맥킨지의 세션이 "내 앞길도 모르겠는데 컨설팅 노하우는 무슨.."이라는 자기합리화까지.

▲ 제아무리 사무적인 안내판이라고 한들, LEGO라는 단어만 봐도 설렌다

맥킨지도 할 말이 많다. "승철, 나는 나중에 한국의 맥킨지를 만들 거야"를 이틀에 한 번꼴로 얘기했던 사회 초년생 당시의 전 직장 상사. 이 사실을 안다면 "승철, 레고는 장난감 아니야? 우리는 큰 미래를 봐야 하는 사람들이야", "내 얘기를 들으니 생각이 좀 바뀌었어? 어디 갈래?"라고 무한 반복 할 것이 뻔하다. 지금 말론 쿠션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10년은 넘은 얘기다 보니, 그때 당시엔 차라리 "맥킨지!! 가라고!!" 윽박질러주는 사람이길 원했다.

20대의 혈기로 왕왕 들이박은 그 사회 초년 생활 덕분에, 지금은 하루 차이의 선배에게도 깍듯하려 노력하는 스탠스 하나 건졌다. 그렇다고 예나 지금이나 같은 상황에 놓여도 난 레고를 선택했을 것 같다. 새벽에 결정된 내용이라 팀장과 상사에겐 통보 형태로 때려놨고, 왜 제멋대로냐고 혼이 날 땐 나더라도 현장에서 사리사욕 채우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건 잘 없다. 노는 것도 아닌데. 인벤 가족 여러분들도 맥킨지보단 레고를 더 좋아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러분이 좋아해야 제가 살아요.

▲ 행사장 자체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2x4 브릭 네온사인으로 용서하도록 하지

나는 레고를 정말 좋아한다. 뭐 레고 싫어하는 사람 몇이나 되겠나. 근데 좀 농도가 있다. 자기 관리를 정말 못하는 편이라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식을 아직 찾지 못했는데, 몇 안 되는 명확한 도구 중 하나가 바로 레고다. 지금도 여전히 즐기고 있고, 본집에 아직 뜯지 못한 레고가 큰 게 3개, 작은 게 13개 정도 있다.

말은 길었지만 고민과 결정은 빨랐다. 현장으로 가는 길에 "근데 레고에서 글로벌 최대 규모의 IT 박람회에서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지?". 바로 직전 문단과는 별개로, 레고 그룹은 팬들 입장에선 이상한 짓 많이 하기로 유명하다. 하는 신사업마다 잘 안되고 최신 기술이나 이런 거 다 때려 박아도 결국엔 "초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무새로 또 신기하게 승승장구하는 굴지의 블록 장난감 기업이다.

좋아하는 분야를 취재해서 그런지 옛날 얘기를 많이 한다. 내 첫 단신도 레고의 삽질 중 하나인 '레고 히든사이드'였다. 레고 히든사이드는 완성하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증강현실(AR)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별도의 라인업이었다. 기업적으로 혹은 사업적으로는 성공했는지 모르겠는데, 팬 입장에서는 앱도, 브릭 자체도 뭔가 좀 허접한 느낌이 많이 나서 개인적으로 정말 별로였다.

그 전후로도 늘 그랬던 것 같다. 복잡하고 의미 없이 양산되던 브릭을 과감히 없애고 최대한 브릭의 형태를 존중하여 "초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를 대표로 한 레고의 브랜드 성공 신화는 이제 대중적이지 않은가. 이게 하루 이틀이 아니긴 해서 이번 것도 기대 반 걱정 반이긴 했다.

미디어 세션을 듣고 나서의 감상은 "이상한 짓이 맞긴 한데 그래도 레고 문화가 돋보이는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 때는 뭔가 상호작용 브릭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마인크래프트 블록처럼 되나?" 생각했다

▲ 익살스러운 오프닝. 여기가 CES 행사장이라는 걸 잊을 정도

▲ 오늘의 연설자, 레고 그룹의 줄리아 골딘 CMO와 톰 도널드슨 VP가 헬기를 타고 오는 중이라는 콘셉트

▲ 헬기(는 무슨 드론)가 나타나서

▲ 전세계 레고 팬들을 박제하고 갔다

▲ 헬멧 무엇... 콘셉트에 지배된 사람들 같으니라고...

행사는 레고 그룹의 줄리아 골딘 CMO와 톰 도널드슨 VP의 미니피겨가 헬기를 타고 등장하는, 뭔가 CES스럽지 않은 유쾌한 오프닝으로 시작했다. 곧이어 줄리아의 환영사로 본격적인 세션이 진행됐다.

줄리아에 따르면, 작년인 2025년은 레고 브릭 탄생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고 한다. 레고가 전세계의 사랑을 받는 핵심적인 부분은 'LEGO 시스템 인 플레이'라고 언급하며 2x4 브릭 6개로 9억 개의 조합이 가능한 이 시스템을 계속해서 혁신하는 중이라고 언급했다.

1958년에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레고 브릭의 출시, 1970년대에는 대중문화 캐릭터의 등장, 그리고 1978년에는 레고 미니피겨의 탄생. 자잘한 것들을 걷어내고 굵직한 것들만 남기니 1978년과 2026년의 공백이 팬 입장에서는 가슴 아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하튼 레고 시스템 인 플레이에 있어 그 공백 이후 오늘 언급한 것이 바로 '레고 스마트 브릭(LEGO Smart Brick)'이다.

▲ 환영사를 진행하는 레고 그룹의 줄리아 골딘 CMO. 초면에 실례지만 레고 그룹에서 일할 것 같은 외모다

▲ 우리가 익숙한 그 레고에서

▲ 캐릭터, 그리고 미니피겨를 지나

▲ 1978년의 미니피겨가 2026년의 새로운 혁신을 발견하는 상징적인 이미지

줄리아는 현재 아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이며, 스크린 속 세상에 좀 더 익숙한 세대라고 언급했다. 레고 그룹은 최신 기술 혁신을 레고라는 물리적인 놀이(Physical Play)로 가져와서 스크린이나 복잡한 버튼 없이 아이들이 주도하는 직관적으로 놀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는 설명이다.

레고 스마트 브릭의 간략한 특징은 센서, 가속도계, 광 센서, 음향 센서, 내장 신시사이저로 구동되는 소형 스피커 등 놀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다양한 기술과 간편한 무선 충전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 레고 스마트 브릭! 뭔가 그냥 단순 투명 레고 같다

이어서 톰 도널드슨 VP의 기술 소개가 이어졌다. 레고 스마트 브릭을 통해 즐기는 것을 '레고 스마트 플레이(LEGO Smart Play)'라 언급하며 핵심 요소 세 가지를 설명하며 시연했다.

먼저 스마트 브릭(Smart Brick)은 수많은 센서와 스마트 기술이 응축된 2x4 형태의 브릭이다. 버튼도, 스크린도 없지만 아이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스마트 태그(Smart Tag)는 마이크로 카트리지와 같으며, 스마트 브릭이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하는 코드가 담겨있다. 시연으로 봤을 때는 2x2의 납작한 사각형이었는데, 실제 판매 제품에는 어떻게 적용될지 모르겠다.

스마트 미니피겨(Smart Minifigure)는 캐릭터마다 고유한 성격과 행동 코드가 들어있는 미니피겨다.

▲ 안에 이것저것 들어가있는 것 같다. 우선 2x4의 스마트 브릭과

▲ 스마트 브릭의 반응을 결정하는 스마트 태그

▲ 캐릭터마다 고유한 성격과 행동 코드가 삽입된다는 스마트 미니피겨까지

▲ 어떻게 활용되어 일반 소비자에게 닿을 지 기대된다

시연 환경이 그렇게 좋진 않았지만, 임팩트는 확실했다. 먼저 반응형 사운드 시연을 볼 수 있었는데, 자동차 레고에 부착하여 바퀴를 굴리면 엔진 소리가 난다. 동물 레고에 부착하여 쓰다듬거나 움직임을 표현하면 울음소리가 나며 시연에서 오리를 눕히니 자는 소리를 냈다.

다음은 위치 인식 시연이었다. 스마트 브릭은 미니피겨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예를 들면 누가 운전석에 앉고 뒷좌석에 앉았는지 인식할 수 있었다.

색상 및 환경 감지 기능도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았다. 바닥 브릭의 색상을 인식하여 LED로 같은 색을 표현해 내는데, 시연에서는 LED가 단순히 같은 색깔로 표현했지만, 인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면 다른 표현도 무궁무진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주더라,

여러 개의 스마트 브릭이 서로 통신하는 분산형 네트워크도 재밌었다. 예를 들면 소방차가 건물에 불이 난 것을 감지한다거나, 경주에서 누가 결승선을 통과했는지 서로 공유하고 이에 따른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이는 공간 및 방향 인식과 맞물려 다양한 연출이 가능할 것 같은데, 이는 별도의 통합 수신소 없이도 스마트 브릭들끼리 서로의 거리와 방향을 인식하는 기능이다.

▲ 기술 시연을 맡은 톰 도널드슨 VP. 줄리아와는 다른 의미로 레고 그룹에서 일 잘할 것 같은 외모다

▲ 우측의 스마트 브릭이 인식하고 있는 초록색 발판을 좌측의 스마트 브릭이 인식하여 반응하는 모습

▲ 스마트 태그가 달린 자동차의 바퀴를 굴리면 우렁찬 엔진 소리가 나며

▲ 전복되면 충돌 소리도 났다

▲ 아이들과 즐거운 트로피 놀이도 시연했다

▲ 트로피에 가깝게 굴린 자동차가 승리하는 간단한 게임. 트로피에 승자의 자동차 색상 LED가 들어오더라

주요 기능 시연 이후, 스마트 플레이가 가능한 첫 작품들을 소개했다. 성공적인 레고 시리즈 중 빼놓을 수 없는 '스타워즈(Star Wars)'가 그 주인공이었다. 스타워즈도 스타워즌데, 갑자기 츄바카가 등장하는 행사 연출 등이 유치하면서도 CES에서 이런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해서 즐겼다.

스마트 플레이가 가능한 레고: 스타워즈 시리즈는 디즈니 아사다 야스 CMO와 루카스필름 데이브 필로니 CCO를 통해 소개됐다. "스타워즈와 레고는 25년 이상의 장기적인 파트너"라며, "스마트 플레이를 통해 아이들이 집에서, 혹은 밖에서 은하계의 모험을 현실로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 스마트 브릭에 츄바카 미니피겨를 올리니 갑작스레 등장한 츄바카

▲ 그만해.. 형들...

▲ 어쨌건 스마트 브릭은 레고 그룹 라인업 중 불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스타워즈 라인업으로 출시된다

▲ 점점 보니까 빠져드는 것 같기도...?

▲ 꼬마 유튜버들이 즐겁게 노는 것으로 제품 소개를 마쳤다

해당 제품들 안에는 충전기가 포함된 레고 스마트 브릭과 최소 한 개의 레고 스마트 미니피겨, 그리고 레고 스마트 태그가 함께 제공된다고 한다.

'레고 스타워즈 스마트 플레이: 루크의 레드 파이브 X-윙(75423)'은 584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루크 스카이워커)와 레아 공주를 비롯한 두 개의 스마트 미니피겨, 루크의 충실한 친구 R2-D2, 그리고 반란군 승무원과 스톰트루퍼 미니피겨가 포함되어 있다.

이 세트에는 제국 포탑, 수송 차량, 지휘 센터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 모든 구성품은 함께 제공되는 LEGO SMART 브릭, 두 개의 LEGO SMART 미니피겨, 다섯 개의 LEGO SMART 태그를 사용하여 레이저 발사음, 엔진 소리 및 조명, 연료 보급 및 수리음과 같은 상호 작용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다. 가격은 99.99달러(26.01.06 기준 약 144,000원)이다.

▲ 레고 스타워즈 스마트 플레이: 루크의 레드 파이브 X-윙(75423)

'레고 스타워즈 스마트 플레이: 다스베이더의 타이 파이터(75421)'는 은하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악당 중 한 명과 그의 전투기가 LEGO SMART Play 시리즈에 등장하여 팬들은 은하 제국을 위해 가장 장대한 전투를 재현하고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이 473개 브릭으로 구성된 세트는 브릭으로 만들어진 반란군 전초기지와 제국군 급유소, 그리고 다스베이더와 반란군 함대 병사 미니피겨를 포함한 스마트 미니피겨를 제공한다. 레고 스마트 브릭을 사용하면 쌍발 이온 엔진의 굉음을 비롯한 다양한 인터랙티브 기능을 경험할 수 있다. 가격은 69.99달러(26.01.06 기준 약 101,000원)다.

▲ 레고 스타워즈 스마트 플레이: 다스베이더의 타이 파이터(75421)

'레고 스타워즈 스마트 플레이: 왕좌의 방 결투 & A-윙'은 스타워즈 3부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인,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의 마지막 장면에서 루크 스카이워커와 다스베이더가 펼치는 광선검 결투를 재현하고 새롭게 상상할 수 있다. 962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이 세트에는 다스 베이더, 팰퍼틴 황제, 그리고 루크 스카이워커 캐릭터를 재현한 세 개의 스마트 미니피겨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이 세트에는 브릭으로 조립된 A-윙 전투기와 조종사 미니피겨, 왕실 근위병 미니피겨 2개, 그리고 스마트 태그 기능이 탑재된 황제의 옥좌실 방어용 대포 포탑이 포함되어 있다. 가격은 159.99달러(26.01.06 기준 약 231,000원)이다.

▲ 레고 스타워즈 스마트 플레이: 왕좌의 방 결투 & A-윙

팬심을 보태서 패스할 것도 넘기지 않고 대부분을 작성했는데, 행사기를 작성하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뭔가 이상하긴 한데 그래도 꽤 그럴싸한"내용인 것 같다. 일단 물리적인 제품 설계 등에 대한 기술 설명 없이 "스마트 브릭은 최첨단 기술들이 적용됨!"으로 마무리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또, 개인적인 생각이고 결과론적인 얘기기도 하지만 코로나19 이후로 지금까지 출시된 레고들을 줄 세워보면 공통점이 있다. 역할이 명확히 분배되어 실내 책상 위에서 갖고 놀기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쩄건 세션 초반에 줄리아가 언급한 말대로 "최신 기술이 적용됨은 맞지만,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일맥상통하는 편이다. 아직 최신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증거가 없지만 어쨌건 최신 기술이라고 했으니.. 그렇다는 전제하에 놀이는 더욱 원초적이 될 수 있다. 네이버 사다리타기를 하면 될걸 왜 해적통 아저씨로 기분을 내겠는가. 그게 원초적인 요소다.


이번엔 스타워즈 3종을 공개했지만, 앞으로 어떤 라인업으로 출시될지 기대된다. 이에 확장하여 이런 첨단 기술이 들어간 만큼, 향후 별도의 커스터마이징 기능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커스터마이징 기능은 아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걸 공식적으로 풀어주지 않을 때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 밖에 방수는 될까? 아이들이 입에 넣어도 괜찮을까? 팬 입장에서 궁금한 부분투성이지만 이만 줄이도록 하겠다. 공개된 정보는 이 정도고, CES 2026 LVCC 전시장에서 데모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니 시간 되면 가볼 예정이다.

레고를 즐기는 방법, 정말 다양하다. 나처럼 조립에서 위안을 얻는 사람도, 전시에 만족을 하는 사람도, 나만의 디자인을 창조하는 사람도. 그러나 레고는 장난감 그 본질로 돌아가 전세계의 아이들이 레고를 들고 뛰노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한 것 같다. 원초적이고 물리적인 상호작용의 건강한 자극을 통해서 말이다.

그래서 CES 2026에 나오는 게 맞았냐고?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이번 CES 2026에서는 최신 기술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진짜 실존하는, 일반인이 피부에 와닿는 최신 기술'에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레고 그룹에서 발표한 스마트 플레이는 이 부분에 있어 굉장히 직관적이다. 스마트 브릭에 대한 기술 설명이 더 필요하겠지만, 뭐 어쨌건 신기한 게 맞긴 하니까. 신기하고 기괴해야 환영받는 곳, 그게 바로 CES다.

▲ 사야... 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