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화제 속에 막을 내린 흑백요리사 시즌2 마지막회의 대결 주제는 '나를 위한 요리'였다. 이전 라운드에서는 고정된 메인 재료, 혹은 좀전까지 함께한 팀원과 같은 재료로 대결을 펼치는 1:1 사생전 등 여러 제약이 있었다. 당연히 마지막 대결 주제는 해석 방식도 요리사에게 달렸고, 재료-기물 사용의 제한도 없었다. 결승에 어울리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대결. 그리고 최강록 셰프는 이 자유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즌2 13화 중)

"나를 위한 요리는, 그니깐, 나를 위하면 되는 거잖아요? 이거는 완전히 그냥, MMORPG다. 굉장한 자유도를 얻은 느낌? 마음껏 뛰어다녀도 될 것 같다. 이런?"

요즘에는 만화책 베가본드를 보고. 옛날에 이미 끝낸 귀멸의 칼날은 네즈코가 도와주는 보드게임(나도 '귀멸의 칼날: 도전, 최강의 대원!'을 게임 모르는 사람한테 이렇게 설명한다)까지 하고. 진격의 거인 속 '킹받는' 모션의 거인 달리기를 연습하고. 최애인 리바이는 입체기동장치 오타쿠지만, 자신은 오타쿠가 아니라는.

최 셰프는 '자칭 오타쿠가 아닌' 사람답게 이 대결 주제의 자유도를 MMORPG에 비유했다. 그렇다. MMORPG는 마치 뭐든 할 수 있는 자유도를 가진 게임이다. 아니 그런 게임이었다.

(TEO 테오 유튜브 중)


MMORPG의 자유도를 논하는 건 사실 꽤 해묵은 이야기다. MMORPG의 완전한 자유로움, '샌드박스형 MMORPG'는 일찌감치 주류에서 벗어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플레이 경험을 이야기하면 항상 늙다리 소리를 듣기에 섣불리 말을 안하고 꺼먹거리긴 하지만, 분명 내 최애 MMORPG는 '울티마 온라인'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진짜 자유도가 있었다. 여기서 자유도란 말 그대로 세계가 플레이어에게 반응하는 설계다.

울티마 온라인은 검사가 되고 싶으면 칼을 들고 적과 싸우고, 재봉꾼이 되고 싶으면 옷을 만들면 됐다. 대신 스킬 포인트에 제한이 있어 모든 것을 다 배울 수 없으니, 플레이어의 판단에 맞게 성장 방식을 결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제한은 자연스럽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길드, 선술집, 하우징 등으로 이어졌다. 이런 시스템은 유저들이 스스로 만들고, 또 활용해 나간다.

하지만 오늘날 MMORPG는 정해진 시스템에 따라 움직인다. 특정 레벨에 맞춰 지역을 지나가며 레벨을 올리거나, 더 강력한 장비 획득이 게임 티어의 상승과 함께 다시 장비 획득 단계로 이어진다. 혹은 NPC가 지시하는 퀘스트에 따라 더 수동적인 진행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자유롭게 이동하고 탐험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개발진이 정해둔 레벨 디자인 안에서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셈이다. 각 지역마다 정해진 놀이기구가 있듯, 일종의 '테마파크형 MMORPG'가 등장했다.

이브 온라인, 알비온 등 여전히 샌드박스형 MMORPG는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울티마 온라인 이후 주류에서는 멀어졌다. 명확한 목표, 그리고 이를 통해 주어지는 낮은 진입장벽, 그리고 개발자 통제하는 세계를 만들며 개발이 용이하다는 점까지. 테마파크형 MMORPG는 그 시초로 불리는 1999년 작품 에버퀘스트를 시작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성공으로 대세가 됐다. 그리고 이제 MMORPG의 기본은 이쪽이 됐다.

▲ '물고기 낚기 5회'라는 일일 미션 없이도 그저 스스로 어부가 되기 위해 하염없이 낚시를 했던 시절도 있었다

테마파크형 MMORPG의 핵심은 플레이어가 원할 때 자유롭게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설계다. 그리고 언제든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만들려면, 꼭 친구가 아니어도 함께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는 이들과의 매칭을 주도해야 한다. 그건 플레이를 용이하게 만들지만,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를 아무개 플레이어1과의 임시 협업일 뿐이다. 가뜩이나 버거운 현실 속 사회생활을 가상 세계까지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함. 그만큼, 게임 속 관계는 흐려졌다.

여기에 게임 자체의 편의성이 높아지니 자연스레 게임을 오래 플레이할 이유가 사라진다. 이에 매일 플레이해야하는 데일리 콘텐츠를 제공하고 플레이를 잡아두는 게 기본이 됐다. 매일 해야 채울 수 있는 무언가. 이건 스스로 목표를 정하던 샌드박스형 MMORPG와는 전혀 다른 결의 콘텐츠다. 그리고 학창시절 누구나 하기 싫어하던 '숙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즐거워야 할 게임이 숙제가 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변화다. 삶의 질이 개선되면서 게임 외에 즐길 수 있는 놀이는 많아지면서, 샌드박스형 MMORPG처럼 플레이어를 오래 잡아두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게임사도 낮은 진입 장벽에 성공 사례가 많은 테마파크형 MMORPG의 도전을 이어갔고, 결국 MMORPG라는 장르 자체가 하나의 형태로 수렴되어 버렸다.

뭐가 좋고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최 셰프가 '나를 위한 요리'라는 주제를 MMORPG로 비유했을 때 MMORPG 속 숙제가 생각나 씁쓸하게 웃으며 봤기에 적어본다. 물론 '자칭 오타쿠가 아닌' 그도 MMORPG가 마냥 자유로운 게임이 아니라는 것은 알리라 생각한다. 실제로도 이제 그런 자유로움은 마인크래프트, 데이즈로 출발한 서바이벌 크래프팅 게임이 대체하고 있고 말이다.

그런데도 MMORPG라는 단어는 무언가 자유로움이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한정된 좁은 공간, 정해진 스토리와 엔딩으로 점철된 과거의 아케이드-가정용 비디오 게임. MMORPG에는 그곳에 없던 방대한 세계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한 번 쯤은 숙제도, 정해진 길도 없이, 그저 그 세계속 자유로움을 친구들과 함께 MMORPG라는 이름으로 즐기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