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팜이라는 개발사에 대해서는 아마 대중적으로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올해로 설립 16년 차를 맞이한, 나름 중견이라 부를 만한 업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철저히 파트너사와의 협업 및 외주 제작에 집중하며 무대 뒤의 조력자 역할을 자처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손을 거친 대표작으로는 '나루토 투 보루토: 시노비 스트라이커'와 '사무라이 잭'이 꼽힌다. 두 작품은 IP와 장르가 모두 다르지만,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외에도 셰이프팜은 사이게임즈를 비롯한 유수의 개발사들과 협력하며 애니메이션풍 게임 아트를 책임지는 실력파 아트 하우스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하지만 탄탄한 실력을 갖춘 이들에게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아쉬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셰이프팜만의 색깔을 온전히 담아낸 자체 IP가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이들은 4년 전, 오랫동안 품어온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신작 '오비탈스'의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지난 2025년 더 게임 어워드 무대에서 마침내 그 결과물을 세상에 공개했다.

공개 당시 반응은 뜨거웠다. '잇 테이크 투'나 '스플릿 픽션' 등을 통해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화면 분할 협동 게임이라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80~90년대 레트로 애니메이션의 감성을 완벽에 가깝게 구현해낸 비주얼이 전 세계 게이머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이제 대중의 시선은 화려한 비주얼 너머의 게임성을 향하고 있다. 비주얼로 합격점을 받았다면, 이제는 실제 플레이 경험으로 그 가치를 증명해야 할 차례다. 그러던 중 퍼블리셔 케플러 인터랙티브로부터 반가운 초대를 받았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셰이프팜 본사를 직접 방문해 게임을 시연하고 개발진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과연 셰이프팜이 준비한 야심작 '오비탈스'는 어떤 매력을 품고 있을까. 마르코스 라모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제이콥 룬드그렌 게임 디렉터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그들이 추구하는 협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오비탈스'를 통해 어떤 즐거움을 게이머에게 선사하고자 하는지 들어봤다.

'오비탈스'를 받치는 2개의 기둥 - 레트로 애니메이션 | 2인 협동
본격적인 시연에 앞서 진행된 프레젠테이션은 마르코스 라모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제이콥 룬드그렌 게임 디렉터가 맡았다. 마르코스 디렉터는 먼저 회사에 대한 소개로 운을 뗐다. 수많은 게임의 외주 제작을 통해 실력을 쌓아온 셰이프팜이 '오비탈스' 개발에 착수한 이유는 명확했다. "우리만의 색깔을 담은 자사 브랜드를 전개하고 싶다"는 오랜 열망이 4년 전 '오비탈스'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마르코스 디렉터는 '오비탈스'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두 개의 핵심 기둥으로 '레트로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비주얼'과 '2인 협동 플레이'를 꼽았다. 이는 단순히 게임의 특징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의사결정의 절대적 기준이다. 그는 "이 콘셉트에 맞지 않는 요소는 과감히 배제하고, 두 가지 기둥이 중심에 놓이도록 개발 체계를 구축했다"며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먼저 비주얼 측면에서 레트로 애니메이션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어떤 게임을 만들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고 회상했다. 80~90년대 스타일의 애니메이션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오랫동안 품어온 만큼, 기획 단계에서부터 자연스럽게 결정된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일반적인 3D 그래픽과 비교했을 때, 이러한 특색 있는 아트 스타일을 이질감 없이 구현하는 것은 업계에서도 상당한 난도가 요구되는 일로 통한다.
하지만 셰이프팜은 그간 '나루토 투 보루토: 시노비 스트라이커', '사무라이 잭' 등을 거치며 3D 게임 엔진(언리얼 엔진 5) 환경에서도 2D 애니메이션의 질감을 극대화하는 텍스처 및 광원 적용 노하우를 꾸준히 축적해 왔고, 덕분에 이러한 비주얼을 온전히 자신들만의 강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비주얼의 방향성이 실제 게임으로서 유효한지에 대한 검증도 마쳤다. 마르코스 디렉터는 "초기 데모를 직접 플레이하며 이 스타일이야말로 '오비탈스'에 최적화된 옷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전했다. 기술적 확신 이후에는 스토리텔링에 공을 들였다. '오비탈스'의 서사는 장엄한 대서사시보다는 정석적인 모험물에 가깝다. 다시금 찾아온 우주 폭풍의 위기 속에서 주인공 마키와 오무라가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담았다.
자칫 단순해 보일 수 있는 구성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복잡하고 어려운 설정으로 유저를 이해시키기보다는, 누구나 쉽게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서사의 구조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에반게리온'을 예로 들며 "기승전결 구조에서 전형적인 흐름을 따르다가도 어느 순간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이어지는 '전(轉)'의 묘미를 살려, 유저들의 기억에 남는 스토리 빌딩을 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마르코스 디렉터는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원기옥을 모으는 장면을 예로 들며 캐릭터와의 교감이 주는 힘을 강조했다. "과거 아이들이 공원에서 원기옥 흉내를 내며 놀았던 건 비주얼이 화려해서가 아니라, 캐릭터에 깊이 이입해 그가 꼭 이기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주인공 마키와 오무라 역시 유저들이 진심으로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빚어내고 있음을 시사했다.

다음으로 제이콥 룬드그렌 게임 디렉터가 바통을 이어받아 '오비탈스'의 게임 플레이 및 시스템을 소개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 게임에 대해 "2인 플레이가 아니면 즐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점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대다수의 멀티플레이 게임이 1인 플레이를 염두에 두고 혼자서도 해결 가능한 기믹을 배치하는 것과 달리, '오비탈스'는 설계 단계부터 오직 두 명의 협동을 전제로 구축되었다는 설명이다.
흥미로운 점은 제이콥 디렉터 본인이 협동 게임의 마스터피스로 불리는 '웨이 아웃'과 '잇 테이크 투'의 개발사, 헤이즈라이트 스튜디오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해당 작품들의 디자인을 직접 담당했던 그는 셰이프팜으로 이직한 후 자신의 노하우를 '오비탈스'에 녹여내면서도, 기존의 성공 공식을 단순 복제하는 수준을 넘어선 독창적인 경험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이전에도 협동 게임을 만들었던 만큼 제이콥 디렉터가 '오비탈스' 역시 협동 장르로 선택한 것은 여러모로 합리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순히 익숙함뿐만 아니라 전략적인 판단도 깔려 있었다. 그는 "'웨이 아웃'부터 '잇 테이크 투', 그리고 '스플릿 픽션'까지 이름을 알린 협동 게임이 제법 많지만, 그럼에도 현 시장에서 이러한 장르와 콘셉트는 여전히 개척의 여지가 많다고 봤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게임 플레이 경험에 대한 접근 방식도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플레이어는 게임 속 세상에 몰입하기 마련이지만, 제이콥 디렉터가 추구한 방향은 조금 달랐다. 그가 핵심으로 내세운 건 시스템적인 기믹을 넘어, 플레이어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화면 속 캐릭터의 움직임보다 소파 옆자리에 앉은 파트너와 나누는 대화와 상호작용에 무게를 둔 것이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깊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철학을 기술적으로 구현한 것이 바로 비대칭적 경험이다. '오비탈스'에서 마키와 오무라 두 플레이어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대신 각기 다른 역할과 체험을 수행하며 하나의 퍼즐을 풀어가게 된다. 이때 다른 협동 게임에서 흔히 보이는 '스타트-스톱(혹은 콜드-스톱)' 방식, 즉 한 명이 스위치를 밟고 기다리는 동안 다른 한 명이 이동하는 정적인 구조는 지양한다.
제이콥 디렉터는 "한쪽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 있는 시간은 배제하고자 했다"며, '오비탈스'가 지향하는 비대칭 게임플레이는 양쪽 플레이어가 항상 동시에 움직이며 기믹을 해결하고 대화까지 이어지는 유동적인 흐름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러한 게임 플레이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협동이라는 요소가 지닌 태생적인 문턱 때문이다. 두 명의 협동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어느 한쪽이 실수하면 진행이 막힐 수 있음을 의미한다. 셰이프팜 역시 이러한 우려를 인지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그는 숙련도에 의존하는 어려운 버튼 조작이나 엄격한 타이밍 대신, 소통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에 집중해 진입 장벽을 대폭 낮췄다고 밝혔다.
이는 하드코어 게이머가 게임이 낯선 가족이나 친구, 연인에게 자신의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완벽한 '입구'가 되어주겠다는 의도다. 누구나 소외되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는 그는 "서로 대화하며 해결해 나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게임이 되길 바란다"며, "하드코어 게이머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상관없이 게임을 즐기고 그 안에 푹 빠져들길 바란다"고 '오비탈스'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한 포부를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