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사막', 'GTA5', '레드 데드 리뎀션2', '배틀그라운드' 등 방대한 맵을 자랑하는 대규모 오픈월드 게임에는 유저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공통으로 시도하는 기행이 하나 있다. 바로 맵을 끝없이 순환하는 거대한 기차를 가로막고, 어떻게든 멈춰 세워보려는 실험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출시된 신작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3월 20일 정식 출시된 펄어비스의 '붉은사막' 플레이어들 역시 맵을 다니는 기차를 멈추기 위해 온갖 시도를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한 유저가 기차를 잠시나마 멈춰 세우는 데 성공하며 눈길을 끌기도 했다.

'기차 멈추기'는 특정 게임에 국한된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다. 유튜브 동영상 플랫폼에 '기차 멈추기(Stopping the train)'를 검색하면 국적을 불문하고 쏟아지는 실험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세계적인 크리에이터 미스터 비스트(MrBeast) 역시 'GTA5' 내에서 기차를 멈추는 대규모 콘텐츠를 진행했다. 해당 영상은 단일 조회수 1억1천만회를 돌파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기차를 멈추기 위해 유저들이 동원하는 방법은 상상을 초월한다. 무거운 대형 탱크 수십 대를 철로 위에 바리케이드처럼 겹겹이 쌓아 올리는 것은 기본이다. 선로 구간을 따라 1,500개가 넘는 폭약을 빼곡하게 설치해 거대한 연쇄 폭발을 일으키기도 하고, 수십 명의 플레이어가 한자리에 모여 맨몸으로 돌진하는 기차를 막아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실험은 대부분 처참한 실패로 끝이 난다. 물리 법칙을 비웃기라도 하듯 애써 모아둔 대형 트럭들이 휴지 조각처럼 공중으로 튕겨 나가거나 돌진하는 쇳덩어리에 부딪혀 캐릭터가 산산조각 나는 게 일반적이다. 많은 실패와 허무한 죽음을 경험하면서도 게이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변수를 찾으며 기차 앞을 막아선다. 도대체 왜? 게이머들은 이토록 '기차 멈추기'에 집착하는 걸까?


절대 권력 '유저' VS 절대 불변의 '기차'


▲ 이제는 멈추기가 불가능한 'GTA5' 무적 기차

게임 안에서 유저는 가상 세계의 운명을 결정짓는 절대자다. 세상은 유저를 위해 설계되었고, 유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플레이어의 선택과 행동은 게임 속 거대한 흐름을 송두리째 뒤바꾼다. 유저의 결정에 따라 핵심 인물의 생사가 엇갈리고, 특정 세력이 부흥하거나 몰락하고, 혼란에 빠진 지역에 평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길을 걷는 평범한 NPC의 목숨을 마음대로 앗아갈 수도, 반대로 위기에 처한 이들을 구원해 세계의 질서를 재편하는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서사적, 환경적 상호작용은 유저에게 자신이 이 세계를 완벽하게 지배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강력한 효능감을 부여한다. 가상 공간 속의 모든 사건과 인물은 오직 유저의 의지에 의해 반응하고 변화하는 수동적인 객체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저를 위해 만들어진 세계이지만, 유저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도 존재한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정해진 루트를 끊임없이 순환하는 거대한 기차이다. 이 오브젝트는 유저의 어떤 물리적 간섭도 허용하지 않는다. 게임 안에서 전지전능한 유저는 정해진 궤도를 도는 기차 앞에서 갖은 노력과 방법을 동원해도 기차를 멈출 수 없다. 유저가 느끼는 효능감이 기차 앞에서는 사라지게 되는 거다.

사실 기차가 어떤 물리적 간섭도 허용하지 않는 건 프로그래밍 관점에서 명확한 이유가 있다. 멈추지 않고 이동하는 거대한 기차 오브젝트에 질량, 마찰력, 실시간 충돌과 같은 다이내믹(Dynamic) 물리 연산을 모두 적용하면, 시스템의 연산량이 지나치게 증가한다. 이는 심각한 프레임 저하와 물리 엔진의 충돌 버그를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개발자들은 최적화를 위해 물리 법칙 연산을 생략하고, 정해진 궤도(Spline)를 무조건 전진하도록 코딩된 '키네마틱(Kinematic) 오브젝트'로 기차를 구현한다. 유저들은 플레이 경험을 통해 이러한 시스템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물리 법칙이 생략된 대상에 물리적 간섭을 시도하고 싶은 호기심을 갖게 된다.


게임 이론으로 보는 '기차 멈추기'


▲ 유저를 네 종류로 분류한 게임 디자이너 라프 코스터(Raph Koster)

게이머들의 도전은 게임 디자인 이론으로도 설명된다. 게임 디자이너 라프 코스터(Raph Koster)는 저서 '재미 이론'을 통해 유저가 느끼는 재미를 '패턴의 학습과 파괴'로 정의했다.

인간의 뇌는 새롭고 복잡한 패턴을 마주했을 때 이를 분석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끼지만, 그 패턴을 완전히 파악하여 예측 가능해지는 순간 급격히 지루함을 느낀다. 이때 뇌에 다시 강력한 자극을 주는 방법은 바로 그 익숙해진 패턴을 스스로 파괴하거나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정해진 선로를 영원히 일정한 속도로 순환하는 기차는 게임 내에서 가장 완벽하고 예측 가능한 패턴이다. 유저들이 실패를 알면서도 1,500개의 폭약을 설치하고 트럭 100대를 겹쳐놓는 이유는 단순히 대상을 파괴하기 위함이 아니다. 완벽하게 통제된 시스템 내에 미세한 충돌 판정이나 궤도 이탈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창출했을 때, 즉 견고한 패턴의 파괴를 이루어냈을 때 기대되는 카타르시스, 거기서 재미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리처드 바틀(Richard Bartle)이 정립한 '플레이어 분류법(Bartle Taxonomy)'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이 이론은 다중 접속 환경의 플레이어들을 행동 양식에 따라 달성가(Achiever), 탐험가(Explorer), 사교가(Socializer), 파괴자(Killer) 네 가지 성향으로 분류한다.

이 중 탐험가, 그리고 파괴자라는 복합 성향의 유저들은 맵의 숨겨진 장소를 찾는 공간적 탐험을 넘어, 게임이 설정한 물리적이고 시스템적인 한계를 끝까지 시험하는 '역학적 탐험'에서 가장 큰 재미를 찾는다. 이들에게 무적의 기차는 파괴할 수 없는 시스템의 한계를 상징하는 거대한 연구 대상이다. 엔진이 막대한 폭발 연산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시스템의 허점이 어느 지점에서 드러나는지 관찰하려는 지적 호기심의 발현인 셈이다.


실험을 넘어 하나의 콘텐츠가 된 '기차 멈추기'


▲ 유튜브 크리에어터 미스트 비스트의 '기차 멈추기' 콘텐츠 조회수 1.1억 회를 기록했다

기차를 멈추려는 시도는 개인의 단발성 실험을 넘어 커뮤니티가 다 함께 즐기는 놀이 콘텐츠로 발전했다. 한 명의 유저가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실험을 위해 온라인 세션에 수십 명의 플레이어가 모인다.

이들은 체계적으로 역할을 분담해 대형 덤프트럭을 훔쳐 오고, 터널 입구나 좁은 다리 위에 거대한 바리케이드를 구축한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게이머들이 '기차 저지'라는 단일 목표를 위해 자발적으로 협동 콘텐츠를 생성하는 것이다. 수백 대의 차량이 기차와 충돌하는 순간, 게임 물리 엔진은 연산 한계를 초과하여 차량이 하늘로 솟구치거나 겹쳐진 사물들이 진동하는 물리적 오류(글리치)를 발생시킨다.

유저들은 이를 단순한 버그로 여기지 않고 새로운 볼거리이자 성공적인 콘텐츠로 소비한다. 다 같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실험 과정과 결과물은 영상 플랫폼을 통해 공유되며, 다른 유저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챌린지 문화를 형성한다. 유저들이 직접 규칙을 만들고 다 같이 즐기는 이러한 자발적인 놀이 방식은, 게임 출시 후 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게이머들의 관심을 모으는 소재이다.


가장 순수한 형태의 자유를 향한 갈망


유저들이 게임 속 기차를 멈추려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가상 공간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자유를 경험하기 위해서다. 현실 세계에서 거대한 물리적 흐름이나 정해진 규칙을 개인의 힘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공간에서는 금기에 도전하고 한계를 시험할 수 있다. 정해진 경로를 절대 이탈하지 않는 기차를 멈춰 세우려는 행위는, 통제된 규칙을 거부하고 스스로 변수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다. 수많은 실험이 실패로 끝나고 애써 배치해 둔 사물들이 무의미하게 파괴되더라도, 게이머들은 시스템에 균열을 내기 위해 통제를 시도하는 과정 자체에서 자유를 느낀다. 게임 속 기차 멈추기 실험은 개발자가 짜놓은 판을 수동적으로 따라가지 않고,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려는 게이머들의 본질적인 도전 정신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