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폴란드 1인 개발자의 '매너 로드(Manor Lords)'는 건설 시뮬레이션 장르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중세 유럽이라는 익숙한 무대와 소규모 영지 경영의 디테일이 만나 스팀 역사상 손꼽히는 성공을 거뒀고, 이후 유사한 장르적 시도가 줄을 이었다. 그리고 이제, 동양의 고대사를 배경으로 같은 장르에 도전하는 팀이 나타났다.

중국 청두에 위치한 소규모 스튜디오가 개발중인 '맨데이트 오더'는 춘추전국시대를 무대로 하는 '고대 중국 요새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축성과 경영, 전쟁을 내세우는 이 게임은 오는 3분기 얼리액세스 출시를 앞두고 있다.

지난 21일, 중국 상해에서 열린 '빌리빌리 퍼스트룩(BiliBili First Look)' 현장에서는, '맨데이트 오더'의 초기 빌드를 직접 플레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삼국지가 아니라 '춘추전국'입니다



중국 고대사 기반 전략 게임이라고 하면 으레 삼국지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코에이의 '삼국지'는 물론이고,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의 '토탈워: 삼국'은 서구권 전략 팬들에게도 '삼국지'가 매력적인 소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삼국지'는 다소 흔한 소재가 되었다. '맨데이트 오더'의 개발진은 더 과거로 돌아가기를 선택했다.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약 800년에 걸친 춘추전국시대를 택한 이유다.

▲ 처음엔 이렇게 작은 부락으로 시작하지만

배경만 끌어들인 것은 아니다. 춘추전국시대는 노예제에서 봉건제로의 사회 구조 개편, 공자와 묵자, 한비자 등 수많은 사상가들이 국가의 미래를 논했던 시대이기도 하다. '맨데이트 오더'는 이러한 춘추전국의 특성을 게임 시스템 설계에도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그 예로 개발진은 게임 속 방어 시스템을 묵자의 성수편(城守篇)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묵가는 제자백가 중 방어 전술로 이름난 학파였고, 맨데이트 오더는 "성벽은 군주의 방패이자 백성의 피난처"라는 묵가 사상을 그대로 구조화했다. 유럽 중세 성곽이 아니라 판축 성벽, 봉화대 경보, 갱도전 같은 전국시대식 군사 건축물을 만나볼 수 있다.

▲ 거대한 요새로 확장할 수 있는 도시 건설의 재미를 담았다


사람...아니, 나무가 먼저다



빌리빌리 퍼스트룩 시연장에서 접한 '맨데이트 오더' 초기 빌드의 첫 감상은 사뭇 뚜렷하다. 도시 건설과 대규모 전투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것.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심시티와 토탈워를 한 게임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발진의 목표처럼 느껴졌다.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맵 어딘가에 소규모 인원으로 구성된 '세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을 지휘하게 된다. 처음엔 변변한 건물 하나 존재하지 않으니, 발빠르게 부락을 만들 자원을 늘려가야 한다.

벌목을 위한 건물을 짓고, 인원을 배치하면 자동으로 주변 나무 자원을 채집하기 시작하고, 채집한 나무를 사용해 사람들이 거주할 천막을 짓는것 부터가 이 게임의 시작이다.

개발진에 따르면, '맨데이트 오더'의 자원 순환을 대단히 유기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에게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전해지듯, 이 게임 또한 농사가 큰 역할을 차지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계절로 진행되는 게임 세션에서, 밭과 논에 파종을 할 수 있는 시기는 봄 뿐이다. 이 시기를 놓치고 나면, 1년 내내 대추나무를 채집하거나, 사냥터에서 사슴을 잡는 것 외에는 식량을 얻기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 계절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비주얼도 확확 바뀐다

'사람' 또한 매우 중요한 자원이다. 맨데이트 오더의 인구는 하나의 '오(伍, 고대 중국 군제의 최소 단위, 5명으로 구성된다)'이며, 플레이어가 지은 천막마다 하나의 '오'가 들어가 살 수 있다. 인원을 보충하는 것도 간단하다. 인구의 만족도가 50 이상일 때, 빈 천막이 있을 경우 다음 달에 새로운 '오'가 입주하게 된다.

이 '오'의 역할은 무궁무진하다. 앞서 설명한 대로 나무, 진흙, 철광석 등 기본 자원을 채집할 때도 필요하고, 이렇게 채집한 자원을 가공하는 데도 필요하다. 만약 자원이 본진과 멀리 있을 경우, 이를 운송하는 데도 '오'가 필요하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니, 천막은 주기적으로, 많이, 설치하는 것이 중요했다.

다채로운 건축물은 저마다 주어진 역할이 달라 최소한 하나씩은 지어줘야 한다. 초반 빌드인 만큼 모든 것을 알려주지는 못햇지만, 튜토리얼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자원의 순환을 배울 수 있었다. 나무를 모으고,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 가공품을 만든다. 그것이 숯덩이가 될 수도 있고, 건축물을 지을 때 필요한 나무 경첩이 될 수도 있다.

▲ 도로도 지어주면 오의 이동이 한결 편해진다

아직 석유가 자원으로 사용되기 이전 시대였기 때문일까. '맨데이트 오더'의 모든 기초자원은 거의 나무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요해도 너무 필요하다. 처음에는 주변 숲이 울창해 보였지만, 10분만 지나도 민둥산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를 방지해기 위해, 게임에는 나무를 다시 파종하는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자원 채집, 물자 보관, 운송, 백성들의 거처에 이르기까지. 이 게임이 제공하는 건설 시스템은 생각보다 깊이 있고, 탄탄한 모습이었습니다. 게다가 마우스 휠을 돌려 가까이 보면, 부락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하는 백성들에 모습에 '나름 잘 만든것 같기도?'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건설은 이 게임이 제공하는 모든 재미의 일부다. 아직 전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쟁에 보급이 중요한 이유


▲ 병사를 키우는데는 많은 자원이 들어간다

이 게임에서 병력을 생산하는 것은 생각보다 험난한 일이었다. 다른 전략 시뮬레이션처럼 원하는 병종을 '딸깍'하고 생산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병사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사람(당연하다)', 무기, 갑옷 등등 필요한 것이 아주 많다.

역시나 병력도 마찬가지로 '오'를 기반으로 한다. 갑자기 많은 병사를 징집하면, 이전까지 자원을 채집하던 사람들이 일을 그만두고 입대를 하게 되는 것. 따라서 초반에는 많은 수의 병사를 생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기를 직접 제작해야 하는 것도 난관이다. 나무 몽둥이까지는 튜토리얼에서 손쉽게 알려주지만, 구리로 만든 검을 제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거점에서 멀리 떨어진 구리 광산에 오를 보내 광물을 캐고, 수레 제작소에서 바퀴를 만들고, 만든 바퀴로 마차를 만들고, 물류 관리소를 또 만든 뒤 광물을 가져와야만 했다.

광물을 가져오고 나면, 다시 이를 '괴' 형태로 가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가공소를 짓고, 구리를 가공하려고 하면 숯이 필요하다. 숯은 원목을 목재 가공소에서 태워야 얻을 수 있다. 아뿔싸. 그동안 가진 원목 모두를 판자 만드는 데 다 써버렸다.

바로 이것이 구리 검 하나를 제작하는 데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들이다. 방패병을 만들고 싶다면, 왼손에 방패도 쥐어줘야 한다. 방패 제작소를 만들고 필요한 가공품을 얻는 과정이 추가된다. 궁수는? 전차는? 모두 마찬가지다.

이렇게만 들으면 모든 과정이 매우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맨데이트 오더'는 누군가와 대결을 하는 게임은 아니다. 개발진은 이 게임을 완전한 싱글플레이 경험으로 만들고 있고, 내 요새를 점차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병기를 생산할 자원은 언젠가 모이게 된다. 심시티를 하면서, 칼과 방패, 전차 재료를 모은다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 자원이 부족한 초반에는 몽둥이 하나만 쥐어줄 수 있다

건설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전투는 대체로 부수적 요소에 머물렀다. '매너 로드'마저도 전투는 상대적으로 간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맨데이트 오더'는 탄탄한 도시 건설 위해 대규모 전쟁까지 얹으려는 꽤나 야심찬 계획을 보여준다.

그 핵심은 개발진이 '퀵 라인 드로잉 포메이션'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부대 컨트롤 시스템이다. 부대를 선택한 상태로 원하는 지점에 '우클릭 드래그'를 하면, 커서의 궤적에 따라 병력의 진형을 바꿀 수 있다. 뾰족하게 만들어 적진을 돌파하는 진을 짜거나, 다부대 합동 진영을 통해 손쉽게 '망치와 모루'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게다가 고저차에 따른 궁수의 대미지 계산이라든지, 병종의 상하 관계 등 클래식한 요소도 빠짐 없이 들어 있다. 일반적인 건설 시뮬레이션에서는 보기 힘든, 꽤나 깊이 있는 전투가 가능하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 우클릭 드래그로 순식간에 진형을 갖출 수 있는 점은 인상적


위시리스트 6만 명, 전략 게임 매니아에겐 희소식



아쉽게도, 이번 시연을 통해서는 대규모 부대 전투까지는 경험해볼 수 없었다. 구리 무기 하나 만드는 데도 벅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진이 보여준 스크린샷들, 그리고 추후 게임에 적용될 다양한 요소들은 전략 게임 매니아들에게 매우 구미가 당기는 요소일 것이다.

'맨데이트 오더'의 또 다른 특징은 신릉군(信陵君) 위무기(魏無忌)의 식객이 3천 명을 넘었다는 고사에서 영감을 받은 '문객' 시스템이다. 제자백가가 활약하던 춘추전국시대의 특징을 시스템으로 가져온 요소다. 플레이어가 받은 문객들은 저마다 다채로운 능력으로 세력을 지원하며, 개중에는 꽤나 놀라운(?) 효과도 있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천재지변 시스템도 비슷한 설계 철학을 공유한다. 홍수, 가뭄, 역병 등 재난이 중후반부에 불시에 발생해 건설 리듬을 방해하고, 플레이어는 여기에 맞춰 적절한 대처를 해야만 한다. 역병이 더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감염자를 가두거나, 아니면 사형시키거나.

운석 충돌 이벤트도 인상적이다. 주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지만 '운철'이라는 희귀 자원을 생성하며, 이를 성공적으로 채집할 경우 신병기를 제작할 수도 있다.

▲ 집이 날아가도 일을 멈추지 않는 chill guy

전쟁에도 시대상을 반영한 다채로운 전략들이 준비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모든 인원들은 천막에 거주하며 '배변활동'을 한다. 이들의 쾌적한 생활을 위해 분변을 처리하는 건물도 지어야하는 이유다. 이 건물에서는 분변을 이용해 '금즙'이라는 자원을 만들 수 있는데, 끓인 인분을 적에게 떨어뜨려 공성전에 활용했다는 실제 고대 전술에서 유래했다.

이같은 깊이를 가진 게임을 28명 규모의 소규모 스튜디오가 1년만에 개발했다는 것은 놀라운 동시에 걱정을 안겨준다. 개발사 스스로도 NPC 모델 클리핑, 캐릭터 모델 부분 소실, 장시간 플레이 시 프레임 하락 같은 이슈가 남아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튜토리얼도 번역 오류가 남아 있어 한국어 버전으로 플레이 중 적잖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을 주목할 이유는 분명하다. 개발사에 따르면 스팀 위시리스트는 이미 6만 건을 넘어섰고, 이 중 90% 가까이가 해외 유저다. 중국 고대사를 소재로 한 게임이 중국 바깥에서 먼저 기대를 모으는 현상은 꽤나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초창기 버전인 만큼 완벽함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매너 로드' 이후의 건설 시뮬레이션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흥미로운 답변 중 하나임은 분명해 보인다.

'맨데이트 오더'는 오는 3분기 얼리액세스 출시를 앞두고 있으며, 춘추전국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대전 중 하나인 '장평 대전'을 모티브로 한 캠페인 DLC도 제작중이다. 현재 스팀 상점 페이지에서 데모 버전을 다운받아 즐겨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