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충무공전'으로 우리 역사를 게임에 담아내며 첫발을 뗐던 청년은 어느덧 30년 경력의 베테랑 개발자가 됐습니다. '임진록' 시리즈와 '거상'을 성공시키며 한국 전략 시뮬레이션을 이끌었던 김태곤 PD는, 그 자체로 한국 역사 게임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게임 인생에서 '임진왜란'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의 전부이자 뿌리였습니다. '아틀란티카'로 세계를 다루거나 '삼국지를 품다'로 외연을 넓히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엔 늘 고향 같은 임진왜란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죠.

2024년, 김태곤 PD는 대기업의 품을 떠나 사비까지 털어가며 독립 개발사 '레드징코'를 세웠습니다. 천 년을 사는 은행나무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닮으면서도, 남다른 감각으로 역사를 해석하겠다는 의지를 '빨간 은행잎'이라는 이름에 담았습니다. 그는 이곳을 단순히 게임을 찍어내는 공장이 아니라,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역사 게임 공방'이라 부릅니다.

"개발 인생이 30년을 넘었는데, 지금 안 하면 결국 평생 못 하겠구나 싶더라고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짊어진 이 사명감은 결코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는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골목길 노포처럼 주인장의 정성이 묻어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 철학은 오직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정수에 집중한 신작 '임진왜란 - 조선의반격'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습니다. 가장 김태곤다운 방식으로.

▲ 레드징코게임즈 김태곤 개발본부장

수많은 역사적 사건 중에서도 특별히 '임진왜란'을 소재로 삼은 계기가 궁금합니다.
1995년에 개발해 1996년 첫 작품으로 출시한 '충무공전'을 시작으로 '임진록' 시리즈, 초기 '임진록 온라인 거상'에 이르기까지, 2000년대 초반 제 세상의 전부는 임진왜란이었습니다. '아틀란티카'나 '삼국지를 품다' 같은 게임도 만들었지만, 제 개발 인생의 큰 흐름은 늘 역사와 지리였죠.

이후에도 임진왜란을 소재로 게임을 개발하려 했지만, 글로벌 진출의 어려움이나 한정된 유저층 문제로 개발비 확보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0여 년간 네 번이나 시도했음에도 번번이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 막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2024년,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가는 영영 못 만들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결국 사비를 털어 '레드징코'를 설립했고, 임진왜란 게임을 첫 프로젝트로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이라는 세계관에 그토록 깊이 빠지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습니까? 타 역사 게임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별점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제가 아마추어 시절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해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전략 장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의 자존심에 똑같이 오크와 엘프, 휴먼이 나오는 전형적인 서양 판타지를 따라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만의 뚜렷한 아이덴티티를 가져보자고 치열하게 고민하다 선택한 것이 바로 임진왜란이었습니다.

저는 게임쟁이로서 임진왜란만큼 완벽한 세계관을 다시 찾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 시대를 사랑합니다. 코에이의 '삼국지'나 일본의 '전국시대'를 다룬 게임들을 보면 사실상 단일 국가 내의 내전입니다. 위·촉·오의 복장이 크게 다를 리 없고, 무기도 대부분 칼과 창 수준이며 해상전 역시 적벽대전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합니다.

반면 임진왜란은 조선, 일본, 명나라 3국이 맞붙은 거대한 국제 전쟁입니다. 세 나라가 완전히 차별화된 비주얼과 물리적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냉병기를 넘어 조총이나 화포 같은 화약 무기까지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육상전은 물론 스케일 큰 해상전까지 펼쳐지며, 우리가 아는 수많은 역사적 위인들이 대거 참전한 매우 무게감 있는 소재입니다. 사업적 관점이나 게임 개발의 관점 모두에서 이보다 더 훌륭한 소재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 매력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수많은 장수를 육성해 부대 단위로 전투에 투입하는 구성을 짰습니다. 나아가 자원 생산이나 부가가치 창출 같은 경제 및 경영 요소를 게임성 깊숙이 결합하여 근본적인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더불어 시장에 이런 조선 배경의 주류 작품이 아직 드물다는 것 자체가, 저희에게는 또 다른 큰 기회라고 확신합니다.


회사 이름인 '레드징코(빨간 은행나무)'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천 년의 오랜 세월을 버티는 은행나무의 강인함을 닮고 싶었습니다. 흔히 떠올리는 노란 은행잎 대신, 역사를 다루되 우리만의 해석을 감각적으로 담아내자는 의미에서 빨간 은행잎(레드 징코)을 선택했습니다. 회사 로고 역시 빨간 은행나무입니다.

'징코(Ginkgo)'가 일본식 이름이라 친일파 기업이 아니냐는 오해도 있었는데요. 이는 은행을 뜻하는 한자의 일본식 발음을 서양인들이 잘못 받아 적어 굳어진 국제 표준 영단어일 뿐입니다. '레드징코'는 대기업이나 인디 게임사가 아닌, 장인들이 모인 골목 노포 느낌의 '역사 게임 개발 공방'을 지향합니다.


정식 출시일이 4월 28일, 충무공 탄신일입니다.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저 혼자만의 굳건한 사명감을 늘 품고 있었습니다. 제가 만든 게임을 즐겨주셨던 어린 유저분들이 지금은 모두 장성하여 사회의 주역이 되셨습니다. 가끔 그분들이 어릴 적 이 게임을 통해 무엇을 경험하고 배웠는지 편지나 메일, 댓글로 소중한 추억을 전해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차근차근 쌓이고 저 역시 개발 경력이 쌓이다 보니, "누가 나에게 맡긴 일은 아니지만, 이 임진왜란이라는 세계관을 게임 속에서 멋지게 증명해 보이는 것이 내 남은 개발 인생에서 해야 할 하나의 역할이구나"라는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 게임 업계가 거대한 대기업과 소규모 인디 게임으로 크게 양극화되어 있지만 , 저는 수십 년째 꾸준히 시리즈를 이어가는 코에이의 '삼국지'나 시드마이어의 '문명'처럼 명확한 자기 색깔을 가진 회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세계 최고의 대작은 아닐지라도, '역사물'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발전시키며 저희의 생각에 공감해 주시는 유저분들과 10년, 20년, 30년 길게 함께 가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충무공 탄신일이라는 뜻깊은 날에 게임을 선보이게 된 것 역시, 저희가 지향하는 '역사 게임 개발 공방'으로서의 오랜 다짐과 사명감을 보여드리는 과정입니다.


▲ '임진왜란'에 구현된 한산해전 모습

과거 취소되어 아쉬움을 남겼던 '동토의 여명' 등 임진왜란 세계관의 확장 계획도 있으신가요?
저 역시 당시 게임을 기다렸으나 해보지 못했다는 유저분들의 아쉬움을 잘 알고 있고, 저 또한 그때 다 하지 못한 이야기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 '동토의 여명' 같은 타이틀은 언젠가 마땅히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MMORPG라는 단일 장르에 고착되는 것이 아닙니다. 임진왜란이라는 방대하고 매력적인 세계관 안에서, 어떤 작품은 액션 RPG로, 또 어떤 작품은 어드벤처나 전략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형태의 장르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변화가 당연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임진왜란 - 조선의 반격'은 바로 그 원대한 유니버스를 구상하고 확장해 나가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든든한 뼈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영 중심의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기존 스타일을 계승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게임에 정해진 정답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의 색깔과 게임성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운 일이죠. 저는 역사 세계관을 사랑하고, 100~200개의 다수 유닛을 지휘하며 자원을 생산 및 관리하는 경영 중심의 게임을 좋아합니다.

화가가 나이가 든다고 해서 갑자기 화풍을 완전히 바꾸지 않듯, 제가 가장 잘하는 것을 모바일 기기라는 환경이나 유저들의 숏폼 선호 트렌드에 맞춰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맹목적으로 유행을 좇기보다는,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훌륭하게 명맥을 이어가듯 뚝심 있게 노하우를 축적해 나가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정식 서비스 이후 꼭 달성하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오픈 직후 반짝 매출을 올리고 유저가 빠져나가는 단타성 게임이 아니라, 20년, 30년 동안 유저들과 호흡하며 꾸준히 성장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먼저 생각하는 유저는 역사를 사랑하고 제 과거 시뮬레이션 경영 게임을 즐겨주셨던 팬분들입니다. 나아가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 2위인 '명량'이나 '왕과 사는 남자'처럼, 처음에는 역사 마니아들이 모이지만 훌륭한 재미와 감동이 입소문을 타면서 대중이 자연스럽게 유입되는 선순환을 희망합니다. '다이소'처럼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합리적인 가격과 좋은 품질만으로 사랑받는 선순환 모델이 되고자 합니다.


▲ "20년, 30년 동안 유저들과 호흡하며 꾸준히 성장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게임을 지탱하는 3가지 핵심 축인 '사냥, 공성전, 경제 시스템'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냥은 불을 지르는 '대완구', 비격진천뢰, 그리고 먹구름을 불러 불을 끄는 '사명대사'처럼 장수들의 고유한 개성과 기술을 활용해 전투의 깊이를 더하는 핵심 재미 요소입니다. 게임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개발팀에게 다른 일은 제쳐두고라도 이 부분에 가장 집중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도화된 전략과 장수의 능력은 성문을 부수고 성벽을 오르는 공성전에서 더욱 강력한 재미로 이어집니다. 서양식 성의 웅장함보다는 비교적 높지 않은 한국 산성의 특징을 살려 동양적인 공성전을 구현했습니다. 유머러스한 분위기 속에서 15분 내외로 속도감 있게 마무리되도록 설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제 시스템입니다. 성장에 필요한 다양한 재화를 유저 혼자 모두 채집하는 것이 아니라, 잉여 물품과 결핍 물품을 유저 간 거래소에서 교환하며 경제가 순환하게 됩니다.


여타 게임들과 다르게 공성전의 스케일을 꽤 간소화했는데요,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확실히 예전보다 유저들이 거대한 집단으로 뭉쳐서 활동하는 성향이 적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보통 MMORPG의 공성전이라고 하면 수비와 공격에 수십, 수백 명이 맞붙는 거대한 스케일을 떠올리기 마련이고, 당연히 그렇게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공성전은 내 터전을 지키고 적의 성을 빼앗는 본능적인 재미를 주는 훌륭한 콘텐츠입니다. 하지만 너무 경건하고 거대한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다 보니, 정작 대다수의 일반 유저들은 이를 직접 경험해 볼 기회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게임에서 가장 재미있는 콘텐츠를 정작 유저들이 해보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죠.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공성전을 매우 콤팩트하게 재설계했습니다. 거창한 규모의 어마어마함 대신, 불과 몇 명의 소수 인원만으로도 수비와 공격을 모두 수행할 수 있게 만들었죠. 다른 유저들과 스트레스 받으며 싸우는 대신 AI와 전략을 겨루고 적의 특징을 파훼하는 PvE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그 결과 누구나 부담 없이 '오늘도 대여섯 번은 가볍게 돌릴 수 있는' 일상적인 핵심 콘텐츠로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임진왜란' 공성전

정식 서비스 이후의 과금 모델(BM)은 어떻게 구상하고 계신가요?
기본적으로는 부분 유료화 모델을 채택했습니다. 과거 '거상' 시절에는 '평생 무료'를 표방하기도 했지만, 요즘 시대에 과도한 부분 유료화를 강행하면 유저들의 외면을 받기 쉽습니다.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대작들과 달리, 저희는 적정 수준의 개발을 통해 개발비와 마케팅비를 크게 절감했습니다. 덕분에 유저분들께 합당하고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과금만 부탁드리는 것이 가능해졌죠. 마케팅 비용을 아끼기 위해 제가 직접 유튜브 라이브에 출연하기도 합니다.

특히 선언적인 의미로, 저희가 판매하는 모든 유료 재화조차 유저들끼리 거래할 수 있는 '통합 거래소'를 도입했습니다.


통합 거래소를 운영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 문제가 발생할 텐데요.
경제의 본질은 잉여 자원이 결핍된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의 주범은 보통 개발사가 상위 물품인 밥을 직접 팔아, 하위 재료인 쌀의 수요를 무너뜨리는 데서 비롯됩니다. 저희는 이런 외부 투입을 철저히 절제하고, 생산된 물량이 계속 소모되도록 성장 체계를 짜는 것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일반 유저들의 정상적인 수작업만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오기 어렵습니다. 진짜 문제는 매크로를 활용한 '작업장'이죠. 이를 통제하기 위해 행동력 시스템 등 다층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예전처럼 덧셈 뺄셈 문제를 내는 방식은 요즘 AI 매크로가 다 뚫어버리기 때문에 원천 차단은 불가능합니다. 대신, 매크로를 10개 돌리던 사람이 100개를 돌려야만 겨우 수익이 나도록 가성비를 극단적으로 떨어뜨리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개발사 차원에서 완제품을 쏟아내는 일은 철저히 지양"

지난 테스트 과정에서 '의욕(행동력) 제한이 너무 답답하다'는 피드백이 많았습니다.
테스트 기간에는 보수적으로 책정했기 때문에 유저분들이 심한 답답함을 느끼셨을 겁니다. 정식 버전에서는 행동력 회복 시간을 절반 가까이 대폭 단축하고, 제조나 게임 내 보상을 통해 훨씬 더 많은 의욕이 공급되도록 개선했습니다. 초반 플레이가 집중되는 시기에는 운영의 묘를 발휘해 충분한 의욕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매크로의 24시간 가동을 막기 위한 장치만은 아닙니다. 야구 감독이 경기의 중요도에 따라 에이스 투수에게 휴식을 주듯, 유저에게 전략적 자원 관리의 묘미를 제공합니다. 더 나아가, 모바일 RPG의 주 이용층인 성인 유저들이 일상생활과 병행하며 적절한 호흡으로 끊어서 즐길 수 있도록 돕는 필수적인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게도 요즘 유저들 사이에서는 "의욕이 없어서 전투를 못 하겠다"며 이를 유쾌한 밈(Meme)으로 활용하시기도 합니다.


역사 게임을 개발할 때 '고증'은 늘 뜨거운 감자입니다.
역사 게임에서 고증에 대한 평가는 유저들이 가장 먼저 체감하고 확인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예를 들어 수군을 표현할 때, 일반 포졸복에 '물 수(水)' 자 하나 써서 배에 태우는 식의 얕은 고증은 철저히 배제했습니다. 학계의 논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저분들의 눈높이와 기대치 이상으로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다만, 복식이나 무기 고증에 매몰되어 게임 본연의 상상력과 재미를 해치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 후반부에는 과감한 가상 역사 시나리오도 추가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2년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순신 장군이 살아있다는 전제하에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애초에 전쟁을 반대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제안으로 조선 광해군의 원정군과 일본 에도군이 양동 협공을 펼치는 '조선의반격'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향후에는 일본군이 애초의 명분대로 명나라 남해안을 침공하는 가상 역사도 다뤄보고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대체 역사 시나리오들은 결국 실제 역사의 큰 줄기로 자연스럽게 복귀하도록 매듭지을 계획입니다.


▲ 게임 내에 저격전도 구현됐다

게임에 실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혹시 후손분들로부터 우려 섞인 연락을 받은 적은 없으신가요?
아직 연락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시대 배경상 실제 후손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자칫 누가 될까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영화 '명량'의 배설 장군 묘사로 인해 불거졌던 소송(문제없음으로 판별됨)이나 원균 장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 사례를 보며, 역사적 인물을 다룰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함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근거 없이 특정 인물을 마음대로 모략하거나 함부로 폄하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는 점만큼은 확실하게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NPC들에게는 지역별 사투리를 적용했는데, 정작 주요 장군들에게는 사투리를 쓰지 않게 했습니다. 특별한 의도가 있나요?
영화 '황산벌'은 명배우들의 중량감 있는 연기로 사투리의 유머를 훌륭하게 소화해 냅니다. 하지만 게임은 배우의 연기로 커버할 수 없기에, 자칫 역사적 인물을 희화화한다는 오해를 살까 두려워 일반 민초 NPC들에게만 사투리를 적용했습니다. 언젠가는 이 틀을 깨주는 업체가 나오길 바랍니다.

반면, 김충선(사야가) 장군의 어색한 한국어 발음은 그가 일본인이었다는 명백한 팩트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를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려는 것이 아니며, 대의를 좇아 조선에 귀화한 인물의 정체성과 현장감을 입체적으로 살려내는 매우 긍정적인 장치로 활용했습니다.


개발 과정에서 AI를 어느 정도 활용했으며, 특별히 유의한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코딩이나 프로그래밍 분야에서는 AI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디자인 쪽은 역사 게임 특성상 활용이 극히 어렵습니다. AI에게 이순신 장군을 그려달라 요청하면 참고할 레퍼런스가 없어 일본 사무라이나 중국 무사처럼 그립니다. 검색해 봐도 과거 제가 만든 '임진록' 이미지가 나올 정도죠. 한국적인 느낌을 요구하면 기와집 마당에 태극 문양을 그려 넣는 식의 불편한 어색함이 발생합니다.

아이디어나 포즈 참고용으로는 쓰지만, 역사적 고증을 위해 모든 인물과 이미지는 결국 사람 손으로 다시 작업해야 합니다. 정교한 수작업 결과물을 유저들이 역으로 AI로 오해하시기도 하는데, 이는 억울할 일 없는 저희만의 독보적 노하우이자 오히려 든든한 진입 장벽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노량해전 인카운트 전투

최근 진행한 파이널 테스트의 성과는 내부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나요?
정식 서비스로 오인하는 혼선을 피하고자 대대적인 광고 없이 기존 팬 중심으로 진행했음에도 약 3천 명이 참여해 서버 운영 데이터 확보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1차 테스트에서는 이야기 전개, 연출, 사투리 등에서 흔들림 없이 최고 점수(A+)를 받았고 , 2차부터는 버그 개선과 함께 시스템 밸런스에 대한 건설적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3차 파이널에서는 장수들의 전략적 활용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이 이뤄졌습니다. 유저들이 전략성을 논할 만큼 게임이 안정되었다는 확신이 들었고, 덕분에 정식 출시 일정을 용감히 잡을 수 있었습니다.


라이브 방송을 통해 유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계신데요, 이런 행보가 개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최근 주요 게임사 디렉터들이 유저들의 살기 어린 비판 앞에서도 카메라에 나서 직접 디펜스하며 소통하시는 모습에 큰 감동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유저들과의 직접 소통은 회사 대표의 지시보다 훨씬 무섭고, 또 건강한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 김태곤 PD가 라이브 방송을 하는 장소

과거 제 게임을 즐기며 우리나라 대전이나 포르투갈 리스본의 위치를 배우고 경제 이치를 깨우쳤다는 유저들의 추억담을 들을 때면, 게임 개발자로서 최고의 명예를 느낍니다. 우리 회사의 젊은 동료 개발자들에게도 이런 소중한 보람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한편, 소소한 팬 서비스 차원에서 '천년', '돈을 갖고 튀어라' 등 과거 제가 만들었던 옛날 게임들의 치트키를 이번 작에 몰래 숨겨두었습니다. 공지도 안 했는데 유저분들이 라이브 방송 채팅창에 오타까지 내가며 열심히 입력해 보시는 등 훌륭한 놀거리로 호응을 얻었습니다. 임진왜란 배경이라고 '임진록' 치트키만 고집하지 않고 기억나는 건 다 넣었습니다.


국가유산청이나 지역 박물관 등 공신력 있는 기관과의 협업 또는 역사 자문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본격적인 제휴 단계는 아니지만 국가유산청 등 정부 기관이 제공하는 전통 에셋을 적극 참고하여 기본 자료로 활용 중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남부 지방 임진왜란 관련 박물관(진주 박물관, 공주 박물관 등)의 영상들을 저희 게임의 최신 리소스로 무상 재제작해 드리고 싶어 연락도 취했으나 아직 성사되진 않았습니다.

향후 게임이 훌륭한 성과를 내어 대등한 관계로 협업하게 된다면, 진주 박물관 기념품점에 평범한 볼펜 대신 저희가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김시민 장군이나 논개 피규어, 디오라마 등을 공급하고 싶은 역사 덕후로서의 꿈도 있습니다. 국가 기관의 에셋 활용 사례는 유튜버 쇼츠 등을 통해 비교 영상으로 적극 제작하여 좋은 사례로 널리 알릴 계획입니다.


유저들을 위한 오프라인 간담회나 실물 굿즈 제작 계획도 구상 중이신지 궁금합니다.
조총 사격 체험, 멋진 전통 복장의 코스프레, 역사적 전투 재현 등 유저 간담회를 겸한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내부에서 논의 중입니다. 서양 마니아들의 제1, 2차 세계대전이나 중세 재현 행사처럼, 진주 대첩 행사 때 실제 진주성 같은 역사 현장에 모여 함께 노는 낭만적인 임진왜란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또한 평소 덕업일치를 즐기는 대표님이 도면을 바탕으로 직접 3D 프린터로 제작해 도색까지 마친 게임 내 '화차' 모델링 쇼츠 영상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만큼, 유저들이 진심으로 재미있어할 다채로운 굿즈 콘텐츠도 계속 고민하고 선보일 생각입니다.



▲ '임진왜란'의 다양한 캐릭터가 박수용 대표의 덕질로 태어난다

한국적인 색채가 강한데, 글로벌 서비스 진출 계획은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초기 오픈 시 영어 버전 2개를 포함하여 글로벌 출시를 염두에 두고 진행 중입니다. 스팀(Steam) 관계자에게 시연했을 때 "이런 독특한 건 본 적이 없다"며 깜짝 놀라워하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다만,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고 수준 높은 한국 유저들에게 먼저 철저히 검증받고 호되게 혼나며 인정받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마지막으로, 차기작 '프로젝트 진달래'의 현재 개발 진행 상황을 살짝 귀띔해 주실 수 있을까요?
'프로젝트 진달래'는 RTS 장르로, 현재 지형 구현이나 유닛의 생산, 이동, 공격 등에 관한 기초적인 R&D 단계를 베테랑 개발자들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부분 유료화(예: 스타크래프트 스팀팩 현금 판매) 적용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방대한 유저 풀이 필요해 국내에선 멸종된 장르라 개발진의 역적 부담이 매우 큽니다. 그래도 짧은 쇼츠 공개만으로도 유저들의 폭발적 관심이 쏟아져 내년쯤 구체적인 디자인을 입힌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프로젝트명은 딱딱하고 식상한 영어 가제(예: 프로젝트 K) 대신, 제가 은행나무 다음으로 좋아하는 꽃 이름인 '진달래'를 태명처럼 정감 있게 붙였습니다. 내부 분위기도 좋아 향후 철쭉 등도 적극 활용해 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