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는 내심 자사 게임들과 요리를 묶는 걸 즐긴다. 아제로스 요리백과도 그렇고, 과거 디아블로 맥주도 그렇고, 여튼 먹을 것과 게임을 묶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꽤 즐기는 편이다.
다만, 그게 컨셉적으로 어울리느냐는 조금 고민해 볼 문제다.
아제로스 요리백과는 좋았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수많은 요리들은 실제로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게임 내에 음식에 대한 묘사가 1도 없는 '스타크래프트'나 '디아블로'로 가면 좀 상황이 변한다. 입도 없는 프로토스가 뭘 먹긴 할까? 당장 내일 떼몰살 당해도 이상하지 않는 막장중의 막장인 성역의 사람들이 식문화에 관심이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몇 년 전 진행되었던 '디아블로 맥주'는 굉장히 참신하게 다가왔다. 익숙한 맛은 아니었지만, '지옥의 맛'이 있다면 이런 맛일까? 싶은 맛이었다 해야 할까? 하여튼, 나름(?) 재미를 본 디아블로 프랜차이즈는 와인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주류와의 인연을 쌓았다. 다음은 빨뚜에 디아블로 로고라도 박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 나름 즐거웠던 디아블로주(酒) 리뷰
하지만 웬걸? 이번엔 정통 요리의 차례였다. 4월 27일, '증오의 군주' 출시를 하루 앞둔 날, 디아블로 프랜차이즈의 30주년, 그리고 증오의 그릇의 출시를 기념하며 열린 '키친 디아블로'행사에서, 나는 처음으로 술이 아닌 '디아블로 음식'을 눈 앞에 두었다.
메뉴 개발을 위해 애너하임 본사까지 다녀왔다는 인플루언서이자, 요리사인 '승우아빠'의 메뉴 설명으로 시작된 시식회. 대충 "지옥의 맛을 보여드리겠다"라는, 시식회 치고는 다소 섬뜩한 각오를 들은 후, 기대와 함께 커트러리를 잡았다.
▲ "지옥의 맛을 보여주겠다"
오늘의 메뉴는 다음과 같다.
🍽️ 메뉴 구성1. 지옥의 성찬ㄴ 크랜베리 피와 지옥불에 구워낸 패티, 갈비와 버거 번, 채소로 구성된 플래터 메뉴2. 맵피스토ㄴ 메피스토의 그림자가 담긴 붉은 뚜껑을 깨 부수고 생긴 증오의 조각들을 밑에 깔려 있는 검정색 지옥마요 소스와 함께 버무려 먹는 매콤한 피자3. 디저트: 호라드릭 큐브레드ㄴ 디아블로 세계관을 관통하는 호라드림의 함 형상을 따 만든 토스트와 다양한 보석과 재료를 형상화 한 과일 및 아이스크림4. 드링크: 히비스커스 & 스트로베리 논알콜 하이볼ㄴ 핏빛처럼 물든 히비스커스와 스트로베리, 지옥의 기운을 가라앉히는 청량한 논알콜 하이볼
그럼 지금부터, '맛'을 설명해 보겠다.
🍴 지옥의 성찬- 치즈 소스와 번, 폭립, 쇠고기 패티, 양배추 피클, 고추, 파프리카, 양파, 크랜베리 소스📌 한줄평: “온몸으로 먹어야 하는 요리” 겉으로 보기엔 버거 플레이트지만, 버거가 아니다. 애초에 분리해서 먹게 나온 요리로, 보면 알겠지만 손으로 잡고 먹으면 손이 무척 알록달록해진다.
가장 위 번을 열면 두 조각의 시커먼 베이비립이 나온다. 처음 봤을 땐 슈퍼 오버쿡이 된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시커멓기 그지없는데, 맛을 보면 그냥 짙은 검은색의 바비큐 소스에 가깝다. 옆에 놓인 구운 채소는 그냥 구운 채소. 근데 고추가 굉장히 맵다. 크랜베리 잼이나 치즈 소스, 바비큐 소스의 맛은 무난하게 좋은데, 고추는 진짜 지옥의 맛이다.
맛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편. 적당한 단맛, 적당한 산미가 더해져 균형이 잡혀 있기에 맛이 없을 수는 없다. 다만, 단체 조리의 여파로 상당히 식어 있었기에 그 부분이 아쉬웠다. 사 먹으면 뜨끈할 테니 더 좋을 지도.
단점으로, 소스의 색이 붉고 검고 노랗다 보니(독일...?) 먹다 보면 플레이트가 굉장히 지저분해진다. 폭립은 손에 들고 먹을 경우 먹물에 빠트린 것 마냥 손끝이 시커매진다. 먹다 보면 도살자처럼 먹고 있는 날 보게 된다. 옷에 소스 다 튀어서 전위예술가의 옷처럼 되어버렸다...
▲ 번을 열면 불타버린 인간 갈비뼈...가 아닌 바비큐 폭립이 나온다 ▲ 먹을수록 뭔가 엉망진창이 되는 플레이트. 난 꽤 깔끔하게 먹는 편이다. 🍴 맵피스토- 페퍼로니, 양송이, 매콤한 검은 마요 소스, 크러쉬드 레드 페퍼, 피자인데 튀일을 얹은📌 한줄평: "처음부터 끝까지 바삭하고 매콤한 피자"첫 인상은 이게 과자인지 뭔지 모를 비주얼이지만, 위에 놓인 메피스토 뚝배기는 꽤 두껍게 만들어진 튀일이다. 적당히 툭툭 쳐서 부수면 아래 놓인 피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튀일의 맛은 그냥 튀일 맛. 애초에 맛보다는 식감으로 승부하는 요소인 만큼, 특별한 맛은 없지만 이 메뉴를 먹는 내내 바삭거리는 식감을 더해주는 식감 발사대다. 피자는 익숙하면서도 무난한 페퍼로니 피자의 맛이지만, 검은색 마요 소스가 상당히 일품이다. 적당히 매콤하면서도 단 맛과 녹진한 맛을 같이 내는데, 이 소스가 피자의 다른 재료들을 덮을 정도로 존재감이 강하진 않다.
다만, 튀일을 깨부수고 나면, 이를 잡아줄 무언가가 있어 들고 조금 먹다 보면 튀일이 죄다 떨어져 나간다. 제대로 먹으려면 떨어진 튀일 조각을 하나 하나 들고 얹어서 먹어야 하는 조금 불편한 메뉴다.
▲ 튀일을 다 깨부수면 이렇게 피자가 나온다 ▲ 과하진 않지만 매콤한 맛은 있다. 파파존스의 스파이시 이탈리안보다 조금 덜 매운 정도
🍴 호라드릭 큐브레드허니 브레드, 과일 잼, 견과류, 요거트, 아이스크림, 민트📌 한줄평: “새콤달콤, 모범적인 디저트 메뉴”호라드림 함 모양으로 그슬린 사각형 허니 브레드의 뚜껑을 따고, 그 속을 파내 과일 처트니와 요거트를 넣어 두었다. 호라드림 함 안에 이런저런 재료를 넣고 섞는 과정을 묘사한 듯한 요리. 옆으로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요거트, 블루베리 잼이 놓여 있다.
솔직히 말해 딱 보는 순간 '이런 맛이겠구만' 하는 맛이 그대로 나는 요리다. 아이스크림과 과일 잼, 요거트 모두 다 아는 맛. 앞선 요리들이 대체적으로 매콤한 맛을 지닌 요리다 보니 후속으로 먹기에 딱 좋다.
다만, 함의 역할을 하는 허니 브레드는 겉면을 진짜 태운 건지 탄맛이 꽤 강하게 난다. 그냥 다른 것들을 담는 용기의 역할임을 명심하고 먹는 게 좋다.
▲ 빵은 용기라고 생각하자. 사워도우에 담은 클램차우더처럼 말이다
🍴 히비스커스 & 스트로베리 논알콜 하이볼- 히비스커스 티 & 딸기 액기스📌 한줄평: “입을 헹궈주는 산뜻한 산미”다른 음식들과 함께 곁들이게 되는 음료. 릴리트의 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하는데, 피 치고는 상당히 맛있다. 히비스커스 티 자체가 붉은 색에다가 산미가 있는 편이다 보니 딸기와 섞였을 때 위화감도 전혀 없이 잘 어우러진다.
개인적으로 '맛'의 만족도만 봤을 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메뉴. 방랑자가 릴리트 피에 환장했던 이유가 있다. 맛있잖아.
'키친 디아블로'의 메뉴는 5월 17일까지 약 3주 간 서울 반포동의 데블스도어 센트럴시티점에서 직접 먹어볼 수 있다. 게이머 방문객들을 위한 이벤트도 함께 준비되어 있으며, 메뉴 주문 및 구매 인증 시 게임 내에서 쓸 수 있는 특별 아이템을 제공한다.
별개로, 현장은 무척 잘 꾸며두었다. 창문에 하나하나 붙인 스테인드 글라스 시트지는 처음 봤을 때 새로 붙인게 아닌 줄 알았을 정도로 절묘하게 붙어 있으며, 현장을 장식하는 장식품들도 증오의 군주라는 컨셉에 맞춰 잘 꾸며져 있다.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도록, 사진을 몇 장 준비해 봤다.
▲ 감탄했던 스테인드 글라스 ▲ 영고라인 이나리우스와 해골들도 볼 수 있고 ▲ 선지자 님의 초상과 따님, 그리고 헬스 포션도 넉넉하다 ▲ 세 명이 가면 딱 좋을 것 같다. 메뉴 하나씩 시켜서 나눠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