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개최되는 99회 시상식부터 적용되는 이번 규정 개편을 통해 배우 부문 복수 후보를 허용한다. 1945년 '나의 길을 가련다(Going My Way)'를 통해 배리 피츠제럴드가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후보에 동시에 오른 이후 아카데미는 한 연기로 주연이나 조연 중 한 부문에서만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또한, 한 부문 안에서 최고 득표 연기 한 편만 후보 자격을 가지게 해 한 배우가 여러 작품에서 동시 후보가 되는 것도 제한했는데, 이번 개편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국제장편영화상 규정도 손봤다. 기존에는 각국 공식 선정위원회가 한 편을 지명해 출품하는 방식만 있었지만, 주요 영화제 수상작의 경우 지명 출품작과 별개로 직접 출품이 가능해졌다. 주요 영화제는 6개로 베를린, 칸, 베니스, 부산, 선댄스, 토론토 영화제다. 유럽 3대 영화제와 함께 묶인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 부산 어워드 대상이 이 방식으로 출품될 수 있게 됐다.
앞서 두 규정 변화는 오랫동안 좁게 유지돼 온 후보 자격의 외연 확장을 상징한다. 반면, 오늘날 영화판에 불어오고 있는 변화에 대해서는 새로운 경계를 그었다. 바로 AI 관련 규정 신설이다.

아카데미는 차기 시상식부터 인간이 직접 동의 하에 수행한 것으로 명백히 확인되고, 법적 크레딧 등재된 역할만을 연기 부문 후보로 인정한다. 각본 역시 인간이 저작한 시나리오로 규정하고, 아카데미가 생성형 AI 사용 성격과 인간 저작 여부 정보 요청 권리까지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아카데미의 규정은 단순히 AI를 막기만 한 것이 아니다. AI가 만연한 시대에 영화의 저작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은 셈이다. AI 배우의 후보 진출을 막고, 작고한 배우의 외모나 음성을 형식적 동의만으로 복원해 만든 연기 역시 수상 후보가 될 수 없다. 생성형 AI를 통해 제작된 시나리오, 나아가 크레딧에 인간 배우가 등재되지 않은 연기도 제한한다.
더 브루탈리스트는 헝가리어 발음 보정에 AI를 사용한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오스카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새 규정은 이런 보조적 활용은 여전히 용인 가능함을 시사한다. 영화 제작에 사용되는 다른 디지털 도구에 관해서도 가능성이 열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AI 사용 사례를 두고 2023년 갈등이 있었던 SAG-AFTRA(미국 배우 조합-미국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인 연맹) 노조 파업과 협약 결과가 아카데미 시상식 규정에 맞춰졌다 볼 수도 있다. 노조 파업의 핵심이었던 AI 디지털 복제본의 명문화된 정의와 사전 동의를 인간 직접 수행과 동의, 크레딧 등재로 재확인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논란은 고스란히 게임에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2024년 시작된 SAG-AFTRA의 게임 부문 파업 중 발생한 '포트나이트' 다스베이더 음성 사용은 가장 첨예한 갈등 사례 중 하나였다. 파업이 한창이던 2025년 포트나이트에는 다스베이더와의 음성 대화 내용이 추가됐다. 게임에 사용된 다스베이더의 음성은 AI 대화 생성 기능과 음성 합성 기능을 사용했다. 이때 쓰인 음성 데이터 원본은 영화에서도 다스베이더의 목소리를 연기했던 제임스 얼 존스가 사망하기 전인 2022년 루카스필름에 양도한 아카이브 음성 녹음이었다.
2024년 9월 존스가 별세한 뒤 회사는 유족과 별도 협의를 진행해 동의를 얻었다. 디즈니와 루카스필름, 에픽게임즈 3사 모두 유족과 협의 하에 진행한 프로젝트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등장 첫날부터 AI 다스베이더가 욕설을 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SAG-AFTRA 노조 역시 단체 교섭 없이, 또 노조원으로의 대체 없이 AI를 사용한 에픽 산하 람마 프로덕션을 전미노동관계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했다.
영화와 게임은 플레이어가 대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수많은 노동력이 투입돼 소비자의 감정을 움직이는 콘텐츠라는 점은 동일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AI 사용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역시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기임을 아카데미가 먼저 나서 이야기했다.
실제로 2025년 가장 큰 화제를 몰고왔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는 더 게임 어워드를 통해 역대 최다 부문 노미네이트와 9개 부문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일주일 뒤 진행된 인디게임어워드에서 받은 수상은 이후 박탈됐다. 인디게임어워드 측이 규정에 둔 생성형 AI 사용 개발 게임이 후보에서 제외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AI 미사용 확인서에 동의하는 서명을 했지만, AI 생성 콘텐츠 포함 의혹이 있었다.
개발진은 게임 내 에셋 사용 중 AI 생성 콘텐츠가 없다면서, 개발 중 임시 자리표시용으로 제한적으로 사용한 것이 그대로 남았다고 해명했다. 이에 인디게임어워드는 해당 에셋들이 제거됐고, 훌륭한 게임이라는 점은 변함 없지만, 규정 위반은 별개라는 입장을 내놨다. 박탈의 표면적 이유는 AI 사용과 허위 신고지만, 본질은 AI 사용 자체를 금지한 무관용 원칙을 양보 없이 적용한 데 있다.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가 더 게임 어워드, DICE 어워드, 골든조이스틱 어워드 등 수많은 시상식에서 올해의 게임으로 꼽혔지만, 인디게임어워드 수상을 박탈당했다. 이는 시상식마다 AI에 대한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앞서 GDC 조사에서는 52%가, 구글 클라우드 자체 조사에서는 90% 이상이 작업에 AI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고 조사됐다. 게임사가 게이머들에게 직접 눈으로 보고 플레이로 체험하는 콘텐츠에는 생성형AI가 쓰이지 않을 수는 있어도, 반복 작업이나 워크플로우 내에 AI가 얼마든지 활용되고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인디게임어워드의 강경 입장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최종 게임에 영향이 없는 부분까지 박탈 사유로 보면 향후 자격 있는 게임이 거의 없을 것이라 지적한다. 또 제작자가 AI 사용 자체를 침묵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찬성 입장에서는 인디 게임의 핵심 가치인 창작자 보호를 위해서 이같은 조치가 필수라는 주장이 나온다. 엄격한 규정이 AI 사용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유도할 것이라는 사전 예방 효과 측면의 주장도 나온다.
찬반 모두 일리는 있지만, 이 논쟁이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는 정작 그 앞 단계의 질문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AI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이전에, 이 시상식은 누구의, 어떤 성취를 인정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아카데미는 그 답을 내놨다. 연기 부문, 국제장편영화 부문 규정과 함께 AI 규정을 손본 것은 표면적으로는 따로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후보가 될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배우의 복수 부문 후보 허용은 한 배우의 다층적 연기를 온전히 평가하겠다는 답이고, 영화제 직접 출품은 각국 선정위원회를 거치지 않아도 작품의 성취 자체로 후보가 될 수 있다는 답이다. 그리고 AI 규정은 그 후보 자격이 인간의 직접 수행과 동의, 크레딧 등재에 있다는 답이다. 나아가 SAG-AFTRA 파업이 합의한 AI 정의와 사전 동의를 시상식 차원에서 재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게임 시상식은 아직 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인디게임어워드의 원칙은 인디 창작자 정체성 보호라는 다른 가치에서 출발한다. AI 활용으로 개발자들이 더 나은 게임을 선보일 기회를 얻었다면 그 기술적 진전을 함께 기리는 시상식이, 혹은 플레이어가 경험한 가치 자체를 기준으로 삼는 시상식이 있을 수 있다. 보호 대상이 다르면, AI 규정도 달라지는 것.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밝혀야 그에 맞는 기준이 나온다는 의미다.
AI 이용이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된 시대. 그래서 시상식이 답해야 할 것은 AI 이용 자체에 대한 입장이 아니다. 누구의, 어떤 노력을 인정하기 위해 이 트로피가 존재하는가. 그 답이 필요하다. 100년 만에 손꼽힐 규모의 아카데미 규정 개편을 이끈 질문도 결국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