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던 폭풍의 20대 초반. 당시 내 가장 큰 고민은 "앞으로 뭘 해먹고 살까?"였다. 솔직히 회고해보건대, 지금은 잘 모르겠으나 당시의 교육은 인생을 가이드하지 않았다. '그냥 뭐가 될지 모르니 일단 다 시켜놓고 보자'쪽에 가까웠다. 성적에 맞춰 그냥 되는 대학을 간 상황이니, 미아가 되는 건 어쩌면 자명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뭣도 모르는 상태로 사회에 던져진 상황에서 강풍에 휩쓸리듯 휘청대면서도 어찌저찌 앞으로 걷다 보니 13년 차 게임 기자가 되어 있긴 하지만, 두 번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지금 수많은 취준생들이 겪고 있을 '앞날에 대한 막막함'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이자 고뇌다. 아마, 많은 이들이 공감할 거다.
그래서, 감히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비록 게임이긴 하지만, 내가 이력서를 보고 합불을 결정하는 과정을 겪게 될 줄이야.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는 면접관이 되는 시뮬레이터다. '페이퍼 플리즈'나 '쿼런틴 존'처럼 순차적으로 들어오는 이력서를 보며 결격 사유를 찾아내고 이상이 없다면 합격을, 문제가 있다면 불합격 사유를 설명하며 집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
면접관인 주인공, 'C89'는 이 모든 서류를 꼼꼼히 살피며 합불을 가린다. 15차례나 면접을 실패한 끝에 가까스로 수습 면접관이 된 그는 출세를 위해 이제 다른 지원자들의 과거를 도축한다. 어느 대학을 나왔고, 어떤 회사에서 인턴십을 했는지, 전공은 무엇이며, 정신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혹여나 졸업장이나 경력 증명서가 위조된 것은 아닌지.

기본적으로, 주인공이 입사해 일하고 있는 '공도'는 독립도시 '공도시'를 지배하는 그룹이자, 누가 봐도 사이버펑키한 워킹 디스토피아이기 때문이다.
면접 과정은 굉장히 노골적이며 차별적이며, 기준 또한 날마다 바뀐다. 어떤 날은 2년제 대학 출신은 뽑지 않고, 또 어떤 날은 40% 이상의 정신 붕괴자는 뽑지 않으며, 그 다음 날엔 이 기준이 35%로 낮아지기도 한다. 시외 대학은 인턴십을 필수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생활고에 시달린다. 때마다 나가는 월세와 관리비, 그리고 고향 가족들의 은근한 독촉 속에서, 수많은 과거를 증명하고도 아주 살짝 부족한 지원자에게 말한다.

"죄송합니다."
차가운 도시 공도, 그 뒤의 이야기
물론, '면접'은 이 게임을 풀어가는 로직일 뿐 게임 그 자체가 아니다.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의 주된 이야기는 게임의 배경이 되는 '공도시', 그리고 이 공도시를 살아가는 알파벳과 숫자로 조합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공도시'는 '공도 그룹'이 지배하는 독립된 자유 도시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세계적인 대재앙 이후 공도 그룹은 공도시의 모든 것을 감당해내며 초법적인 지위를 획득했으며, 이어 도시 자체가 국가로부터 떨어져나가기에 이른다.

이후, 사람의 계층이 나뉘었다. 공도에 사는 '내지인', 그리고 공도시 밖에 사는 '외지인'으로 말이다. 이 외지인들은 모든 측면에서 적잖은 차별을 당하며, 이 모든 장면은 게임 내에서 은연중에 계속 표현된다. 당연히 공도시에 거주하는 내지인들은 적잖은 특혜를 받으며, 이 특혜는 면접 과정에까지 녹아든다. 게이머는 면접관의 역할을 하며 부적합한 인물들을 걸러내야 하지만, 초월적 대우를 받는 그런 게이머들의 기준마저 손쉽게 넘어선다.
'정신 감정'이라는 요소가 존재하는 것 또한 '공도시'의 모습을 비추는 일면이다. 면접자는 합당한 일자가 기록된 정신 검사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며, 이 중 '붕괴 지수'가 높을 경우 면접에서 탈락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붕괴 지수'는 주인공인 면접관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에 하루 일과가 끝난 후에는 박봉을 쪼개 정신 안정제나 커피를 마시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면접관 또한 높은 붕괴 지수에서 오는 불이익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 와중, 같은 고향 출신인 'T91'과의 이야기가 엮인다. 외지인 출신으로서 같은 출신의 외지인들과 공감대를 만들어 나갈지, 아니면 '공도시'의 시스템에 순응하고 출세를 위한 냉혹함을 견지할 지는 게이머의 선택이다. 물론, 이에 따라 주인공과 공도시의 이야기는 다르게 풀려나간다.

면접관의 입장에서 보는 현 시대의 초상
조금 떨어진 시선에서 게임을 살펴보면, 이 게임은 다소 과장되고 풍자적인 면을 내세워 현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회 생활을 해 본 이라면 알겠지만, 모든 사회는 기본적으로 계층화되어 있다. 법률과 이상은 이를 부정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다. '서울에 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벼슬'이라는 표현이라던가,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많은 가치를 포기하는 N포세대가 방증이다. 다행이라면, 우리 나라는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계층 이동이 불가능한 나라는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무척이나 힘들고, 엄청난 노력을 요구한다. 정말 특별하지 않은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교육 수준이나 환경 등의 태생적 차이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주인공은 그 흔치 않은 기회를 잡고 공도 그룹에 입사한 사례다. 어찌저찌 잡게 된 동앗줄의 끄트머리에서, 주인공은 이 외줄을 혼자 타고 더 빠르게 오를지, 가까스로 버티는 와중에도 다른 이들의 손을 잡아 끌어줄 지를 결정해야 한다. 어떤 길로 가든 엔딩으로 향하는 건 같지만, 그 내용은 달라진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느끼는 감정의 큰 영역은 씁쓸함이다. 취업으로 향하는 문턱에 서 있을 때의 막막함과 실패에 대한 공포, 그리고 실패했을 때의 좌절감이 짬뽕된 그 괴이하면서도 어두운 감정은 상술했듯 과거의 나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었다. 그리고, 이 게임은 그 트라우마를 조금씩 자극하면서도 정반대의 입장을 비춘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흥미롭다. 다소 극적이고, 과장되어 있지만 엄연히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 펼쳐지고, 게이머를 적잖은 고민에 빠트린다.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는 큰 볼륨의 게임이 아니다. 넉넉히 잡아도 하루면 끝을 볼 수 있는 게임. 하지만, 그 여파는 하루보다 조금 더 길다. 이 게임은 그런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