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의 강력함을 극대화하려는 연출이 외려 유저 캐릭터와의 심한 괴리감을 낳은 결과다. 왜 항상 보스만 크고 화려해야 하는가. 거대한 강적을 상대하는 주인공 역시 그에 걸맞은 대단한 고수로 보일 수는 없을까. 이 본질적인 의문에 명쾌한 답을 던지는 신작이 등장했다. 소울라이크의 묵직한 긴장감에 '시푸'의 화려한 공방을 더한 중국의 야심작, '소드 세이지: 어웨이크닝(Sword Sage: Awakening, 이하 소드 세이지)'이다.
청두 젠모슝워 네트워크가 개발 중인 '소드 세이지'는 무협의 진수를 담아낸 액션 RPG다. 유비소프트 청두 및 상하이, 버추어스 등 글로벌 대형 게임사를 거친 베테랑 개발자들이 2022년 1월 의기투합해 설립한 25인 규모의 신생 스튜디오에서 키를 잡았다. 이 게임은 소울류의 상징과도 같은 '구르기'를 과감히 배제했다. 대신 오직 적의 칼을 흘려보내고 받아치는 독자적인 전투 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우며 확실한 정체성을 구축했다.
회피와 구르기에 손이 먼저 반응하는 기존 게이머들이 오직 한 박자 타이밍의 '흘리기'에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궁금증을 안고 빌리빌리 퍼스트 룩 현장에서 3시간 넘게 시연 빌드를 직접 플레이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 시간이라는 시간이 인지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흘러갔을 정도로 몰입감이 엄청났다.

고수는 구르지 않는다. 다만, 흘릴 뿐

이 게임에는 구르기가 없다. 대신 그 자리를 메우는 게 흘리기다. 적이 칼을 내지르면 그 방향으로 몸을 흘려 피하고, 그대로 반격으로 잇는다. '피청입홍(避青入紅)'이라 이름 붙인 이 시스템은 중국의 전통 검술에 실제 있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피청(避青), 상대방의 차갑고 날카로운 칼날을 피하면서, 입홍(入红) 그대로 상대의 피를 보겠다는 회피와 반격을 한 동작으로 하는 고수의 움직임을 표현한 말이다.
흘리기는 그냥 버튼만 누르는 게 아니다. 적의 공격에 상·중·하 한자가 큼직하게 뜰 때가 있는데, 이건 반드시 그 방향으로 피하라는 신호다. 회피 버튼을 누르면서 맞는 방향키를 같이 넣어야 한다. 상단이면 위, 중단이면 좌우, 하단이면 아래다. 맞으면 회피, 엉뚱한 커맨드를 넣으면 실패 판정이 뜬다. 반대로 방향 표시가 없는 공격은 어느 쪽으로 흘려도 통했다. 표기가 워낙 커서 읽기는 편한데, 한자가 연달아 쏟아질 땐 방향을 연속으로 맞추기가 만만찮았다.
막기도 있다. 타이밍을 잴 필요 없이 누르고만 있으면 되니, 한 박자 읽기가 빠듯할 땐 흘리기보다 안전한 선택지다. 문제는 막는 동안 검 내구도가 쑥쑥 깎인다는 점이다. 무작정 버티고 있을 수가 없다. 게다가 흘리기의 이점이 워낙 커서, 한두 번 실패하더라도 결국 손은 흘리기로 간다.






결론부터 말하면, 흘리는 맛은 합격이다. 판정이 넉넉해 타이밍을 칼같이 맞추지 않아도 곧잘 흘러갔다. 흘릴 때마다 캐릭터와 칼의 궤적을 따라 잔상이 길게 남는데, 이 연출 덕에 "내가 지금 제대로 피하고 있다"는 감각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잘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화면이다.
흘리기를 거듭하면 적의 기력이 빠르게 깎이고, 완전히 지치면 몬스터 위에 표식이 뜨며 그 자리에 무너진다. 가까이 붙어 공격 버튼을 누르면 잡기처럼 일방적으로 꽂아 넣는 크리티컬이 터진다. 흘리고, 깎고, 받아치는 이 리듬이 3시간 내내 가장 즐거운 대목이었다. 개발진이 벤치마킹으로 꼽은 '시푸(Sifu)'의 그 손맛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검의 수명을 관리하는 독특한 전술

이 게임의 두 번째 특징은 검의 내구도 시스템 때문이다. 이 게임에서는 공격을 하든 막든 무기의 내구도가 줄어든다. 내구도가 다 닳으면 무기를 휘둘러도 피해가 거의 박히지 않고, 방어조차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무기를 갈아 끼우는 것이 생존의 기본이다. 체력 게이지 위주로 확인하던 기존 소울류와 달리, 여기서는 칼의 수명까지 동시에 쫓아야 한다. 신경 써야 할 리소스가 하나 더 늘어난 만큼 전투 관리 난도는 살짝 올라간 인상이다.
시연에서 경험한 무기는 두 자루였다. 한손검은 날렵하고 빠른 대신 내구도가 빠듯했고, 양손검은 느리고 묵직한 만큼 내구도가 넉넉했다. 무기 성격이 정반대라 손에 쥔 칼에 따라 전투 운영 방식이 통째로 바뀐다. 내구도가 소모되는 속도는 상대에 따라 달랐다. 일반 몬스터를 정리할 때는 무기 교체의 필요성이 크지 않지만, 연속 공격이 폭포수처럼 이어지는 보스전에서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공격과 방어, 흘리기가 쉴 새 없이 교차하다 보니 무기를 바꾸는 손길이 분주해졌다.
교체 시스템 자체는 매끄럽다. 버튼 하나로 즉시 전환되며, 0.5초 남짓한 짧은 지연 시간만 존재한다. 내구도가 닳은 무기는 검집에 넣어두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회복되므로, 두 자루의 무기를 번갈아 가며 활용하는 리듬이 자연스럽게 안착한다. 무기 교체로 인해 전투 흐름이 잠시 끊기기는 하지만, 불쾌한 흐름은 아니다. 오히려 제약을 통해 난이도를 의도적으로 끌어올리는 영리한 장치에 가깝다.
단순한 번거로움에 그쳤다면 아쉬웠겠지만, 검 교체는 전술의 폭을 넓히는 요소로 작용한다. 무기마다 보유한 특수 기술이 다르기 때문이다. '엘든 링'처럼 무기를 바꾸면 공략법 자체가 바뀐다. 실시간으로 갈아 끼우며 싸우면 두 자루의 특수 기술을 번갈아 가며 몰아치는 플레이도 가능하다. 적에게 독을 묻히는 칼, 검기를 장풍처럼 쏘는 칼, 자동 반격 기능이 탑재된 칼까지 결이 제각각이라 상황에 맞춰 무기를 선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무기마다 부여된 오행(五行) 속성의 경우, 특정 속성이 특정 적에게 상성상 유효하다는 효과를 실전에서 또렷하게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이 부분은 향후 정식 버전에서 완성도를 더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수가 고수를 만났을 때

시연의 하이라이트 보스전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데모의 마지막을 장식한 보스 '원공(White Gibbon Sage)'이다. 훤칠한 인간형 외형에 도인 복장을 두른, 한눈에 봐도 고수의 기품이 물씬 풍기는 상대다. 실제로도 정교한 패턴을 구사하는 강적이었다. 몇 가지 패턴을 일정하게 섞어 공세를 펼쳐오는데, 최종 보스치고 난이도가 불합리하게 높다는 인상은 없었다. 대신 전투가 주는 몰입감이 압도적이었다. 인간형 상대와 검을 맞대니 공격과 흘리기가 끊김 없이 오갔고, 흰 검광과 붉은 검기가 화면을 가르며 합이 이어졌다. 잘 짜인 무협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화려했으며, 그 시각적 쾌감만으로도 보는 맛이 상당했다.
여기서 이 게임이 가진 최고의 강점이 명확해진다. 거대한 괴수를 검 한 자루로 상대하는 그림은 액션 게임에서 종종 어색함을 자아내기 마련이지만, '소드 사가'의 절정은 사람과 사람이 검으로 합을 겨루는 장면에서 나온다. 본래 검술이란 인간과 인간의 대결에서 발전한 것인 만큼, 인간형 보스와 주고받는 합이 가장 설득력 있게 맞물린다. 흘리기 시스템이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도 바로 이 대결이었다.

전투 외적인 시스템도 구색을 갖췄다. 캐릭터 성장은 '엘든 링'과 유사하게 능력치를 직접 투자해 올리는 직관적인 구조를 취했으며, 부적(탈리스만)의 종류가 특히 다양했다. 체력을 보조하는 것부터 검 내구도를 늘려주는 것, 흘리기 판정 시간을 늘려주는 것까지 효과가 다채롭게 세분화되어 있어 유저 취향에 맞춰 빌드를 짜는 재미가 확실하다. 견제용으로 던지는 단검도 존재한다. 주력 공격 수단은 아니지만, 적중 시 디버프를 걸 수 있어 전투 중 유용하게 활용됐다.
다만 이러한 액션 게임이 으레 그렇듯, 결국 승부를 가르는 핵심은 버프나 디버프가 아니라 유저가 얼마나 적의 공세를 완벽하게 흘리고 받아치느냐에 달려 있다. 버프 물약도 여러 종류가 제공되었으나 실전에서의 체감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회복 물약의 경우 손이 한 번 더 가는 구조다. '엘든 링'처럼 휴식처에서 쉬면 자동으로 충전되는 방식이 아니라, 물약을 제조하기 위해 약초를 구매해야 하고, 그 약초를 살 돈은 몬스터를 사냥해 수급해야 한다. 인게임 경제와 회복 자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는 장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오롯이 전투에만 몰입하고 싶은 유저 입장에서는 한 단계 가중된 반복 작업이 살짝 번거롭게 느껴질 여지가 있다.
화사한 무협 영화의 정취, 정식 출시가 기다려진다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다크 판타지 기반의 흔한 소울류와 확실하게 결을 달리한다. 어둡고 무겁게 가라앉는 대신, 밝고 화사한 무협 영화의 정취를 가득 담아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배경은 완연한 중국풍 정통 무협의 색채를 띤다. 주인공은 이제 막 무림에 발을 들여 스승과 사형들에게 무술을 배우며 성장하는 어린 여검객이다. 발랄하면서도 탄탄한 체형에 표정이 밝아 작품 전체에 활기찬 기운이 감돈다. 다만 목소리 더빙의 경우 톤이 다소 높고 가벼워 유저에 따라 다소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보스전 연출 등 게임 곳곳에 아직 개발 중인 빈자리가 눈에 띄기는 했다. 강력한 보스와 대면했을 때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려야 할 시네마틱 연출이 부재해 첫 대면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개발진이 제작 과정 중이라고 명시한 부분인 만큼, 정식 버전에서는 깔끔하게 보완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완성된 연출이 적용된 보스전의 퀄리티가 이를 증명한다.
기술적인 완성도 측면에서는 흠잡을 곳이 거의 없었다. 3시간이 넘는 긴 시연 시간 동안 프레임 드랍이나 거슬리는 버그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UI는 군더더기 없이 직관적이었으며, 조작 계통의 적응도 빠르게 이루어졌다. 시연 빌드임에도 불구하고 빌드의 안정성이 매우 단단한 수준이다.
3시간이 넘는 긴 플레이 타임이었음에도 지루할 틈 없이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소울류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은 좋아하지만 불합리한 난이도는 부담스러운 게이머, 혹은 화려한 검술 액션에 매력을 느끼는 유저라면 반드시 눈여겨보아야 할 타이틀이다. '시푸'처럼 적의 공세를 흘려내고 받아치며 리듬을 이어가는 손맛의 완성도가 특히 뛰어나다. 검 내구도라는 독특한 변수와 관대한 회피 판정, 그리고 인간형 보스와 펼치는 밀도 높은 검술의 합이 정식 출시 버전에서 얼마나 더 정교하게 다듬어질지 기대를 걸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