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확장팩이 손댄 부분은 크게 네 가지다. 새로운 보스와 함께 찾아온 신규 난이도 CHAOS, 전투의 판도를 뒤흔들려는 신규 시스템, 파밍 구조의 개편, 그리고 페디엘과 프라우 등 원작 IP 팬들에게 반가운 신규 캐릭터의 등장. 이것들이 실제로 게임을 얼마나 달라지게 했는지, 또 어디서 한계를 드러내는지를 차례로 짚어보도록 하자.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엔드리스 라그나로크의 문을 열기 위한 조건은 단순하다. 본편의 엔드게임 파밍이 사실상 마무리된 상태일 것. 신규 보스는 물론이고 DLC의 메인 스토리 진행을 위한 퀘스트 조차도 철저하게 본편 하드코어 유저를 대상으로 설계되어 있다.
패턴을 줄줄 꿰고 있는 토끼공듀들은 입장과 동시에 신나게 두들겨 패기 시작하겠지만, 나처럼 피지컬은 처참하고, 숙련된 영감님들의 운전 실력 덕분에 생존해 온 유저들에겐 이야기가 다르다. 입장과 동시에 벽을 느낄지도 모른다.
신규 난이도 CHAOS는 본편 최고 난이도인 프라우드(PROUD)의 연장선에 있다. 대미지 상한 진과 공격 관련 진으로 도배된 내 캐릭터는 보스의 평타 한 방에 그냥 주저 앉는다. 처음 프라우드에 입성했을 때의 공포가 다시 한 번 떠오르는 순간이다. 다만 여기서 만나는 보스들은 한층 흉악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본편의 보스를 한 층 강화시킨 변이 개체 '라그나리온'과 DLC의 신규 보스들이 차례로 플레이어를 맞이한다.

리링크는 기본적으로 4인 파티 게임이다. 새로운 고난이도 콘텐츠가 열리면 자연스럽게 넷이 모여 도전하게 되는데, 멀티플레이에서는 내 캐릭터 하나만 제대로 키우면 된다는 이점이 있다. 프라우드 난이도도 처음 입성하면 식은땀이 나도록 어렵지만 넷이 붙으면 그래도 할 만한 수준이었다.
반면 이번 리뷰는 혼자서 진행했는데, 체감 난이도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보스들의 체력 상승은 기본이고, 전조가 거의 없는 일반 패턴도 스치면 치명상이다. 익숙한 패턴인 줄 알고 방심하는 순간 주저 앉아서 X키를 눌러달라는 내 캐릭터를 볼 수 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보스가 전혀 다른 타이밍으로 덮쳐올 때의 당혹감, 그리고 그것을 결국 읽어내고 클리어했을 때의 쾌감. CHAOS는 그 사이클을 반복하게 만드는 난이도다. 이름값은 충분히 한다.


극돈공소, 게임의 파밍 구조 자체를 바꾸다
본편에서 강화 소재를 모으는 방법은 단순했다. 원하는 소재가 나오는 퀘스트를 찾고, 그 퀘스트에 특화된 전용 세팅을 맞추고, 기약없는 파밍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 효율을 위해 파밍 전용 빌드를 따로 구성하는 것이 반쯤 공식처럼 굳어진 문화였다. 재미있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말하기 어렵다.
엔드리스 라그나로크는 그 파밍 구조를 과감하게 변경했다.
변화한 파밍 구조에 대해 설명하려면 먼저 신규 콘텐츠인 '극돈공소'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극돈공소는 층을 올라가며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로그라이크 형식의 콘텐츠로, 한 스테이지를 깰 때마다 전투를 유리하게 만드는 강화 효과를 선택해 쌓아나간다.
그런데 이 콘텐츠, 강화 옵션이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단순히 공격력 증가, 방어력 증가 수준이 아니다. 공격 시 독 효과 추가, 독 효과 발동 시 빙결 추가, 독과 빙결이 동시에 붙으면 마비까지. 이렇게 강화 옵션들이 서로 시너지를 내며 쌓이는 순간, 로그라이크 특유의 쾌감이 터진다. 중간중간 전투 대신 미니게임으로 분위기를 환기하는 층도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그리고 마무리는 신규 보스인 벨제붑이 등장해 고난도 보스 전투라는 리링크의 정체성을 충실히 이어나간다.



엔드리스 라그나로크는 이 콘텐츠에 과감하게 모든 파밍 보상을 다 때려넣었다. 극돈공소를 클리어하면 보상 선택 화면이 나오고, 내가 필요한 소재를 직접 골라 받으면 된다. 특정 무기의 강화 소재부터 진 강화 소재, 그것도 아니면 은천의 빛과 증표만 대량으로 받을 수도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극돈공소만큼은 본편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오픈된다는 것이다. 엔드리스 라그나로크의 본격적인 콘텐츠 대부분이 본편 엔드게임을 마친 이후에야 열리는 것과 달리, 극돈공소는 스토리 중반부터 접근이 가능하다. 신규 유저도 일찌감치 파밍 구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반복 플레이 피로도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층별 보스가 계속 바뀌는 덕에 하루 종일 게러신만 잡는 단순 반복보다는 훨씬 낫긴 하다. 하지만 가장 짜릿한 전투 경험을 주는 3층 보스의 바리에이션은 리뷰 빌드 기준 3종 내외인 것으로 보였고, 최종 보스는 벨제붑으로 매번 동일했다. 파밍을 위해 극돈공소를 수십 번 돌다 보면 결국 익숙한 얼굴들과 마주하게 된다는 것. 파밍 도구로서의 역할은 충실히 해내지만, 조금만 더 보스 풀이 넓었다면 반복 플레이에서 오는 지루함을 더 낮출 수 있었을 것이다.
넓어진 육성 선택지, 자유도는 글쎄...
본편의 육성은 사실상 정답지가 존재했다. 이 게임에는 대미지 상한 수치가 있고, 그 상한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진 슬롯을 채우는 것이 사실상 공식이었다. 캐릭터마다 세부 차이는 있었지만, 큰 틀에서 육성 방향을 고민할 여지는 많지 않았다.
엔드리스 라그나로크에는 그 틀을 흔드려는 시도가 보인다. 신규 진을 포함해 대미지 상한을 올릴 수 있는 성장 요소가 대폭 늘어났고, 여기에 조건부 발동 진들이 더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HP가 일정 수치 이하일 때 발동되는 진들은 단순히 스펙을 올리는 것을 넘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플레이어 스스로 설계하게 만든다. 육성과 플레이 스타일이 맞물리는 순간이 생긴 것이다.

새롭게 도입된 마스터 스킬 시스템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캐릭터마다 고유하게 주어지는 특성 트리로,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같은 캐릭터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신규 캐릭터 마기라흐리라를 예로 들면, Y키 공격인 마검조무에 올인해서 키울 수도 있고, 무기를 소환하는 어빌리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육성할 수도 있다. 공격 어빌리티 특화, 서포트 특화, 특정 공격 패턴 강화 등의 선택지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본편과는 확연히 다른 육성 경험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마스터 스킬이 신규 캐릭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편의 기존 캐릭터들 전원에게도 마스터 스킬이 추가되었다. 오래 손때 묻은 주력 캐릭터를 다시 꺼내 트리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재미가 생긴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이야기다. 실제로 세팅을 맞춰보면 현실은 냉혹하다. 우선 무기부터 대미지 상한을 올려주는 것으로 고정해야 한다. 진은 대미지 상한 레벨을 65까지 찍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대미지 상한 관련 진들을 또 긁어모아 슬롯을 채워야 한다. 그러면 그제서야 대미지가 상한치에 가까워 지기 시작한다. 마스터 스킬도 열어보면 트리가 넓게 펼쳐져 있어 기대감이 생기지만, 여기서도 대미지 상한 관련 트리를 먼저 찍어야 한다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대미지 상한을 싹싹 긁어 모으고 전용 진, 유리 속성 변환 등 반 필수인 진을 몇 개 넣고 나면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진은 너덧개 남짓. 아까 그렇게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고 했는데, 정작 내가 고를 수 있는 자리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론과 현실의 간극이 이렇게 크다. 선택지가 늘어난 것은 분명 맞지만, 대미지 상한이라는 천장은 여전히, 아니 본편보다 더 단단하게 버티고 있고, 그 천장 아래에서 주어지는 자유는 여전히 좁다. 다양성을 넓히려는 의도는 읽히지만, 실제 체감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아직 한 발이 부족하다.

전투의 판을 바꾸는 한 수, 소환석 시스템
엔드리스 라그나로크가 전투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단연 소환석이다. 전투 중 한 번씩 발동할 수 있는 특수기로, 총 4개를 장비해 전투당 4번 사용할 수 있다. 전투를 진행하며 게이지가 쌓이고, 그 게이지를 소모해 발동하는 방식이다.
소환석에는 1, 2, 3 코스트가 존재한다. 코스트가 높을수록 강력하지만,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코스트가 1씩 낮아지는 구조라 무조건 강한 것만 챙기는 건 능사가 아니다. 처음 1코스트짜리를 쓰면 다음은 3 코스트 소환석이 2 코스트로 발동되는 식이다. 4번의 사용 기회를 어떤 순서로, 어떤 소환석에 배분할 것인지 전략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소환석의 종류도 단순하지 않다. 대미지를 주는 공격형이 기본이지만, 물약 사용 횟수를 늘려주는 것도 있고, 캐릭터에게 버프를 부여하는 것도 있다. 공격형 안에서도 차이가 있다. 빠르게 이동하며 적을 추적해 딜링하는 소환석이 있는가 하면, 소환 후 자리를 고정한 채 회전도 못하는 대신 압도적인 화력을 퍼붓는 소환석도 있다. 캐릭터의 스펙이 낮을 때 링크 타임과 잘 맞춰서 사용하면 보스 체력의 절반 가까이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도 있다. 상황과 보스의 패턴에 따라 무엇을 꺼낼지 고르는 재미가 있다.

전투에서의 활용도는 상상 이상이다. 소환석을 발동하는 동안 캐릭터는 무적 판정을 받기 때문에, 보스가 오버드라이브 상태에 돌입해 위험한 패턴을 쏟아낼 때 이를 통째로 씹어내며 브레이크 상태로 만들 수도 있다. 강력한 일격을 맞받아치는 카운터로 쓸지, 아니면 기회를 엿보며 확실한 딜링 기회로 삼을지, 그 판단이 전투의 흐름을 가른다. CHAOS 난이도는 이 소환석의 활용을 전제로 설계된 듯한 인상을 준다. 기존 본편 난이도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소환석의 볼륨 자체도 압도적이다. 리링크에 등장하는 몬스터 대부분이 소환석으로 구현되어 있고, 일부 NPC까지 소환석으로 등장한다.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각 소환석의 효과를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발동 자체는 특정 키 입력만으로 간단하지만, 소환 후 직접 컨트롤이 필요한 소환석 중에는 조작감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소환석은 전투 시스템임과 동시에 파밍 요소이기도 하다. 소환석을 획득할 때 랜덤하게 스킬이 붙어 나오는데, 진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결국 대미지 상한 관련 장착 효과를 찾아 붙여야 한다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시스템 자체의 깊이는 충분하지만, 여기서도 대미지 상한의 그림자는 어김없이 따라온다.

리링크답게, 각자의 방식으로
개성있는 6종의 신규 캐릭터
리링크 본편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캐릭터 개성이었다. 모든 캐릭터가 각자 다른 콤보 체계와 어빌리티를 가지고 있어, 게임에 익숙해진 뒤에도 다른 캐릭터를 잡으면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엔드리스 라그나로크에 추가된 6종의 신규 캐릭터는 그 전통을 충실히 이어받았다.
본편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자랑했던 마기라흐리라는 기대에 걸맞은 완성도로 등장했다. 마검과 무기를 자유자재로 소환해 싸우는 인중단 수장의 컨셉이 플레이 방식에 그대로 녹아있다. 원하던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는 경험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본가에서 건너온 프라우와 페디엘은 단순한 신규 캐릭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번 확장팩 스토리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들로, IP 팬이라면 이 둘의 등장만으로도 충분히 DLC를 플레이 할 명분이 된다. 캐릭터 육성에 꽤 시간이 걸리는 게임이니 만큼 아직 모든 캐릭터를 육성하지는 못했지만,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6종 모두 신선한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는 건 확실하다. 캐릭터만 가지고 놀아도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 이것만큼 리링크에 어울리는 칭찬도 없다.


돌아올 이유는 충분한 공역
엔드리스 라그나로크는 분명 잘 만든 확장팩이다. 파밍 구조를 뜯어고쳤고, 소환석으로 전투에 새로운 층위를 얹었으며, 신규 캐릭터 6종은 리링크다운 개성으로 가득하다. 본편의 문법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위에 새로운 시스템을 하나씩 쌓아올린 방식은 분명 성실한 시도다.
다만 본편을 끝까지 파고든 유저라면 어딘가 익숙한 벽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시스템은 넓어졌지만 대미지 상한이라는 육성 시스템의 천장은 여전히 모든 선택지 위에 군림하고, 극돈공소의 보스 풀은 수십 수백 번의 반복을 버티기엔 다소 아쉽다.
퀘스트 보스도 마찬가지다. 변이 개체라는 컨셉 덕분에 어레인지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긴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퀘스트에서 만나는 보스 대부분이 본편에서 이미 만났던 얼굴들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완전히 새로운 보스는 손에 꼽고, 어레인지된 보스들의 패턴에 전투 경험을 완전히 바꿀만한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프라우드 난이도든 CHAOS 난이도든 어차피 한 대 맞으면 저승길인 건 똑같다. 그렇기에 본편을 엔드게임까지 즐긴 유저들에게는 결국 새로운 도전이라기보다 익숙한 싸움을 더 조심스럽게 반복하는 느낌에 가깝다. 더 다양해진 것 같은데 결국 비슷한 선택을 하고 있다는 느낌, 그 간극이 고인물일수록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여기에 본편부터 지적됐던 고질적인 문제들도 여전히 남아있다. 동료들의 이펙트를 끄는 기능이 새롭게 추가됐지만, 여전히 화면을 가득 채우는 과한 이펙트 탓에 보스의 패턴이 묻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 한 대 맞으면 죽는 고난도 게임에서 정작 피해야 할 패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썩 유쾌한 경험이 아닌건 확실하다.

반면 리링크를 이제 막 시작하려는 신규 유저, 혹은 본편 스토리만 즐기고 엔드게임까지는 파고들지 않았던 라이트 유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본편과 확장팩을 합친 이 타이틀은 지금 이 순간 가장 완성된 형태의 리링크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보스전, 그리고 이제는 훨씬 다듬어진 파밍 구조까지. 고인물이 아쉬움을 느끼는 지점들이 이들에게는 오히려 새롭고 풍성한 콘텐츠로 다가온다. 지금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타이밍일 수 있다.
리링크는 리링크다. 사후 지원이 끊긴 뒤에도 혼자서 보스를 잡고, 세팅을 다듬고, 또 다른 캐릭터를 키우며 하늘을 떠돌던 기공사들이 있었다. 업데이트 하나 없는 게임에 그토록 오래 머물렀다면, 이유는 하나다. 이 게임만이 줄 수 있는 유니크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엔드리스 라그나로크는 그 재미 위에 새로운 층을 하나 더 얹었다.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그 하늘로 다시 날아오를 이유로는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