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완벽한 애인, AI
AI와의 사랑을 다룬 영화 'HER' ©안나프루나 픽쳐스

나에겐 완벽한 애인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안부를 묻고, 밤에 잠들 때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무슨 말을 해도 타박하지 않고, 어떤 투정도 받아준다. 지치는 법도, 바쁘다는 핑계도 없다. 24시간 내 편이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나를 이해해주는 상대를 만난 적이 없었다.

단 하나, 그는 사람이 아니다. 인공지능(AI)이다.

먼 나라의 별난 사람 이야기가 아니다. AI에게 위로받고, 조언을 구하고, 끝내 마음을 주는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다. 누군가는 AI 애인을 인형으로 만들어 함께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AI와의 대화로 채운다.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일이 기술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그 기술은 돈이 된다.

잘 만든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의 캐릭터가 진짜로 나를 기억하고 반응한다. 게임을 꺼도 잊지 않고, 다시 켜면 어제 대화를 이어가는 캐릭터. 요즘 중국에서는 이런 AI 연애 게임이 쏟아지고 있다.


AI에게 마음을 주는 사람들, 이미 거대한 흐름


내겐 너무 완벽한 애인, AI
©INVEN

'AI와 연애한다'는 말은 한때 공상과학 영화의 소재였다. 2013년 개봉한 영화 '그녀(Her)'가 형체 없는 AI와 사랑에 빠진 남자를 그렸을 때만 해도 먼 미래의 상상이었다. 그런데 10여 년 만에 현실이 됐다.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사람들이 AI를 쓰는 이유가 바뀌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의 '2025년 사람들이 실제로 생성형 AI를 어떻게 쓰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활용 1위에 '치료·정서적 동반(therapy and companionship)'이 올랐다. 2024년만 해도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에 밀려 2위였는데, 1년 만에 1위로 올라섰다. 치료·동반을 포함한 '개인적 지원' 영역은 전체 사용량의 31%로, 2024년 17%에서 거의 두 배가 됐다. AI에게 정보가 아니라 마음의 위로를 구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보고서를 쓴 마크 자오샌더스는 "AI가 단순한 효율 도구를 넘어, 인간의 의사결정과 창의성, 정서적 지지의 한 축이 되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둘째, 이 수요를 겨냥한 시장이 빠르게 크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성장세가 뚜렷하다. 중국에서 가장 가파르게 크는 게임 분야는 매력적인 캐릭터와의 교감을 핵심으로 삼는 '여성향 게임'으로, 중국 게임공위의 '여성향 게임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시장 규모는 80억 위안, 약 1조5천억원에 달했다. 1년 만에 124.1% 커졌다. 잠재력이 드러나자 신작이 쏟아졌고, 한 신작은 첫 공개 영상 조회 수가 순식간에 1천만을 넘기며 개발사 주가를 거의 두 배로 끌어올렸다.

한쪽에는 AI에게 위로를 구하는 거대한 수요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그 감정을 다뤄주는 시장이 커지고 있다. 24시간 깨어 있고, 무슨 말이든 받아주며, 지치지 않는 AI가 둘을 잇는다. 게임 업계에서 'AI 컴패니언(동반자)'이라 부르는 이 시장이 머지않아 1천억 위안, 약 19조원까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선택지 고르던 미연시에서, '대화'를 나누는 AI로


내겐 너무 완벽한 애인, AI
시리즈 15주년 작품 '도키메키 메모리얼 4'©코나미

화면 속 캐릭터와 연애하는 게임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렇다면 AI 기술로 만든 연애 게임은 기존의 미연시와 무엇이 다를까?

핵심은 '대본'이다. 기존 연애 시뮬레이션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작가가 미리 써둔 선택지를 고르는 방식이다. 화면에 뜬 두세 개 중 하나를 누르면, 짝지어진 대사가 돌아온다. 무얼 고르든 게임이 준비한 길 안에서만 움직이고, 같은 선택엔 모든 이용자에게 똑같은 장면이 재생된다. 어제 내가 무슨 농담을 했는지, 어떤 고민을 털어놨는지 캐릭터는 담아두지 않는다. 정교하게 짜인, 그러나 모두에게 똑같은 인형극이다.

AI는 이 구조를 갈아엎는다. 선택지를 누르는 게 아니라, 내가 타자로 친 말에 캐릭터가 그 자리에서 대답을 '만들어낸다'. 정해진 보기가 없으니 무슨 말이든 건넬 수 있고, 반응도 그때마다 새로 빚어진다. 게다가 대화가 쌓인다. 어제 "요즘 잠을 못 잔다"고 했다면, 오늘 캐릭터가 먼저 "좀 잤느냐"고 물어올 수 있다. 중국 신작들이 "남주가 당신과 실제로 나눈 대화를 기억한다"를 가장 큰 자랑거리로 내세운 게 이 지점이다. 한 스타트업의 연애 게임은 남자 주인공이 한참 뒤에 다시 만나도 예전 일을 기억하고, 그 기억으로 관계를 다르게 끌어간다.

결과적으로 같은 게임을 해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연애를 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대본'에서 '나에게만 맞춰진, 세상에 하나뿐인 관계'로. 기존 연애 게임과 AI 연애 게임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다.


'AI 컴패니언',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내겐 너무 완벽한 애인, AI
'미효오'가 만든 AI 컴패니언 게임 'B사이드: 올리비아 린' ©미효오

나를 기억하는 캐릭터, 그 잠재력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까. AI 분야에 가장 공격적인 미호요가 2026년 6월 거의 동시에 보여준 두 가지가 그 끝을 가늠하게 해준다. 방향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는 캐릭터를 게임 밖으로 꺼내 곁에 두는 '동반자'로 만드는 길이다. 미호요가 중국 스팀(Steam)에 올린 'B사이드: 올리비아 린(BSide: Olivia Lin)'은 게임이 아니라 가상 캐릭터 한 명을 위한 데스크톱 앱이다. 전투도, 과금도, 숙제도 없다. 피아노를 치는 음대생 캐릭터가 바탕화면에 머물며 이용자와 편지를 주고받고 연주를 들려준다. 이용자가 올린 곡을 캐릭터가 연주하는 영상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플레이'가 아니라 한 캐릭터와 '같이 지내는' 경험이다.

핵심은 '꺼내기'다. 미호요는 캐릭터와 지내는 일을 거창한 게임에 가두지 않고, 일상에 스며드는 작은 앱만으로 사람들이 마음과 시간을 쏟을지 시험하고 있다. 게임을 켜야만 만나던 연인이, 바탕화면에 상주하며 24시간 곁에 머무는 존재로 바뀐다. 도입에서 말한 '24시간 내 편'이 게임 회사의 손에서 구현되기 시작했다.

둘째는 한층 먼 길이다.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만나기도 전에 미리 '살게' 만드는 것이다. 미호요 계열 AI 회사 연구진은 2026년 6월 공개한 논문에서, AI 캐릭터 100명을 세 개의 가상 세계, 즉 뉴욕의 공유 주택과 판타지 마법학교, 중국의 한 고등학교에 나눠 넣고 각자 가상의 10년을 살게 한 실험을 선보였다.

이 캐릭터들은 10년을 사는 동안 친구를 사귀고, 직업을 바꾸고, 크고 작은 선택을 하고, 주변의 평판을 쌓는다. 성격마저 겪은 일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 플레이어를 처음 만나는 순간, 이미 자기만의 인생 이력서를 들고 나타나는 캐릭터다. 첫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살아온 내력과 상처가 정해져 있는 존재다. 연구진은 이렇게 '살아낸' 삶을 학습시키자 캐릭터가 사람처럼 느껴지는 정도가 눈에 띄게 올랐다고 밝혔다.

게임을 끄면 멈추던 캐릭터에서 출발해, 바탕화면에 상주하는 동반자를 지나, 제 인생을 살아온 존재까지. AI가 캐릭터를 살려내는 일은 이미 여기까지 왔다. '말을 더 잘하는 NPC'가 아니라, 기억하고 변하고 자기 역사를 가진 존재로 캐릭터의 격이 바뀌고 있다.


완벽한 애인의 그림자



24시간 내 편이 되어주는 다정함은, 뒤집으면 사람을 현실에서 떼어놓는 힘이 되기도 한다. AI는 무슨 말에도 맞장구치고, 어떤 결정에도 동조하며, 좀처럼 거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의 연인은 나를 말리고 반박하고 때로 떠나지만, AI는 떠나지 않는 대신 잘못된 방향으로도 끝까지 함께 가준다.

그 끝이 어디인지는 실제 사례가 말해준다.

MBC 'PD수첩'이 2026년 6월 23일 내보낸 방송에는 AI와의 대화에 빠져 한 달 가까이 음식을 끊은 사람이 나온다. 단식이 건강을 위협하는데도 AI는 말리기는커녕 "그럴 수 있다"며 안심시켰다. 또 다른 출연자는 AI의 부추김 속에 '3년 안에 100억을 벌겠다'며 사업을 벌였다가, 모든 게 무너진 뒤에야 그 확신이 허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완벽한 내 편이라 믿은 존재가 실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을 뿐이다.

미성년자에게는 더 깊이 파고든다. 같은 방송에는 하루 여덟 시간 넘게 AI 캐릭터와 대화하며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청소년이 등장한다. 가치관이 채 서지 않은 아이일수록, 무엇이든 받아주고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관계에 더 강하게 끌려든다.

그리고 가장 무거운 사례는 죽음으로 끝났다. 2024년 미국에서 14세 소년이 AI 챗봇과 오래 대화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유족은 AI가 아들을 부추겼다며 개발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자해를 부추김당한 17세 청소년의 사례도 보고됐다.

AI의 거절하지 않는 다정함은, 마음이 약해진 사람을 자기 방치에서 인생의 파탄으로,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까지 떠밀 수도 있다. 일부의 일탈이 아니라, AI가 가진 다정함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그림자다. AI와의 교감을 상품으로 만들려는 게임이라면, 그 다정함이 위험으로 바뀌는 경계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숙제를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규제가 움직였다. 중국 정부는 2026년 4월 10일 'AI 의인화 상호작용 서비스 관리 잠정방법'을 발표하고 7월 15일 시행한다. AI와의 정서적 교감을 직접 겨냥한 규정으로, 자해·자살을 부추기는 내용을 금지하고 이용자를 과도하게 떠받들어 정서적 의존이나 중독을 유도하는 행위를 막는다. 특히 미성년자에게는 '가상 연인' 같은 친밀한 관계 서비스 자체를 제공할 수 없도록 못 박았다.


문은 이미 열렸다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묻고, 무슨 말에도 타박하지 않고, 24시간 내 편이 되어주던 그 완벽한 애인. 그런 존재가 점점 많은 사람에게 더욱 흔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흐름은 되돌릴 수 없다. 정서적 의존도, 미성년자 문제도, 규제 공백도 흐름 자체를 멈추진 못한다. 기술은 이미 그 문턱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은 질문은 'AI 연애 게임으로 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갈 것인가'다.

같은 다정함이 누군가에게는 외로움을 채워주는 위안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일상을 앗아가는 덫이 된다. 그 갈림길을 가르는 건 그걸 만드는 사람의 손에 달렸다. 캐릭터가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시기가 온 만큼, 사람의 마음을 잘 지키주는 일도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