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샀지만 갖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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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계산이 쉬웠다. 돈을 내고, 물건을 받고, 끝. 간단한 절차로 소유권은 자연스럽게 이전됐고 그대로 끝이었다. 그 때부터, 그 물건은 내 것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갈 수록 이 간단한 거래가 참 복잡 미묘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시장은 '물건'이 아닌 '권리'를 팔고 있다. 일정 기간 동안 영상을 볼 수 있는 권리.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 정수기나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게임을 할 수 있는 권리 등등을 말이다.

그러다 보니 묘한 일이 벌어진다. 이 '권리'의 시한선은 대부분 명백하지 않다. 말로는 '영구 소장'이라 하지만, 정말 세상이 망할 때까지 서버를 유지할리 없다. 결국, 대부분의 '영구 소장'은 그 서비스가 종료되는 순간 무색해진다. 정보화 시대의 비극이지만, 클래식한 경제 관점에서는 뭔가 애매모호하게 찝찝한 불편한 거래다.

그렇게, 내가 돈 주고 산 e북 수백 권이 플랫폼의 사망과 함께 순장되었다. 언뜻 '평생 소장'이라는 문구를 본 것 같은데 말이다. 기분 나쁜 일이지만, 어차피 다 본 책이니 어쩔 수 없구나 싶었다. 기실, 뭐가 되었든 '서비스 종료'라는 표현이 엮이면 누군가는 비슷한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일이라 생각했으니까.

반면, 저 바다 건너 서구권 소비자들은 참지 않았다. 2014년 출시된 유비소프트의 '더 크루'는 10년 간의 서비스 끝에 서비스 종료를 선언했고, 게임을 구매한 이들도 더 이상 게임을 할 수 없었다. 소비자들은 '스탑 킬링 게임' 운동을 펼치며 게임 서비스를 종료해도 플레이는 가능하게 해 달라 요청했고, 이 운동은 유럽 전역으로 번졌다.

소비자 단체 'UFC-Que Choisir'는 유비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법적 다툼을 앞두고 있으며, '스탑 킬링 게임' 운동의 청원은 100만 표 이상의 서명을 모아 EU 집행 위원회 검토가 이뤄졌다. EU 집행 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새로운 법률을 제안하지는 않겠지만, 게임 서비스 종료에 대한 업계 자율 행동 강령 마련과 소비자 권리에 대한 안내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조금 더 발이 빨랐다. 캘리포니아 하원의 '재키 어윈' 의원은 이와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생각하고 'AB 2426'법안을 발의했다. 게임이나 영화, 음악, 전자책과 같은 디지털 상품을 '물건'의 구매나 소유가 아닌, 접근 권한, 즉 '라이선스'임을 명시하라는 내용이며 이미 시행되고 있다.

나아가 최근에는 '크리스 워드' 의원이 'Protect Our Games Act' 적당히 직역하면 '게임 보호법'으로 불리는 'AB 1921'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서버 종료 최소 60일 이전 공지, 종료 이후에도 플레이 가능한 방법, 즉 오프라인 패치나 커뮤니티 서버, 독립 실행 버전 등을 제공해야 하며 불가능할 경우 환불을 해 줘야 한다는 법안이다. 이 법안은 현재 하원을 통과하고 상원 심의를 앞둔 상황이다.

그렇게,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아무개는 곧 자신의 게임을 보호 받을 수 있을 것 같고, 프랑스에 사는 모 씨는 유비소프트와 법정에서 다투는 현재가 되었다. 내가 궁금한 건 이거다. 국내 패키지 게임도 서비스를 종료하면 더 이상 할 수 없는 건가?

전자상거래법에서는 '다운로드', 혹은 '제공 개시'이후 철회가 어렵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판매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서비스 종료에 대한 내용은 없다. 콘텐츠산업진흥법에도 서비스 종료 후 이용할 권리에 대한 언급은 없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인 '디지털콘텐츠 이용자 보호지침'에도 여러 의무가 명시되어 있지만, 영구 이용권이나 서비스 종료 후 이용권, 서버 종료 후 플레이 등과 관련한 내용은 역시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게임 표준약관에도,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도 서비스 종료 후 플레이에 대한 내용은 없다.

여태 이런 미비점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던 이유는 국내 법체계가 디지털 콘텐츠를 전통적인 '물건의 소유'보다 사업자와 이용자 사이의 계약 관계로 다뤄왔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법과 콘텐츠산업진흥법, 공정거래위원회 표준약관 모두 서비스 이용과 계약, 환불, 고지 의무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으며, 서비스 종료 이후에도 콘텐츠를 계속 이용할 권리 자체는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게임을 '소유'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법은 그렇게 바라보지 않는다. 법이 먼저 들여다보는 것은 소유권이 아니라 계약이고, 서버가 닫힌 뒤에도 계속 플레이할 권리보다 그 계약이 공정했는지, 충분히 고지됐는지, 환불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먼저 묻는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온라인 게임만 만드는 나라가 아니다. 콘솔과 PC, 글로벌 디지털 스토어를 향해 산업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산업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만큼, 디지털 콘텐츠를 둘러싼 소비자의 권리 역시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구매'의 의미를 법으로 다시 정의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질문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그날이 왔을 때도 우리는 여전히 '구매'라는 단어를 아무 의심 없이 사용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한 번도 게임을 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