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다 보니 게이머들은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하고, "지금 PC 바꾸는 건 손해"라며 현재 유지 중인 컴퓨터를 붙잡고 버티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가짐은 보통 심리적인 요소가 아닌, 외부 요인에 의해 흔들리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게임이 생겼는데 사양이 받혀주지 못한다면? 더 극악으로 갑자기 컴퓨터가 먹통이 된다면?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새로 장만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요.

가격이 급증한 각개 부품들로 구성된 컴퓨터 가격, 진짜 장난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100만 원 초중반대에서도 어지간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출 수 있었는데, 이제는 200만 원으로도 아쉬운 견적이 나옵니다. "한 10~20만 원만 더 써볼까?"라며 아주 조금씩 등급을 올리거나 하면 300만 원은 우스운 시대가 됐습니다.
그런데 최근 조립 PC 시장을 살펴보면 눈이 번쩍 뜨이는 매물들이 종종 보입니다. 꽤 괜찮은 CPU와 GPU 체급에도 "오? 이 사양에 이 가격이면 괜찮은데?" 싶은 완본체 PC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죠.
"몇 년 간은 오늘이 가장 싸다"라는 마음에 결제 버튼까지 손이 절로 갈 수 있겠지만, 제품 상세 페이지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는 교묘하게 가려진 함정이 숨어있습니다. 지금 PC 시장은 하급 PC 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최근 인기를 끄는 가성비 완본체 PC 견적의 상세 페이지를 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사실 CPU는 가리기가 힘들지만, 숨기려면 어떻게든 숨길 수 있습니다. 라이젠 4세대 CPU. 딱 보면 좋아 보이기도, 여전히 현역인 제품들도 많지만, 기술적으로는 6년이 가까워진 Zen3 아키텍처 기반의 제품입니다.
그래픽카드 또한 마찬가집니다. 대부분 RTX 5060 등으로 넘버링만 표기할 뿐, 해당 제품이 어떤 브랜드의 어떤 라인업 제품인가에 대한 정보는 이런 저가 PC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다만 CPU와 그래픽카드가 PC를 구성하는 핵심 부품들인 것은 맞지만, '하급 PC'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는 PC 입장에서 CPU와 그래픽카드는 오히려 구성된 제품들 중 가장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부품인 것도 놀랍습니다. 하급 PC의 실체는 메인보드와 파워서플라이, SSD, 메모리 등의 구성으로 만들어집니다. 이를 업계에서는 '하급 부품 끼워팔기', '주요 부품으로 인질 잡는다' 등으로 표현됩니다.
누군가는 "저렴한 부품을 써서 가격을 낮췄다, 소비자가 구입하기 좋게 만들었다. 이게 문제냐?"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PC 부품 시장의 과열, 저렴한 부품의 한계 등을 잘 알고 그런 리스크 속에서도 임시 목적으로 구입하려고 하는, 소위 컴퓨터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입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평소 컴퓨터에 대해 관심이 없는, 큰마음 먹고 하급 PC를 구매하는 일반 게이머들입니다.

하급 부품의 문제점은 정말 다양하지만, 단순히 표기된 정보와 뭔가 다르다거나 내구성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가장 큰 리스크는 문제가 생겼을 때의 A/S 과정에서 시작됩니다.
일반 게이머 기준에서는 컴퓨터가 갑자기 느려지거나 켜지지 않을 때, 도대체 어떤 부품이 원인인지 찾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름 없는 하급 부품들은 유통사가 불분명하거나 A/S 절차가 까다로워, 고장 한 번에 PC 전체를 고철 덩어리로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저렴한 하급 부품을 끼워파는 것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급 부품이기 때문에 각개로는 잘 팔리지 않아 끼워서라도 팔려는 것, 일종의 재고떨이의 개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문제가 생겼어? 부품을 새로 보내줄게"라는 정책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판매처에서도 A/S를 해결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런 상황이 온다 한들, 내 돈 주고 컴퓨터를 샀지만 부품을 바꾸는 기간에 게임을 못하는 일반 게이머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부품 시장이 정말 좋지 않습니다. 메모리를 보면 이 현상이 더욱 기괴합니다. 최신인 DDR5를 넘어, 이미 구형이 된 DDR4, 심지어 해외에서는 유물 취급을 받던 DDR2 메모리까지 수요가 급증하며 원가 대비 가격이 최대 60%까지 폭등하는 기현상이 발생되기도 합니다. DDR4의 경우, AMD에서 5800X3D의 부활을 알리며 DDR5의 차선택이 아닌, 정말 훌륭한 선택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최신 규격 부품으로 무장한 PC 가격이 너무 비싸다 보니, 어떻게든 구형 PC의 각개 부품들을 최소한으로 교체하여 쓰려는, 눈물겨운 저항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가장 현명한 구매 시기는 남들이 싸다고 할 때가 아니라, 나에게 정말로 PC가 필요할 때입니다. "조금 더 떨어지면 사야지"라는 말은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멀쩡한 컴퓨터가 있는 유저들의 전유물일 뿐입니다.
큰돈을 들여 게이밍 PC를 맞추려는 게이머 분들은 지금의 달콤한 가격표에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CPU와 그래픽카드 이름 뒤에 숨겨진 각개 부품들의 브랜드를 먼저 확인하는 것, 그것이 '하급 PC 주의보' 속에서 내 지갑과 정신 건강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