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 여론의 주인이 바뀌었다

여의도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과거 게임 규제 논의를 주도한 것은 학부모·종교 단체였다. 셧다운제로 대표되는 2010년대 규제 입법의 동력이 이들이었다. 지금은 그 목소리가 사실상 의미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줄었다는 평가다. 대신 정치권이 눈치를 보는 대상은 게이머다.
전환점을 상징하는 장면은 2022년 10월의 게임물관리위원회 국민감사청구다. 당시 게임위의 등급 재분류 논란과 등급분류 시스템 구축사업 비위 의혹이 불거지자, 게이머들은 국회 앞에 1km가 넘는 줄을 서가며 연대서명에 나섰다. 당초 목표는 청구 요건인 300명 수준이었지만 하루 만에 5,489명이 서명했고, 이후 감사원 감사에서 의혹 상당 부분이 사실로 확인됐다. 게이머가 온라인 여론을 넘어 오프라인에서 정치적 실체로 등장한 사건이었다.
이후 국회에서는 잘못된 게임정책을 내놓을 경우 게이머들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역풍을 우려해 아예 민감한 게임정책을 다루지 않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게임정책의 구조적 특성도 이런 신중함을 부추긴다. 게임정책은 게임사와 유저의 이익이 함께 가는 경우가 드물다. 게임사를 향한 규제를 풀면 유저 권익에는 손해가 되는 식이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처럼 유저를 보호하는 조치는 게임사에는 부담이 된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순간 다른 한쪽의 반발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인 셈이다.
- 전당대회와 게임특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8월 17일 전당대회에서 새 당대표를 뽑는다. 전 대표인 정청래 의원과 국무총리를 지낸 김민석 의원의 양강 구도로 좁혀진 상태다.
게임 업계 관점에서 관전 포인트는 게임특별위원회다. 게임특위는 민주당의 게임정책을 총괄해온 당내 기구로, 질병코드 도입 유보, 게임산업법 개편 등 굵직한 의제를 다뤄왔다. 문제는 비상설기구여서 당대표의 승인이 있어야 꾸려진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를 지내던 시절 1기가 운영됐고, 정청래 대표 체제에서 2기가 이어졌다. 당대표가 바뀔 때마다 존속 여부를 다시 확인받아야 하는 구조다.
다만 누가 당권을 쥐든 게임특위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청래 의원이 연임하면 특위는 자연스럽게 유지된다. 변수는 김민석 의원이지만, 김 의원 역시 여러 통로로 게임에 관심을 보여온 만큼 3기 게임특위를 열 것으로 관측된다. 국무총리 시절 지스타를 방문했고, '페이커' 이상혁 선수를 총리 공관으로 초대해 면담한 행보가 대표적이다.
결국 게임법 전부개정안 논의는 전당대회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 협회는 국회로, 아쉬운 문체부장관

한국게임산업협회 조영기 협회장은 게임산업법상 경품 규제 해소에 예상보다 더 진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행 게임산업법은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사행성 방지를 위해 게임물 내 경품 제공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업계는 이 조항이 20년 전 아케이드 게임장을 겨냥한 규제인데도 온라인·모바일 게임의 이벤트와 마케팅까지 옥죄고 있다고 본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협회 요구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최 장관의 의지가 문체부 안에서 실질적인 힘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 장관이 문체부 실·국장 장악에 소홀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정책 추진력이 약하다는 아쉬움이 뒤따른다.
이러한 사정 탓에 협회는 다음 문체부 장관을 기다리거나, 국회 설득에 더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 결국, 게임은 문체위

게임 관련 의정활동이 탄력을 받는 가장 좋은 조건은 게임에 관심 있는 의원이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를 소관하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속하는 것이다. 의원이 관심을 가지면 보좌진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게임위 감사청구를 이끌었던 이상헌 전 의원이 그런 사례였다. 의원의 관심이 확실하다면 상임위가 문체위가 아니어도 된다.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조승래 의원(재정경제기획위원회), 김성회 의원(국방위원회)이 대표적이다.
의원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하더라도 보좌진이 게임에 관심이 있는 문체위 의원실이라면 의미 있는 의정활동이 가능하다. 현재 문체위원장인 이재정 의원실 관계자가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반기 국회에서 주목도가 높은 인물은 한동훈 의원이다. 한 의원은 지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낼 당시 확률형 아이템을 '디지털 콘텐츠 계약법'으로 규제하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게임 규제를 문화정책이 아닌 소비자 계약 문제로 접근한 이력이다. 다만 상임위가 외교통일위원회여서, 중국 정부의 게임 서비스 허가권인 판호 이슈 외에는 게임 관련 활동에 제약이 있다. 그럼에도 한국콘텐츠진흥원 출신으로 게임 행정에 밝은 인사가 보좌진에 합류한 만큼, 향후 관련 행보가 나올 수 있다.
여당에서는 김윤덕 의원실, 야당에서는 김승수 의원실이 게임정책에 특히 관심을 두고 있다. 다만 김윤덕 의원은 국토교통부 장관직을 수행 중이어서 당분간 문체위원으로 활약할 기회가 적다. 김승수 의원은 본인이 게임에 관심이 있는 데다 보좌진의 전문성도 갖췄다는 평가로, 향후 여당 주도의 게임법 전부개정안에 비상한 관심을 보일 수 있다.
게임법 전부개정안은 2006년 제정된 게임산업법의 뼈대를 20년 만에 갈아엎는 작업이다. 지난해 9월 조승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게임을 디지털 게임과 특정 장소형(아케이드) 게임으로 나눠 규율을 이원화하고, 게임물관리위원회를 폐지하는 대신 게임진흥원을 신설하는 등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굳어진 규제 중심 체계를 진흥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남은 것은 국회의 시간이다. 개정안은 문체위에서 다뤄지며 공청회 등 굵직한 절차가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 문체위의 주요 이슈가 축구 국가대표팀에 쏠려 있는 만큼, 게임법이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까지는 한동안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