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 같은 제목으로 수기를 작성했던 게 3년 전이었을 거다. 당시에도 언급했던 내용이지만,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는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이라면 아마 공감할 거다. 출장은 여행과는 다르다. 머나먼 이국 땅은 모험과 미지가 가득한 가슴 설레는 공간이 아니다. 그냥 가는 데 더럽게 오래 걸리는 일터일 뿐이다.
3년 전 그 때 이후로도, 수많은 출장을 갔다. 한 해에 적게는 4번에서 많게는 8번은 오가니 1년 중 한 달 가량은 해외의 호텔에서 잠을 청하는 셈이다. 그리고, 2026년 6월에 이르러 또 한 번 출장이 잡혔다.
올해로 치면 이미 4번째 출장이지만, 장소가 조금 다르다. 대부분 일본 혹은 미국, 중국 등을 오가는 평소와 달리, 이번에는 '프랑스'가 출장지다. 출장이 확정된 후, 집에 와서 이 사실을 공유하니 아내가 뭔가 부러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좋겠다... 가는 김에 에펠탑도 보고 와."
솔직히 좀 울컥했다.
뭘 보고 자시고 할 시간도 없다. 투덜거리자, 아내는 재차 말했다.
"그래도, 해외에 나가는 그 자체로 기분 좋지 않아?"
'아냐... 난 집이 더 좋아...'
말로는 설득이 되지 않으니 직접 보여주는 수 밖에.
파리로 향합니다.
목요일 출국, 일요일 귀국. 내가 받은 일정이다. 취재해야 하는 행사일은 금요일. 목요일에 출국해 같은 날 저녁에 도착하고, 자고 나서 다음날 취재를 하고 나면 그 다음날 아침에 다시 공항으로 향해야 하는 일정이다. 2박 4일이라 해야 할까? 사실, 대부분의 단기 출장은 이렇게 타이트한 일정으로 이뤄진다.
행사일을 전후로 도착하고 출발하는 여정. 간혹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는데, 아침 비행기로 출국해 취재하고, 다음 날 귀국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처럼 가깝거나 홍콩처럼 애매하게 먼 거리의 경우 이런 1박 2일 해외출장도 드물게 있는 편이다.
어쨌거나, 원활한 출발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빛의 속도로 수속을 마치고, 마지막 '얼큰국물'이 되어 줄 짬뽕도 한 그릇 비운 후 시간에 맞춰 탑승. 비는 시간에는 각종 항공 사건사고와 관련된 유튜브를 봤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공항에만 오면 이런 유튜브를 보게 되더라.

14시간의 비행은 끔찍하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간혹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무릎과 허리에서 의도치 않은 '오도독' 소리가 난다. 하지만 괜찮다. 난 장거리 비행의 프로니까. 다행히 에어 프랑스는 스타링크를 통한 기내 인터넷이 아주 원활하게 이뤄졌다. 유튜브로 영상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새 프랑스 영공이다.
대한민국 여권 파워를 실감하며 사람조차 없는 입국심사를 지나 짐을 찾고, 우버를 탔다. 공항에서 숙소까지의 운임은 약 55유로. 거진 1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지만, 어쩔 수 없다. 마침 파리 내 전철 중 4개 구간이 공사로 운행이 중지되었기에 방법이 없었다.

이 때의 시간이 저녁 8시 30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참 신기해 할 일이 하나 있다. 이 동네는 좀처럼 해가 지질 않는다.
사실, 프랑스 방문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에 배낭여행으로 한 번, 2019년에 신혼여행으로 한 번 왔으니 7년 단위로 계속 오고 있다. 당시에도 느꼈지만 유럽은 정말 지독하리만큼 낮이 길다. 위도가 높은 영국은 거의 밤 10시가 다 되도록 밝다. 우버를 타고 한 시간이 지나 9시 30분. 호텔에 거의 도착해서도 해는 여전히 쨍쨍하다.

근데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덥지?
더워도 너무 덥다. 저녁 9시 30분에 기온이 33도. 가까스로 호텔에 들어 왔는데, 호텔도 덥다. 방에 들어가니 방도 덥다. 방 에어컨을 가장 세게 가동했는데도 덥다. 샤워를 하고 나와도 덥다. 이쯤 되니,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게 느껴졌다.

인터뷰가 통으로 날아갈 때의 비참함과 절망
어찌저찌 잠을 자고, 다음날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새벽 3-4시에 잠드는 나였기에, 별도의 시차는 없었다. 일정의 시작은 중국 매체 기자와 홍콩 소재의 매니저와 함께 우버를 타고 행사장으로 향하는 것. 이번 행사는 한국어 통역도 없고, 언어 지원도 없다. 내 영어가 썩 훌륭한 편은 아니지만, 그냥 들이받으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긴다.
신기한 건, 이번 행사를 진행하는 회사가 프랑스도, 다른 유럽도 아닌 '일본'의 '코나미'라는 것. 하필 함께 개발에 참여한 개발사가 프랑스 소재의 개발사인데다, 작품 배경 역시 프랑스다 보니 이 먼 구라파 땅까지 아시아의 기자들을 불러모았다. 올해 초에 유비소프트가 일본에서 행사를 하기에 가뿐한 마음으로 다녀 왔는데, 그 편함의 업보를 이렇게 청산하는가 싶었다.
"그거 아세요? 저희만 이 호텔 써요. 다른 사람들은 행사장 근처 호텔에 있고요."
"왜요?"
"그 호텔 에어컨에 문제가 있어서 방을 못 쓴대요?"
"그래요?(내 방도 고장난 줄 알았는데)"
홍콩 출신의 매니저와 스몰토크를 나누다 보니 행사장에 도착. 행사장은 과거 예배당으로 쓰였으나, 이제 이런 행사들을 여는 장소로 쓰이는 '잔 다르크 예배당'이다.

잔다르크 예배당은 딱, 이날 다루는 게임인 '캐슬바니아: 벨몬트의 저주'에 맞게 꾸며져 있었다. 마침 캐슬바니아 신작에도 '잔 다르크'가 등장하니까. 이 때부터는 글로벌 기자들의 장엄한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국내 행사는 대부분 자주 알고 만나는 홍보팀 직원들에게 안내를 받을 수 있고, 국내 기업이 초청한 해외 행사 역시 마찬가지지만, 이렇게 초청 형태로 가는 이벤트의 경우 기자의 수에 비해 안내역을 하는 이들의 수가 턱없이 적다. 온갖 국가에서 모이는 경우는 더 그렇다. 난 수많은 행사에서 방치되어 있거나 뭘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는 해외 기자들을 수도 없이 보았다.
당연히, 누가 나를 이끌고 일하는 걸 도와줄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직접 알아서 찾아서 뭔가 해야 비행기 값은 하는 기자가 되는 거다. 귀를 쫑긋 세워 직원들끼리 하는 대화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하고 가야 기삿거리가 나온다. 서구권에서 진행되는 행사는 더 그렇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기자들한테 별 관심이 없으니까.

이 시점에, 감히 생각컨대 아마 행사장에 있던 모두가 공감했을 거다. 진짜 끔찍하게 더웠다. 잔다르크 예배당은 비교적 최근에, 철근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그래도 100년은 훌쩍 넘은 건물이다. 무슨 뜻이냐. 에어컨이 없다.
이 무더운 날씨가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냈는데, 날이 너무 덥다 보니 주최측은 행사장 곳곳에 엄청나게 많은 수의 선풍기를 가동했다. 심지어 인터뷰장에도 엄청나게 큰 선풍기를 틀고 있었는데, 이 인터뷰장이 예배당의 중심인 제대가 놓이는 공간이었다.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여기서 말을 하면 말이 웅웅 울려서 들린다. 굉장히 장엄하게.

장엄하게 울리는 목소리와 거대한 선풍기 소음 + 프랑스식 영어 발음이 합쳐지며, 인터뷰 내용이 홀랑 날아가 버렸다. 녹음은 고사하고, 코 앞에서 듣는데도 뭐라 하는지 전혀 들리질 않았다. 심장이 두근대면서 식은땀이 난다. 여기까지 와서 가장 중요한 인터뷰를 하는데 내용이 다 날아간다고?
정신이 멍해지는 대형 사고지만, 언제나 해결책은 있다. 일단 들을 수 있는 만큼은 듣고, 매니저에게 다가가 서면으로 추가 질문을 요청해도 되는지 물어봤다. 매니저는 흔쾌히 수락했고, 여기서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부족한 건 다시 채우면 그만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이후, 수 시간의 게임 플레이가 이어졌다. 감상을 짧게 남기자면, '캐슬바니아: 벨몬트의 저주'는 상당히 잘 만들었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장르의 원류라는 네임벨류에 맞는 게임성을 보여준다 해야 할까? 플레이 첫인상은 별도의 기사로 분리해 두었으니 더 자세한 내용은 해당 기사를 찾아보면 될 것 같다.
여튼 그렇게 여차저차 행사가 마무리되고, 모든 이들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자리가 마련되었다. 식사 자리는 할 말이 없다. 한국에서 온 이는 나 뿐이었기에 외로웠다. 다들 중국어로 소통하더라. 그렇게 여차저차 저녁식사까지 끝내고 들어오니 한밤중(이지만 밝은). 여전히 파리는 덥다.

나 너무 더워요. 한국 그리워요.
다음 날.
이 시점에, 한국에서도 유럽이 무지막지하게 덥다는 걸 눈치챘는지, 자고 일어나니 지인들의 생존 확인 연락이 와 있었다. '살아있냐?', '진짜 그렇게 덥냐?', '날씨는 어떻냐?' 등등의 문자에 하나씩 대답을 해 주던 와중 굉장한 이미지를 봐 버렸다. 날씨가 뜨거우면 붉은 색으로 표시하는 건 익히 알고 있었는데, 검은 색은 처음 봤다.

귀국 비행기는 오후 2시 40분. 프랑스에서 낮에 출발해, 밤을 지나 한국에는 다음 날 아침 9시 40분에 도착하는 비행기다. 이상적인 공항 도착 시간은 12시 내외. 일반적으로 3시간 정도 여유를 남겨두고 출발하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그냥 일어나자 마자 출발하기로 했다. 호텔 방마저 너무 더워서 굳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출근 시간이 걸리든 말든 우버를 타고 차 안에 있는게 더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빛의 속도로 짐을 싸고 체크아웃. 호텔 체크인 시 디파짓(보증금)으로 100유로를 지불한 상태였는데, 이중 16.9유로가 빠졌다. 뭐에 지불된 건지 물어보자, 호텔 지배인은 '도시 관광세금'이라 대답했다. 알고 보니 올해부터 파리는 시내 숙박 관광객에게 숙소 등급에 따라 세금을 물리고 있었다. 내가 묵은 호텔은 비록 에어컨이 잘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4성급이기에 1박당 8.45유로가 매겨진다. 한국 돈으로는 하루에 15,000 원 정도 하는 셈이다.
얼른 도망가고 싶었기에 그냥 끄덕거리며 지불해버리고 우버를 불렀다. 가까스로 우버를 잡아탔으나, 기사 아저씨는 훌륭한 파리지앵답게 기후이상의 주범인 에어컨을 틀지 않고 창문을 내렸다. 바람이 무척 뜨거웠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짧은 2박 3일 간의 파리 출장을 리뷰했다. 에펠탑? 없었다. 노틀담성당? 게임 속에서 봤다. 또 불타고 있더라. 루브르 박물관? 역시 없었다. 샹젤리제? 7년 전이 마지막 방문이다. 기억에 남는 건 캐슬바니아. 그리고 무더위 뿐이었다. 정말 너무 더웠던 기억밖에 없다. 불과 1달 전인 5월에 비슷한 일정으로 싱가포르 출장을 다녀 왔는데, 싱가포르가 훨씬 시원하다. 거긴 리콴유 어르신이 에어컨을 도시 전역에 깔아놨으니까.
그렇게 도착한 공항. 역시나 더운 맥도날드에서 대충 햄버거를 먹고 수속에 들어갔다. 그리고, 출국 수속부터 보안 검색으로 향하는 약 30분의 여정은 이번 출장에서도 가히 끄트머리라 할 정도로 지옥같은 구간이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구간에, 에어컨이 단 하나도 없었다. 무슨 뜻이냐? 파리 여행은 선선할 때 가자. 여름의 유럽 여행은 곧 죽음이다.

기사에서 덥다는 말만 200 번 정도는 쓰는 것 같은데, 그 정도로 더웠다. 그 더위 속에서도 가장 끔찍했던 건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딜 가도 덥다. 내가 갈 수 있는 반경에 시원한 곳이 한 곳도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유럽 폭염과 관련한 뉴스를 보고 있자니, 그들의 고통이 느껴진다. 가장 끔찍한 건,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거다. 우리는 하다 못해 은행으로 도망이라도 가지, 저들은 어디를 가도 덥다. 그러니 쌤통이라느니 하는 나쁜 말은 그만두자. 사람이 죽는다고.
한국으로 오는 여정은 너무나 편했다. 12시간에 이르는 비행이지만, 비행기 안에 춥다 싶을 정도로 시원했다. 귀국하는 한국인들도, 한국 여행을 가는 프랑스인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하다. 그래 얼마나 시원해. 역시나 귀국 편도 와이파이는 너무나 잘 됐다. 이게 여행이지.
아침이 되어 도착한 한국. 날씨가 너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원하다. 한국의 여름도 덥다며 아내가 칭얼거렸지만, 불지옥보다는 그냥 지옥이 낫다. 아 너무 상쾌해. 아이 러브 코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