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소비자의 선호는 디지털로 이동"했고, 그건 "자연스러운 방향"이었단다. 한 시대의 물리적 매체의 끝을 알리는 발표라기엔 마지막에 대한 상실보다는, 앞으로 성취에 집중된 언어의 성명이다. 그리고 그건, 사실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PS4가 출시된 2013년 소니 콘솔 게임 판매 중 디지털 비중은 13%에 불과했지만, 지난 회계 분기 기준으로는 85%까지 치솟았다. 업계 최고 기대작이자 PS5로의 대대적인 마케팅을 진행한 GTA6 실물 패키지 안에는 디스크 대신 다운로드 코드만이 포함된다. 변화는 이미 벌어져있었고, 소니는 거기에 날짜를 적어넣었을 뿐이다. 어쩌면 이건 디스크의 종말을 목격하는 게 아니라, 뒤늦게 인정하라는 통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디지털로의 이동은 반쯤은 '자연스러운 방향'이다. 하지만 그 말을 소니가 한다는 건 눈에 밟히는 일이다.
매체의 변화 역사 속에서 소니는 구경꾼이었던 적이 없다. 1980년대 초 필립스와 함께 CD를 세상에 내놓은 것이 소니였다. 2000년대 DVD 이후 HD-DVD와 블루레이의 치열했던 고해상도 광디스크 포맷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것도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기본 탑재한 플레이스테이션3였다. 소니는 광학 디스크라는 물리 매체의 시대를 이끌었다. 그리고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말로 그 차를 끌게 했다. 그런 회사가 디스크를 걷어낸다. '자연스러운 방향'이라는 이유로.
디지털 전환은 기업에겐 큰 이득이다. 물류비나 재고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반품도 없다. 중고 판매나 디스크를 빌려줄 수도 없으니 수익은 온전히 회사의 것이 된다. 평온한 성명, 담담한 문장이 감추는 건, 이 변화의 흐름을 시장을 만든 절반인 소비자가 아니라, 그저 기업의 손에 결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디스크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들어서느냐다. 우리는 여전히 스토어에서 정가를 치르고, 구매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그렇게 받은 영수증은 내 구매를 증명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입장 허가서가 될 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최근 소니는 배급사와의 라이선스 계약이 만료되자 만료 통보 한 장과 함께 500편이 넘는 영화를 내렸다. 정당한 값을 치른 이용자들이었지만, 계정에서 영화를 잃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디스크 생산 중단 발표와 함께 이루어진 PS3와 PS Vita 스토어 폐쇄도 마찬가지다. 디스크가 있었다면 지금도 선반에 남아있었을 게임이, 디지털이기에 흔적 없이 사라졌고, 사라지게 된다.
디지털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게임 팩에 입바람을 불어본 적 없는 세대에게 게임이 물건이 아니라 접속이라는 사실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변화는 늘 한 세대의 아쉬움과 다음 세대의 무심함 사이에서 완성된다. 그러나 세대의 감각으로 돌려버리면 놓치는 것이 있다. 산다는 것은 오래도록, 값을 치르고 손에 쥐고 원할 때 다시 꺼내 쓸 수 있다는 뜻이었다. 되팔고, 빌려주고, 물려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디스크가 사라진 자리에서 그 정의는 조용히 바뀐다. 우리는 여전히 '산다'고 말하지만, 사는 것의 내용은 이미 달라져 있다.
바뀐 것이 정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지도, 다시 볼 일이다. 자동차 업계는 지난 10년간 계기판의 물리 버튼을 걷어내고 모든 것을 터치스크린 안에 밀어 넣었다. 그 흐름을 이끈 건 테슬라였다. 방향지시등 레버마저 없애고 스티어링 휠의 버튼으로 대체하며, 일론 머스크는 그것이 '시대의 방향'이라 말했다. 원가 절감을 통한 수익성 확대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최근 테슬라는 모델3와 모델Y에 방향지시등 레버를 소리 없이 되살렸다. 유럽과 중국은 아예 물리 버튼을 안전 기준에 편입시키고 있다. 편리해 보이던 디지털이, 정작 손이 필요한 순간엔 불편했던 것이다. 흐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지나치게 밀어붙인 방향은, 어디선가 반드시 값을 치른다.
새로운 시대는 요란하게 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무섭다. 디스크를 만든 회사가, 디스크를 지운다. 그 문장의 무게를, 담담한 성명은 끝내 말해주지 않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