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를 맡은 건 일본의 팬이었다. 여기도 무대를 잃었지만, 같은 처지의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 낮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순례 코스 중 하나는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포즈며 구도며 맞춰 사진을 찍고, 다음 장소로 나아가려니 안내 방송이 나온다. 12시부터 아쿠아 심포니라는 분수쇼가 곧 시작한단다. 올봄에 문을 연, 생긴 지 반년밖에 안 된 새 명소다.
그런데 이 갓 만들어진 분수쇼의 시작은 드래곤 퀘스트였다. 게임 좀 해본 사람이면 켤 때마다 듣던, 장엄하면서도 어딘가 순박한 그 팡파르 말이다. 올해로 마흔 살 먹은 곡이, 반년짜리 분수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놀란 건 옆 팬의 반응이었다. 이 노래를 알더라. 내 새끼들 노래 아니면 머리에 스포츠만 든 사람이다. 게임도 안 하고, 용사가 뭔지도 잘 모른다. 그런데도 같이 흥얼거린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노래처럼. 그러곤 말한다. "게임은 안 해서 잘 몰라도 도라퀘(드래곤 퀘스트)는 알아."
압권은 순서였다. 드래곤 퀘스트가 먼저 나오고, 그다음이 춤추는 대수사선이었다. 90년대 일본을 뒤흔든,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그 국민 드라마 음악보다, 게임 음악이 앞에 놓인 것이다.
한국이었다면 아마 반대였을 것이다. 아니, 게임 음악이 리스트에 오르기나 했을까.
우리는 게임이 문화라고 곧잘 말한다. 자주, 꽤 힘줘서. 그런데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일이다. '재즈는 음악이다'라고 힘줘 외치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뭔가를 자꾸 큰 소리로 주장하게 된다면, 그건 대개 그게 아직 그만큼 당연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기선 아무도 외치지 않았다. 관광객이 오가는 평범한 해안가, 문 연 지 반년 된 분수가 태연히 게임 음악을 틀고,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 그 노래를 흥얼거린다. 아무도 그걸 문화라고 부르지 않는데, 그래서 그건 이미 문화였다.
마흔 해쯤 한자리에 있으면, 어지간한 건 그렇게 풍경이 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애들 성지순례를 하러 왔다가 엉뚱하게 또 일 생각만 하다 가는 사람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