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넷이 IP 검수 및 세계관을 정립하고 엔씨가 개발, 빌리빌리가 퍼블리싱하는 CCG '미스트바운드'가 빌리빌리 월드 2026에 출전했다. 아마 이 소식을 듣고는 엔씨가 개발하는 게임이 참가한 것에 놀라움을 표할 유저들도 있을 것이다. 그간 빌리빌리 월드는 서브컬처 축제로 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빌리빌리 월드는 이제 여러 굵직한 콘솔 게임은 물론 각종 인디 게임까지 출전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축제인 만큼, 퍼블리셔이자 주최측인 빌리빌리를 통해서 출전하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랜 불신을 씻어낼 게임을 만들었을까 그 우려가 앞섰다. '크라니쉬'라는 아이디로 친숙한 전 하스스톤 프로게이머 출신의 백학준 디자이너가 개발에 참가한 것을 익히 알고 있었어도 말이다.

미스트바운드 부스는 빌리빌리를 통해 출전한 부스들이 모인 4.1H관 한가운데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4.1H관은 라이브 서비스 게임 외에도 페르소나4 리바이벌, 토탈워 워해머 40K, 데이브 더 다이버 등 패키지 게임과 각종 인디 게임이 모여있는 구간이다. 그래서인지 CCG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미스트바운드 부스를 찾아온 유저들이 상당 수 있었다. 이를 염두에 둔 것인지, 미스트바운드의 시연 버전은 통상 튜토리얼 및 봇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바로 봇전과 친선전으로 진행됐다.
그간 하스스톤이나 섀도우버스, 유희왕 마스터 듀얼 등 TCG를 간간히 즐겼지만 미스트바운드처럼 5X3 그리드를 움직이는 작품을 즐긴 적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봇전으로 감을 잡으려던 순간, 현장에서 유저 반응을 지켜보던 백학준 디자이너의 눈에 들어왔다. 눈이 마주쳤으니 듀얼 시작, 카드 게이머의 숙명이다.
그렇게 시작한 첫 판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패했다. 전 프로게이머가 상대여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간 즐겼던 카드 게임은 플레이어 캐릭터는 고정되어 있고, 그 캐릭터의 클래스와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의 종류도 고정이 되어 있다. 그렇지만 미스트바운드는 달랐다. 사령관도 유닛으로 필드에 나와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령관의 특성과 스쿼드의 특수 능력은 각각 별개였다. 그간 가장 많이 했던 것이 하스스톤이라 영웅 능력 자리에 있을 특수 능력을 보고 사령관 특성을 지레짐작했는데, 그게 손패에 들린 스쿼드 카드의 특수 효과를 발동할 때 주로 사용된다는 것을 상당히 늦게 알아차렸다.

일단은 초심자에게 가장 익숙하다는 워리어를 잡았는데, 워리어는 사령관이 공격을 할 때 아드레날린이라는 자원이 차는 스쿼드였다. 그 아드레날린을 활용하기 위해 사령관이 적극적으로 공격을 해야 했다. 이때 5X3의 그리드 구조, 그리고 필드에 낸 카드가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규칙도 또 다른 변수를 만들었다. 여타 TCG가 그렇듯 중앙에 해당하는 두 번째 행과 상대방의 행에는 카드를 낼 수 없는데, 상대가 미리 냈던 카드를 움직여서 내 진영에 배치하면 그만큼 내가 낼 수 있는 카드의 수나 행동할 수 있는 반경이 줄어든다. 그러니 상대가 어떻게든 우리 진영으로 최대한 못 넘어오게 막으면서 카드를 깔아두고 적절히 배치하는 수도 중요했다.
그렇게 초반에 기세를 잡는 작업을 워리어 스쿼드에서는 사령관이 맡아야 하는데, 사령관 = 본체 즉 킹처럼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던 것이 패착이었다. 백학준 디자이너가 고른 메스머는 길드워에서 환영을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계열 직업인데, 이를 미스트바운드에서는 한 턴 동안 유지되는 특수 카드를 소환하는 형태로 구현했다. 즉 그 한 턴을 최대한 손실 없이 받아내면서 아군의 전력을 유지한 뒤, 환영이 사라진 턴에 역습을 가하는 것이 공략 방법이었다. 그렇지만 환영에 의해 필드가 장악당하고 사령관이 공격당하자 움츠러들었고, 사령관을 지키기 위해 다른 유닛을 희생시킨 결과 후반 뒷심이 부족해 맥없이 지고 말았다. 특히 막판에는 백학준 디자이너의 유닛들이 본진을 점거, 코스트와 카드가 다 마련이 되어 있는데 카드를 제대로 낼 공간도 없이 포위당해서 무기력하게 맞아야만 했다.


어차피 전 프로를 이길 수 있으리란 생각은 안 했으니 바로 회복, 기초부터 익히자는 생각에 두 번째 게임은 봇전을 골랐다. 본체가 적극 공격하는 유형의 덱을 다른 게임에서도 잘 안 썼던 만큼, 이번에는 본체가 공격하는 이미지가 아닌 네크로맨서 스쿼드를 골랐다. 네크로맨서 스쿼드를 고르면 필드의 유닛이 죽을 때마다 라이프 포스가 드롭되는데, 이를 줍는 스쿼드 유닛의 사령관의 체력이 회복된다. 네크로맨서 유닛의 경우, 동료 혹은 자신이 라이프 포스를 주울 때마다 특수 효과가 발동해서 게임을 설계할 수 있다. 즉 유닛을 적절히 소모시키면서, 그 소모된 유닛이 드롭한 라이프포스를 아군이 줍기 쉽도록 배치하는 행마의 묘가 필요했다.
이를 깨달은 순간부터 미스트바운드의 플레이 진가가 느껴졌다. 특히 네크로맨서 스쿼드에서는 왜 그렇게 이동과 관련된 키워드가 많았는지 깨달았다. 단순히 전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라이프 포스를 쟁탈하기 위해 움직이도록 유도한 설계였다. 아군 유닛이 움직일 때마다 무작위 적에게 2 피해를 주는 '강력한 올고스'가 그 예였다. 아군이 요리조리 피하면서 이기적인 딜교환을 하다가, 라이프포스를 먹기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강력한 올고스는 상대의 타겟이 되기 좋은데, 이를 막는 과정이 마치 차나 룩을 지키기 위해 다른 기물을 배치하는 수와 유사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압박을 이어가면서 상대의 진영까지 점거, 별다른 저항도 못하게 한 뒤에 마지막은 필드에 있는 라이프 포스를 전부 없애면서 그 2배의 피해를 입히는 주문 카드와 아군의 맹공으로 승리했다. 차근차근 필드를 압박해서 굳힌 뒤 피니셔를 날린 셈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필드가 밀렸을 때 상대가 대응할 수단이 무엇이 있나 궁금해졌다. 시연에서 플레이한 스쿼드에서는 필드가 밀리면 명치를 계속 맞는 것뿐만 아니라, 유닛 자체를 낼 수가 없어서 코스트가 있어도 주문이나 특수 능력 외에는 딱히 대처할 방법이 크게 보이지 않았다.
물론 비슷한 실력대의 유저끼리의 플레이라면 그렇게까지 치명적으로 흘러가는 게임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 잡는 플레이어에게 미스트바운드의 시연은 그리 쉽지는 않았다. 카드 게임에서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 더해져서 이동하는 것도 잊고 턴을 넘긴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상대는 좀 더 공간을 자유롭게 창출하고, 이를 토대로 압박을 할 수 있어 스노우볼이 굴러가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백학준 디자이너와 첫 판에서 이를 체감했고, 그래서 봇전에서는 이를 최대한 의식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굉장히 극단적인 상황이고, 보통은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른 채 맞으면 이탈한다. 소위 '모르면 맞아야지'를 줄창 언급하던 격겜도 이제는 커맨드 간소화라던가, 뭐라도 좀 알 수 있게 친절하게 여러 모드를 제시하지 않던가. 그래도 CCG 자체가 매니아층이 주로 하는 장르고, 그 기본 문법에서 아주 크게 벗어나진 않았기 때문에 몇 판 하다 보면 적응하고 새로운 재미를 체감할 수 있었다.
그 흐름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이를 어떻게 길드워의 세계관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 것인지가 앞으로 미스트바운드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짧은 시연이었지만, 초반의 흥미를 어떻게든 유도한다면 이 과제를 빠르게 해소하면서 앞으로 치고나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빌리빌리 월드 시연 후 인터뷰에서 CBT 준비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한 만큼, 현장 피드백을 체크해 그 매력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선보이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