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 매니저 시리즈를 좋아하고, e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상상 한 번 쯤은 해봤을 겁니다. 'FM 시리즈처럼 e스포츠도 비슷한 게임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 말입니다. 좋은 선수를 데려오고, 전략을 짜고, 결승 무대에 팀을 올리는 그림. '이스포츠 매니저 2026(Esports Manager 2026)'은 바로 그 상상을 게임으로 옮긴 작품입니다.

사실 이 게임은 하루아침에 나온 작품이 아닙니다. 뉴로나 게임즈는 2019년 'Esports Manager: MOBA'라는 이름으로 개발을 시작했다가 무산된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개발자는 포기하지 않았고, 오랜 기간의 개발 끝에 긴 여정의 결실로 출시가 확정되었습니다.

이 게임은 알면 알수록, 개발자가 얼마나 진지하게 경열 시뮬레이션 게임을 준비했는지 느껴집니다. 일단, 종목은 '카운터 스트라이크 2(CS2), 흥미로운 점은 실제 CS2 조직과 선수들의 라이선스를 확보했습니다. FaZe Clan, NAVI, GamerLegion, Eternal Fire, Copenhagen Wolves 같은 실제 팀은 물론, ZywOo(마티유 에르보)나 s1mple(올렉산드르 코스틸리예우) 같은 실존 프로게이머의 이름이 데이터베이스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진행자 제임스 뱅크스(James Banks), 해설자 Ne0kai, 코치 BIT 같은 실제 CS 씬 인물들도 게임에 등장합니다. 만약 이 게임이 정말 흥행한다면, 이 개발사가 만든 또 다른 e스포츠 종목의 게임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e스포츠판 FM 시리즈를 만들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
©INVEN


FM에 익숙하다면 낯설지 않은 첫인상


e스포츠판 FM 시리즈를 만들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
e스포츠 버전으로 나온 선수 능력치 프로필©INVEN

e스포츠판 FM 시리즈를 만들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
선수들 스카우팅도 하고 ©INVEN

e스포츠판 FM 시리즈를 만들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
실제 e스포츠 팀들과 선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입니다. ©INVEN

전체적인 인터페이스는 FM을 해본 사람이라면 금방 익숙해질 구성입니다. 좌측에 스쿼드, 스태프, 훈련, 전략, 스카우팅, 이적, 대회, 재정 같은 메뉴가 세로로 늘어서 있고, 튜토리얼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큰 어려움 없이 흐름을 익힐 수 있습니다. 한국어는 지원하지 않지만, 영어 텍스트의 양이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어서 플레이에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씩 뜯어보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능력치를 왜 이렇게 설정했는지, 게임단 운영에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정리했는지, 선수 육성과 관리에 영향을 주는 게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하나씩 살펴보게 되고, 그 자체만으로도 게임이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감독이 실제로 하는 일은 생각보다 잡다합니다. 선수단 물품을 사고, 대회에 맞춰 선수들의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하고, 훈련 상태를 점검하는 식의 뒷무대 업무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e스포츠 조직 운영을 '경기 밖'까지 끌고 들어온 시도 자체는 눈여겨볼 만합니다. 스폰서 계약도 킬, 헤드샷, 폭탄 설치·해체 같은 경기 내 지표에 보상이 걸려 있어서, 성적과 살림살이가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FM이 접었던 '메신저 인터페이스', 여기서 미리 볼 수 있다


e스포츠판 FM 시리즈를 만들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
게임단 내 직원들과 메신저로 소통하며 업무를 합니다 ©INVEN

e스포츠판 FM 시리즈를 만들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
©INVEN

이 게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팀을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팀 직원들이 메신저를 통해 수시로 말을 걸어옵니다. 대회 기간 숙소를 어디로 잡을지, 예산을 어떻게 쓸지처럼 매니저가 결정해야 할 사안들이 메시지로 날아오고, 저는 답장을 고르며 게임단을 굴려갑니다. 개발사가 '토크(Talk)' 모듈이라 부르며 앞세운 기능이 바로 이것으로, 정식 버전에는 수백 개의 상호작용과 50개의 고유 채팅 시나리오가 담겼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건, FM 시리즈도 한때 정확히 같은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7월 11일 서울 중구 젠지 GGX에서 열린 'FM26 감독 간담회'에서 스포츠 인터랙티브의 앤트 팔리(Ant Farley) 시니어 피처 디자이너는, FM26 개발 중 가장 논쟁이 컸던 지점으로 커뮤니케이션 인터페이스를 서양권 메신저 '왓츠앱'과 똑같이 바꾸려던 시도를 꼽았습니다. 한국에서 카카오톡을 쓰듯 서양 이용자 대부분이 왓츠앱을 쓰고, 실제 감독들도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니 그 경험을 게임에 옮기려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결론은 '폐기'였습니다. 팔리 디자이너는 막상 도입해보니 FM은 모바일식 소통에 적합한 게임이 아니었다며, 뒤늦게 이를 깨닫고 지금처럼 노트북에서 이메일 형식으로 소식을 받는 UI로 되돌렸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디자인과 개발, QA 시간이 상당히 투입된 뒤라 포기가 쉽지 않았지만, 모바일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의견이 내부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포츠 매니저 2026'의 메신저 인터페이스는, FM이 만들다가 접은 길을 실제로 걸어간 결과물인 셈입니다. e스포츠라는 소재를 생각하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선택이기도 합니다. 디스코드와 메신저로 굴러가는 씬이니까요. 사실 처음에는 e스포츠 매니저가 왜 이런 방식을 선택했을까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FM 개발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

다만 손에 잡아본 감각은 기대와 조금 달랐습니다. 대화 상대는 대체로 선수가 아니라 이벤트 매니저 같은 스태프였고, 주로 물어보는 것들이 그리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FM에서 선수 한 명 한 명과 감정을 주고받으며 팀 분위기를 다잡던 면담과는 무게감이 달랐습니다. 물론, 이 시리즈도 시간과 경험치가 쌓이면 체감이 더 좋아질 수는 있겠습니다.


놀라웠던 전술의 깊이, 그리고 실제 같은 얼굴


e스포츠판 FM 시리즈를 만들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
게임이 진행되는 방식©INVEN

이 게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전술이었습니다. 경기 전 세부 전술 화면에서는 맵과 진영(공격·수비)별로 이름을 붙인 전술을 만들 수 있고, 매수 전략과 선수 한 명 한 명의 시작 위치, 라운드 초·중·후반의 타이밍 규칙까지 30초·60초 단위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맵은 더스트2, 미라지, 인페르노, 뉴크, 오버패스, 앤션트, 아누비스 등 실제 경쟁전에서 쓰이는 7개 액티브 듀티 로테이션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경기에 들어가면 A 사이트를 패스트로 공략할지, B 위주로 수비할지, 맵 중앙을 먼저 선점할지, 돈을 아끼는 에코 라운드로 갈지 등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명령을 내리면 선수들이 그대로 움직이는 데서 오는 나름의 만족감이 있었습니다. 이런 시뮬레이션류 게임치고 전술 레이어가 이만큼 촘촘한 경우가 흔치 않다는 점은 분명한 강점입니다. 실시간 조작이 번거로운 이용자를 위해 자동 전술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선택지도 마련돼 있습니다.

e스포츠판 FM 시리즈를 만들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
완벽한 협동 공격으로 승리를 따냅니다.©INVEN


e스포츠판 FM 시리즈를 만들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
B올 전략을 시도하는 프나틱©INVEN


e스포츠판 FM 시리즈를 만들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
한 명을 자르고, ©INVEN


e스포츠판 FM 시리즈를 만들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
캠핑으로 추격하는 상대까지 자르는 팀원©INVEN

선수 얼굴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게임은 선수 얼굴과 팀 로고를 AI로 생성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데, 실물과 비교해도 놀라울 만큼 그럴듯한 얼굴이 많았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해외 평가가 갈립니다. CS2 전문 매체 핫스폰(Hotspawn)의 리뷰어는 일부 팀이 'PES 2005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조악한 얼굴로 나올 때 오히려 이질감이 크다고 지적했고, 프랑스 매체 인서트코인즈(InsertCoins)는 AI로 만든 얼굴과 로고가 실제 팀을 내세운 이 게임의 진정성을 되레 갉아먹는다고 짚었습니다. 실제 선수를 내세운 게임이 그 얼굴만큼은 AI로 채웠다는 지점은, 완성도와 별개로 한 번쯤 곱씹어볼 대목입니다.


스카우팅부터 훈련까지 진짜 팀을 운영한다는 것


e스포츠판 FM 시리즈를 만들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
훈련을 통해 맵마다의 숙련도를 높이고 ©INVEN


e스포츠판 FM 시리즈를 만들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
첨단장비(?)로 선수들의 능력치를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INVEN


e스포츠판 FM 시리즈를 만들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
선수 영입과 방출(?)도 매우 중요한 업무입니다 ©INVEN

선수단을 꾸리는 축은 스카우팅과 이적 시장입니다. 이적 협상에서는 이적료와 계약 기간, 조건을 조율하게 되는데, 스카우트와 CFO의 조언을 참고해 결정을 내리는 구조입니다. 시장에서 선수를 사고팔고 임대할 수 있으며, 타이밍과 협상이 성패를 가릅니다. 실제로 해외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스타 선수 하나를 잘못 영입했다가 로스터 전체가 흔들렸다는 후기가 심심찮게 올라옵니다. 스팀 페이지가 내세운 "잘못된 스타 영입 하나가 팀을 망칠 수 있다"는 문구가 빈말은 아닌 셈입니다.

훈련 모듈은 코치, 맵 연습, 심리상담사, 물리치료사 4개 서브탭으로 나뉩니다. 선수마다 '준비도(readiness)' 퍼센트와 세부 능력치가 표시돼 누구를 어떻게 다듬을지 판단하게 되고, 특정 상대와의 경기를 앞두고는 미리 '맵 연습'을 잡아 대비할 수 있습니다. 각 경기가 끝나면 킬, 데스, 어시스트, 헤드샷 비율(HS%), 딜량, MVP 같은 지표가 선수별로 집계돼 다음 훈련 사이클로 이어집니다. 시스템 하나하나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스카우팅이 로스터를 정하고, 로스터가 가능한 전술을 정하고, 전술이 경기 지표를 좌우하는 식으로 맞물려 돌아갑니다. 게임이 스스로를 "시뮬레이션보다 경영의 깊이를 앞세운다"고 규정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건, '보는 재미'였다


경기는 탑다운 시점으로 맵을 내려다보며 선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방식입니다. FM의 바둑판식 중계와 비슷한 그림이라고 보면 됩니다. 실제 CS2 중계를 보는 듯한 감각은 아니지만, 공들여 시뮬레이션을 짰다는 인상은 충분히 받았습니다. 라이브 스코어보드와 이코노미, 킬 피드가 화면에 표시되고, 어피니티(Affinity), 보그스(Boggs) 같은 실제 캐스터의 중계 대사가 얹히는 것도 나름의 디테일입니다.

문제는 그 경기를 계속 지켜볼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는 데 있습니다. FM은 긴 경기 내내 골이 터지는 하이라이트 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몇 안 되는 순간이 소중하고, 골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져 '보는 맛'이 납니다. 반면 이 게임은 매 세트가 진행되고 승패가 갈리지만, 그 과정이 대체로 비슷하고 '클러치'라 부를 만한 결정적 장면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이라이트도, 리플레이도 없습니다. 보는 스포츠를 다룬 게임인데 정작 보는 재미가 옅다는 점은 아무래도 크게 다가왔습니다.

경기 내 AI의 완성도도 아직 갈 길이 남아 보입니다. 해외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사이트를 완전히 장악하고도 선수들이 엉뚱하게 다른 폭탄 사이트로 로테이션을 돌아 라운드를 헌납하거나, 상대가 눈앞에서 폭탄을 해체하는데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회 구조에 대한 불만도 있습니다. 하위 티어 대회가 마땅치 않아 밑바닥부터 창단한 신생팀이 첫 대회부터 NAVI나 Heroic 같은 최상위 팀과 맞붙어 짓밟히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한 이용자는 이를 두고 "데뷔전에서 브래드퍼드 시티를 아스날과 붙여놓은 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변수가 적다는 점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2시간 동안 선수가 갑자기 이적을 요구하거나, 스폰서 계약이 틀어지거나, 예상 밖의 이변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대부분 예상한 대로 흘러갔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는 저만의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인서트코인즈 리뷰 역시 전술의 매력은 인정하면서도, 시스템의 바닥이 드러나고 나면 감독으로서 쥔 통제감이 어느 순간 환상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보다 훨씬 오래 플레이한 리뷰어도 같은 바닥을 본 셈입니다.


그럼에도 의미있는 걸음이다


e스포츠판 FM 시리즈를 만들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
©INVEN

솔직히 2시간을 만져본 지금, 이 게임을 선뜻 추천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지갑을 열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계속 붙잡고 있게 만드는 '훅(hook)'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한 시즌은 완주해봐야 전체 흐름이 잡힐 텐데, 그 한 시즌을 버티게 할 동력이 약하다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큰 숙제입니다.

다만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e스포츠를 소재로 FM식 게임을 만들려는 시도는 그동안 여러 번 있었지만, 완성도까지 갖춘 사례는 드물었습니다. e스포츠는 종목의 IP를 게임사가 쥐고 있어서, 외부 개발사가 실제 팀과 선수를 데려와 시뮬레이션을 만드는 일 자체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실제 CS2 팀과 선수를 데려와 이만한 틀을 짰다는 것만으로도 이 장르에서는 분명한 성취입니다. 실제로 해외 매체와 CS 팬덤의 반응은 국내보다 훨씬 후한 편인데(출시 초기 스팀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 제대로 된 CS 매니지먼트 게임이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나왔다는 상징성이 그 호평의 상당 부분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고무적인 점은 개발사의 태도입니다. 뉴로나 게임즈는 출시 다음 날 25개 이상의 항목을 손본 첫 패치를 내놓았고, 시뮬레이션 개선 작업을 7~8월에 걸쳐 이어가겠다고 예고했습니다. EMDB.gg라는 커뮤니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이용자가 직접 팀과 로스터를 실제 e스포츠 씬에 맞게 편집할 수 있고, 향후 모바일 등 플랫폼 확장도 예고돼 있습니다. 전술의 디테일처럼 칭찬할 구석이 분명히 있고, 이런 시도와 업데이트가 쌓이다 보면 언젠가 정말 FM급의 깊이와 밀도를 갖춘 e스포츠 매니지먼트 게임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이스포츠 매니저 2026'은 그 완성형은 아니지만, 그 방향으로 향하는 의미 있는 첫걸음으로 기억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