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최대 서브컬처 플랫폼, 빌리빌리가 주최하는 '빌리빌리 월드'가 어느새 10년 차를 맞이했다. 중국 서브컬처 유저들을 위한 행사에서부터 출발했지만 이제는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 그리고 글로벌 IP와 브랜드까지 관심을 두고 참가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축제로 자리 잡았다. 참가 업체도 170개 업체로, 그중 게임 관련 업체 및 브랜드는 130개를 차지할 정도로 이제는 서브컬처 여부를 떠나 게임업계에서도 눈여겨 볼 수밖에 없는 행사가 됐다.
관람객도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약 40만 명이 방문하면서 세계적인 게임쇼 이상의 관객 동원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올해는 처음으로 190여 개 국가 및 지역을 대상으로 입장권을 직접 판매한 것도 눈에 띈다. 그간 외국인이 빌리빌리 월드 티켓을 구매하려면 중국 플랫폼 특유의 여러 까다로운 인증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이젠 여권 인증만으로도 간단히 구매가 가능해졌다. 그러면서 여권으로 티켓을 구매한 해외 관람객 비중이 작년 13%에서 18%로 증가하는 등 국제적인 행사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다.
익히 잘 알려진 '판호'의 사례처럼, 중국 시장은 굉장히 폐쇄적이다. 판호를 받지 못하면 출시 자체가 불가능한데, 신청도 현지 파트너사 혹은 현지에 세운 지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대부분의 정보를 얻는 경위도 유사하다. 중국 자체 플랫폼을 통해서만 유통되며, 이에 접근하려면 중국 전화번호나 중국 계좌까지 입력해야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나마 코로나19 이후 위챗페이나 알리페이 등 기본적인 서비스를 차츰차츰 외국인에게도 개방하고 행사 출품 조건은 조금씩 풀었지만, 여전히 중국은 접근하기 까다롭다. 언어는 물론이고 시스템의 빗장을 열어젖히는 것부터가 어렵다.
그렇지만 빌리빌리 월드는 과감히 문호를 개방했다. 언어의 장벽을 비롯해 아직 넘어야 할 산은 있지만, 적어도 시도조차 망설여질 수준은 아니다. 그래서 판호를 받지 못한 게임들도 자연스럽게 그 틈 안에 녹아들었고, 중국 현지 유저들의 반응을 알아볼 좋은 기회를 마련했다. 실제로 네오위즈의 브라운더스트2는 아직 판호를 못 받았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유저들의 호응을 얻었다. 타이베이 게임쇼에서 선보였던 과감한 VIP 이벤트까지는 선보이지 못했지만, 중국 오프라인 이벤트에서 허용될 수 있는 한도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면서 수위를 조율해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이 외에도 여러 해외 관계자들이 대중적으로 나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대이기도 했다. 일례로 차이나조이에서는 메인 무대에 외국 개발자나 해외 관계자가 나서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빌리빌리 월드는 몇 년 전부터 이들이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왔다. 그 몇 년 새 사이버펑크 2077, 데스스트랜딩2 같은 굵직한 게임은 물론 이제는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 케빈 파이기까지 방문해서 새로운 소식을 전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시장을 노리기 위해서 글로벌 업체들이 한 번은 가야 할, 그런 자리가 된 셈이다.
아울러 원래 중국 서브컬처 유저를 위한 행사로 출발했던 만큼, 중국 현지의 트렌드와 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리이기도 하다. 중국 대형 게임사들이 그간 글로벌 동시 출시를 진행했지만, 그 거대 게임사만이 중국 게임업계의 전부가 아니다. 호요버스, 쿠로 게임즈, 하이퍼그리프 등 중국의 쟁쟁한 서브컬처 게임 개발사 대부분이 돌이켜보면 10년 전만 해도 동인팀 혹은 소규모 스타트업이었다. 중국 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면서 그 성장을 바탕으로 글로벌에 도전했고, 그것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으며 현재의 규모로 자리잡았다.
물론 어느 업계고 개천에 용이 나기 점점 힘들어진 시대에, 헤드헌팅도 치열해진 상황이라 그 뒤를 이을 만한 싹을 찾기는 어려웠다. 대신 중국 자체 IP의 팬덤이 커지면서, 중국 내에서 인기를 끈 IP를 다양한 형태로 확장시키려는 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중국 자체 IP하면 고전을 바탕으로 한 '검은신화: 오공' 혹은 '너자' 같은 사례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지만 빌리빌리 월드에서 선보인 중국 자체 IP들은 조금 달랐다. 중국 웹툰, 웹소설, 3D 애니메이션을 좀 더 적극적으로 미디어믹스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크툴루 신화를 연상케하는 초월적인 존재들과 신비 그리고 스팀펑크풍의 세계관으로 호평받으며 애니메이션도 제작된 '신비의 제왕'은 출판사 부스뿐만 아니라 레이저 등 하드웨어 부스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면서 IP 확장을 향한 준비를 착착 이어갔다. 이 외에도 동양 판타지 웹소설 '목신기'를 기반으로 한 동명의 3D 애니메이션 제작 소식과 3D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직접 자사 애니메이션 IP로 개발 중인 오픈월드 신작 '브링어' 등 미디어믹스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런 만큼 해당 IP와 관련 있는 타 플랫폼이나 경쟁사들도 참여, 종합 엔터테인먼트 행사로 확실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렇게 중국 자체 IP가 부각되는 이면에는, 작년 말부터 이어진 '한일령'의 흔적도 있었다. 매년 부시로드 부스를 통해 대대적으로 참가했던 뱅드림은 작년 상하이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로젤리아 콘서트가 취소된 뒤, 빌리빌리를 통해 서비스하는 게임만 출전하는 것에 그쳤다. 아예 언론 보도를 통해서 지적을 받았던 '명탐정 코난'은 흔적조차 볼 수 없었다. 일본 IP 자체를 완전히 막지는 않았지만 그 조심하는 분위기를 통해서 한일령이 상당히 영향력 있다는 걸 체감했다.
외국인 입장에서 그런 현장의 분위기를 보고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국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접근성부터 매우 떨어지는 것은 물론, 이런 부분을 적극 개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수가 커서 필요를 덜 느낀 것도 있지만, 소위 외국물이 밀려 들어와서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것 자체를 반기지 않은 것도 컸다. 그래서 아예 막아버리거나, 파트너사를 통해서가 아니면 못 들어오게 하는 등 입구를 계속 조여왔다. 자연히 오던 사람들만 올 수 있고, 새로 진입하기는 어려웠다. 엔데믹 이후 이런 기조를 조금씩을 고치려고 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행사들이 중국 내수용에 그치고 있다.
그런 만큼 중국 대표 서브컬처 플랫폼을 넘어 종합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으로 진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빌리빌리 그리고 그들이 개최하는 '빌리빌리 월드'는 앞으로도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 진출에 앞서 유저를 만나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비교적 좀 더 자연스럽게 중국 시장의 흐름을 접할 수 있는 장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