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유비소프트의 캐릭터들은 부쩍 바빠졌다. 자사 게임의 경계를 넘어 다른 회사의 전장에 등장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들과 나란히 무기를 든다. 오랫동안 쌓아온 IP를 외부 게임에 제공하는 협업이 유비소프트의 주요 사업 전략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가장 최근에는 '델타 포스'와 '레인보우 식스 시즈'가 만났다. 지난 7월 10일 시작된 협업을 통해 '레인보우 식스 시즈'의 오퍼레이터와 상징적인 무기 스킨인 '블랙 아이스'가 '델타 포스'에 등장했다. 두 작품 모두 현대전을 소재로 한 전술 슈팅 게임임을 감안하면, 과거에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던 광경이다.
'월드 오브 탱크'와 '파 크라이'의 만남은 더욱 낯설다. 초대작의 잭 카버와 조지 크리거 박사부터 '파 크라이3'의 제이슨 브로디와 시트라, '파 크라이4'의 페이건 민까지 시리즈 주요 인물들이 전차 승무원으로 등장한다. 고유 음성도 마련돼 전차전 한복판에서 익숙한 캐릭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유비소프트가 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분명하다. 신작 출시는 밀려 있고, 회사는 비용 절감과 조직 개편을 이어가고 있다. '블랙 플래그 리싱크드'의 성과 이후에도, 유비소프트는 51명을 추가로 감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주요 프랜차이즈의 차기작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용자의 관심과 브랜드 가치를 유지할 수단이 무엇보다 필요했을 것이다.
협업은 이를 위한 효율적인 선택이다. 이미 인지도를 확보한 캐릭터와 장비를 다른 게임에 제공하면 큰 개발 부담 없이 화제성과 수익을 만들 수 있다. '어쌔신 크리드', '파 크라이', '레인보우 식스', '고스트 리콘', '더 디비전', '스플린터 셀', '페르시아의 왕자', '레이맨'까지. 밖으로 내보낼 IP가 많은 유비소프트에는 특히 유용한 전략이다.
하지만 캐릭터를 빌려주고 받는 '월세'만으로 회사를 재건할 수는 없다. 협업이 신작의 공백을 잠시 가릴 순 있어도, 그 공백 자체를 없애주지는 못한다. 다른 게임에 등장한 캐릭터가 팬들의 기억을 깨울 수는 있어도, 해당 시리즈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확신까지 주지는 못하듯.
기존 IP를 활용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사랑받은 캐릭터의 외부 등장은 단기적으로 화제성과 수익을 만들고, 원작을 다시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신작의 부재를 가리기 위해 같은 자산을 반복해서 소모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당장의 공백은 메울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캐릭터와 세계관이 쌓아온 희소성과 신뢰까지 깎아먹을 수 있다. 생존을 위한 활용에서 스스로 IP의 가치를 소진하는 선택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다.
최근 '블랙 플래그 리싱크드'가 출시 첫날 200만 장을 판매한 성과도 마냥 낙관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이는 '어쌔신 크리드4: 블랙 플래그'가 여전히 강력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유비소프트가 10년 넘은 성공작의 명성에 얼마나 크게 기대고 있는지도 드러낸다.
유비소프트는 비슷한 오픈월드 구조와 반복적인 콘텐츠로 오랫동안 '늘 먹던 맛'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한때는 익숙한 재미를 보장한다는 뜻이었지만, 이제는 같은 조리법에 의존한 끝에 새로운 메뉴를 내놓지 못한다는 비판에 더 가깝다. 과거 작품을 다시 꺼내 성공했다고 해서 현재의 개발력과 창의성까지 증명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성공은 팬들이 여전히 유비소프트의 게임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늘 먹던 맛'이라고 놀림을 당하기 전, 과거에 경험했던 수준의 모험과 개성, 완성도를 보여달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블랙 플래그 리싱크드'가 원작 이후 출시된 모든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중 가장 높은 메타크리틱 점수를 기록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유비소프트의 가장 큰 자산은 보유한 IP의 숫자가 아니다. 그 IP를 좋아하고, 여전히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이용자다. 캐릭터들이 다른 게임을 오가는 동안에도 팬들은 새로운 '파 크라이'와 '스플린터 셀'의 귀환, '레인보우 식스'의 다음 진화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무한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