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GAME
게임 너머
‘게임 너머’는 게임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게임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신화와 역사, 실제 사건과 문화, 그리고 개발자의 상상력이 하나의 게임이 되기까지. 게임 밖의 이야기를 통해 게임을 조금 더 깊게 바라봅니다.
“게임은 재미있다. 하지만, 알고 하면 더 재미있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SONY

'갓오브워' 시리즈가 그렇다. 게임이 시작된 그리스 신화 3부작은 사실 딱히 배경지식이 필요하지도, 이를 굳이 알아보려 할 필요도 없었다. 그 시절 게임답게 상당히 단순했고, 크레토스는 복수에 눈이 먼 채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신화 속 괴물들과 신들을 몽땅 때려잡으면 됐다.

하지만, 2018년부터 시작된 북유럽 배경의 후속 시리즈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상황 가리지 않고 죄다 때려 부수며 전진하던 크레토스는 다시 가족이 생겼고, 책임감이 생겼으며, 지켜야 할 대상이 생겼다. 그리스에서는 이미 가족이고 부하고 다 죽고 없었기에 오늘만 살던 크레토스였지만, 미드가르드로 온 뒤엔 그럴 수가 없었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스파르타의 유령 시절 크레토스. 악당 수염이 인상적이다 ©SONY

이런 살짝 복잡한 설정을 두고, 제작진은 '갓오브워'와 '갓오브워: 라그나로크'로 이어지는 2부작의 배경에 원전 신화를 정말 기가 막히게 각색해 넣어 생명을 불어넣었다. 본디 북유럽 신화에 관심이 있었던 이들이라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릴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원전을 모르면 느낄 수 있는 재미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정리했다. 북유럽 신화를 전혀 모르고 플레이했던 이들도, 그 이야기를 다시 곱씹을 수 있는 신화 원전의 이야기, 그리고 코리 발록과 제작진이 이를 어떻게 비틀어 풀이해냈는지에 대한 과정을 말이다.
SPOILER WARNING
스포일러 주의
본 기사에는 '갓 오브 워(2018)' 및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의 핵심 전개와 결말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BEYOND GAME · 01
크레토스와 그 가족들, 원전에 없던 설정을 만들어내는 과정

'갓오브워' 북유럽 사가에서, 주인공 '크레토스'는 이방신이다. 이 정도는 게임을 대충 해 봤어도 어지간하면 다 알 거다. 크레토스는 북유럽 신화의 배경이 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남쪽으로 한참을 가야 나오는 스파르타 출신의 장군으로, 자신을 이용한 신들을 복수라는 명분 하에 죄다 때려 죽였다. 크레토스를 가엾게 여긴 아테나나, 일시적인 도움을 준 이들도 있긴 하지만, 그들 또한 결국은 다 죽었다.

이 범세계적 깽판으로 인해 각 분야를 관장하던 신이 죄다 소멸해버린 게임 속 그리스 세계는 급속도로 멸망의 길을 타 버렸고, 크레토스는 자결로 이를 끝내려 했지만 어찌저찌 실패해 미드가르드까지 흘러들어왔다. 이 말은 곧, 게임 내에 나오는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달리 '크레토스'라는 인물 자체는 신화 원전에 (당연히)등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제작진은 이 '크레토스'를 원전에서 다소 입지가 애매하고 전승도 적었던 '파르바우티'의 위치에 넣었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전승이 거의 없던 '파르바우티'의 자리를 꿰찬 크레토스 ©SONY

이 '파르바우티'는 여러 에다에서 로키의 아버지이자, 라우페이의 남편으로 묘사된다. 그 이름의 뜻이 참 기가 막힌데, 고대 노르드어로 '파르바우티'는 '위험한 공격자', '분노한 공격자', 혹은 '갑작스러운 공격자'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명사 '파르'는 적대감, 위험, 불행, 거짓 등의 뜻을 담고 있고, '바우타'는 '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두 단어의 합성어를 인칭형으로 만들어낸 것이 '파르바우티'인 셈이다. 누가 봐도 '크레토스'다운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크레토스에게 딱 맞는 자리를 배정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현지에서 만난 아내는 '라우페이'가 되고, 아들은 북유럽 신화의 종말을 몰고 온 '로키'가 될 수밖에 없다.

게임의 두 번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아트레우스, 즉 '로키' 또한 굉장히 복잡한 인물인데, 로키는 원전에서도 굉장한 양면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산발적으로 전승되던 '고(古) 에다'에서는 양면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반면, 기독교적 사고가 개입하기 시작한 '신 에다'에서는 상당히 악한 면이 강조되었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18세기 아이슬란드 문헌의 로키 ©Wikipedia

원전에서 기록된 로키의 속성은 다음과 같다.
QUICK FACT
로키는 어떤 존재인가
  • 대부분의 언어와 지식에 능하다.
  • 신과 거인 양쪽에 속한다.
  • 동물로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다.
  • 라그나로크의 예언 중심에 있는 존재다.
  • 멸망의 늑대 펜리르와 세계를 감싼 뱀 요르문간드의 탄생에 관여한다.
  • 결국 신들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이 로키의 속성들은 하나하나 다 게임 내 로키이자 크레토스의 아들인 아트레우스에게 집중되어 있다. 문맹인 아버지를 대신해 룬어를 읽어주고, 신인 '크레토스'와 요툰(거인)인 '라우페이'의 자손으로 반신이자 반거인이며, 감정이 격앙되어 곰으로 변해 아버지를 쥐어 패는가 하면 앙그르보다 앞에서 늑대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하술하겠지만 나머지 두 속성도 잘 가지고 있다.

후속작의 주인공이자 로키의 어머니인 '라우페이'는 파르바우티와 마찬가지로 원전에서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는 않은 인물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대부분 부계로 이름이 전승되던 북유럽에서 로키가 '파르바우티의 아들'이라는 '파르바우티손'이 아닌 모계를 따르는 '라우페이야르손'으로 더 자주 불린다는 정도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게임 상에 구현된 로키(아트레우스), 목걸이의 녹색 브로치가 '겨우살이(Mistletoe)'다 ©SONY

그리고 이 간극, 딱히 관련된 서사가 내려오지 않고, 로키에게 있어 아버지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점 때문에, 라우페이는 굉장히 큰 역할을 맡게 된다. 예언을 통해 크레토스 부자가 여정을 떠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이전에 '크레토스'라는 주인공의 정서적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인데, 크레토스가 북유럽에서 줄창 사용하는 '리바이어던 도끼'의 전 주인이 바로 라우페이다.

2018년 '갓오브워'에서 크레토스는 오랜 시간 계속 리바이어던 도끼만 사용하며 과거와 정서적 선을 긋고 과거 사용하던 무기이자 낙인인 '혼돈의 블레이드'를 꺼내지 않는다. 크레토스가 과거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자 한다는 메타포를 사용하는 무기로 나타낸 것이며, 그 '현재의 삶'은 '라우페이'에게서 온 셈이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외전 겸 후속작에 등장 예정인 '라우페이' ©SONY

하지만, 결국 크레토스가 '혼돈의 블레이드'를 꺼내는 시점이 오는데, 아들 '아트레우스'가 신열을 앓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헬헤임의 한기를 몰아낼 수단이 필요할 때다. 이 장면은 개인적으로 갓오브워(2018)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자, 명장면이라 생각하는 부분인데, 이 '혼돈의 블레이드'를 꺼내러 가는 과정에서 크레토스는 외면하던 과거를 다시 마주하고, 이를 극복한다.

이 과정을 통해 크레토스는 '새로운 삶'의 이유를 아내인 '라우페이'에서 아들인 '아트레우스'로 옮겨가게 되며, 아트레우스를 '아내와의 완벽했던 새 삶에 딸린 자식' 정도에서, '아내의 유일한 흔적이자 새 삶을 이어가는 이유'가 된다. 원전의 라우페이가 별 전승이 없었던 까닭에, 크레토스의 이야기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셈이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아들을 잃을 위기가 되어서야 다시 마주하는 과거, 갓오브워(2018)에서도 굉장히 상징적인 장면이다 ©INVEN

BEYOND GAME · 02
광기의 오딘, 무감의 발두르. '신(神)'의 두 얼굴

'크레토스 일가'가 이렇게 원전의 빈 자리를 절묘하게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면, 북유럽 신화를 이루는 주요 신들은 상당한 수준의 재해석이 가해졌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 '재해석'의 방법인데, 제작진은 북유럽 신화의 신들에게 새로운 속성을 부여하진 않았다. 북유럽 신화의 특징은 원전인 '에다' 자체가 굉장히 산발적으로 전승된 만큼, 신들의 성격 또한 복잡하기 짝이 없다는 건데, 제작진은 이를 '보는 각도'만 조절함으로서 게임 속 신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갓오브워(2018)의 최종 보스이자, 첫 등장부터 굉장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발두르'의 경우 원전의 발두르는 아스가르드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신이다. 발두르의 어머니 '프리그'는 발두르를 애지중지해 태어남과 동시에 세상 만물에게 '발두르를 해치지 않겠다'라는 맹세를 받았는데, 이 때 단 하나, 너무 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인 '겨우살이'에게는 맹세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이 결정은, 훗날 로키가 호드르(발두르의 형제)를 꼬드겨 겨우살이 가지로 발두르를 죽이게 하는 이유가 되고, 곧 라그나로크의 시작이 된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겨우살이 가지에 찔려 사망하는 원전의 발두르 ©INVEN

게임 내에서도, 발두르는 불사자로 등장한다. 그런데, 정신이 조금 나가 있는 상태다. 아무리 쥐어 패고 두들겨도 발두르는 죽지 않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고통과 죽음이 없으니 위험도 없고, 삶이 너무 쉬우니 아무런 재미도 없으며, 모든 감정이 희박해지는 상황에서 오로지 분노만이 남아 자신을 이렇게 만든 어머니 '프레이야'를 향한다.

이 발두르의 서사는 '죽을 수 없는 자'라는 설정을 신화적 이야기로 남기지 않고, 현대적 심리극으로 다시 재해석한 것이다. 서사 자체의 과정은 상당히 달라졌지만, 그 큰 틀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발드르는 불사신이고, 어머니는 발두르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고, 발두르는 로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핌불베르트가 찾아오고 라그나로크가 시작된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게임 속 발두르의 최후, 게임의 중심 메시지가 담겨 있다 ©INVEN

이 발두르의 어머니인 '프레이야'는 조금 특별한 케이스다. 원전에서 발두르의 어머니는 '프리그'이며, 사실 프레이야와는 다른 별개의 신(같은 신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이지만, 게임에서는 두 신이 동일 인물이라는 설정을 사용했다. 때문에 게임의 프레이야는 오딘의 전처이자, 발두르의 어머니라는 '프리그'의 속성과 바니르 신족이자 발키리 여왕, 북유럽 신화의 대표 주술이자 마법인 '세이드'의 달인인 '프레이야'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원전을 따랐다면 분리되어야 했을 '발두르의 죽음과 복수를 향하는 서사', '세이드 마법을 통해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를 돕는 서사'가 하나로 묶이며, 바니르 신족이면서 오딘과의 정략 결혼을 통해 악연이 생기고, 오히려 발키리를 빼앗겨 버린 발키리 여왕이라는 속성이 만들어진다. 크레토스의 아군이 될 수 있는 설정과 동시에 아들의 죽음을 기점으로 크레토스와 마찰을 빚어도 자연스러운, 매우 복잡하면서도 독특한 입지의 인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게임을 해 보았다면 알겠지만, 실제로 게임 속 프레이야는 굉장히 호의적이면서도 위험한 인물이며, 맹목적이면서도 인간다운, 적이면서도 동시에 든든한 아군이라는 너무나 복잡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조력자이자 동료, 동시에 적이면서 복수귀인 복잡한 설정의 프레이야 ©INVEN

'토르'의 경우도 상당히 독특한 변조가 들어갔는데, 게임 내에서 토르는 아버지 오딘의 명에 따라 수많은 거인을 학살한 위대한 전사이지만, 이 과정에서 느낀 죄책감과 아들을 잃은 상실, 자기혐오 등을 술로 덮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는, 과거 제우스에게 이용 당해 소중한 것을 모두 잃었던 '크레토스'의 이야기와도 비슷한데, 게임 내에서 크레토스와 토르는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비춘다.

하지만, 크레토스와 토르는 '변화'의 시기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크레토스는 미드가르드에 도착한 이후로도 한동안은 강압적이고, 독선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아트레우스와의 여정을 통해, 그리고 여러 인물들과 교류하며 서서히 바뀐다. 폭력적으로 변하려는 아트레우스를 보며 스스로 폭력을 절제하고자 했고, 비좁던 마음의 울타리를 넓혀 다른 이들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토르'는 오딘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형을 잃고 돌아온 아들 모디를 두들겨 패 결국 모디마저 죽음으로 이끌고 술을 끊길 바라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끝내 술을 끊지 못하고 늘 만취한 상태로 살아간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토르는 더 나은 존재가 되라는 크레토스의 설득에 오딘의 명령을 거부하고 가족을 돌아보지만, 이미 때는 상당히 늦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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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가 늘 술에 취해 있는 데에도 복잡한 내면적 이유가 있다. ©INVEN

제작진이 말했듯, 크레토스처럼 강대하고 적수가 없는 신인 '토르'는 게임 내에서 크레토스의 또 다른 가능성이자 거울로서 기능한다. 위대한 전사이자 드높은 전공을 쌓은 신이지만, 스스로의 선택 없이 시키는 대로만 살아가며 죄책감을 덮다 결국 비극을 맞이하는 토르의 서사는 게임 내에서 수많은 사건을 겪으며 독선적인 전사에서 아버지이자 가장, 후견자로 각성해가는 '크레토스'의 서사를 강조해준다.

'라그나로크'의 최종 악역인 '오딘'의 해석도 재미있다. 오딘의 경우 메인 악역임에도 의외로 큰 변화 없이 원전의 설정을 상당수 유지했다. 원전의 오딘은 굉장히 탐욕스러우면서도 지식욕으로 충만한 마법사 신으로 그려지는데, 지식을 얻기 위해 한쪽 눈을 바치고, 이그드라실에 자신을 매다는 한편, 자신을 스스로에게 제물로 바쳐 룬 문자를 알아내고, 세이드 주술을 배우기 위해 여장까지 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지식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창에 찔린 채 나무에 9일을 매달려 있었던 오딘. 보통 집착이 아니다. ©MeisterDrucke

그리고 이 과정에서 라그나로크를 예지하고, 집착에 빠져 로키의 자식들을 탄압하면서 그로 인해 죽게 되는 자가실현적 예언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게임 내의 오딘 또한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 성격과 모든 것을 안다는 마스터마인드적 속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게임 내에서 오딘의 가장 큰 목적은 '모든 것의 통제'로 그려진다. 모든 지식과 예언을 수집하는 이유도 이를 위해서였으나 여전히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으며, 너머를 볼 수 없는 '균열'의 존재 또한 그를 괴롭히는 이유가 된다. 아트레우스를 이용하려는 이유 또한 이들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이 균열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가면'을 찾고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트레우스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선'이라는 것도 없다. 게임 속 오딘이 다루는 그 수많은 까마귀는 제물로 받은 아이들의 영혼을 고문해 만들어낸 것인데, 원전의 오딘 또한 에인헤랴르(발할라의 전사)를 확보하기 위해 인간 전쟁에 개입해 승패를 조종하고, 마음에 드는 영웅을 일부러 죽게 만드는 등 게임 속 묘사 못지 않은 파멸적인 인성을 보여준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게임 속 도전과제로 나오는 오딘의 까마귀. 어린 아이 영혼을 고문해 만들었다는 설정이 있다. ©INVEN

마블 유니버스의 근엄한 모습이나, 다른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지혜로운 모습으로 인해 잘 모르는 이들이 많지만, 오딘은 원전에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만을 중시하는 냉혹한 신이었고, 이로 인해 바이킹 전사들 사이에서도 존경의 대상이었던 토르와 달리 두려움의 대상에 가까운 신으로 여겨졌다.

"니가 망치의 신이냐?"라고 토르를 가르치던 근엄한 아버지의 모습은 마블의 창작일 뿐,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상적인 사고방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신의 모습이 더 원전에 가깝다는 뜻이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안소니 홉킨스의 오딘과 원전의 오딘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MARVEL


BEYOND GAME · 03
요르문간드와 펜리르, 촉법 소년 아트레우스는 어떻게 자식을 보았나?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원전에서 로키는 오딘의 아들이 아닌, 오딘의 의형제로 등장하며, 둘은 여행 중 우연히 마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툰(거인, 파르바우티)의 아들로서, 다른 신과는 애초에 종족부터가 다르며, 얼굴은 매우 미남이며, 세상의 모든 생명체로 변신할 수 있다는 설정도 지니고 있다. 아홉 세계의 사고뭉치이자, 거짓말과 기만의 신인 건 원전에서도 똑같다.

이 '로키'와 관련된 사항 중 손에 꼽게 중요한 것이 바로 로키의 세 자식. '펜리르', '요르문간드', 그리고 '헬'이다. 이 로키의 세 자식은 북유럽 신화의 종장인 '라그나로크'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데, 앞서 말했듯 오딘은 수많은 지식을 탐닉하는 과정에서 라그나로크의 예언을 듣게 된다. 이 예언에는 로키의 세 자식이 라그나로크가 일어나면 아스가르드의 신들을 적대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고, 따라 오딘과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로키의 자식들을 탄압하고 배척하게 된다. 이어 자식들과 생이별을 한 로키가 친하게 지내던 아스가르드를 적대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숱하게 등장하는 단골 이야기 구조인 '자가실현적 예언'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아버지도, 아들도 각각 원하지 않던 패륜의 예언을 피하려다 결국 그로 인해 패륜을 저질러 버린 '오이디푸스'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에밀 되플러의 '로키의 자식들' ©ENCYCLOPEDIA

원전의 펜리르는 생각보다 온순한 늑대로 등장한다. 늑대지만 여성 거인과 결혼도 했고, 자식도 둘이나 가진다. 이 두 자식이 해를 쫓는 '스콜'과 달을 쫓는 '하티'이다. 말한 대로 성격이 꽤 좋았기에 아스가르드의 신들과도 꽤 좋은 사이로 지내는데, 주로 결박당하고, 이를 파괴하는 요상한(...?) 놀이를 즐긴다. 하지만, 예언을 본 신들이 부술 수 없는 사슬인 글레이프니르로 펜리르를 속이고, 의심을 품은 펜리르가 보증을 요구하자 티르가 자신의 팔을 펜리르의 턱 안에 집어넣으면서 티르는 외팔이가 되어버리고, 펜리르는 라그나로크 전까지 결박당해있는 것이 펜리르에 대한 전승이다. 물론, 라그나로크에 와서는 오딘을 삼켜버려 최고위 신을 처치하는 전공을 세운다. 이후에 바로 오딘의 아들인 비다르에게 죽지만 말이다.

게임의 세계관에서, '펜리르'의 최초 등장은 '라그나로크'의 첫 장면이지만, '크레토스'를 미드가르드로 인도하는 늑대가 펜리르였다는 추정도 존재한다. 게임에는 묘사되지 않지만 공식 소설을 통해 알려진 부분인데, 그리스가 대충 망한 후 방랑하던 크레토스 앞에 세 마리의 거대한 늑대가 등장해 크레토스를 제압(?)한 이후 미드가르드까지 끌고 간다. 이후, 크레토스는 티르의 보물창고에서 스콜, 하티에 대한 전승을 보고 이 늑대들의 정체를 알게 된다. 스콜과 하티, 그리고 거대한 늑대 한 마리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라그나로크'에 이르러 '펜리르'의 탄생이 비춰진다. 평범한 늑대였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아트레우스가 저도 모르게 펜리르의 영혼을 단검에 담고, 훗날 저승인 헬헤임의 입구를 지키는 파수견인 '가름'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가름의 정수리에 단검을 박아 넣어 가름의 몸에 펜리르의 영혼이 들어가면서 거대한 몸집과 차원을 찢어발기는 발톱을 지녔지만, 하는 짓은 시골 멍멍이가 따로 없는 펜리르가 탄생한다. 원전처럼 오딘을 꿀꺽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펜리르 대신 묶여 있는 '가름', 어쨌든 얘가 펜리르가 되긴 한다...©SONY

이 '펜리르'의 설정에도 원전을 따르는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데, 헬헤임의 파수꾼인 '가름'의 전승을 보면 라그나로크가 일어날 때 가름이 크게 울부짖는 것을 계기로 펜리르가 족쇄를 부수고 풀려난다는 묘사가 있다. 말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가름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제압당하고, 펜리르가 다시 육체를 얻어 풀려나오니 말이다.

상황을 정리해 보면, 펜리르는 로키(아트레우스)의 물리적인 자손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다만, 로키와 앙그르보다 모두 펜리르의 탄생에 큰 기여를 하게 되는데, 펜리르의 영혼을 보관해 가름의 몸에 이식한 것이 로키이며, 로키에게 거인들의 영혼 구슬을 보여주면서 이 영혼 마법의 영감을 불러일으킨 존재가 앙그르보다이다. 펜리르의 영혼을 보관할 때는 본인도 모르게 능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비춰지지만 말이다.

'요르문간드'또한 비슷한 형태로 묘사된다. 원전의 요르문간드는 태어나자마자 바다 깊은 곳에 버려진 후, 끝도 없이 성장하며 토르와 티격태격하다 결국 라그나로크에 이르러 토르와 동귀어진하는 뱀으로 등장한다.

게임에서는 아트레우스가 앙그르보다와 함께 앙그르보다의 할머니 '그릴라'의 집을 수색하던 중, 다 죽어가던 거대한 뱀에게 가지고 있던 거인의 영혼을 불어넣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아트레우스와 앙그르보다가 힘을 써서(?) 낳은 물리적 자손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요르문간드가 생명을 얻고 살아가게 되는 계기는 이 둘이 만들어준 셈이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게임 속 요르문간드의 탄생 ©SONY

펜리르와 요르문간드 모두 로키의 자손이라는 원전의 설정은, 이렇듯 친자식은 아니지만 로키와 앙그르보다의 활약으로 인해 태어난 피조물이라는 설정으로 이어졌다. 원전의 세 자식 중 유일한 딸인 '헬'은 게임 중에서 묘사되지 않는데, 헬의 영역인 헬헤임에도 헬 대신 '흐레스벨그'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헬'에 대해서도 여러 가설이 따라붙는데, 여기서 상당히 재미있는 게임만의 설정이 더해진다. 로키와 앙그르보다의 피조물들인 '펜리르'와 '요르문간드' 모두 시간 이동을 경험한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먼저, '펜리르'는 상술했듯 '크레토스'를 미드가르드로 끌고 오는 역할로 등장한다. 시간 상 펜리르 이전, 로키조차 존재하지 않던 때이지만, 펜리르가 등장한다. 요르문간드는 라그나로크가 일어나자 무지막지하게 커진 몸으로 원전처럼 토르와 대립하는데, 토르의 공격이 너무 강력했던 나머지 이그드라실(세계수)에 금이 가 버리고, 요르문간드가 이 공격으로 인해 시공간을 뚫고 과거로 뿅 날아가 버린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토르에게 얻어맞고 과거로 날아온 요르문간드. 2018년 작에 등장한다. ©SONY

갓오브워(2018)에서 마주한 거대한 뱀 요르문간드가 바로 이 '라그나로크 도중 토르한테 얻어맞고 시공간을 찢어 날아와버린 뱀'이다. 토르에게 얻어맞은 기억 때문인지 토르의 신상을 보자 마자 씹어먹어 버리고, 발두르와의 최종전에서도 나름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미미르와의 대화에서 이 요르문간드가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자신이 라그나로크에서 토르와 싸우다 과거로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때문에 거대한 요르문간드는 과거의 자신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라그나로크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다.

'헬'은 아직 공식적으로 등장하지 않았지만, 원전상의 다른 두 자손이 시간 이동이라는 설정까지 가져와 출현했다는 걸 고려하면, '헬'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서사가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훗날 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헬헤임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흐레스벨그. 군부대 근처 올빼미가 저러고 있다. ©SONY

BEYOND GAME · 04
라그나로크, '예언' 그리고 '메시지'

신들의 황혼, 북유럽 신화의 종장인 '라그나로크'도 살펴볼 여지가 있다. 원전의 '라그나로크'는 '발두르'의 죽음 이후 총 네 차례의 전조를 시작으로 일어난다. 극심한 겨울인 '핌불베르(Fimbulvetr)'가 3년 간 진행되고, 근친상간과 골육상쟁이 난무하는 '늑대의 시대'가 도래하며, 스콜과 하티가 결국 태양과 달을 삼켜 버리고, 아홉 세계의 세 마리 수탉과 가름이 울기 시작하면서 요툰헤임과 발할라의 병력들이 소집된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프리드리히 빌헬름 하이네가 묘사한 라그나로크 ©Wikipedia

갓오브워(2018)에서는 라그나로크의 최초 전조가 되는 '발두르의 죽음'이 묘사된다. 그 과정은 많이 달라져 호드르가 아닌 크레토스의 손에 죽긴 하지만, 어쨌거나 겨우살이로 발두르의 죽음을 만들어낸 것은 원전과 마찬가지로 로키(아트레우스)가 행하게 된다.

이어지는 '갓오브워 라그나로크'에서는 본격적인 라그나로크의 징조들을 볼 수 있는데, 게임이 시작되는 시점이 이미 극심한 겨울인 '핌불베르트' 도중이다. 이후, 아트레우스와 크레토스는 상황에 대한 대처를 두고 갈등하고,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곰으로 변해 큰일이 날 뻔 하는 등, '늑대의 시대'를 다소 짧게나마 비유하듯 보여준다.

스콜과 하티는 오딘의 계략에 의해 가둬져 있었고, 하티의 목표인 '달'마저 숨겨 두었지만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는 바나헤임에서 달을 되찾고 스콜과 하티를 풀어 준다. 이 과정에서 낮만이 이어져 식물이 과성장하는 등 골치를 앓던 바나헤임의 문제도 해결된다. 수탉들은 딱히 묘사가 없지만... 뭐 가름은 울부짖는다. 크레토스한테 하도 쳐맞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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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있던 밤낮이 돌아가면서 태양을 쫓아가는 스콜 ©SONY

하지만, 원전과 게임에서 이 '라그나로크'의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원전의 라그나로크가 세계 전체의 종말과 신시대의 개막으로 이어졌다면, 게임의 라그나로크는 '오딘이 구축한 질서의 종말'로 축소되어 있다.

이 변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속성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라그나로크의 원천적인 시작이 되는 '예언',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게임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원전에서, 라그나로크의 예언을 최초로 한 존재는 이름 없는 여예언자로, 노르드어로는 '볼바(Völva)'라고 표기한다. '고(古) 에다'의 첫 시인 '볼루스파(볼바의 예언, 보통 무녀의 예언으로 통칭)'에서, 오딘은 예언자에게 세계의 탄생과 신들의 운명, 라그나로크와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 듣는다. 이후, 라그나로크를 막기 위해 오딘의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준비들이 시작되고, 편집증적이고 무자비한 면모를 갖추게 된다.

게임 내에서 오딘은 '그로아'라는 인물의 예언으로 라그나로크를 인지한다. 다만, 그로아는 불완전한 예언만을 전하고, 진짜 예언은 알프헤임에 있는 자신의 성소에 숨겨둔다. 앞서 '파르바우티'와 '라우페이'가 그렇듯, 원전에서 큰 서사가 없는 인물을 핵심 인물로 삼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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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아의 예언 ©SONY

그리고, 또 하나의 장치가 있다. 게임 도중 만나는 노르니르 3자매는 게임 설정 상 각각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읽는 예언자들인데, 예언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예언은 미래를 보는 게 아니다. 너희가 항상 같은 선택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결국, 게임 내에서 '예언'의 개념은, 미래를 내다보는 불가해한 힘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성향과 본질에 의거해 추론되는 '가장 가능성 높은 현실'에 가깝다. 그리고, 여기에 게임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더해진다.

'우리는 더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We must be better)'

'갓오브워'의 북유럽 2부작이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이것이다. 강압적으로 '더 나아져라'라고 지적하던 크레토스는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이타적인 모습을 갖춰나가고, 끝내 웃음마저 짓는다. 원래의 성격이었다면 토르를 토/르로 만들어버렸을 크레토스가 우리는 그저 파괴자일 뿐이라고 자조하는 토르에게 말한다.

"더는 아니지. 이제는 멈춰야 한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나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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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토르는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을 한다. ©SONY

이렇듯, '더 나은 존재'가 되면서, 게임 속 예언은 자연스럽게 깨진다. 노르니르의 예언법인 '사람의 본질에 따른 추론'에서 본질이 바뀌어버렸기 때문이다.

프레이야는 아들을 잃었지만, 복수심을 누르고 더 큰 대의와 바니르 신들을 위해 나서면서 더 나은 존재가 되었다. 아트레우스는 예언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티르'를 찾아 나섰지만, 오딘 곁에 남게 된다는 요툰헤임의 벽화 속 예언을 거부하고 돌아선다. '티르'는 전쟁의 신이지만,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엔딩 이후 등장하는 그는 이미 '더 나은 존재'가 되어 크레토스의 심리상담사로 활약(?)한다.

이렇게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가 여정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오로지 오딘만 변하지 않는다. 게임 내내 지식을 찾고,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다른 모든 이들을 그저 도구로만 바라본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함께 하는 과정에서 이전보다 '더 나아진' 부자 ©SONY

변하지 못했기에, 오딘은 가짜 예언의 실현마저 막지 못해 파멸을 맞이한다. 하지만,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선택한 이들은 예언과는 다른 결과를 맞이한다. '라우페이'가 요툰헤임의 예언을 훼손했던 것은 남편과 아들이 예언을 신봉하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더 나은 존재가 되길 바라서였으며, 누구에게도 숭배받지 못하던 신 '크레토스'가 끝내 죽음이 아닌 아홉 왕국의 수호신이 되는 것도 이들이 예언을 쫓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더 나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피할 수 없는 파멸이라는 원전의 라그나로크는, 유일하게 변하지 못했던 오딘만을 덮쳤다.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 그리고 그래야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결국 이 게임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였으며, 2편에 걸친 장대한 서사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God of war
숭배하는 자 없던 신 크레토스는 끝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신이 된다. ©SONY
[ 내용 수정 : 2026.07.21. 11:02 ] 몇몇 미확인되었던 정보를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