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과 미묘하게 비슷한 이름의 가상 도시, '쿠산'에서 죽음은 언제나 한순간에 찾아온다. 총을 맞으면 당연히 죽고, 주먹에 닿기만 해도 죽는다. 근접한 적을 처리하는 데 정신이 팔린 사이 화면 밖에서 날아온 총알 한 발이 지금까지의 멋진 움직임을 허무하게 끝내기도 한다.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이다.
그렇기에 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빠른 손만이 아니다. 어느 적을 먼저 쓰러뜨릴지, 던진 나이프를 어떻게 회수할지, 지금 가진 총기로 누구의 움직임을 끊어놓을지를 짧은 순간 안에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계획하고, 실패하고, 다시 조금 더 나은 방식으로 적들을 처치하는 과정이 '쿠산'의 핵심이다.

주먹과 칼, 총으로 만들어내는 빠른 템포의 액션

개발진이 밝힌 '핫라인 마이애미'에 대한 오마주도 분명 게임에 자연스레 녹아있지만,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며 느끼게 되는 전투의 결은 꽤 다르다. 이들이 '핫라인 마이애미와 존 윅의 만남'을 주요한 표현으로 내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인공 진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전투 수단은 세 가지다. 왼손 의수인 워 핸드와 투척 무기인 퀀텀 나이프, 그리고 진행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원거리 무기다. 플레이어는 이 세 가지를 상황에 맞춰 조합하며 구역 안의 적들을 모두 처리해야 한다.
워 핸드는 가장 기본적인 공격 수단이다. 근접한 적을 단번에 쓰러뜨릴 수 있으며, 버튼을 오래 누르면 충전 공격도 가능하다. 단순히 적을 더 강하게 때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주변 사물을 활용하는 데도 쓰인다. 닫힌 문을 강하게 날려 문 뒤에 있는 적을 공격하는 식이다.
사이버네틱 의수라는 설정은 이야기 속 진의 과거를 보여주는 장치인 동시에, '너도 나도 한 방'이라는 게임의 전투 규칙에 조금 더 그럴듯한 당위성을 부여한다. 진이 아무리 거대한 적이라도 주먹 한 번으로 날려버릴 수 있는 이유이자, 근거리 전투의 박력을 책임지는 수단인 셈.

또 다른 무기인 퀀텀 나이프는 주먹이 닿지 않는 거리에 있는 적을 즉시 처치할 수 있다. 여러 방향에서 적들이 다가오는 상황을 순간적으로 정리하는 데도 유용하다. 당장 위협적인 적에게 나이프를 던지고, 그사이 가까이 접근한 적을 워 핸드로 처리하는 식이다. 원거리 적에게 특히 유용하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에는 자연스럽게 키보드의 스페이스바에 손가락을 올려두게 된다.
물론 제약도 있다. 던진 나이프는 적을 처치한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다시 사용하려면 해당 위치까지 직접 이동해 회수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가장 멀리 있는 적에게 나이프를 던졌다가는, 정작 필요할 때 이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쿠산'의 전투는 여러 방면에서 적들이 다가오는 상황에서는 처치 순서를 결정하는 작은 퍼즐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근데 이제 정신없는 템포의 액션을 곁들인.
그 위에 더해지는 원거리 무기는 '자신만의 플레이스타일'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한 번에 휴대할 수 있는 총기는 한 종류뿐이기에, 어떤 무기를 선택했는가에 따라 같은 스테이지의 감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권총은 장탄량이 많고 다루기 쉽지만 한 발로 적을 쓰러뜨릴 수 없다. 그렇다고 활용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멀리서 총을 든 적을 맞혀 잠시 움직임을 끊은 뒤, 당장 가까이 접근한 적부터 처리하는 식으로 전투의 순서를 조율할 수 있다.
가장 손에 잘 맞았던 무기는 석궁이었다. 충전이 필요하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제대로 발사한 화살은 직선상에 있는 여러 적을 관통할 수 있다. 적들이 늘어선 순간을 포착해 한 발로 정리했을 때의 쾌감도 상당하다.
반대로 샷건은 부채꼴로 퍼지는 공격을 통해 가까이 모인 여러 적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어떤 무기가 절대적으로 좋다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전투 거리와 방식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구조다.
빈틈없이 채워 넣는 '나만의 전투'

워 핸드와 퀀텀 나이프, 총기만으로도 ‘쿠산’의 기본 전투는 충분히 탄탄하다. 그러나 게임은 여기에 ‘테크트릭스’라는 성장 시스템을 더해 플레이어가 각 전투 수단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적을 쓰러뜨리거나 맵에 놓인 상자를 파괴하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볼트를 얻는다. 이렇게 모은 볼트는 진의 무장을 담당하는 니모에게 각종 능력을 구매하는 데 사용된다.
해금한 능력은 구매했다고 곧바로 적용되지 않는다. 각 능력은 저마다 다른 형태의 퍼즐 조각처럼 생겼으며, 플레이어는 제한된 테크트릭스 공간 안에 원하는 조각을 직접 배치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능력을 ‘착용한다’기보다, 주어진 공간 안에 빈틈없이 끼워 넣는 것에 가깝다.

능력의 효과는 전투 방식을 제법 크게 바꾼다. 적에게 던진 퀀텀 나이프가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자동으로 돌아오게 만들 수도 있고, 충전한 워 핸드로 기계형 적을 폭파시킬 수도 있다. 총알을 정확한 타이밍에 되받아치는 역공 역시 테크트릭스를 통해 활성화한다.
총기 또한 이곳에서 선택하고 강화한다. 문제는 업그레이드를 추가할수록 해당 총기 조각의 크기가 커진다는 점이다. 무기를 강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대로 업그레이드를 붙이다 보면 다른 유용한 능력을 넣을 자리가 사라진다. 강한 무기 하나에 집중할지, 여러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능력을 함께 챙길지 고민해야 한다.

이 과정은 제한된 가방 안에 물건을 욱여넣는 인벤토리 정리 게임과 비슷한 재미를 준다. 해금한 조각들을 이리저리 돌리고, 조금 전까지 들어가지 않던 능력들을 빈틈없이 맞추는 데 성공했을 때는 전투와는 또 다른 종류의 만족감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테크트릭스가 단순한 능력치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량이 몇 퍼센트 증가하는 식의 수동적인 성장보다, 나이프의 회수 방식이나 워 핸드의 기능처럼 실제 조작과 판단을 바꾸는 능력이 많다.
테크트릭스를 통해 주인공의 능력을 입맛대로 바꿀 수 있지만, 그것이 게임의 전반적인 난도를 낮출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스테이지를 진행할수록 적의 종류가 늘어나고, 중반 이후에는 상하좌우에서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적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상황도 자주 등장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전략을 아무리 잘 세웠다고 해도 순수한 반응 속도와 조작 능력이 필요해진다.
어느 시점에는 결국 '내 피지컬이 부족한가'라는 생각을 피하기 어려운 순간도 찾아온다. 다만 여러 무기와 테크트릭스 능력을 활용한 접근법이 열려 있는 만큼,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무작정 높은 난도는 아니다. 같은 방식으로 계속 부딪히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총기를 바꾸고, 능력을 다시 배치하고, 적을 처리하는 순서를 조정하는 것도 분명한 해결책이 된다.

초반에는 보기만 해도 겁부터 났던 권총 공격 역시 '역공' 능력을 장착하면 되받아칠 수 있다. 타이밍을 맞추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성공했을 때의 보상도 명확하다. 처음에는 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던 공격도 숙련과 빌드를 통해 새로운 공격 기회로 바뀐다.
실력에 자신이 없다면 원거리 공격을 중심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다. 반대로 충분한 숙련도를 갖춘 플레이어라면 적의 총알을 역공으로 받아치고, 워 핸드와 나이프를 오가며 숏폼 영상에서나 볼 법한 장면을 직접 연출할 수도 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보스전은 일반 스테이지와 또 다른 방식으로 플레이어를 시험한다. 보스는 한 번 공격했다고 쓰러지지 않지만, 진은 보스의 패턴에 한 번 스치기만 해도 사망한다. 서로 한 번씩 공격을 주고받는 일반 전투의 호흡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피로 물든 항구 도시, 그 위를 수놓는 네온

앞서 언급했듯, 게임의 배경이 되는 쿠산은 개발사 서클프롬닷이 위치한 부산에서 출발한 도시다. 가까운 미래의 부산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휴전 이후 방치된 전쟁 물자가 뒷세계로 흘러 들어갔다면 어떤 모습일까. 개발진은 이러한 상상에 홍콩과 도쿄를 비롯한 여러 아시아 도시의 밤거리를 더해 가상의 항구 도시를 완성했다.
도시의 밤은 어둡지만 화면은 어둡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도로와 건물 곳곳을 채운 네온사인은 날카로운 색을 뿜어내고, 그 아래에서는 인간의 모습을 한 동물들이 서로를 속이고 죽인다. 흑백 누아르의 정서 위에 강렬한 빛을 얹고 싶었다는 개발진의 의도처럼, 쿠산은 음울하면서도 화려하다.
캐릭터를 동물로 묘사한 선택도 이러한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동물이 지닌 인상만으로도 각 인물의 성격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잔혹한 폭력을 현실과 조금 떨어진 장르적 표현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Caravan Palace의 'Lone Digger' 뮤직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면 ‘쿠산’의 첫인상을 보다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어두운 공간을 채운 동물 캐릭터와 현란한 조명, 그리고 순식간에 피로 물드는 폭력까지 닮은 구석이 적지 않다. 해당 뮤직비디오가 눈에 띄었다면, ‘쿠산’의 비주얼에서도 분명 비슷한 취향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그래픽 노블 스타일의 컷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직 군인이자 현재는 용병으로 살아가는 진은 강력한 힘을 지닌 소녀를 둘러싼 의뢰에 휘말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와 배신을 마주한다. 정지된 컷을 활용하면서도 화면 분할과 날카로운 구도, 강렬한 색을 통해 게임의 빠른 호흡을 이어간다.

모든 연출이 그래픽 노블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초반부에 진이 도로 위에 직접 내려 자신을 추격하는 적들을 처리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후 연출이 퍽 마음에 들었다. 짧은 QTE로 시작한 장면은 별다른 틈 없이 실제 게임플레이로 이어지고, 플레이어는 갑작스럽게 액션의 주도권을 넘겨받는다.
'아, 이 멋진 순간을 내 보잘것없는 컨트롤로 망치고 싶지 않은데...'
이것이 당시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화면과 음악은 이미 최고조에 도달해 있고, 이제 남은 것은 플레이어가 그 흐름을 끊지 않는 일뿐이다. 덕분에 평소보다 더 필사적으로 화면을 살피고 손가락을 움직이게 된다.

다시 시작하기는 쉽지만, 그만두기는 어려운

리뷰를 시작하며 이야기했듯, '쿠산: 늑대들의 도시'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그 게임'을 떠올릴 것이다. 개발진 역시 그 영향을 감출 생각이 없었다. 한 번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지는 탑다운 액션과 스테이지 구성 곳곳에는 원작에 대한 존경이 분명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실제 플레이를 이어갈수록 '쿠산'이 단순히 익숙한 게임의 외형을 빌린 작품은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워 핸드와 퀀텀 나이프, 서로 다른 총기를 조합하는 전투는 플레이어에게 훨씬 많은 선택지를 준다. 테크트릭스는 그 선택지를 다시 각자의 취향에 맞게 변형한다. 어떤 사람은 멀리서 적을 하나씩 안전하게 끊어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총알 사이로 뛰어들어 역공과 근접 공격을 연달아 성공시키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
쉬운 게임은 아니다. 적의 종류가 늘어날수록 판단해야 할 정보는 빠르게 많아지고, 한 번의 실수는 여전히 죽음으로 돌아온다. 하드코어 액션에 익숙하지 않다면 중반 이후의 난도가 제법 높은 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다.

PC 메뉴에서 마우스를 사용할 수 없는 점도 아쉽다. 빠른 조준에는 마우스가 편한데, 전투가 끝나고 테크트릭스를 정리할 때는 다시 방향키 중심의 조작에 적응해야 한다. 전투와 메뉴가 서로 다른 조작 감각을 요구하는 셈이다.
그러나 가장 아쉬웠던 부분을 하나만 꼽으라면 저장 방식일 것이다. 스테이지 도중 사망했을 때는 R 키만 누르면 눈 깜짝할 사이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게임을 종료했다가 돌아오면 진행 중이던 챕터를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해야 한다.
어렵게 한 스테이지를 통과하고도 곧바로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여기서 끄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겠지'라는 생각 때문에 종료 버튼에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다. 반복 플레이 자체가 재미있는 것과, 이미 통과한 구간을 원하지 않는 시점에 다시 플레이해야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럼에도 다시 손이 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죽기 전까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인했고, 다음에는 어떤 순서로 움직일지 생각해 두었기 때문이다. 총기를 바꾸고, 테크트릭스의 조각을 다시 맞추고,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하리라 생각하며 권총을 든 적 앞에서 패링 타이밍을 잡아본다.
죽는 것은 한순간. 그리고 다시 문을 걷어차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