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임에서 '레트로'가 의미하는 건 정말 다양하다.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배경이 되기도 하고, 단어 뜻 그대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회고'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레트로라는 명칭이 게임 속 많은 것들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하듯, 이번 게임은 전반적으로 모든 이야기를 엔딩이라는 하나의 길로 끌어모으는 식으로 전개된다. 첫 에피소드부터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그 모든 이야기는 에필로그, 그리고 그다음을 향해 달려간다.

줄어든 추리의 반짝임, 강화된 서사

이번 작품은 확실하게 서사에 많은 무게중심이 가 있다. 추리 게임이라고 하기보다, 비주얼 노벨에 진행 요소로 추리가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추리 자체의 재미나 논리성이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풀어나는 요소 중 하나로 '추리'가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대신 그만큼 서사의 완결성이 높다. 스토리의 전개, 주인공의 성장,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모든 내용을 아우르는 에필로그까지. 스토리 전체의 흐름과 그 과정에서 흔히 말하는 떡밥의 회수까지 모든 것이 잘 어우러진다.
서사의 몰입도도 괜찮다. 일단 전작에 비해 매우 높아진 캐릭터의 그래픽도 한몫하지만, 가장 큰 건 바로 풀 보이스로 들어간 성우들의 연기다. 한국 성우 더빙은 아니지만, 일본 성우들의 연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들어가 있기에 게임 속 스토리에 훨씬 더 강하게 몰입할 수 있다.

다만 스테퍼 레트로는 전반적으로 전작보다 추리에서 오는 놀라움이 줄어들었다. 전작도 그랬지만 이번 게임 역시 단서 자체를 직접적으로 수집하는 과정이 없다. 단서는 모두 스토리 진행 과정에서 자동으로 수집된다. 우리가 할 일은 그렇게 수집된 단서들을 조합하는 것뿐이다.
이 단순함과 조금의 어설픔은 '초능력'이라는 스테퍼 시리즈만의 특별한 요소로 메울 수 있다. 그게 시리즈의 특징이자 다른 추리 게임들과 차별화되는 요소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번 게임은 단서 수집 과정에서 체감하게 되는 초능력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주역 중 한 명인 베링, 그리고 전작의 등장인물들이 초능력을 사용하긴 한다. 하지만 그 부분이 생각보다 단서 수집 쪽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능력 단서들이 전반적으로 어설프게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냥 다음 이동처를 알아내기 위해 사용된다거나, 일단 사용은 했는데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어쨌든, 이렇게 초능력 단서의 임팩트가 줄어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추리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모아낸 단서를 얼마나 논리적으로 조합하고, 얼마나 놀라운 방식으로 풀어내는지, 초능력이 개입하지 않는 순수한 추리의 과정이 추리 전체의 완성도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도 이번 작품에서는 조금 아쉽다. 스토리적으로 풀어나가는 내용에 대한 놀라움은 있지만, 추리 자체에서 오는 놀라움은 부족하다. 세계관에 대한 적절한 설명과 함께 직접 다양하게 느낄 수 있도록 배치해뒀던 초능력 관련 요소가 확 줄어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추리 과정의 단순함도 높아져 버렸다.
거의 모든 추리 과정은 관계된 두 가지 요소를 연결해서 정답을 찾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플레이하다 보면, 일부 추리에서는 의문이 드는 경우가 있다. 물론 추리 과정에서 모든 것을 납득한다는 건 당연히 불가능한 이야기다. 단서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이를 추론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수 있고, 트릭 자체가 복잡해서 풀어내는 게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스테퍼 레트로는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추리를 맞추다 보니 의문이 발생하는 것에 가깝다. 아직 수집된 단서가 너무 부족한데 스토리 진행을 위해 빈칸을 맞춰야 하는 느낌이랄까. 실제로 일부 추리에서는 어찌저찌 맞춰서 풀이를 듣고 있는데도 그 결과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다만 추리 전체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일부 경우에만 그럴 뿐, 전반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추리가 걸림돌이 되는 일은 크게 없다. 전반적으로 추리의 난이도가 매우 낮아졌고, 힌트를 사용하면 정답이 있는 문서들이 자동으로 선택되기에 이리저리 조합하다 보면 언젠가는 맞출 수 있게 되어 있다.
아무래도 이는 이번 작품이 '레트로'인 만큼, 사건 그 자체 보다는 '전말', 즉 뒷면과 회고를 통해 반전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시스템 자체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인 듯하다.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 높아진 서사 완결성

이러한 아쉬움은 모두 스테퍼 레트로의 추리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비주얼 노벨이나 스토리 전개 측면에서 본다면 잘 만들어진 게임이다. 특히 이번에 추가된 새로운 시스템인 '회고'와 '뒷면'은 게임을 전개하는 데에 있어 흥미롭게 작용한다.
스테퍼 레트로는 확실히 서사적인 측면이 매우 강화된 작품이다. 등장인물부터 각 액트의 이야기, 그리고 발생했던 일들은 모두 하나로 어우러지며 '스테퍼 레트로'라는 큰 이야기를 구성한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언젠가는 사용되며,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는 데 각자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을 이끌어가는 데 특별한 요소로 활용되는 게 회고와 뒷면이다. 두 시스템은 겉으로 보여지는 이야기, 그리고 인물의 모습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숨겨져 있던 내용을 끌어낸다.

이번 게임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건 주인공 베리타 레트로의 성장이다. 게임의 전체적인 스토리 흐름도 마나나 스테프 등 초능력 관련 부분보다는, 베리타 개인의 성장과 각성을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베리타는 마나관리국 소속 요원도 아니고, 초능력자도 아니다. 그런 베리타가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고,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많은 인물들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는지, 그 모든 게 엔딩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게임의 스토리는 이 과정을 담아낸다.

스테퍼 레트로는 이러한 스토리를 그냥 쭉 보여주지 않는다. 추리를 통해 단면적인 이야기를 보여주고, 회상을 통해 어느 정도 모인 이야기의 조각을 하나로 이어내 전달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베리타의 통찰을 통해 숨겨져 있던 이면의 이야기를 '뒷면'이라는 형태로 비틀어낸다.
이 뒷면의 이야기들은 한편으로는 충격적이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안타깝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스테퍼 레트로 역시 이런 서늘한 이야기들을 과하지 않게 잘 풀어냈다. 또한 이 이야기들을 그냥 보여주는 게 아니라, 베리타만의 능력을 통해 게임적인 임팩트도 함께 제공하면서 몰입도를 높였다.

이런 서사적인 장점은 스테퍼 레트로 전체를 하나로 봤을 때 더 도드라지는 편이다. 각 액트마다 개별적인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모든 에피소드가 하나로 이어진다. 특히 액트3과 액트4의 경우 마치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이어지면서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전개되는데, 등장인물들부터 각 개별적인 이야기가 정말 적절하게 잘 배치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처음부터 꾸준히 등장했던 '떡밥'들을 모두 회수하면서, 다음 시리즈로 넘어갈 하나의 '요소'만을 남겨뒀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너무 과하게 전개될 시 엔딩을 내기 위해 메인 줄기의 이야기만 마무리하고 나머지 곁가지들은 흐지부지 쳐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스테퍼 레트로는 액트5, 그리고 에필로그를 통해 각각 남아있던 모든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마무리했다. 딱 하나, 다음 시리즈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하게 만드는 '예고편'을 제외하고.

게임의 전반적인 외형적 완성도 역시 전작에 비하면 훨씬 뛰어나다. 뭐랄까 인디 개발사의 풋풋함이 오롯하게 살아있던 스테퍼 케이스와 다르게, 이번 작은 캐릭터 그래픽부터 UI, 추리 과정의 단서 등 다양한 부분에서 비주얼적으로 크게 업그레이드됐다.
이런 비주얼의 변화가 성우의 연기와 합쳐져 캐릭터성 자체도 매우 높아졌다. 특히 주인공 베리타와 쟈드 베링의 경우 어찌 보면 뻔한 관계성이 될 수 있었지만, 대사와 성격, 그리고 이를 적절하게 연기한 성우 덕분에 납득할 수 있는 그들만의 스토리가 완성됐다.

스테퍼 레트로는 추리 게임으로 본다면 아쉬울 수 있으나, 추리가 적용된 비주얼 노벨로 본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게임이다. 추리의 난이도가 쉽기에 스토리의 몰입도가 크게 깨지지 않고,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도 힌트를 사용하면 적절하게 넘어갈 수 있다.
전작에서 느껴졌던 놀라움은 줄어들었으나, 게임 전체의 완성도 역시 매우 높아졌다. 풀 보이스 더빙과 부드러운 캐릭터들의 일러스트 및 움직임, 여기에 UI 역시 업그레이드되면서 게임 자체에 몰입하기도 훨씬 쉬워졌다.

스토리의 완결성도 뛰어나다. 첫 번째 이야기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 그 모든 이야기가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초능력이 가진 씁쓸함과 잔인함,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가 과도한 어려움 없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진행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가기 위해 게임은 회상과 뒷면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스테퍼 레트로는 '레트로'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가졌다. 다시 돌아보고, 그 뒤를 돌아보고, 그러면서 다음을 향해 간다. 회상하고, 숨겨진 뒷이야기를 끌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