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GAME
게임 너머
‘게임 너머’는 게임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게임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신화와 역사, 실제 사건과 문화, 그리고 개발자의 상상력이 하나의 게임이 되기까지. 게임 밖의 이야기를 통해 게임을 조금 더 깊게 바라봅니다.
“게임은 재미있다. 하지만, 알고 하면 더 재미있다.”

콜 오브 듀티 : 블랙 옵스 Call of Duty : Black OPS
©INVEN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슈터 시리즈인 '콜오브듀티'시리즈는 상당히 복잡한 프랜차이즈다. '콜오브듀티'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여 있지만 그 안에서도 여러 서브 브랜드로 나뉘어지는데, 그 중에서도 명확히 굳어진 서브 브랜드가 바로 '모던 워페어', 그리고 '블랙 옵스'다.

모던 워페어는 다들 알다시피 정규전과 비정규전을 포괄하는 현대전 전반을 그린 브랜드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모던 워페어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건 '태스크포스 141'의 요원들이지만, 게임 전반에 걸쳐 병사, 혹은 부사관의 시선에서 정규전을 조명하기도 한다. 곧 출시될 '모던워페어: 사'의 한국전처럼 말이다.

'블랙 옵스'는 조금 다르다. 기록되지 않는 비정규전을 일컫는 '블랙 옵스'라는 표현답게, 이 브랜드는 정규전이 아닌, 역사의 배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무력 분쟁을 그린다. 그리고, 이렇게 엮이고 엮인 '배후의 이야기들'은 상당 부분 실존했던 역사, 혹은 실존했으리라 의심받는 소재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콜 오브 듀티 : 블랙 옵스 Call of Duty : Black OPS
구룡성채 추격전 분위기 정말 좋았는데 ©INVEN

흔히 말하는 '음모론'들 말이다.

영어로는 Conspiracy. '음모론'은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진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훗날 기밀 해제되어 역사가 된 일도 있지만) 때문에 수많은 미디어에서 단골 소재로 쓰이곤 했다. 특히, 전 세계가 레드팀과 블루팀으로 나뉘어 암중의 경쟁을 이어가던 '냉전 시기'의 음모론들은 그 비밀스러움과 거대한 스케일로 더 인기가 높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었던 '콜오브듀티: 블랙옵스', 그리고 서사적으로 이어지는 최근 작품인 '콜드 워'가 특히 그렇다. 세뇌된 군인 메이슨의 이상행동과 게임 속 연출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기반이 되는 실제 사례는 무엇이 있는지 하나씩 짚어보자.
SPOILER WARNING
스포일러 주의
본 기사에는 '콜오브듀티 블랙 옵스' 및 '콜오브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의 핵심 전개와 결말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BEYOND GAME · 01
세뇌와 심리조작, 메이슨과 '맨츄리안 캔디데이트'

'콜오브듀티: 블랙 옵스'의 주인공인 '알렉스 메이슨'은 1933년 출생의 베테랑 군인이다. 게임의 도입부에서, 알렉스 메이슨은 정체불명의 시설에 감금당한 채 심문당하는 상태인데, 질문자는 계속해서 '숫자들의 의미'를 묻고, 메이슨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하나씩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간다.

알렉스 메이슨의 일대기를 스포일러 없이 요약하면 이렇다. 1961년, 쿠바로 잠입한 메이슨은 동료들과 함께 쿠바의 독재자였던 '피델 카스트로'의 암살 작전을 수행하지만, 도리어 함정에 빠져 소련의 굴라크(노동 감옥)인 '보르쿠타'에 수감된다. 여기서 '빅터 레즈노프'와 만나 우정을 쌓은 그는 성공적으로 보르쿠타를 전복하고 탈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임무를 맡게 되고, 5년 간 구르고 구른 끝에 생물 무기 '노바-6'의 정체를 확인하고, 이를 진행한 원흉들을 처단하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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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 인물이 '세뇌됨 중년' 알렉스 메이슨 ©INVEN

그리고, 스포일러를 거대하게 끼얹은 버전으로는 또 이야기가 다르다. 메이슨은 이미 쿠바에서 잡힌 이후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도록 소련에 세뇌되었으나, 보르쿠타에서 만난 레즈노프가 이를 눈치채고 암살 대상에 개인적 원한이 있던 '노바-6' 3인방을 같이 끼워 넣었던 것. 메이슨은 케네디 대통령도 암살하고(직접 연출은 없었으나 정황 상), '노바-6' 3인방도 나란히 저세상으로 보내주는데 성공했지만, 끝까지 세뇌의 영향을 떨쳐내지는 못했다.

이 '세뇌'라는 개념은 지금도 온갖 미디어에서 활용되는 단골 소재인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이 '냉전 시기'였다. 정확히는, 한국전이 끝난 이후인 1953년부터 말이다. 당시 미국은 휴전 이후 상당수의 포로들을 돌려받았는데, 이 중에는 수상쩍게도 미국을 비판하거나, 공산주의를 찬양하거나, 미국의 생화학무기 사용을 자백하는 성명을 발표한 포로들도 있었다.

당시 미국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데, 소련이 약물과 심리조작을 통해 포로들을 마치 다른 사람처럼 바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충격이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이 1959년 출판된 '리처드 콘던'의 소설 '맨츄리안 캔디데이트'인데, 한국전에서 잡혔던 포로들이 세뇌 실험을 당하고, 겉으로는 전쟁 영웅으로 남아 있지만 사실 특정 신호를 받으면 의심 없이 암살을 수행하는 '슬리퍼 에이전트'였다는 설정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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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시나트라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제작된 '맨츄리안 캔디데이트', 타임지 선정 100대 영화 중 하나다 ©Acton Institute

물론, 맨츄리안 캔디데이트 자체는 '세뇌공포의 충격'으로 인해 쓰여졌다기보단, 당시 미국의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적색 공포의 광풍 '메카시즘'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진 소설이다. 때문에 소설 제목도 정치적 용어인 '캔디데이트(후보)'가 들어가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일단 소설의 전개 자체가 '알렉스 메이슨'의 서사와 굉장히 비슷하다. 맨츄리안 캔디데이트는 제목 그대로 '만주'에서 포로로 잡혔던 이야기이고, 알렉스 메이슨은 쿠바에서 잡혔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이쯤 되면, 뭔가 비슷한 서사의 캐릭터가 하나 더 생각날 거다. 마블의 히어로인 '캡틴 아메리카'의 왼팔이자, 본인 스스로는 왼팔을 깡통으로 교체해버린 '윈터 솔져', 버키 반즈 또한 이 맨츄리안 캔디데이트와 유사한 과정을 통해 슈퍼 솔져이자 세뇌된 암살자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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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슨과 거의 유사한 서사를 지닌 겨울 군인 ©Marvel

여기서 한가지 더 재미있는 건, 알렉스 메이슨의 서사 중 등장하는 여러 '숫자'에 대한 이야기다. 게임 속에서 알렉스 메이슨은 머릿속을 계속 떠도는 의미 불명의 숫자들에 의해 고통받는다. 이는 메이슨의 세뇌 과정에서 숫자들이 어떤 역할을 했음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인 '멘츄리안 캔디데이트'식 암살자들은 특정 조건에 의해 트리거가 발동된다. 갈망, 부식으로 시작해 화물칸으로 끝나는 윈터 솔져 소환 주문도 그렇고, 맨츄리안 캔디데이트 원전에서는 특정 문장으로 카드놀이를 시작하고, 다이아몬드 퀸을 보는 순간 세뇌 상태에 돌입한다.

다만 알렉스 메이슨의 경우 '숫자'가 중요한 트리거이자 세뇌 과정으로서 등장하는데, 이는 또 다른 음모론인 '넘버 스테이션', 난수 방송을 게임의 컨셉에 끼워 맞춰 만든 연출이다. 난수 방송은 정체 불명의 단파 라디오 방송으로 기계적으로 숫자들을 읊는 방송을 말하는데, 암호표를 지닌 스파이들에게 지시를 전하는 과정이라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난수 방송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수없이 존재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음모론인데, 실제로 들어 보면 소름이 쫙 돋을 정도로 뭔가 이질적이면서 기괴하다. 물론, 실제 세뇌와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이 '숫자'라는 요소가 주는 기괴함을 연출적으로 더한 것이 메이슨의 세뇌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유명한 난수 방송(현재 종료) '스웨디시 랩소디' 듣다 보면 소름돋는다 ©Jaymes Barnard

BEYOND GAME · 02
미국과 세뇌, MK울트라, 그리고 '벨'

앞서 말한 소련의 세뇌에 대한 공포는, 단순히 사회적 파문에서 그치지 않고 본격적인 움직임으로도 이어졌다. 당시 CIA 국장이었던 '앨런 덜레스'는 "소련이 인간의 정신을 조종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기존에 진행 중이던 심문, 최면 연구인 '프로젝트 블루버드', '프로젝트 아티초크'를 통합해 하나의 대형 프로젝트로 만들었고,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가 음모론(이미 기밀 해제되어 엄밀히는 음모론이 아니지만)의 단골 소재 중 하나인 'MK울트라'다.

이 MK울트라는 프로젝트 진행 내내 극비로 취급되었지만, 참 우연찮게 드러나버렸는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 장비를 설치하려다 들통나 사퇴한 이른바 '워터게이트'사건에 엮이면서다. 당시 미 의회는 미국 내 정부기관들도 믿을게 못된다는 판단 하에 FBI와 CIA, NSA등을 전부 조사하게 되었고, 당시 CIA의 국장이었던 '리처드 헬름스'는 자료를 파기하기로 결정, MK울트라와 관련된 대부분의 자료를 파기해버렸다.

때문에, '그런 프로젝트가 있었다'는 확인했지만, '어떤 프로젝트였는지는 모른다'의 상태가 이어지던 중, 우연히 정보공개청구 작업을 하던 직원에 의해 회계 자료와 계약서, 연구비 지급 내역등을 포함한 2만여 페이지의 문서가 발견되면서 MK울트라는 수면 위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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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된 MK울트라 보고서 일부 ©NYTimes

이렇게 떠오른 MK울트라의 내용은 상상 이상이었는데, LSD 및 약물을 통한 심문과 기억 변화, 자백 유도, 정신 붕괴 가능성, 최면, 감각 차단, 수면 및 기억, 인격 붕괴, 독극물, 화학 물질과 알코올, 행동 수정과 자백 연구, 전기 충격을 통한 성격 교체와 기억 각인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떼어 놓고 봐도 근사한 음모론이 될 만한 소재들이 마치 백화점마냥 꽉꽉 들어차 있었다. 심지어 이 실험들을, 피험자조차 모르게 진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왜 이 'MK울트라'를 계속 얘기하느냐 하면, '블랙 옵스'가 소련의 세뇌에 대한 적색 공포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라면, '블랙 옵스 콜드 워'는 이 MK울트라와 아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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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워의 주인공 '벨', MK울트라에 의해 조작된 기억이 덮어씌워진 케이스다 ©INVEN

'콜드 워'의 주인공인 '벨'은 성별도, 이름도 없는 주인공으로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벨의 외형과 경력을 다 지정하게 된다. 이조차도 일종의 복선인데, 이 주인공인 '벨'부터가 게임 전반에 등장하는 적대 세력인 '페르세우스'의 요원이었지만, 포로로 잡힌 후 MK울트라로 세뇌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벨'은 게임의 또 다른 주인공인 '러셀 애들러'에 의해 기억이 통채로 뒤바뀌지만, 게임 초반에는 좀처럼 이를 알 수 없다. 애들러는 약물과 최면, 심리적 고문 등을 통해 벨에게 베트남에서 같이 싸웠던 자신의 전우이자, CIA의 블랙 옵스 요원이라 세뇌한다. 이 영향은 게임 전반에서 조금씩 드러나는데, '콜드 워'에 등장하는 베트남전 파트의 경우 쓰는 무기들이 당시 고증에 맞지 않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계속 기억 나냐고 되묻는다.

'정면돌파' 미션의 경우 애들러의 말에 따라 계속해서 진행이 달라지고, 배경의 뒤틀려지거나 인물의 얼굴이 변하는 등, 누가 봐도 실제 기억이라 보기엔 이상한 상황이 이어진다. 실제 MK울트라에서도 '이언 캐머런'이라는 캐나다의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기억을 제거한 후 새 행동을 주입하는 실험을 진행했으나, 실패하고 많은 환자가 심각한 기억 손상을 입었던 바 있다. 게임 속 '벨'의 기억 또한 점점 파편화되며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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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내에서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연출한 '레드 도어'. 하다 보면 경기 온다 ©INVEN

BEYOND GAME · 03
페이퍼클립과 카오스, 그리고 JFK

이렇듯, '블랙 옵스'와 '블랙 옵스 콜드 워'는 두 차례에 걸쳐 '세뇌'라는 음모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알렉스 메이슨은 소련이 비밀리에 포로를 세뇌해 암살자로 써먹는다는 '맨츄리안 캔디데이트'식 서사를, 그리고 '벨'은 이에 대응해 CIA가 실제로 진행했던 'MK울트라'를 주된 소재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블랙 옵스' 시리즈에는 세뇌 외에도 수없이 많은 냉전기의 음모론, 그리고 훗날 사실로 확인된 극비 프로젝트들이 깨알같이 녹아 있다. 예를 들어 '블랙 옵스'에서는 소련이 나치 패망 이후 독일의 과학자들을 데려다 강력한 신경독인 '노바-6'를 만들어낸다. '월드 앳 워'의 러시아 파트 주인공이었던 드미트리 페트렌코가 이 '노바-6'의 피험체가 되어 의해 처참하게 사망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렇게 전후 독일의 과학자들을 비밀리에 영입한 프로젝트가 바로 '프로젝트 페이퍼클립'인데, 실제로 미국은 수많은 독일 과학자들을 빼갔다. 아마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로켓 공학의 거장인 '베르너 폰 브라운'일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2차 대전 전후 악명높은 일본의 생물학 연구기관인 731부대 거래 사건이 있는데, 미국은 면책을 댓가로 수많은 연구 자료를 넘겨받았다. 게임 내에서는, 이 '페이퍼클립' 대신 소련이 과학자들을 데려갔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가상의 시나리오로 써먹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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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과학자를 빼돌려 소련이 만들었다는 설정의 신경독소 'NOVA-6' ©INVEN

'콜드 워'의 보너스 미션 중 하나인 '작전명 카오스'는 다른 미션을 하면서 세 가지 증거를 확보해야 플레이 가능한 미션인데, 이 이름 그대로의 작전이 존재했다. 실제로는 CIA의 국내 감시 프로그램으로, 표면적 목적은 미국 내 반전 운동 및 시민운동 세력이 혹시나 소련 정보기관의 영향을 받았을지 조사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수천 명의 미국 시민 및 단체를 불법 감청했다. 게임 내에서는 표면적 목적 그대로 소련 공작원을 색출하는 정보 분석 임무로 등장한다.

'콜드 워'의 주요 적성 세력이자, 초법적 스파이 단체로 등장하는 '페르세우스'또한 아주 대표적인 음모론이다. 냉전이 끝난 이후 전직 소련 정보요원이 '맨해튼 프로젝트의 정보를 소련에 제공한 페르세우스라는 인물이 살아 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이 음모론은 실제 스파이였던 '클라우스 푹스'외에도 다른 스파이의 존재를 암시했으며, 실제 미국과 영국이 해독한 소련 암호 전문인 '베노나 문서'가 공개되면서 수많은 정보원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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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 음모론도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실제 존재하는 음모론이다. ©INVEN

하지만, '페르세우스'의 존재 자체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소련 정보기관이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이거나 역정보일 거라는 의견도 있다. 다만, 게임에서는 이 '페르세우스'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수십년 간 활동했다는 가정 하에 만들어졌다. 물론, 냉전사 연구자들은 '페르세우스'가 존재하지 않았다는데 무게추를 올리고 있다.

'블랙 옵스'의 엔딩 장면에 등장하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또한 지금까지 국밥처럼 쓰이는 음모론 중 하나이며, '모든 음모론의 어머니'라 불릴 정도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많은 사건이다. 알려진 사실은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지만, 오스왈드가 혐의를 부인하고 미묘한 태도를 보인 데다 이후 '잭 루비'에게 살해당하면서 '누가 봐도 수상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2003년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이 꼽은 암살 배후는 'FBI, CIA'가 25%고, 소련이 15%인데, 알렉스 메이슨은 소련에 세뇌당한 상태였으니 15%의 설을 기반으로 쌓아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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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FK의 마지막 행보. 비교적 최근(2022년) JFK의 죽음과 관련된 기밀 문서가 다수 공개되었다. ©BBC

BEYOND GAME · 03
음모론은 어디까지나 음모론

이렇듯, '음모론'은 '블랙 옵스'라는 타이틀을 구성하는 토대이자, 기둥이 되어주었다. '블랙 옵스 콜드 워'공개 당시, 트레이아크와 레이븐 소프트웨어는 캠페인을 소개하면서 "우리는 실제 역사 속 빈틈을 탐험한다"라고 말했다. 냉전기의 미해결 미스터리나 기밀문서에 표현되어 있지 않는 공백을 그럴싸한 이야기로 채워넣었다는 뜻이다.

블랙 옵스가 처음 등장했을때도, 트레이아크의 캠페인 디렉터 '데이브 앤서니'는 비슷한 언급을 했다.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그대로 두되, 그 사이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비밀 작전을 상상한다"

메이슨이 쿠바로 향하는 피그만 침공, 보르쿠타의 폭동, JFK의 암살, 월남전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개발진은 그 빈 사이의 이야기를 파고들어 짜임새있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서사 라인 자체는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다. 뭐, 캠페인 분량 문제로 욕을 먹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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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는 재밌었다. 좀 짧아서 그렇지 ©INVEN

그리고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콜오브듀티는 대표적 사례일 뿐 음모론은 게임 산업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단골 소재로 쓰여 왔다. 코지마 히데오의 메탈기어 시리즈는 게임 전체가 거의 하나의 음모론에 가깝고, '데이어스 엑스'또한 거의 모든 현대 음모론을 다 종합해뒀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도 어찌 보면 하나의 거대한 음모론을 다루는 게임이고 말이다.

아마, 그만큼 '음모론'이라는 것이 흥미로운 주제이기 때문일 거다. 사서에 정직하게 기록된 이른바 '역사'와 달리, 음모론은 가정과 추측, 상상이 더해져 있으며, 그 진위조차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심지어 기밀 해제되어 드러난 음모론조차, 그 배후에 또 다른 진실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다.

콜 오브 듀티 : 블랙 옵스 Call of Duty : Black OPS
얘네도 일단 설정 상 음모론에 가깝다. ©Ubisoft

그 '미지'가 그만큼 흥미롭고, 소름돋으며, 달리 보면 재미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파헤쳐보면 실제로는 소문만 못 한 경우도 많다. 전미를 두려움에 빠트렸던 소련의 심리 조작은 사실 굉장히 클래식한 프로파간다와 심문 기술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였다. 밀밭에 새겨진 기이한 문양인 '크롭 서클'도 사실은 영국인 두 명이 판자와 밧줄로 직접 만들었다는 자백이 나왔다.

너무 깊이 파고들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난 개인적으로 음모론을 굉장히 좋아해 여러 책을 사보기도 했고, 여전히 DB 쿠퍼와 JFK 죽음의 내막을 궁금해하고 있지만, 너무 심취하다 보면 세상 모든게 다 음모론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냥 즐기면 된다. 블랙 옵스의 이야기처럼, 그리고 메탈기어 솔리드의 이야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