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NL은 영어권의 무대다. 제프 케일리가 진행하고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이 쇼케이스에서 각국 개발사는 영어 음성에 맞춘 영상을 올린다. 한국 게임사들도 글로벌 쇼케이스에 나갈 때는 영어 더빙을 얹는 것이 관행에 가까웠다. 한국 게임이라는 표식을 지우고 '글로벌 제품'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오래된 문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선택이 가능해진 배경은 게임 바깥에도 있다. 서구권 이용자의 자막 저항은 지난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낮아졌고, 일본산 서브컬처 게임들은 일본어 음성을 감추기는커녕 정체성으로 내세워 글로벌 이용자를 모았다. 중국 개발사도 같은 길을 걸었다. 게임 사이언스는 '검은 신화: 오공'을 중국어 음성 트레일러로 알렸고, 이어 '검은 신화: 종규'도 같은 방식이었다. 원어를 지키는 것이 글로벌 확장의 걸림돌이 아니라는 사례가 이미 쌓여 있다. 원어 음성은 핸디캡이 아니라 질감의 문제가 됐다.
게임의 콘셉트를 보면 선택은 더 또렷해진다. '라이크 오어 다이'는 이용자가 범우주 플랫폼 '콰이야 스트림'의 스트리머가 되어 전투를 생중계하는 팀 기반 서바이벌 FPS다. 방송을 형식으로 삼은 게임에서 말의 억양과 리듬은 배경음이 아니라 콘텐츠의 일부다. 그 층위를 영어 더빙으로 갈아 끼우는 대신 자막을 얹는 쪽을 택한 셈이다.
게임스컴에서 조합은 더 분명한 신호다. 회사는 보통 가장 잘하는 것을 들고 나온다. 엔씨의 그것은 MMORPG다. 그런데 신작 2종은 모두 슈팅이었고, 26일 개막한 게임스컴 B2B관에서 회사가 앞세운 또 하나의 축은 모바일 캐주얼이었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려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슈팅은 이미 클러스터화 중이다. 미스틸게임즈가 개발하고 엔씨가 퍼블리싱하는 3인칭 슈터 '타임 테이커즈'는 9월 5일 스팀 글로벌 플레이테스트를 앞두고 있고, '신더시티'는 오픈월드 시네마틱 3인칭 슈터, '라이크 오어 다이'는 팀 기반 서바이벌 FPS다. 같은 장르 안에서 시점도 구조, 방식이 다르다. 박병무 공동대표가 지난해 초 실적발표에서 밝힌 '슈팅 클러스터' 구상이 실물로 늘어선 셈이다.
슈팅과 모바일 캐주얼의 공통점은 하나다. 국내에서 엔씨가 강했던 분야가 아니고, 글로벌에서는 큰 축이라는 점이다. 엔씨는 모바일 캐주얼을 신성장 동력으로 정하면서 이 분야가 글로벌 게임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국내 시장의 문법으로는 닿을 수 없는 수요를 겨냥하겠다는 얘기다.
모바일 캐주얼 사업은 속도가 빠르다. 엔씨는 지난해 8월 모바일 캐주얼 센터를 신설하고 아넬 체만을 영입했다. 이어 베트남 리후후의 모회사 인디고그룹 지분 67%를 1534억원에, 올해 3월에는 독일 리워드 플랫폼 저스트플레이 지분 70%를 2억2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조직과 인력, 플랫폼을 모두 유럽과 동남아에서 조달한 구성이다.
기존 강점도 그대로 들고 나가지는 않는다. '아이온2'는 9월 30일 얼리 액세스를 거쳐 10월 5일 스팀과 퍼플로 북미·남미·유럽·아시아에 동시 출시된다. 국내 서비스와 달리 모바일을 빼고 PC 전용으로 가며, 권역별 서버를 운영한다. BM에서는 현금 확률형 아이템을 배제하고 멤버십과 패스 중심 구조를 택해 서구권 이용자의 페이투윈 거부감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한국 MMORPG의 검증된 수익 공식을 스스로 덜어냈다는 뜻이다.
ONL에서 선택한 언어, 무대에 올린 장르, B2B에서 앞세운 조직, 아이온2에서 덜어낸 BM. 이번 게임스컴에서 엔씨가 보여준 것들은 서로 다른 사안처럼 보이지만 향하는 곳이 같다. 한국 시장에서 만든 것을 번역해 내보내는 대신, 글로벌을 기본값에 두고 회사를 다시 짜는 일이다. 엔씨는 글로벌로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