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책가방을 내팽개치고 PC방으로 달려가던 10대 청소년들은 어느덧 어엿한 30~40대 직장인이 됐고, 퇴근길, 지친 몸을 이끌고 오랜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후 즐기는 ‘3:3 헌터 매니아’나 ‘3:3 용돈이 저그니?’ 한판은 삶에 치인 아저씨들에게 여전한 낭만이자 둘도 없는 낙이 됐다. 비록 글로벌이나 메이저 시장의 화려한 조명을 독차지하는 시절은 지났을지라도, 대한민국에서 이 민속놀이가 가진 끈질긴 생명력과 화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머지않아 서른 번째 생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위대한 고전 게임. 패치조차 끊긴 지 오래인 스타크래프트의 밸런스는 대체 지금 어떻게 맞춰지고 있을까? 2026 ASL 시즌22 16강 무대에 오른 유영진, 이제동, 장윤철을 만나 28년 차 밸런스의 솔직한 현주소를 물었다.

Q. 먼저 각자 소개 부탁한다.
유영진 : 예전 CJ 엔투스에서 게이머 생활을 했던 테란 유영진이다.
이제동 : 전 프로게이머 저그 이제동이다.
장윤철 : 현재 SOOP에서 방송하고 있는 프로토스 장윤철이라고 한다.
Q. 일단 테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각자 생각하는 테란은?
유영진 : 옛날부터 테란은 잘하면 '테사기'라는 꼬리표가 늘 붙곤 한다. 가장 빠른 유닛인 벌처와 강력한 시즈 탱크 등 전체적인 유닛 성능이 뛰어나며, 전반적인 평균치가 높은 종족이다.
장윤철 : 요즘 테란을 이기기가 너무 벅차다.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 고점과 저점이 모두 높고 리스크가 적다. 실수 없이 플레이할 경우 이득을 챙길 유닛이 많아 상대하기 정말 힘들다.
이제동 : 안정감이 확실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인상을 준다. 수십 년간 스타크래프트를 해온 만큼 이제 짜증 나는 단계는 해탈했지만, 벌처의 효율이나 마인의 잠재력은 지금 봐도 엄청나다.

Q. 그렇다면 저그는 어떤가?
이제동 : 과거와 비교했을 때 게임 양상, 최적화 측면에서 많은 발전이 이뤄졌다. 저그는 스스로의 변화보단 상대 종족들의 변화에 맞춰가는 과정에 가깝다. 저그가 최근 우승을 차지하거나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선수들이 많아 다른 종족 입장에서 꽤 까다롭게 느낄 것 같다.
유영진 : 토스전보다 저그전이 어렵다. 저그를 상대로 단순한 패턴만으로는 이기기 어렵다. 초반부터 상대의 허점을 찌르거나 다양한 빌드를 통해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그런 것들이 있어야 저그를 상대할 수 있다.
Q. 프로토스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장윤철 : 예전에는 패배해도 다시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다시 해서 이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개인적으로 타 종족들의 변화가 있을 때 프로토스는 좀 정체된 느낌이 있긴 하다.
최근에는 재경기를 한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타 종족은 메타 변화가 활발한 반면 프로토스는 정체된 느낌이다.
이제동 : 상위권에서 활약하는 프로토스 선수의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은 확실히 있다.
유영진 : 소신 발언을 하자면 프로토스에서 메타를 선도하는 주도적인 선수가 부족한 점도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웃음).

Q. 스타1 밸런스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맵이다. 이에 대한 생각은?
이제동 : 역사적으로 봐도 맵을 통해 밸런스를 조율해 왔고 이는 당연한 수순이다.
장윤철 : 종족별 약간의 유불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특정 종족에 너무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맵 스타일에 따라 승률이 갈리는 만큼 적절한 비율을 맞추는 편이 좋다. 예를 들어, ASL에서 7개의 맵을 사용하는데, 4인용 맵은 테란이 좋고, 2인용은 토스가 좋다. 7개의 풀 안에서 개수부터 적절하게 맞추고, 한 개 정도는 이번 시즌 공식 맵인 '오디세이'(본진 미네랄이 빠른 무한 형태)처럼 신선한 시도는 언제나 환영이다.
유영진 : 맵마다 종족별 이점이 달라 전체적인 밸런스는 잘 맞춰져 있다고 본다. 새로운 형태의 맵 역시 초기 적응 과정은 까다롭지만, 플레이해 보면 충분히 대처할 만하다.
Q. 조금 더 구체적으로 T VS Z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이제동 : 과거보다 확실히 까다로워졌다. 선 수비 후 뮤탈리스크 확보까지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어지는지가 핵심이다. 초반에 테란의 빌드가 정말 다양해졌다. 하지만, 저그는 적응의 종족이라 지금은 어느 정도 다 대처가 된다. 결국, 초반을 얼마나 잘 넘기고 운영 싸움에 있어 좋은 출발점에 서 있느냐가 중요하다.
유영진 : 과거에는 바이오닉 후 레이트 메카닉이 거의 정석이었는데, 요즘은 그 시절과 많이 다르다. 테란들이 속업 벌쳐를 초반부터 많이 활용하고, 발키리까지 섞는 등, 뮤탈리스크에 대한 대응이나 운영으로 넘어가는 빌드가 다양하다. 예전처럼 바이오닉 장인, SK테란 장인, 이런 식의 한 우물만 파는 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Q. T VS P 경기 양상의 변화는 어떤가?
장윤철 : 과거와 비교하면 경기 호흡이 매우 빨라졌다. 예전에는 테란 메카닉이 '업테란'이 유행했는데, 요즘에는 1/1업 타이밍에 힘을 주는 등, 프로토스가 마음을 놓고 째지 못하도록 계속 무언의 압박을 주기 때문에 오히려 테란의 공격을 프로토스가 막는 입장이다.
유영진 : 업테란이 사라진 이유는 간단하다. 프로토스의 막 멀티를 저지하기 어렵고, 속업 셔틀 플레이가 발전하면서 업테란을 했을 때 프로토스의 리버나 하이 템플러 견제 플레이를 감당하기가 정말 어렵다. 그래서 그런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속도를 올려 프로토스를 압박하는 추세다.
Q. T VS P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리버'다. 장윤철의 리버를 보고 있으면 정말 '원래 이렇게 설계된 유닛인가' 싶은 정도인데?
장윤철 :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다. 리버 컨트롤에 목숨을 걸게 된 건 살아남기 위함이었다. 프로토스는 원래 물량의 종족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물량에 약점이 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리버를 파기 시작했고, 선수마다 장, 단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리버 컨트롤을 나의 가장 큰 장점으로 생각하고 있다.
유영진 : 장윤철의 리버를 상대하면 정말 힘들다. 개인적으로 리버를 활용하는 프로토스와 그를 상대하는 테란의 컨트롤 싸움 자체는 테란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데, 장윤철이 압도적으로 잘해서 좋은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당장 생각해 봐도 장윤철 외에 리버를 이 정도 경지까지 활용하는 프로토스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프로토스들이 좀 부진하는 이유 중 하나로 너무 다 똑같이 하려고 하는 게 문제다. 저그나 테란은 지면 계속 변화를 추구했는데, 프로토스는 져도 또 똑같이 하는 느낌이다. 모두가 속업 셔틀 위주의 테란전 플레이를 하는데, 사람마다 맞는 플레이, 성향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트렌드과 잘 맞지 않으면 차라리 예전처럼 아비터 위주의 운영을 한다거나 그런 게 오히려 방법일 수 있다.

Q. 마지막으로 P VS Z는 어떤지 궁금하다.
장윤철 : 기습적인 히드라리스크에 허무하게 패배할 때도 있지만 전반적인 밸런스는 팽팽하다. 최근 저그의 '뮤커지' 조합이 강세를 보이면서 공중 주도권을 잡기 힘들어져 난이도가 한층 올라갔다. 대회에서 프로토스들이 저그에게 성적이 좋지 않은 이유는 아무래도 대회가 주는 긴장감 덕분에 평소에는 캐논 1~2개로 버티는 것도 3~4개 짓다가 손해를 보거나 반대로 덜 지어서 허무하게 끝나는 그런 경기가 은근히 나오는 것 같다.
이제동 : 초반 기선 제압과 프로토스가 저그의 기습적인 움직임에 휘둘리지 않는 점이 중요하다. 컨디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프로토스라고 예전 만큼 마음이 엄청 편하고 그런 건 없어진 것 같다.
Q. 만약 20년 전으로 돌아가도 같은 종족을 선택할 것인가?
이제동 : (큰 고민 없이)무조건 저그를 고를 것 같고, 이유는 유연한 대처 능력, 인내심을 요구하는 저그가 나와 가장 잘 맞는다.
유영진 : 어린 시절 테란 유닛들의 멋진 모습에 끌렸다. 그리고 내 타 종족 실력은 형편없기에 테란이 아니면 프로게이머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장윤철 : 리버라는 매력적인 유닛이 존재하는 한 다시 태어나도 프로토스를 고를 것 같다.
Q. 끝으로 ASL 시즌22 16강에 임하는 각오 한마디 부탁한다.
유영진 : 최근 두 시즌 동안 다소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어렵게 16강에 진출한 만큼 이번에는 더 높은 무대를 향해 올라가겠다.
이제동 : 매번 8강 문턱에서 아쉽게 무너졌는데, 이번 시즌에는 반드시 4강 시드를 확보할 수 있도록 남은 시간 철저히 준비하겠다.
장윤철 : 시드 권역인 4강 진출을 1차 목표로 잡고, 이후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도전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