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 애너하임. 3년 만이다. 2023년 이전에도 여러 이유로 온라인 행사 '블리즈컨라인'으로의 전환과 취소, 미개최가 이어지며 2019년이 마지막이었으니, 2020년대 두 번째 블리즈컨이 된 셈이다.
당연히 블리즈컨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신작에 대한 기대로 모였다. 당연하다. 과거의 블리자드는 팬들의 기대를 채우는 신작으로, '무엇이 공개되는가'가 중요했다. 그런데 돌아온 블리즈컨을 가능하게 만든 건 단순히 신작이 아니다. '누가 이 문을 다시 열게 만들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답은 단순히 회사만이 아니다. 새벽부터 애너하임 컨벤션센터를 찾아 긴 줄을 만든 팬들, 그리고 시간 가리지 않고 밤을 새우며 생중계를 기다리는 전 세계 플레이어. 블리즈컨의 문을 연 건 그들이 있어서다.

블리즈컨 공백의 3년블리자드, 프랜차이즈로의 회귀
블리즈컨이 쉬어가는 동안, 블리자드의 시계는 꽤나 무겁게 흘러갔다. 내부적으로는 여러 이슈에 리더십 변경이 있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는 687억 달러라는 막대한 숫자와 함께 회사 기조에 큰 변화가 있음을 암시했다. 그 시기 안에서는 회사 최고 의사 결정자가 여러 차례 바뀌었다. 일부 작품은 취소되기도 하고, 기존 프랜차이즈 신작에 대한 소식이 여럿 돌았을 뿐, 신작에 대한 공개는 쉽사리 이루어지지 못했다.
블리자드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블리즈컨의 복귀가 결정된 2026년, 그러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시도가 나왔다. 팀끼리 서로 힘을 모아 장기적인 관점을 내다보는 것. 그 중심에는 35주년의 블리자드가 쌓아온 프랜차이즈가 있었다. 개발진 역시 자신들이 열렬한 게이머임을 숨기지 않았다. 얼마나 오랜 기간 블리자드 게임을 즐겨왔고, 또 스스로 팬의 마음으로 게임 개발에 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숨김없이 나왔다.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오버워치, 그 외에 다양한 클래식 시리즈까지 블리자드에는 다양한 프랜차이즈가 존재한다. 그리고 프랜차이즈의 오늘을 있게 만든 건, 단순히 그걸 만든 사람들만이 아니라, 게임을 지금까지 사랑하는 플레이어, 팬이 있기에 가능했다.

프랜차이즈 중심으로 다시 운영하는 것은 곧, 팬들이 사랑하는 이야기와 플레이로 돌아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건, 블리자드의 모든 프랜차이즈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블리즈컨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실제로 이번 블리즈컨에서도 그 방향은 뚜렷하게 확인됐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스타크래프트 IP는 오픈 월드 슈터로 확장을 예고했고, 디아블로는 4편의 플랫폼 확장과 함께 차기작 디아블로5로 이어지는 계획을 밝혔다. 오버워치는 탈론의 지배 시즌을 이어가고 있으며, 워크래프트는 메인 스토리 중심의 한밤과 함께 기존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워크래프트3 신규 캠페인, 그리고 플레이어 중심으로 다시 즐길 수 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이야기를 그린다. 3년의 침묵이 신작 하나로 채워진 게 아니라, 회사가 가진 모든 프랜차이즈로 채워진 셈이다.
관람이 아니라 참여블리즈컨을 채우는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발표를 지켜보러 온 것도, 결국 사람들이었다. 블리즈컨의 입장 대기줄은 이른 새벽부터 생긴다.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 앞에는 개막 시간보다 몇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늘어선다. 그리고 그건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개막식은 오전 10시 30분. 조금이라도 앞자리에서 행사를 즐기기 위한 팬들의 기다림은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현장 취재에 나선 기자들이 미국에서 다급히 보낸 사진에는 수많은 인파가 블리즈컨 하나를 즐기기 위해 가득 늘어선 모습이 담겼다.
그리고 이들의 경험은 신작 발표를 보고, 게임을 처음 시연해보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물론 신작 발표와 플레이 경험 자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에 블리자드 역시 프랜차이즈 중심으로 올해 블리즈컨을 꾸렸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블리자드의 핵심 프랜차이즈 세계를 플레이어 스스로 게임 밖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하고, 새로운 문화로 확장해나가는 것. 이것이 블리즈컨을 다른 게임쇼와 갈라놓는 지점이다. 개막식부터 세션까지 게임에 대한 신규 정보와 개발 과정은 온라인으로도 공유된다. 하지만 더 많은 이야기는 정작 무대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수많은 금손 게임 팬들이 게임 속 세계관에 자신만의 손길을 더해 만든 아트 공모전. 3분 이내의 짧은 영상 속에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내는 단편 영화. 게임 속 캐릭터를 흉내 내거나 유쾌한 유머로 풀어내는 재능 콘테스트. 그리고 직접 게임 속 캐릭터가 되는 코스프레까지. 블리즈컨을 찾는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블리자드의 게임과 프랜차이즈를 재해석하고, 또 직접 참여한다.
많은 팬들이 거대한 라인하르트 갑주를 만들고, 등에 돋은 가시 하나까지 살아있는 디아블로로 직접 분장하며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 코스프레를 선보인다. 콘테스트에 따로 출전하지 않아도, 가볍게 캐릭터 복장을 맞춰 입고 돌아다니는 현실 속 와우, 오버워치 캐릭터를 행사장 곳곳에서 수없이 만날 수 있다. 코스프레만이 아니다. 수많은 팬들이 멀록 복장을 하고 함께 걷고 소리지르며 행사장을 도는 멀록 행진은 이제 블리즈컨의 명물이 됐다.
팬들은 블리자드의 프랜차이즈를 단순히 게임으로서 소비하는 걸 넘어, 스스로 체험하며 긍정적으로 즐기고 있는 셈이다.

경쟁을 넘어선 축제응원과 유대의 블리즈컨 문화
매년 펼쳐지는 이스포츠 대회 역시 블리자드의 게임을 함께 즐기는 핵심 이벤트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사실상 이스포츠라는 표현의 초석을 닦을 수 있었던 게 블리자드 게임이었던 만큼, 오버워치 월드컵,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아레나, 하스스톤 마스터즈,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같은 클래식 게임의 특별한 이벤트까지. 블리즈컨은 다양한 이스포츠 대회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대회의 본질은 실력을 겨루는 경쟁이지만, 그 경쟁을 축제로 만드는 건 결국 관중석이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맞춰 입은 팬들, 인상적인 플레이 하나에 터지는 함성, 경기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여운을 나누는 관객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 팀, 국가, 혹은 종족을 위해 소리 지르며 장벽 없는 응원 문화를 만들어왔다. 단순한 경쟁과 중계를 넘어, 하나의 축제로 확장된 셈이다.

여기에 게임 개발진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게임에 대한 경력과 애정을 블리자드에서 직접 펼칠 수 있도록 채용팀이 맞춤형 포트폴리오 검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팬이었던 사람이 개발자가 되고, 그 개발자가 다시 팬과 마주 앉는 순환이 이 행사 안에서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대개 기업 행사는 자사 제품을 가장 열심히 소비한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는 선에서 그친다. 블리즈컨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제품을 재료 삼아 무언가를 만든 사람에게 무대와 마이크를 내준다.
그래서 블리즈컨에는 다른 게임쇼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 자주 언급된다. 올해 개막식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 '유대'다. 게임 팬들이 블리자드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뭉칠 수 있는 곳. 그리고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신나게 즐기며 치유받는 곳. 그게 블리즈컨이라는 장소다.

왜 사람들은 다시 모였나블리즈컨을 지킨 이들
결국 질문은 하나로 좁혀진다. 왜 사람들은 다시 블리즈컨에 모였나.
회사가 3년 만에 신작을 들고 돌아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장이 두 번 바뀌고, 소속이 바뀌고, 준비하던 게임 하나가 조용히 사라지는 그 시간 동안에도, 이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커뮤니티를 지켜왔다. 코스튬을 짓고, 창작물을 만들고, 이스포츠 경기를 챙겨보고, 온라인 너머로나마 개발자의 말에 귀 기울여왔다. 회사가 다시 문을 열 준비를 마치기 훨씬 전부터, 그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블리즈컨에 모인 건 블리자드가 돌아왔기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애초에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한 게임쇼는 많다. 또 여느 게임 행사든 공개된 게임의 면면이 아쉬울 수도 있고, 플레이 경험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과 관계없이 행사를 찾고, 또 스스로 모여 그걸 문화로 만드는 사람들. 그 문화 안에서 서로 교류하고 애정을 드러내며 생명력을 이어나간 사람들. 게임의 생명력을 정하는 건 결국 개발사가 아니라 이들이었다. 그들이 블리즈컨을 지켜왔고, 또 다시 이곳에 모이게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