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하다. 블레이드&소울(이하 블소)의 리뷰를 막상 쓰려고 보니 어떤 수식어를 붙여아 할까, 어디를 꼬집어야 할까, 어디가 좋고 어디가 문제인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영혼이 유체이탈을 시도할 정도로 빠져들었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5일이 사라졌다.



정신을 가다듬고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가장 기억에 남는 것부터 하나씩 손가락으로 꼽아 보니 캐릭터들이 가장 먼저 눈 앞에 아른거린다. 청소년이용불가 판정을 받은 성인용 게임이니 표현이 자유로와 무엇인들 못 나오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김형태AD의 전매특허인 쭉쭉빵빵한 캐릭터 디자인이 3D로 충실하게 구현된 것이 가장 흐뭇하다.(죽어도 남성 캐릭터는 안 하는 R모 기자와 함께 여성 캐릭터를 선택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






작년 지스타에서의 체험판과 여러 자료 등에서 김형태AD의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그런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 PC사양을 잡아먹는 귀신이 될 것이라는 근심 가득한 우려는 이번 클베 한 방으로 정리됐다.



비교적 안정적인 클라이언트로 높은 사양이 아니더라도 무난하게 게임이 진행되며(물론 권장사양 이상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만), 각종 옵션을 조금만 손봐 주면 최소 요구사양이라고 해도 그럭저럭 구동될 정도. 보통 베타 테스트라고 한다면 권장사양으로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게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사형들과 함께 기본적인 조작법을 익히고 습격해 온 진서연 패거리들에게 당해 절벽 아래로 떨어진 후 구원을 받아 첫 마을까지 가는 것은 지스타의 체험판과 큰 차이는 없다. 1시간 정도밖에 플레이할 수 없던 체험판과는 달리, 20레벨까지 콘텐츠를 개방하여 좀 더 제대로 된 블소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 방향. 한국형 MMORPG의 시초라고 부를 수 있는 리니지를 만들어낸 엔씨소프트에서 제작했기 때문에, 블소 역시 베고 레벨업하는 전형적인 MMORPG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 클로즈베타에서 엔씨소프트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한국형 MMORPG의 요소들을 상당 수 부정하거나 파괴하는 시도가 보였다.






▶ 기존 MMORPG 요소들의 생략과 변경


우선 게임의 전투의 주요 개념들이 바뀐 것을 들 수 있다. 기존 MMORPG의 전투는 스킬과 회복 아이템 및 강력한 장비를 갖추고 꾸준히 상대를 공격하는 형태였으나, 블소의 전투는 아이템보다는 게이머 자신의 게임 이해도와 컨트롤의 비중이 커졌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캐릭터가 성장한다는 의미에서의 RPG적 요소(물론 RPG의 정의는 역할놀이)를 제외한다면 블소는 상대방의 공격을 눈으로 보고 피하는 동시에 반격의 한 수를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대전액션의 요소를 상당 수 도입했다. 또한 검사/권사/기공사/역사 4개의 직업마다 서로 다른 무기와 무공을 사용하며, 전투 방식 및 조작 난이도 역시 차이가 크다. 대전액션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캐릭터마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투를 하는 것이다.



▲ 무공 커스터마이징의 폭은 상당히 넓은 편


일정 레벨이 되면 스킬을 배우고 또 그것을 강화하여 단순히 화력만 높여 나갔던 기존 MMORPG와는 달리, 블소에서의 스킬은 무협 게임의 무공으로 표현되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련을 할 수 있다. 15레벨 이전까지는 레벨업에 따라 자동으로 무공을 배우나, 그 이후는 수련 포인트를 얻어 새로운 무공이나 기존에 익힌 무공을 강화하는 등 게이머의 전투 스타일에 맞게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한다.




▶ 캐릭터 이해도가 높을 수록 낮아지는 난이도


캐릭터 연구를 통해 강해진다는 것은 게임에서는 당연한 일. 하지만 블소에서는 캐릭터 이해도에 따라 게임의 난이도가 크게 달라질 정도로 몬스터와 레벨이 맞춰져 있다.


게임 초반에서는 간단한 기본 무공으로 마을 주변의 도적들을 쉽게 처치할 수 있지만, 10레벨 이상이 되면 도적들도 캐릭터가 사용하는 무공을 하나둘 구사하면서 난이도가 슬슬 올라간다. 특히 몬스터의 레벨별 분포가 단순히 필드에 뿌리는 형태가 아니라 캐릭터의 성장에 맞춰서 배치된 것이 눈에 띈다.



▲ 스토리 진행 중간중간 드라마나 영화 같은 구도의 연출도 볼 수 있다


보통 레벨이 오르면 새로운 스킬을 배우는 일반적인 MMORPG에서는 그저 스킬을 배웠다 정도로 끝나지만, 블소에서는 무공을 익히면 바로 몬스터와 퀘스트를 통해 무공을 숙달시키는 구조다. 예를 들어 상대의 공격을 좌우로 회피하는 무공을 배울 무렵에 만나는 몬스터는 정면으로 피하거나 막기 어려운 공격을 주로 하는, 즉 피하면서 공격해야만 쓰러뜨릴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자연스럽게 무공을 숙달하도록 되어 있다.



블소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 높을 수록 전투가 쉬워지고, 그만큼 레벨업 속도가 오른다. 직업에 따라서는 같은 레벨대의 몬스터를 한 대도 맞지 않고 처치할 수 있으며, 심지어 일부 파티형 보스 몬스터도 혼자서 사냥이 가능할 정도다. 리니지의 연속으로 사용하는 회복약에 비해 비교적 긴 블소의 회복약의 쿨타임 역시 아이템 대신 컨트롤에 의존하는 블소의 컨셉을 보여주는 장치다.




▶ 장점이자 단점인 오토 타겟팅


오토 타겟팅 역시 액션성을 강화하는 요소다. 마우스 커서가 아닌 캐릭터의 시선에 맞춰 타겟이 정해지므로 기존 MMORPG의 수동 타겟팅에 적응된 게이머라면 상당히 낮설다. 테라에서는 크로스헤어 시스템을 통해 어느 정도 타겟을 지정할 수 있으나 블소에서는 그것마저 없기 때문에 캐릭터의 시점에서 타겟을 정하고 전투를 해야 한다.



콘솔 등을 통해 3D 대전 혹은 횡/종스크롤 격투 액션 게임을 많이 접해 본 기자는 캐릭터에 맞춰 자동으로 타겟이 바뀌는 블소의 시스템이 매우 편리했다. 그렇지만 온라인 게임 위주로 플레이하는 대다수의 게이머들 특성 상 1:1의 상황이라면 별 문제가 없으나 1:다수 전투에서 원하는 상대를 공격하지 못해 고생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오토 타겟팅 기능은 액션성을 강조한 블소의 성격에 어울리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기존 MMORPG 형식에 적응해 있거나 빠른 조작에 약한 게이머들의 조작성을 보강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추가된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파티 플레이와 PVP는 개선이 필요해


블소가 MMORPG인 만큼 파티 플레이와 PVP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이번 테스트에서 파티 플레이는 주로 퀘스트로 진행됐고, 대부분 보상이 괜찮아서 채팅창에는 파티원 모집글이 끊이지 않았다. 최대 4명으로 구성된 블소의 파티 플레이는 사실상 우르르 몰려가서 정예 몬스터를 두들기는, 말하자면 기존 MMORPG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집단구타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대부분의 정예 몬스터들은 공격 전 어떤 공격을 할 지 팔다리의 움직임으로 힌트를 주지만, 대부분 몸으로 때워 가며 무조건 공격만 하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난이도는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상대를 자동으로 선택하는 오토 타겟팅으로 인해 졸개를 소환하는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때 보스 몬스터만 공격하기 어려워서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었다.





보스 몬스터의 공격 패턴이 적다고는 하나 테스트 마지막에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인 거거붕은 남은 체력에 따라 여러 가지 패턴을 보여주고, 일부 패턴은 파티원이 동시에 다운 기술을 사용해야만 풀 수 있는 등 전략적 요소를 갖췄다. 이것은 테스트가 튜토리얼 역할을 하는 지역만을 보여주는 까닭에 본격적인 보스 몬스터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단순히 모이면 강해진다는 파티보다는 파티원 각각의 무공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보스 몬스터가 튜토리얼 차원에서 좀 더 일찍 등장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거거붕과 같이 파티원이 동시에 다운 기술을 사용해야 할 경우 다른 게이머에게 이를 알려주는 알람 기능이나 몬스터의 강력한 스킬에 대한 주의 표시 기능 등, 효율적인 파티 플레이를 유도하는 기능이 없는 점이 아쉽다.





블소에서 가장 기대를 모은 요소 중 하나는 PVP. 테스트 기간 중 PVP는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자경단과 충각단 의상을 갈아입는 것으로 양 진영간 PVP 모드가 발동되는 구조다. 게임 내에서 충각단은 악역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충각단 의상을 입었다가는 사방에서 공격을 받는다. 기존 리니지 시리즈에서 이름이 붉게 되는, 속칭 카오 상태가 되는 것.



멋모르고 PVP 모드를 켰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에 누운 기자는 테스트 기간 대부분은 레벨업과 퀘스트 수행으로 보냈지만, 마지막 날에는 과감하게 단체전과 개인전 PVP에 도전해 보았다.



전체적으로 각 직업이 몬스터를 상대할 때와 다른 캐릭터를 상대할 때의 대미지를 비슷하게 맞춰 놓았기 때문에 PVP는 연속기 한 방으로 빠르면 10초 내에 끝날 정도였다. 아직 캐릭터 밸런스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다음 테스트에서는 무공의 위력이나 지속시간을 PVP에 맞춰 좀 더 오래 가고 흥미진진한 PVP를 보고 싶다.



▶ 간단한 조작으로 화려한 무공 구사


기자가 주로 플레이한 권사의 경우 레벨이 오르면 오를 수록 다양한 연계 스킬이 추가되며, 단독으로 사용하는 스킬 외에도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등 특정한 조건 하에서 발동되는 스킬의 비중이 높다. 그 중에는 버추어파이터 이래 많은 게임에서 등장한, ‘멀리 날려보내고 상대가 일어나기 전에 점프하여 찍기’나 ‘공중으로 띄운 후 공중 콤보’나 ‘붕권’ 등과 같이 익숙한 것들이 많아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권사가 버추어파이터나 철권 계열의 맨주먹 대전 액션이라고 한다면, 검사나 역사는 소울 캘리버 시리즈 등 무기를 장비하고 싸우는 대전 액션을 즐기는 느낌이다. 그에 반해 기공사는 대전 액션보다는 기존 MMORPG의 원거리형 캐릭터에 가까워서 4개의 직업군 모두 자신의 플레이 취향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블소의 무공 사용 방식은 기존 게임들의 스킬별 단축키 지정이 아니라 특정 무공 성공시 무공 아이콘이 자동으로 적절한 무공으로 변경되는, 아이온의 연속 스킬 사용 형태에 가깝다. 그래서 연속으로 무공을 사용하기 쉽게 조작을 도와주나 오토 타겟팅과 같이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다.



키 하나로 필요할 때마다 자동으로 무공이 바뀌는 것은 UI에 표시되는 단축키의 수를 줄여서 조작이 쉽고 게임 자체에 더욱 집중하기 좋지만, 사용하지 않는 무공의 재사용 시간 혹은 사용 가능 여부 등이 표시되지 않아 불편하다. 이런 부분은 오토 타겟팅과 마찬가지로 UI에서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여 볼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 추가되면 좀 더 전투를 편하게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아이템 의존도는 비교적 낮다, 그러나 인벤토리의 압박은...


컨트롤에 비중을 높이고 아이템의 의존도를 낮춘 점도 블소의 특징 중 하나다. MMORPG의 아이템 중 큰 축을 차지하는 무기/방어구/소모품 중에서 방어구와 소모품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전투 중 사용하는 회복계열 아이템의 재사용 시간을 1분으로 설정하고 회복 및 버프 계열 직업이 없어서 사실상 회복 없이 전투를 해야 한다.



또한 캐릭터의 생존을 좌우하는 무기와 방어구 중에서 무기는 여전히 공격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나, 방어구는 단순한 의상으로 바뀌었다. 상하의나 신발 및 장갑 등을 따로 갖출 필요 없이 의상 하나로 모두 해결되고, 의상은 PVP 가능 여부 등의 기능만 지녔다. 마을에서 스크린샷 찍으려다 비명횡사한 기자 입장에서 PVP용 의상 중 충각단 복장을 마을에서 갈아입을 때는 주의 메시지창 하나 정도는 나오게 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 마을 안에서 함부로 갈아입으면 저승으로 직행하는 충각단 의상


기존 MMORPG 방어구의 능력치는 8조각의 보패가 담당한다. 보패는 그 자체로도 각종 능력치를 올려 주는 기능이 있고, 보패끼리 합성하여 효과가 상승한다. 또한 특정 보패를 일정 수량 이상 장착하면 셋트 효과를 얻는 등 기존의 방어구 부위 파츠 대신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보패의 숫자가 8조각이라는 점이 인벤토리의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이 문제.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인벤토리의 한계를 늘릴 수 있다고는 하나, 장비하는 아이템이 모두 인벤토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보패만 해도 8개에 각종 의상 및 무기와 장신구를 합치면 15~20개의 인벤토리가 순식간에 가득 찬다. 또한 보패를 여러 셋트로 모으거나 합성을 위해 가지고 있다면 더욱 압박이 심해진다.



▲ 모아서 조합하고 강화하는 재미는 있지만 인벤토리를 잡아먹는 주범인 보패


클로즈 베타 테스트 기간 중에는 창고가 구현되지 않아서 애써 구한 보패나 장비품을 눈물을 머금고 분해하거나 상점에 팔아야 하는 등 창고와 인벤토리의 부족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 다음 테스트 빨리 시작했으면


테스트 시작과 함께 국내외 게임 관련 매체와 게이머층의 시선을 사로잡은 블소. 테스트 전부터 각종 시연 영상 등을 통해 새로운 액션 MMORPG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고, 그 기대는 지스타의 체험 버전에 이어 이번 테스트에서 두 눈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로 보답받았다.



클로즈 베타 테스트인 만큼 공개된 콘텐츠도 적고 이것저것 부족한 점도 많았으나...라는 상투어는 일단 빼고, 나름 게임에 대해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콘솔 게임을 다양하게 플레이한 기자는 모든 일을 제치고 블소에 매달렸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다.





콘솔 게임과 온라인 게임은 아예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만약 억지로 비교해 보라고 한다면 블소의 액션성은 콘솔보다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시된 MMORPG 중 블소만큼 상대를 두들기는 손맛을 느낄 수 있던 게임은 흔치 않다는 점, 엔씨소프트가 자신들이 만들어낸 한국형 MMORPG의 틀을 스스로 깨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은 이번 테스트에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몬스터헌터 프론티어 온라인 이후 처음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든 온라인 게임 블소. 다음 테스트까지 기다릴 일이 아득할 지경이다. 그만큼 블소는 재미있고 잘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