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드디어 디아블로3의 등급 분류 심의가 ‘청소년이용불가로’로 최종 통과됐지만,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게임위가 ‘배틀코인’을 포함한 현금경매장 전체를 완전히 배제한 채 심의 등급을 결정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조건부 심의’ 자체가 워낙 이례적인 일인 탓에 디아블로3 심의를 둘러싼 진실 공방은 가중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심의 조작’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꺼내 들었으나, 이번 사건의 주체인 ‘블리자드’와 ‘게임위’가 말을 최대한 아끼고 있어 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에 인벤에서는 13일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게임위와 블리자드 관계자 모두에게 접촉해 심층취재를 시도했다. 이 글이 디아블로3 심의 논란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사실(Fact)은 무엇인가?

게임위는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용자간 아이템 현금거래기능은 실제로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검토대상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블리자드가 사용하는 용어와 게임위 용어의 불일치 탓에 이 부분에서 많은 오해가 발생했다.

‘이용자간 아이템 현금거래기능’이 오직 ‘현금화’ 혹은 ‘환전’만 말하는 것인지 배틀코인을 포함한 ‘현금경매장’ 전체를 말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벤에서 게임위에 재차 확인한 결과 게임위에서 ‘환전’뿐 아니라 배틀코인을 포함한 현금경매장 전체를 검토대상에서 제외하고 심의를 진행한 것이 맞다.

추후 서비스 과정에서 현금경매장을 도입하고자 한다면 내용수정신고 대상이 아닌 등급분류 재신청을 해야 한다는 내용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단독] 현금경매장 아예 빠졌다? 디아3 제출 버전과 달라 논란





왜 게임위는 ‘배틀코인’을 빼고 심의를 내렸나?

“실제로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임위의 답변은 한결같다. 그러나 이 부분도 많은 오해를 빚는 중이다.

블리자드가 제출한 빌드에서 아예 현금경매장이 없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중요한 기능 중 일부, 예를 들면 ‘배틀코인’이나 ‘환전’ 기능이 없었다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아서다.

인벤 취재에 따르면 블리자드가 제출한 빌드에는 현금경매장이 존재하고 있었고, ‘배틀코인’도 분명히 존재했다. 게임위의 설명에 의하면 배틀코인을 가지고 가상으로 현금경매장에서 아이템을 구입하는 것도 가능했다.

문제는 구현된 기능이 그 정도뿐이라는 것이다. 블리자드는 ‘배틀코인’이 타사 게임의 ‘캐시’와 유사한 포인트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것을 제삼자, 즉 게임위에게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배틀코인을 현금으로 결제해서 충전하는 부분과 획득한 배틀코인을 블리자드 스토어에서 사용하는 부분이 구체적으로 입증돼야 한다.

게임위는 블리자드가 제출된 빌드에 배틀코인의 개념에 대한 간략한 설명 외에는 실제 구현된 기능이 없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추후 블리자드가 배틀코인을 어떻게 구현할지 예측할 수 없었고, 심의 대상에서 포함할 수도 없었다.

혹여라도 블리자드가 현재 상태로는 개념이 모호한 배틀코인을 추후 ‘사행성’을 띤 컨텐츠로 구현시킨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심의를 내린 게임위에 있다. 이것이 게임위가 주장하는 조건부 심의의 이유다.



실수 #1 – 현금경매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블리자드

이 부분에서 블리자드의 실수 하나가 드러난다. 게임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블리자드는 디아블로3 현금경매장 기능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심의 결정 전에 제3 업체와의 ‘환전’ 부분까지 보여달라는 게임위의 주장은 과하다. 하지만, ‘배틀코인’과 관련된 기능들은 블리자드 혼자서도 충분히 구현 및 제출 할 수 있다. ‘배틀코인’과 관련된 기능이란 결제수단을 이용해 배틀코인(캐시)을 충전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획득한 배틀코인을 블리자드 스토어에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 ‘테스트버전’이 아닌 ‘정식판’ 심의였다면 심의 통과를 위해 현금경매장의 핵심 기능 중 하나인 ‘배틀코인’에 대해 더욱 자세한 설명을 보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블리자드는 작년 8월 초 매체기자들을 본사로 초대해 디아블로3의 ‘현금경매장’을 최초로 공개하고 대략적인 개념을 설명했다. 나름 전문가 집단이었던 매체 기자들뿐 아니라 심지어는 블리자드 코리아 직원들도 현금경매장에 대한 이해가 달라 밤늦게까지 열띤 토론이 펼쳐졌었다. 현금경매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워낙에 파격적이고 생소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행성 이슈 때문에 민감해질대로 민감해져 있는 게임위를 상대로 대략적인 개념 설명만으로 디아블로3의 심의 결정을 이끌어내려고 했다는 것은 너무 안이한 태도였다는 비판을 면하기가 어렵다.





실수 #2 – 정식 절차를 거스른 게임물등급위원회

매번 현금경매장의 타당성에 대한 논쟁으로 본질이 가려지는데 이것은 절차의 문제다.

디아블로3 심의에 대한 최종판단은 그 결과야 어떻든 게임위가 하는 것이 맞다. 심의 원칙에 따라 적절하다면 통과시키면 되고, 부적절하다면 등급 거부를 하면 된다. 디아블로3를 심의하는데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히고 ‘추가자료’을 요청하면 된다.

그런데, 게임위는 이례적으로 조건부 심의를 내렸다. 현금경매장은 자료가 부족해 심의할 수 없으니 나머지 부분만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주변의 압박이 거세니 일단 심의는 통과시키되 논란이 되는 부분은 뺀다는 식의 얄팍한 ‘꼼수’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게이머들이 가장 분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아블로3 이전에도 심의 내용의 일부분을 배제한 채 심의 결과를 발표한 사례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게임위 관계자는 '현금경매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최초로 나왔기 때문에 다른 게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달라는 답변을 했다.



한가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디아블로3 심의 결과에 대한 최초 발표는 게임위가 아닌 의외의 장소에서 터졌다.

한 열성 유저가 게임위가 심의하는 게임들의 고유코드와 게임위 심의 데이터베이스의 URL을 조합해 심의 결과를 확인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 유저는 그렇게 몇일을 추적하다 결국 13일 오전, 게임위보다 먼저 디아블로3의 등급분류 결정서 URL 주소를 확보하고 자유게시판에 올린다. (현재는 게임위 홈페이지에서의 링크 확인도 불가능해졌으며, 해당 유저도 본인의 글을 삭제한 상황)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게임위에서도 보도자료를 보내 디아블로3의 심의결과가 확정됐음을 공식 발표했다.

석연치않은 구석이 계속 마음에 남았는데 각 심의 항목에서 오직 ‘폭력성’만 체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디아블로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공포’도 ‘무’(無)였고, 이번 심의 연기의 가장 큰 이유로 예상된 ‘사행성’ 부문도 ‘무’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등급결정서를 보며 직감적으로 디아블로3의 심의 결과에서 ‘현금경매장’이 완전히 배제됐을 수도 있다는 의문을 처음으로 품기 시작했다.

또 한 가지 의문점은 유저가 게임위 시스템의 헛점을 이용해 확인한 등급 결정 내용이 게임위의 최종 결정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데이터베이스에 디아블로3의 자리를 미리 잡아두고 심의위원들이 모여 최종 처리를 어떻게 할지 고민 하는 중에 결과가 유출돼 급작스럽게 결론을 내야 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일단 통과시키되 현금경매장은 뺀다’는 이례적인 조검부 심의 결정으로 이어졌다면?

기자의 과대망상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게임위 관계자는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심의 결과가 일찍 유출된 것이 맞다.’며 ‘이 부분은 명백히 게임위 자체의 보안 실수기 때문에 할말이 없다.’고 밝혔다.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





디아블로3, 이후의 전망

현재 게임위의 입장은 이렇다. 이미 심의 결과가 내려졌기 때문에 심의 결과가 최대한 오해없이 국민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현금경매장, 배틀코인 등 생소한 개념들로 인해 논란이 커지는 것을 꺼려하는 눈치다.

단, 최초의 입장과는 다르게 추후 배틀코인이 일반 게임사의 캐쉬와 다를바 없고 사행성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등급분류 재신청이 아닌 ‘내용수정신고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견해를 조심스레 내비치기도 했다.

게다가, 블리자드가 요청한 공문에 게임위의 입장을 담은 답변을 보낼 예정이며, 블리자드가 원한다면 실제 디아블로3의 심의를 진행한 심의위원의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자리도 제공하고 싶다고 밝혔다. 되도록이면 원만하게 이 사태를 해결하고 싶다는 것이다.

블리자드는 게임위로부터 공식적으로 답변을 들은 후에야 이후 대처 방안을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블리자드의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현금경매장이 아예 빠진 빌드만 심의를 통과했기에 본사 핵심임원진들이 어떻게 결론을 낼 것인지에 따라서 국내 디아블로3의 운명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블리자드가 게임위의 심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예측하는 2월 베타, 3월 정식 출시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자료를 보강해서 아예 등급 분류 재신청을 하게 된다면 디아블로3의 국내 정식 출시는 다시금 미궁에 빠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