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토트넘 홋스퍼 선수단이 방한했을 때, 이들 역시 팬들을 위한 서비스의 일환으로 공개 훈련을 진행한 바 있다. 축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유명 구단이 다른 지역 혹은 다른 나라에 경기를 치르기 위해 방문하면 그 지역 팬들에게 자신들의 훈련을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축구 뿐만 아니다. 각종 스포츠 종목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나 팀은 1년에 한 번, 혹은 그 이상 공개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훈련을 대중 앞에 공개한다. 컬링의 '팀 킴'도 공개 훈련을 진행한 바 있으며, 각 종목의 올림픽 대표팀들도 소집 이후 공개 훈련에 나서 팬들과의 소통을 이어갔다. 또한, 스포츠 종목 국가대표가 소집됐을 때도 공개 훈련이 자연스럽게 진행되곤 한다.

'공개 훈련'은 말 그대로 자신들의 훈련 과정을 대중이나 매체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경기력이나 팀 훈련의 방향성을 알리고 소속 선수들이 훈련 받는 모습을 공개해 일종의 '팬미팅'의 역할도 겸할 수 있는 훈련을 뜻한다.

e스포츠에서도 이러한 공개 훈련을 시도해볼 순 없을까. 이미 다양한 종목에서 '공개 스크림'이라는 이름으로 몇 차례 진행되긴 하지만, 팬들에게 익숙한 느낌은 아니다. e스포츠와 공개 훈련이라는 단어가 좀 더 친해보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전략 노출에 대한 우려


공개 훈련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우려 사항은 전략 노출의 위험성이다. 아무래도 훈련 과정이 대중에 그대로 노출되다보니 팀에서 고려 중인 전략이나 전술 등이 여과 없이 공개될 위험을 안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예로 들어보자.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단은 대부분 연습 게임인 스크림을 통해 훈련을 진행한다. 스크림은 보통 다음에 만날 상대가 아닌 다른 게임단과 진행되고 여기서 다음 경기에 사용할 챔피언 조합이나 전략 등을 그대로 활용해보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활용된 전략들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기록을 남기지 않도록 넥서스가 파괴되기 직전에 모든 선수가 게임에서 나간다.

이러한 형태로 진행되는 스크림을 공개 훈련에 도입한다면, 당연히 전략 노출의 위험도가 올라간다. 단순히 리그 오브 레전드 만의 문제는 아니다. FPS인 발로란트와 오버워치, 카운터 스트라이크, 레인보우 식스 역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선수들의 순간적인 대응과 반응 속도 만큼이나 FPS에서도 팀의 전략과 전술이 상당히 중요한데, 이를 그대로 노출해야 한다는 리스크가 따른다.

기성 스포츠에서도 공개 훈련으로 전략이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은 존재한다. 그래서 축구와 같은 종목의 구단에서 공개 훈련을 진행할 땐 체력 훈련과 미니 게임 정도만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방한했던 토트넘 홋스퍼 역시 공개 훈련에서 강도 높은 체력 훈련과 미니 게임을 진행했고, 전략이나 전술을 노출할 수 있을 만한 훈련은 하지 않은 채 공개 훈련을 마친 바 있다.

작년 3월에 첫 공개 훈련을 진행했던 컬링의 '팀 킴' 같은 경우엔 실제 경기를 방불케 하는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다. 워낙 경기 중에 터져나오는 변수가 많은 만큼 공개 훈련을 실제 경기처럼 진행해도 전략 노출의 위험이 낮다는 판단이었을 듯 하다.

중요한 건 기성 스포츠의 공개 훈련의 경우에 전략을 노출할 만한 여지를 최소화한다는 점이다. 이를 e스포츠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하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보통 2주 마다 새로운 패치 버전을 적용한다. 이에 따라 LCK 등 프로 경기에도 2주에 한 번씩 새로운 패치가 적용되곤 한다. 패치가 바뀌는 주에 일회성으로 선수들의 스크림을 공개하는 방향은 어떨까. 대회에서 꺼낼 법한 고티어 조합이 아닌, 새로운 패치에서 버프나 너프를 받은 챔피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팀의 전략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다. 기성 스포츠의 공개 훈련처럼 일종의 팬 서비스 차원의 훈련을 진행하는 거다.

또한, 스크림이 아니더라도 선수들이 손을 풀기 위해 하는 문도 피구나 미드 1:1, 칼바람 나락과 같은 이벤트들을 공개 훈련에서 실행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는 스크림처럼 전략 노출의 위험성이 아예 없음은 물론, 선수들이 실제 훈련에 나서기 전에 손을 푸는 용도로 자주 활용되는 것이니 공개 '훈련'의 의미도 가질 수 있다. 종합해보면, 축구 공개 훈련에서 체력 훈련과 미니 게임만 진행하는 것처럼 LoL에서는 손 풀기 게임과 간단한 스크림 1회를 공개하는 방식이 괜찮아보인다.

FPS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실제 스크림을 공개하는 것이 전략 혹은 전술 노출의 위험이 높다면, 데스 매치와 같이 대회 경기 모드와 다른 것을 통해 선수들의 피지컬 체크 겸 공개 훈련의 느낌을 낼 수 있다.


2. '공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전략 노출의 위험도를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면, 이제 공개 자체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기성 스포츠에서는 팬들과 기자들이 훈련 장소에 직접 가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기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e스포츠는 다르다. 선수들의 플레이는 게임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수들이 훈련하는 연습 장소에 간다고 해서 그걸 공개 훈련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공개 훈련에 참여하는 선수들의 인게임 플레이를 방송하는 것이다. 옵저버가 한 명 투입되어 선수들이 스크림을 하거나 여러 다른 모드의 게임으로 훈련하는 걸 관전하고, 그 관전 화면을 송출하는 방법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과거 리브 샌드박스에서 시도했던 공개 스크림이 있다. 아카데미 게임단들이 대거 참여해 경기를 진행했고 이를 방송으로 송출한 바 있다.

이미 리그 오브 레전드 뿐만 아니라 카트 라이더 등 다른 종목에서는 공개 스크림을 진행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리브 샌드박스와 DFI 블레이즈가 진행했던 공개 스크림이 좋은 예시다. 이들의 공개 스크림은 리브 샌드박스 카트 라이더 게임단 소속 박인수의 개인 방송을 통해 송출됐다.


3. 팬 서비스의 차원에서


공개 훈련은 기성 스포츠에선 훈련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목적은 팬 서비스다. 팬들은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모습만 볼 수 있었던 선수들의 훈련 장면을 직접 볼 수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낀다.

구단 측에서도 팬 서비스를 진행함과 동시에 선수들의 기본적인 훈련을 병행할 수 있어 큰 부담 없이 공개 훈련을 진행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해외 인기 구단이 월드 투어를 진행하거나 국가대표팀이 새롭게 소집되면 어김없이 팬들과 기자들을 모아놓고 공개 훈련을 진행하곤 한다.

e스포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팬들에게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공개하고 어떤 훈련을 하는지 알려줄 수 있으며 전략 노출이 되지 않는 선에서의 훈련만 공개한다면, e스포츠 공개 훈련도 팬 서비스 차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성 스포츠의 공개 훈련이 매번 진행되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선수들이 훈련에 집중해야 하는 시즌 동안엔 진행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e스포츠도 마찬가지일 터.

가장 좋은 시기는 게임 내 새로운 패치가 적용됐을 때, 혹은 스토브 리그가 끝난 직후가 좋아보인다. 그럼 선수들은 평소 훈련과 비슷한 방식으로도 새로운 패치가 적용된 후에 어떤 것들이 좋아지고 나빠졌는지 파악할 수 있고, 스토브 리그 직후에 완성된 새로운 로스터가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예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팬들은 선수들의 훈련을 공개적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e스포츠의 다양한 종목에서도 기성 스포츠처럼 공개 훈련이라는 것이 자리잡고 하나의 팬 서비스 문화로 여겨진다면, 꽤 흥미롭지 않을까. 조금씩 여러 e스포츠 종목에서 공개 훈련, 공개 스크림이 시도되고 있는 만큼 e스포츠와 공개 훈련이라는 단어 간 거리감이 더욱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