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포터 캐리로 회자될 만한 경기가 나왔다. 지난 17일 T1과 DK의 대결을 결정짓는 마지막 3세트에서 '케리아' 류민석이 보여준 슈퍼 캐리였다. 최근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한 명의 서포터가 이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기가 있었나 싶다. '케리아'에게 붙는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딱 들어맞는 경기였다.

평소 기복이 심한 선수가 이 정도 기량을 선보였다면, 그의 활약은 '주사위 6'이 떴다는 말 정도로 평가했을 듯하다. 하지만 '케리아'는 T1이 흔들리고 패배할 때도 꾸준히 제 역할을 해왔던 선수다. 서포터의 기본 역할과 관련된 지표라고 할 수 있는 분당 와드 설치수(1.9)와 제어와드 설치수(0.7)에서 이번 서머 스플릿 서포터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케리아'는 평상시 기본부터 충실히 해온 선수라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이번 시즌 T1의 상황이 안정적이지 않았기에 '케리아'의 꾸준함과 캐리가 더 돋보인다. '케리아'는 10인 로스터 기용으로 스프링 시작부터 다양한 팀원과 합을 맞춰야 했다. 다른 선수들이 기량 저하로 교체될 때면, 한동안 쌓아왔던 팀합은 다시 이전 단계로 돌아가야 한다. 성적이 부진할 때마다 로스터를 교체해야 한다는 말들이 나왔고, 서머에는 감독-코치진마저 갑작스럽게 팀을 떠나면서 혼란이 더 커졌다.

누군가는 이런 T1에서 변함 없이 자리를 지켜줘야 하는 상황. '케리아'는 그동안 묵묵히 단독 주전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교체 멤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맡은 바를 해내면서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감독-코치진과 주전 로스터가 바뀐 정신 없는 상황에서 캐리를 했다는 게 '케리아'의 존재감을 더 빛나게 했다.


쓰레쉬와 케리아
협곡 어디에도 '케리아' 캐리야

▲ 2020 LCK 서머 오프닝 '케리아'


T1 vs DK전 3세트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케리아'의 쓰레쉬는 남다르다. 다방면에 뛰어난 쓰레쉬가 서포터 캐리의 전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챔피언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쓰레쉬로 캐리를 선보이진 못한다. '케리아'는 해당 하이라이트 영상을 자신의 '매드 무비'로 만들 만큼 완벽한 쓰레쉬 플레이를 소화해냈다.

'케리아'가 이 정도로 잘할 줄 알았으면, 상대인 담원 기아도 밴을 유지했을 것이다. 사실, '케리아'의 쓰레쉬는 이번 시즌 성적이 좋지 않았다. 17일 이전 경기에서 3패로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으니까.

▲2020 DRX 시절 쓰레쉬 전적

최근 패배에 잠시 가려졌지만, 쓰레쉬는 '케리아'를 이 자리까지 올려놓은 대표 챔피언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 DRX에서 활동을 시작한 '케리아'는 첫 스프링 스플릿부터 '영 플레이어'에 선정된 선수였다. 당시 '케리아'는 기습적으로 '상체'로 향하는 로밍 플레이로 많은 LCK 팀들의 허를 찔렀다. 쓰레쉬를 중심으로 해당 플레이를 선보이며 '괴물 신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팀에 2020 LCK에서 대회 경험이 많지 않은 '도란-표식'에게 힘을 실어주는 운영이었다. 같은 신인들 사이에서도 '케리아'는 활동 범위가 남다른 선수였다.

그리고 T1-DK전에서 오랜만에 발이 제대로 풀린 '케리아'의 모습이 다시 나왔다. 라인전 확정 킬은 물론, 탑-미드로 향해 '상체' 팀원들에게 힘이 되주는 활약은 신인 시절보다 한층 더 날카로워 보였다. 괜히 2020 LCK 서머 오프닝에 '케리아'를 대표하는 챔피언으로 쓰레쉬가 등장한 게 아니란 것을 오랜만에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이상의 가능성
신인왕 시작, 또 다른 왕 노린다


'케리아'가 더 무서운 건, 쓰레쉬 픽밴만으로 그의 활약을 막을 수 없기에 그렇다. 오히려 상대가 아펠리오스-쓰레쉬를 꺼내면, 기다렸다는 듯이 칼리스타-니코로 받아치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경기에 입힌다. 어느 봇 듀오와 만나도 자신 있다고 말하는 농심 레드포스의 '덕담-켈린' 듀오는 T1의 칼리스타-니코를 상대할 때, "정신을 잃을 뻔 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케리아'의 캐리 가능성은 다른 챔피언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이번 서머에서 리브 샌드박스에게 패배한 경기가 있었는데, 승패와 상관 없이 '케리아'는 리 신으로 활약했다. 상대 원거리 딜러 '프린스' 이채환을 상대로 다이브 솔로 킬을 해내면서 뚜렷한 인상을 남긴 적이 있다. 당시 리 신은 탑-미드와 같은 솔로 라인으로 주로 가는 픽이었음에도 서포터로 등장했다. T1 입장에서 리 신을 서포터로 스왑할 가능성이 생기게 되면서 픽밴 단계에서 상대 역시 한 번 더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리 신을 잘 다루는 '케리아'의 플레이가 곧 T1 밴픽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와 관련해 '케리아'는 "1티어 챔피언은 어느 라인을 가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연습한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당대 1티어 챔피언을 언제든지 서포터로 쓸 수 있도록, '케리아'는 꾸준히 연습-연구를 해왔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어떤 챔피언이 서포터로 등장해 이상하지 않을 듯하다.


2002년생인 '케리아'에겐 앞으로가 활동할 시간이 더 많이 남아 보인다. 이제 '영 플레이어' 수상 후 1년이 지나고, LCK 2년 차 활동을 맞이했다. 동시에 정신 없는 팀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해왔다. 이런 꾸준한 '케리아'의 모습이 있었기에 그의 미래를 언급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오랜 경력을 이어가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사실, '케리아'는 시작부터 '신인왕'을 넘어 또 다른 '왕'의 자리를 노리는 선수였다. 신인 시절 "장기적으로 봤을 때, '페이커' 이상혁 선수 정도의 커리어를 쌓고 싶다. 그 정도까진 어렵겠지만, 가장 많은 우승을 기록한 서포터가 되고 싶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큰 포부를 말하는 선수는 많지만,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1년이 지난 지금, '케리아'가 했던 말에 힘이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