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my oh my God 예상했어 나~

저는 상위 9%입니다.

어떤 거냐고요? 바로 음악 감상 횟수 말입니다. 작년에는 무려 20,094분을 들었을 정도로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듣는 편입니다. 인생의 20%를 지하철에서 보내는 경기도인이면 이어폰은 핸드폰 다음으로 꼭 챙기는 아이템입니다. 대중교통에서 잠을 자는 방법도 있지만, 자동차 소음 때문에 편히 잠을 청할 수가 없어 귀에 이어폰을 꼽게 됩니다. 이어폰을 들고 나오지 않는 날엔 편의점에서 가장 싼 이어폰을 사고 난 뒤에야 마음의 안정을 찾습니다.

그런 제가 최근에 빠진 음악이 있는데요. 바로 '게임 배경 음악(BGM, 브금)'입니다. 가사가 따로 없는 음악임에도 철없이 게임을 즐기던 꼬꼬마 시절이 절로 떠올라 고개가 까딱거리더라고요. 어느덧 20대 후반을 지났지만,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조용히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으면 그때 시절이 펼쳐지는 게 금세 마음이 편안해진달까요.

흔히 말해 '추억 보정'이 된다고 하죠. 옛날 음악을 들으면 그 당시 행복했던 기억들과 함께 다양한 감정들이 되살아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요소를 저격하듯 MBC 프로그램 '놀면 뭐 하니'에서 2000년대 감성을 듬뿍 담은 곡들도 지난 몇 달간 음악 차트 상위권에 머물며 전 국민에게 풋풋한 싸이월드 감성을 선물하기도 했죠.

우리는 그저 음악을 듣는 것 뿐인데 어떻게 잊고 있던 언제인지 모를 않을 정도로 아득했던 기억들이 다시 새록새록 떠오르며 추억에 잠기게 하는 걸까요? 저도 무척 궁금했지만, 확실한 답변을 몰라 그저 내버려 두기만 했죠. 알아두면 쓸모있는 신비한 지식을 위해서 제가 직접 알아봤습니다.




청각과 기억력의 관계


"밑장을 빼면, 소리가 달라 소리가."

소리로 밑장 빼기를 알아챌 수 있는 '평경장' 처럼 사람의 청각은 아주 일찍 발달합니다. 임신 6주 차가 되면 태아의 귀가 만들어지며, 5개월엔 소리를 듣는 달팽이 관이 형성됩니다. 가끔 아이들이 배 속에 있었을 때 엄마 아빠가 한 말을 기억한다고 말을 하곤 하는데, 실제로 아이들은 다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청각은 뇌 활동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소리를 명확히 듣지 못하면 기억의 일부 기능이 저하됩니다. 기억력엔 장기, 단기 기억이 있습니다. 장기 기억을 좀 더 파헤치면 암묵적 기억, 외현 기억이라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그중, '암묵적 기억'이 바로 이번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암묵적 기억은 별도의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소위 말해 몸이 기억한다고 하죠? 군대 얘기하면 'PTSD' 떠오른다고 할 때의 PTSD도 암묵적 기억의 한 종류입니다. 더 나아가, 암묵적 기억은 '고전적 조건화'의 한 형태이기도 합니다. 고전적 조건화는 마치 종소리를 들으면 무조건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우리 역시 음악을 듣는 동시에 기억에 남을 만한 감정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똑같이 반응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음악을 들으면 추억에 잠기는 원인입니다.(출처: 하이닥) 조금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듣기만 해도 자동으로 추억여행을 떠날 수 있는 '메이플스토리' 게임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 좋아요 수만 봐도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공감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메이플스토리는 2003년에 출시되어 현재까지 서비스 중인 한국 대표 MMORPG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메이플스토리에도 지나간 시간만큼 유저들의 추억도 많이 쌓였을 것으로 봅니다. 해당 게임의 인게임 음악 영상엔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듯 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바로 댓글 창에 본인이 가장 재밌게 플레이 했던 시절의 기억과 그때 당시의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남긴 댓글들은 읽기만 해도 어떠한 부분에서 울고, 웃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저마다 갖고 있던 학창 시절의 반짝이는 추억들이 음악을 듣자 통해 다시 살아난 셈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유독 10대 시절에 플레이했던 게임들을 더 떠올리게 되는 걸까요? 이에 대해서는 인간의 심리를 좀 더 깊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이것도 라떼와 관련이 있다?

▲ 라떼는 말이야.. (홀짝)


인생의 황금기는 사람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철없던 10대 시절이 될 수 있고,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20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25세 이전을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좋은 경험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미국의 한 심리학 교수인 크리스티나 스타이너에 의하면 일부 노년층에게 전생에 대한 기억을 회고하게 했을 때, 대부분 15세에서 30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전하기도 했습니다.(출처: 하이닥)

이러한 현상을 '회고 절정'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라떼는 언제가 제일 좋았었다~" 라는 말입니다. 뇌는 새롭게 받아 들이는 기억은 오래 기억하지만, 반대로 반복되는 경험은 빠르게 잊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 적 들었던 음악들이 더욱더 기억에 남고 이후 음악 취향을 형성하는 데에도 한 몫을 하게 됩니다.

▲ 우리 모두에겐 잊지 못할 찬란한 어린 시절이 있습니다.
(출처: '짱구는 못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 中 유튜버 '신세카이')


'짱구는 못 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 영화라고 할 정도로 명작으로 꼽힙니다.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보러 갔다가 오히려 부모님이 울고 나왔다고 평이 자자하며 스토리, 연출, 음악 모든 부분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해당 영화에서도 회고 절정을 볼 수 있다는 거 아시나요?

어느 날 돌연 등장한 '20세기 박물관'에 어른들이 어린 시절 추억에 빠져 그곳에 계속 살려고 했죠. 짱구의 장난을 매번 뒷수습하고 듬직해 보였던 어른들도 마음 한쪽엔 아이 같은 모습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저 한없이 멀기만 느껴졌던 어른들이지만 20세기 박물관에 들어선 그 순간만큼은, 그들도 게임 음악을 들으며 좋았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우리와 다름없어 보였습니다.



나만의 20세기 박물관

▲ 슬램 덩크가 불러일으킨 파급력은 다양 분야에서 퍼지고 있었다.


2023년 콘텐츠 산업을 대표하는 단어 '콘고지신'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콘텐츠'와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합성어입니다. 과거의 콘텐츠를 이용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나가는 뜻입니다. 최근 국내 극장가를 강타하며 농구 붐을 일으킨 '슬램 덩크'가 대표 주자입니다. 완결이 난 지 27년이 지났지만 슬램 덩크에 대한 사람들의 인기는 여전했습니다. 2023년 첫 10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로 등극했으며, 여의도 현대 백화점에 열린 슬램 덩크 팝업 스토어는 새벽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구르듯 반복되는 일상에, 흘러가는 시간을 보면 매일 심심하게 느껴질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위해 이것저것 해보지만, 결국엔 내가 가장 재밌게 즐겼던 것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며, 그 곳에서 안정감을 찾게 됩니다. 어쩌면 지금 슬램 덩크에 열광하는 사람들, 음악을 들으며 추억을 회상하는 사람들 모두 나만의 20세기 박물관을 하나씩 짓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정판 굿즈를 살 수 있는 각종 팝업 스토어도 좋지만, 무미건조한 삶에 한 줄기 빛처럼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이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을 것 같네요. 오늘도 어김없이 제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라고 생각하는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 여행을 떠나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20세기 박물관엔 어떠한 것들이 있나요?

▲ 저는 요즘 지우가 우승한 포켓몬 마스터즈 토너먼트를 다시 보는 중입니다.
(출처: 포켓몬스터W 126화 中 'Tooniverse-투니버스' 공식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