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개발자컨퍼런스(NDC) 발표자 소개] 양승명 개발자는 야생의 땅: 듀랑고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으며 주로 게임 디자인을 총괄한다. 또한, 기술적인 이슈나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관련 이슈도 관리하고 있다. 과거에는 마비노기 영웅전과 다크에덴 프로젝트에서 서버 프로그래머를 맡은 바 있다. 2010년 NDC부터 서버와 게임 디자인 관련 이슈로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다.

양승명 개발자의 '꿈을 현실화하기, '야생의 땅: 듀랑고'의 게임 디자인 역사' 강연은 샌드박스 MMORPG를 표방하며 개발하기 시작한 '듀랑고'가 현재의 모습으로 론칭하기까지 있었던 게임 디자인 결정들을 리뷰한다. 그 과정에서 원래 만들려고 했던 게임과 실제로 완성된 게임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고, 그렇게 된 이유로부터 참관객들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

※ 기사는 편한 전달을 위해 강연자의 시점에서 서술했습니다



'망겜'을 만들고 싶은 게임 개발자는 없다. 어떤 게임이든 개발자의 꿈으로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 꿈은 흥행일 수도 있고 매출이 목적일 수도 있다. 또는 명예나 자아실현, 신념일 수 있고 어릴 적 경험을 재현하고자 하는 추억일 수 있다.

이런 꿈은 만들어가면서, 개발자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현실은 비용이나 기술의 변화일 수 있고 트렌드의 변화나 꿈을 이루고 싶지 않은 나의 변화일 수 있다. 팀원과의 불화로 인해 개발을 접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꿈은 현실로 만드는 것은 타협의 과정이며, 고통스럽다.

▲ 꿈과 현실, 당신의 선택은?

"듀랑고는 당신이 꿈꾸던 게임인가?"

'야생의 땅: 듀랑고' 출시 이후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 한 기자가 내게 물은 질문이다. 물론, 이은석 디렉터의 꿈이 훨씬 많이 반영되어 있다.(웃음) 당시에는 '다른 게임에 비해 비교적 꿈과 로망을 넣은 거 같다' '참신하다' '유니크하다'라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그 질문으로 듀랑고 개발 초기에 가졌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 듀랑고는 '퍼머넌트 MMO 월드', '새로운 성장 모델', '변화하는 환경', '진짜 같은 체험', '높은 수준의 아트와 기술' 그리고 '대중적인 성공'이란 꿈을 가지고서 개발을 시작한 게임이다.

그리고 이 꿈을 어떻게 이루려 했는지, 어떻게 변했는지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 리뷰하고자 한다.


듀랑고의 첫 번째 꿈 '퍼머넌트 MMO 월드'

▲ 듀랑고 초기 대륙 디자인

'퍼머넌트 MMO 월드'는 연결된 하나의 세계를 의미한다. 동시에 많은 유저가 한 곳에서 플레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따로 하우징 구역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이나 개척과 건설을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즉, 유저가 지도를 만드는 게임을 꿈꿨다.

처음은 모든 유저가 한 곳에서 플레이하도록 단순한 거대 대륙 모델로 시작했다. 그런데 인구 밀도가 문제로 떠올랐다. 인기가 많아져 인구가 유입되면 꽉 차기 마련이고, 그렇다고 대륙을 너무 크게 만들면 게임이 버벅댄다. 대안으로 제시한 방안은 '여러 대륙' 모델로, 유저 유입에 따라 신대륙이 출현해 유저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대륙' 모델은 '늙은 대륙' 또는 '젊은 대륙' 문제가 발생했다. 늙은 대륙에는 유저가 많고 젊은 대륙에는 적다. 또한 '듀랑고'는 조난으로 시작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신규 유저가 늙은 대륙으로 가버리면 곤란하다. 늙은 대륙은 이미 개발이 끝났기 때문에 생존은커녕 쾌적하기 때문이다. 이는 듀랑고의 기본 컨셉과 거리가 먼 디자인이다.

결국 대륙 문제는 정착지(안정섬)와 탐험지(불안정섬)를 분리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안정섬에서는 사유지 개척과 건설에 투자하도록 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특징을 부여했다. 불안정섬은 탐험할만한 가치가 있도록 만들되 주기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정착지가 안정되다 보니 사유지의 지리적 이점이 문제로 부각됐다. 듀랑고를 한 유저라면 알다시피 사유지는 강 근처가 좋다. 그런데 좋은 땅은 이미 다 사유지가 되었으니 신규 유저가 땅을 가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 게임 시작 직후에는 어느 땅이 좋은지 모르니 엉뚱한 곳에 사유지를 갖는다. 이 문제로 인해 듀랑고에 익숙해진 후 자연스러운 이사가 필요하도록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나온 게 마을섬과 도시섬이다. 마을섬은 튜토리얼 단계에 해당해 게임과 사유지 규칙을 파악하도록 디자인했다. 파악한 뒤 자연스럽게 도시섬으로 이주하도록 만들었다.

한 가지 더 꿈꿨던 것은 '사유지 쟁탈전'이다. 유저 간 싸움으로 지도가 만들어지는 게임을 구상했었다. 투자해둔 사유지가 빼앗기는 경험... 꽤나 자극적인데, 개발 당시에는 이 자극적인 문제를 잘 풀 방법이 없었다. 또, 사유지가 빼앗기는 경험은 캐주얼 유저층이 이탈할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는 PvP가 메인 콘텐츠인 무법섬을 추가하면서 해결했다.


듀랑고의 두 번째 꿈 '변화하는 환경'

▲ 지형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생존조건도 달라지길 원했다

'듀랑고' 개발 초기에 변화하는 환경을 위해 인과율적인 환경 시뮬레이션으로 테스트를 진행했었다. 타일 단위로 비옥도를 계산해 씨앗을 퍼뜨리는 식물들을 배치하고, 주변에는 식물을 먹는 동물을 배치, 초식동물 주변에는 육식동물을 배치하는 식이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던 것은 유저 플레이에 따라 자원의 분포가 변화한다는 점이다. 또한 자원의 멸종 및 과번식 현상이 발생했고, 동물이 특정 지역에 몰려 죽는 무덤 현상이 발생했다.

결국 맵의 크기가 시뮬레이션 전보다 훨씬 넓어지게 됐다. 맵이 넓어지면서 게임이 잘 작동하기 위한 빠른 로직이 자연스레 필요하게 됐다. 또한, 환경이 중요해지다 보니 자연물이 아름다워야 했다. 변화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아트 그래픽에 대한 요구 조건도 전보다 증가하게 됐다.

환경 디자인 시 중요하게 여긴 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특정 자원이 게임 진행에 필수라면, 멸종 또는 고갈되게 해서는 안 된다. 좋은 자원 앞에는 강한 공룡이 지켜야 하는 등 난관이 있도록 했다. 유저가 보다 손쉽게 자원을 가질 수 있도록 자원스팟(크레이터)를 도입했고, 너무 엄밀한 인과율은 포기했다.

결국 '변화하는 환경'의 꿈은 절차적으로 생성되는 환경을 만들면서 이루었다. 아름답고 그럴싸한 자연물을 배치했고 콘텐츠 디자인 의도가 반영된 자원을 유저가 수급할 수 있도록 했다.


듀랑고의 세 번째 꿈 'NO NPC, NO QUEST'

듀랑고에서의 성장은 흔한 게임들과는 다른 경험을 주고 싶었다. 이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단순히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 정해진 퀘스트를 해결하게끔 하는 게임 디자인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실제 조난당한 현대인이 할만한 체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좋아. 그런데, 어떻게?"

이은석 디렉터를 비롯해 많은 개발자, 기획자들이 던진 물음이다. 퀘스트 없이 어떻게 게이머의 행동을 이끌 수 있을까?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탈러, 캐스 R. 선스타인 공저 '넛지'를 참고하면, 사람의 행동을 이끌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이득만 제시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자극도 필요하다.

자극으로 제시한 것은 생존과 협력이다. 생존은 인간의 본성으로, 사람은 어떤 환경이든지 살아남기 위해 행동한다. 실감 나는 생존을 위해 예능 정글의 법칙이나 유명한 방송인 'man vs wild' 등을 참고했었다. 생존 플레이를 위해 다양한 게이지를 초기에 준비했었는데, 식량과 식수, 체온유지, 질병 등이다. 그런데 이런 게이지는 모바일 환경에서 보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어 최대한 간소화했다.

생존의 재미를 위해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한 생존 방송에서 유리병으로 화살촉을 만드는 장면, 생존 장인과 요리 장인이 만나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장면 등이 디자인에 도움이 됐다. 특히 생존 장인이 통나무로 도마를 만들어 요리 장인이 조리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자원의 최대 활용은 속성 기반 제작 아이디어로 뻗었다. 자원을 다양하게 활용하게끔 유도해 진짜같은 생존 체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를 통해 채집자와 제작자 사이의 협업을 강조했다.

▲ 초기 듀랑고 회의 결과물, 속성이나 내구도 아이디어가 적혀있다

또한, 사람은 나한테 필요한 걸 할 때보다 다른 사람이 필요한 걸 해 주는 일에 훨씬 보람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듀랑고에서는 다른 사람이 필요한 물건을 제작해 제공해주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협업 플레이는 어느 정도 검증됐지만, 솔로 플레이가 문제시됐다. "어떻게 솔로플 유저에게 협력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것인가?"가 테스트 때마다 약점으로 대두됐다. 장터를 통한 느슨한 협력을 장려했지만,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우선 솔로 플레이의 유저 대부분은 신규 유저이다. 신규 유저는 장터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모를뿐더러, 게임 진행이 막히면 거의 바로 이탈했다. 일부 신규 유저 중에는 장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걸 치트처럼 받아들이시는 분도 있었다. 이로 인해 신규 유저를 위한 초반 온보딩(onboarding)이 필요하단 걸 깨닫게 됐다. 온보딩은 신입사원이 회사에 애정을 갖게끔 하는 일종의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이 온보딩을 신규 유저에게 적용했다.

온보딩은 단기 가이드와 장기 가이드로 나누어 준비했다. 단기 가이드에서는 게임 시스템에 대한 교육과 행동에 대한 반응형 가이드를 마련했고, 장기 가이드는 주로 성장에 대한 안내가 이루어졌다.

신규 유저에 대한 온보딩은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되도록 퀘스트처럼 보이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또 듀랑고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게임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일직선 가이드보다는 필요할 때 나타나는 반응형 튜토리얼로 준비했다. 우리는 유저가 주도적으로 동기부여를 찾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같은 초기 온보딩은 실패했고, 솔로 플레이 유저군이 동기부여를 잃는 현상이 반복됐다.

▲ "이 고통스러운 생을 굳이 이어가야할 삶의 궁극적 목표를 찾을 수 없었음다
굳이 기술개발을 해야 하는가. 이옷이나 저옷이나 그게 그거인데
굳이 사냥을 더 잘해야하는가. 생선구이나 해먹어도 등따숩고 배부르면 장땡이지"
- 테스터 의견-

결국 대규모 테스트를 앞두고, 초반 리텐션이 최우선 과제로 선정됐다. 우리는 주저했던 '일직선 가이드'를 도입했고, 이 가이드에 약간의 스토리를 포함해 넣을 수 있는 가이드는 다 집어넣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내부에서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전에는 억지로 했던 내부 테스터가 일직선 가이드를 넣으니 점심을 먹으며 2시간 이상 듀랑고를 붙잡고 있는 일이 생겼다.

(일직선 가이드를 주저했던) 이은석 디렉터 "갓겜이 되었구나"

그런데 가이드가 끝난 뒤 갑자기 할 게 없어져 당황하는 테스터가 생겼다. 스스로 동기부여가 될 때까지 붙잡을 플레이가 필요했다. 넣기를 주저했던 퀘스트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 그리고 정말 만들었다 '듀랑고스럽게'

퀘스트 적용을 위해 만든 것은 '자동 생성 퀘스트' 시스템이다. 각 섬의 지형과 자원 분포가 절차적으로 생성되듯 퀘스트도 만들어져야 했다. 자원 분포 생성의 근거 데이터를 퀘스트 생성에 활용했다.

이래서 생긴 게 무전기 대학이다. 듀랑고 분위기에 맞게 무전기로 단체가 임무를 부여하는 식이다. 이는 당시에 뛰어난 시나리오 라이터가 합류한 덕분에 가능했다. 이때 생긴 스토리와 캐릭터들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다양한 과정 끝에 솔로 플레이어 온보딩이 성공적으로 작동됐다.

"no npc, no quest로 시작한 게 결국 yes npc, yes quest로 됐으니 실패한 게 아닌가?"라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어느 정도는 맞다. 퀘스트라는 장치의 동기부여 위력을 재발견하는 계기이기도 하다.(웃음)

그러나 no npc, no quest로 시작한 덕분에 듀랑고만의 유니크한 동기부여 장치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퀘스트를 피해온 개발 기간이 헛되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엔피씨와 퀘스트를 염두에 뒀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테니까.


듀랑고의 네 번째 꿈 '특별한 성장 모델'


듀랑고 개발 초기에 이은석 디렉터가 "3레벨 기반 성장 모델을 만들자!"라고 했을 때, 난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 했다. 그래도 디렉터가 하자고 하니 일단은 시작했었다.(웃음)

우선 두 개로 나뉘는 성장 모델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샌드박스 성장 모델은 높은 성장 자유도를 제공하는 대신 복잡한 스킬트리가 존재한다. 유저 스스로 동기부여를 찾아야 하고, 높은 학습 곡선을 보인다.

캐주얼 성장 모델은 제한된 자유도를 보이지만 단일 레벨 성장으로 유저가 배우기 쉽다. "저 몬스터를 500마리 잡으면 경험치 1%를 줄게" 식이다. 직관적이고 낮은 학습 곡선을 보인다.

위 성장 모델의 타협안으로 제시된 게 '3레벨 성장'이다. 이때서야 이은석 디렉터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3레벨 성장은 자유도 높은 성장 제공하면서도 낮은 학습 곡선을 보인다. 가이드는 장래희망에 따라 주어진다. 듀랑고 시작 시 직업을 선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기 성장 모델은 전투와 생활이 각각의 스킬트리를 갖도록 했다. 행동과 연구 시간에 기반해 스킬의 레벨을 올리고, 전투와 생활 레벨을 역산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샌드박스 성장 모델을 테스트했다.

우리가 원한 바람직한 성장은 '길고 꽝이 없는 성장'이다. (이것저것 다 올린)잡캐와 장인의 밸런스를 유지하고, 모든 분야를 동시에 섭렵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는 자연스러운 협업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만들고 나니 학습 곡선에 문제가 생겼다. 콘텐츠가 증가함에 따라 스킬 트리가 복잡해졌다. 이 문제는 계열별로 스킬 트리를 분리해 해결했다. 이외에도 성장 트리를 보는 게 복잡하다는 문제와 동기부여가 잘 안 된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결국 대규모 테스트를 앞두고 특단의 조치로 단일 레벨을 도입했다. 모든 행동에 경험치를 부여하는 식이다. 그러나 단일 레벨 도입을 하니 전투로 레벨을 올리고 생활 스킬을 습득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어느 유저의 경우 "나는 평생 사냥만 했는데, 크고 보니 대장장이가 되어있더라"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금기를 깨기로 했다.

▲ 금기를 깨니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새로운 성장 모델의 조건은 두 가지로, 샌드박스 RPG의 자유도 높은 성장을 보이면서 대중적인 학습 곡선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샌드박스를 넣은 이유는 다양한 대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고 대중적인 학습곡선은 너무 생소한 모델은 곤란해서이다.

이후 나온 대안들로 많은 문제가 해결됐다. 우선 성장 모델에 대한 이해가 쉬워졌고 레벨업의 동기 부여도 제공됐다. 또한, 기존 모델의 장점도 유지됐다. 잡캐와 장인의 밸런스 유지와 계열별 성장 자유도 역시 지켜졌다. 학습 곡선이 낮아지니 3개 이상의 계열이 가능해지고 직업 정체성이 생겼다는 추가 이득도 생겨났다. 게이머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 자연스레 유저 간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듀랑고의 다섯 번째 꿈 '전투'

▲ 전투에 욕심은 없었지만, 담당자가 마비노기 영웅전 출신이었다

사실, 초기 듀랑고는 전투에 큰 꿈을 가지지 않았다. 그럴싸한 수렵 경험만 제공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당시 듀랑고에 투입된 개발자들이 '마비노기 영웅전'을 만들던 사람들이다. 전투에 대한 눈이 높았다. 제자리 전투는 안 되고 지연이 있어도 합이 맞기를 원했다. 거기다 동물 추격 플레이도 원하더라.

전투 개발자들의 꿈은 글로벌 단일 서버를 목표로 하는 현실과 부딪쳤다. 듀랑고는 글로벌 단일 서버를 꿈꾸고 만든 게임이어서 극단적인 분산 아키텍처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즉, 전투 중 이동이 많으면 여러 노드에 걸쳐 동기화 부하가 일어난다. 또한, 균일하지 않은 동기화는 지연됐다.

이로 인해 전투 담당자들이 많은 고생을 치렀다. 서버 이슈로 전투 품질이 저하돼 테스트 피드백을 받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충분한 구현 이후 테스트를 했지만 실패했다. 개선이 어려운 분야라 여겼다.

듀랑고에 맞는 전투를 위해 크게 네 가지를 타협했다. 추격 대신 대치 기반의 전투, 전투 시야는 제한, 평시/전투 패드 이원화, 함정 플레이 제거이다. 전투 개선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는 다른 요소들에 비해 더디게 개발된 분야이기도 하다. 앞으로 좋은 개선 방향을 찾겠다.


듀랑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외부인 테스트'

▲ 쓴소리를 들을 수 있는 외부인 테스트가 필요하다

듀랑고는 워낙 많은 꿈을 가지고서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그래서 출시한 것만으로도 신기하다. 출시에는 외부인 테스트가 큰 도움이 됐다. 아무래도 내부 테스트는 '쓴소리'를 듣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냥 넘어가는 부분도 많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많은 허점이 발견된다.

반면, 외부 테스트는 다르다. 쓴소리가 많이 나온다. 특히 동기 부여와 학습 곡선에 대한 테스트는 외부인 대상 테스트로만 검증할 수 있다. 그리고 테스터로부터의 피드백은 심층 인터뷰, "솔직히 접고 싶었지?"와 같은 강한 질문을 던지며 노이즈를 제거해야 한다.


듀랑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생산적인 토론 문화'

꿈은 불확실성이 높다. 다수의 개발자가 참여하는 이상 모두 같은 걸 꾸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토론이 꼭 필요하다. 토론을 통해 불확실한 부분이 명확해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토론이 가능한 분위기'가 중요하다. 이 분위기는 리더가 만들어 간다. 듀랑고의 경우 이은석 디렉터가 이 분위기를 잘 만들어 갔다.

생산적인 토론 분위기란 의문이 있을 때 자신의 시각을 내세울 수 있는 환경이다. 리더의 의견이라도 언제든지 반론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나 역시 일부러 이은석 디렉터의 의견에 많은 반론을 제기했었다.

그리고 생산적인 토론을 위해서는 중재하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조직에 있어서는 토론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한 인재상이다. 왓스튜디오 역시 채용 및 평가에서 토론에 임하는 자세를 중요하게 본다.

토론의 결론은 다수결이 아닌 리더가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게임에 있어서 다수결이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토론의 결정권은 디렉터가 갖도록 하자. 그리고 결정이 됐다면, 그 방향으로 개발해야 한다.


모든 꿈을 이룰 수 없다

▲ 꿈을 재검토 또는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 있다

꿈을 포기해야 할 때는 재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꿈을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 있다. 방법은 양자택일 또는 다른 대안 제시되는 경우다. 꿈을 포기해야 할 때, '왜 포기했나'를 명확하게 남기는 게 좋다. 꿈을 포기한 데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꿈을 포기함으로써 무엇을 얻었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장르 문법에는 이유가 있다

듀랑고의 개발 과정은 기존 RPG의 장르 문법을 되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엔피씨와 퀘스트를 배제하려고 노력한 덕분에 역할과 유용성을 재발견하기도 했으니까. 도입 이후에도 의존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어떤 게임을 만들고 있다면, 장르 문법을 부정해보길 권한다. 이는 뻔하지 않은 게임으로 이끌 뿐만 아니라 생각지 못한 타협점을 도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번 강연으로 꿈을 이룬 게임이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