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이즈에서 개발하고 라인콩코리아에서 국내 퍼블리싱을 맡은 '검은달'은 무협 작가 고룡의 '초류향'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무협 MMORPG다. 특유의 화려한 그래픽과 탄탄한 스토리 라인으로 중국 내에서 주목을 받았으며, 지난 2월에 출시된 이후로 중국 유저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전 세계 앱스토어 매출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9월 17일부터 사전체험이 시작된 '검은달'을 처음 접했을 때, 내심 놀라웠다. 그래픽과 스타일, 그리고 그 안에 담고 있는 콘텐츠나 내러티브의 방향은 확실히 눈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무협 게임 유저들이 주목하고, 호평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 '검은달'의 사전 체험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그건 '검은달' 원본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던 만큼, 아쉬움은 더 짙었다.


모바일로 충실히 옮겨낸 강호의 세계
은은한 그래픽 스타일과 연출, 내러티브로 맛을 살리다


풀 3D 그래픽은 이제 모바일 게임, 특히 어지간한 MMORPG에서는 거의 기본기처럼 됐다. 투박하던 렌더링과 텍스처도 어느 덧 옛말처럼 됐고, 유저들이 흔히 말하는 양산형이라고 불리는 MMORPG의 그래픽 기준도 굉장히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그래픽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그 퀄리티뿐만 아니라 그 특유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스타일을 갖췄는지도 중요해졌다.

'검은달'은 PC 무협 MMORPG에서 느낄 수 있는 퀄리티 있는 그래픽을 선보였다. 초반부터 경공을 사용해서 강호를 누비는 느낌도 충실히 살렸고, 그 사이사이에 지나가는 사소한 오브젝트들도 한 층 더 디테일하게 표현했다. 각각 오브젝트의 퀄리티는 PC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윤곽에서 훑어보았을 때 어색하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스킬이나 이펙트는 다소 심심했지만, 경공에 해당하는 점프 버튼을 활용해 일부 패턴을 피할 수 있다거나 하는 등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



▲ 경공 도약은 이동뿐만 아니라 패턴 피하기 등 다양하게 활용된다

크게 청해, 강남, 금릉, 운몽, 중원, 소림, 화산, 무당, 암향으로 구역을 나뉜 필드는 각각 특색을 살린 배경을 구현했으며, 여기에 시간과 날씨의 변화를 가미해서 디테일을 살렸다. 이런 요소들은 단순히 시각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실제 게임플레이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눈이 오면 추위에 떨거나, 일부 추운 구역에서는 장비가 없으면 혹한 상태가 되어서 체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데미지를 더 입는 식이다. 그 외에도 밤에만 선술집이 열리거나 하는 식으로 디테일한 생동감을 살려냈다.

▲ 추운 곳에 그냥 들어가면 디버프에 걸린다

이러한 디테일은 그래픽뿐만 아니라, 내러티브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무협은 정과 사의 대립, 혹은 혈겁이나 난세를 평정한 영웅 같은 굵직한 이야기만을 다루는 장르가 아니다. 그 안에서 주인공 혹은 여러 인물들이 엮어가는 인연과, 그 인연이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사건 속에서 어떻게 녹아들어가는지도 주요 관건이다. 그러면서 강호의 사랑, 우정, 배신, 도리 등 여러 요소들이 우러나오고는 한다.

'검은달'의 내러티브는 이런 포인트를 짚어낸 모습이었다. 강대한 힘을 주는 대신에 중독되게 만드는 성약이나 멀쩡한 사람도 시귀로 만드는 약 등, 앞으로 벌어질 혈겁과 연관된 소재들이 초반부터 등장한다.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을 단순히 일직선상의 퀘스트로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과의 자잘한 이야기와 선택지를 엮어내는 시도를 했다.

선택지에 따라서 대사가 달라지는 정도라면 특별할 것은 없었겠지만, '검은달'은 사뭇 달랐다. 유저가 특정 상황에서 어떤 답을 고르느냐에 따라서 인물과의 관계도 달라지고, 심지어 스토리의 전개도 조금은 달라졌다. 큰 맥락이 바뀌지는 않지만, 어떤 캐릭터가 죽고 사느냐가 유저가 그간 선택한 이야기에 따라서 갈렸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지를 고르면 좋을지 다른 유저의 의견을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토론' 기능 등, 스토리 중심의 모바일 RPG를 개발해왔던 넷이즈의 노하우를 엿볼 수 있는 콘텐츠도 확인할 수 있었다.


▲ 중요한 기점마다 선택지가 주어지고


▲ 그 선택에 따라서 결말도 달라진다

물론 MMORPG에서 스토리나 디테일한 요소들은 호불호가 갈리는데다가 그냥 넘어가는 유저층의 비중도 높다. 그래서 부수적인 요소 정도로만 취급하는 데에 그치고는 한다. 그렇지만 무협 소설을 원작으로 한 MMORPG, 그리고 무협 소설의 느낌을 담고자 하는 RPG라고 봤을 때 '검은달'은 이를 충실히 담아냈다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가는 강호의 이야기
폭넓은 커스터마이징, 자신만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몽경/기담 등


콘텐츠의 끝은 룩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유저들은 캐릭터를 꾸미는 것에 상당히 많은 신경을 쓴다. 그 중에서도 캐릭터의 기본 룩을 결정하는 커스터마이징은 특히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모바일 MMORPG에서도 PC 못지 않게 세세하게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도록 발전해왔고, 이는 '검은달'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검은달'에서는 우선 캐릭터의 문파에 따라 성별과 어른/아이 체형을 선택한 뒤에, 기초 얼굴을 선택하고 세부 수정하는 순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체형은 커스터마이징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그 대신 얼굴에 관련된 커스터마이징은 한 층 더 힘을 실었다.

우선 기초 얼굴은 신생판과 고전판을 합쳐서 총 28종이 제공되며, 그 뒤에는 본격적으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했다. '머리'에서는 이마, 볼, 광대, 턱으로 나누고 너비와 높이를 디테일하게 수정해서 원하는 얼굴형을 만들 수 있었다. '이목구비'에서는 윗눈꺼풀, 아랫눈꺼풀, 눈꼬리 등 26개로 분류된 부위를 위치, 높이, 크기, 상하, 좌우, 깊이, 각도 등 다양한 옵션을 수정해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더욱 디테일하게 할 수 있게끔 했다. 또한 화장에서는 입술이나 눈 화장 등 일반적인 화장 외에도 피부 장식이나 눈동자, 입술의 모양이나 색까지도 변경이 가능했다.


▲ 상당히 세밀하게 얼굴 각 부분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

유저가 직접 영상을 만들거나, 녹화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직접 퀘스트를 만드는 '기담'은 상당히 흥미로운 시도였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나 지도를 활용해서 퀘스트 동선을 만드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스크립트를 만들고 몽경에서 만든 영상을 활용해서 좀 더 퀄리티 있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모바일 인터페이스에 맞게 단순화시켜서 적용한 것은 놀라운 시도였다. 물론 몬스터의 스킬 계수 조정이나 스킬 배치 등 초보자가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기에 어려운 카테고리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를 미리보기로 확인하고 중간중간에 저장하면서 계속 수정할 수 있게끔 배려했다.


▲ 자기만의 퀘스트를 만들 수 있는 기담은 스크립트 작성뿐만 아니라

▲ 몬스터의 스킬 계수 및 발동 조건 등도 편집이 가능하다

NPC와의 관계를 비틀어지는 것은 기담 속에서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실제 스토리에서도 NPC와의 관계도 단순히 이야기를 주고받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적대하거나 심지어 일부 NPC를 죽이는 등의 선택도 가능했다. 그렇게 해서 캐릭터의 성향치가 악해지거나, 혹은 우호도를 높여서 성향치가 선해질 수도 있었다. 이런 선택이 쌓이면서 기연으로 숨겨진 NPC를 만날 때 전혀 다른 NPC를 만나서 다른 이야기를 진행하는 등, 한 층 더 폭넓게 유저가 이야기의 전개에 관여하면서 강호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게끔 했다.


아쉬움이 묻어나는 현지화
콘텐츠 툴팁도 번역이 제대로 안 된 부분이 보인다


"더빙까지는 한국어화 안 했나?"

아마 '검은달' 사전체험 버전을 처음 실행해본 유저라면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갑작스레 캐릭터 생성창에서 뜬금없이 중국어가 들렸으니 말이다. 물론 중국 게임, 그것도 무협 게임이니 딱히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중국어에 대한 호불호는 무협팬 사이에서도 갈리지만, 중국 무협 드라마 전문 채널도 생긴 데다가 이를 꾸준히 보는 팬층도 있고 하니 그냥 넘어가자면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시나리오가 처음 시작되고 난 뒤, 우리말 더빙이 삽입된 것을 보면서도 '캐릭터창만 아직 더빙이 안 된 건가'라고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검은달'을 플레이하는 내내 우리말 더빙과 중국어 더빙이 번갈아서 들리는 장면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한 캐릭터의 대사가 갑자기 스크립트가 넘어가면서 더빙이 왔다갔다하는 장면도 있었다. 그것뿐이면 모를까, 스크립트의 번역도 아쉬웠다. 그냥 번역기 돌린 정도로 어색한 문장도 있고, 한자를 단순히 음으로 풀어버려서 아예 접근조차 힘든 경우도 있었다.

"스토리를 누가 본다고"라고 냉소적으로 말할지 모르겠지만, 스토리 스크립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콘텐츠 툴팁도 그런 식으로 써있는 경우가 많았다. 즉 스토리를 즐기지 않고 빠른 육성만 중시하는 유저라고 해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네? 뭐라고요?

▲ 스토리 스크립트만 그런 게 아니다

뿐만 아니라 45레벨 이후에 메인 퀘스트가 끊기는데, 콘텐츠 중 일부는 47레벨 이후부터 풀렸다. '검은달'의 필드는 넓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는 있지만 흔히 말하는 '닥사'를 위한 공간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런 유저층이 원하는 자동 기능도 한정적으로 지원한다. 필드나 퀘스트에서는 거의 지원하지 않고, 던전에서만 쓸 수 있는 식이다.

그래서 흔히 하듯 자동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채집을 하고 파티플레이를 하면서 레벨을 차근차근히 올리는 방식으로 플레이를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레벨을 올리는 속도도 느려질 뿐만 아니라 "왜 올려야 하나"라는 목표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따라서 빨리빨리 레벨을 올리고 강해져서 다양한 콘텐츠를 접해보고자 하는 유저층에게도 어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차근히 '검은달' 속 강호를 누비면서 캐릭터의 운명과 성향을 바꾸어나갈 수 있는 기연을 찾아다니거나, 유유자적하게 즐기는 모습은 현 단계에서 생각하기가 사뭇 어렵다. 앞서 언급한 어설픈 현지화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화면 밖으로 나가버리는 대사라던가, 분명 우리말로 써있을 텐데도 이해가 안 되는 문장들, 문제와 답이 완전히 어긋나버린 퀴즈 등. 현 단계의 '검은달'은 강호를 유람하는 느낌을 주기엔 부족했다. 다른 유저들이 만든 콘텐츠를 즐기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직은 정식 출시가 아닌 만큼 충분한 풀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 남는 시간에 퀴즈나 풀고 소소한 보상 좀 챙기려고 해도 이래서야...


강호를 반만 담아낸 '검은달'
원본은 좋았으나, 현지화는 미흡했다


그간 무협 MMORPG는 수준급 작품도 있었지만, 웹게임 시절부터 소위 양산형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주로 사용한 장르였기 때문에 무협팬을 제외하고 다른 유저들의 인식이 그리 좋지 못했다. 이에 무협팬들은 이런 인식을 깰 만한 무협 MMORPG를 갈망해왔다. 최근 어느 정도 수준을 끌어올린 PC 무협 MMORPG들이 등장하면서 조금은 인식이 개선되고, 그 갈증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됐다. 그런 와중에도 모바일에서는 이를 시원하게 해소할 만한 작품은 드물었다.

그런 상황이기에 이번 '검은달' 사전체험은 너무도 아쉬웠다. '검은달' 자체는 그 갈증을 풀 만한 자질이 엿보였다. 수준급 퀄리티에, 무협의 느낌을 잘 담아낸 그래픽과 연출,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스토리와 유저 자신이 컷씬을 만들어내는 몽경에 이를 배치하면서 자신만의 퀘스트를 만들 수 있는 기담까지 높은 자유도까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일부 컷씬에는 중간중간에 QTE를 넣어서 몰입감을 살리고자 했다

큰 틀에서 스토리는 정해져있지만, 그 안에서 선택에 따라서 각 인물들의 운명이 갈라지기 때문에 보통은 넘어가는 선택지에도 눈길이 가게끔 했고, QTE 연출 등 스토리 연출에 더 신경을 쓰게 한 요소도 눈에 띄었다. 여기에 기존 무협 MMORPG를 즐기던 유저라면 익숙하게 할 수 있는 콘텐츠들까지 충실하게 다 담아내면서 무협 MMORPG 팬을 위해 다각도로 접근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받는 보상도, 캐릭터와의 관계도, 성향도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화가 미흡한 부분이 더욱 더 눈에 크게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스토리를 그냥 스킵하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텍스트를 보고, 캐릭터의 소리를 들으며 플레이하는 비중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사전체험에서 과금 요소까지 풀어버린 것이었다. 정식 출시 후에 사전체험에서 결제한 재화의 3배로 재화를 돌려준다는 것 때문에 페이백의 개념처럼 볼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사전체험에서 보인 미흡한 현지화를 보고 유저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기대를 하게 만든 작품이 그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실망하게 되고, 그 뒤에는 불신을 하게 된다. '검은달'의 사전체험은 출시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아마도 아픈 매일 테고, 자국도 오래 남을 것이다. 이제라도 밥이 설익은 채로 미리 내왔다는 걸 알았으니, 다음에는 뜸까지 제대로 들여서 준비해올 필요가 있다. 이번 사전체험에서는 현지화가 미흡해서 반쪽만 드러난 '검은달'이, 정식 서비스에서는 이 부분을 고치고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낼지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