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는 뚜렷하지만 퀄리티는 들쭉날쭉한 에세이와 미니 게임 모음집



게임은 문화다, 예술이다, 이런 슬로건을 종종 듣고는 한다. 단순히 순간의 유희나 오락을 넘어서, 여가 활동이자 더 나아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까지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어떤 게임들은 게임플레이 그 자체의 재미보다는 이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주력하기도 하고, 그런 작품들이 때로는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는 한다. 혹은 메시지와 게임플레이를 기존에 있던 게임들과는 전혀 색다른 방향으로 배합해서 일반 유저들에게까지도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그 중 '공감에 관한 단상들'은 제목부터가 전자에 가까운 경우라서 개인적으로 흥미가 갔다. 전공이 전공이라서 '에세이'라는 걸 워낙 많이 보고 쓰기도 했고, 우리나라에서 다루기 어려운 과감한 소재들도 여과 없이 다룬다는 소개문과 정갈한 도트그래픽이 눈에 띄었다. 게임으로 삶에 관한 10가지 이야기를 다룬다는데, 14,000원이라는 가격으로 내놓은 이 작품이 어떤 식으로 이를 묘사할지 궁금하다고 할까. 더군다나 재미라곤 한 톨도 느껴질 것 같지 않은 진중한 제목을 버젓이 내놓았으니, 흔히 말하는 망겜 소믈리에의 본성이 깨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어 지원이 없는데도 이 작품을 과감히 선택했고, 그 들쭉날쭉한 장면들을 넘기다보니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을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게임명 : 공감에 관한 단상들(Essays on Empathy)
장르명 : 어드벤처, 횡스크롤 액션, 시뮬레이션
출시일 : 2021. 5.19.
개발사 : Deconstructeam
서비스 : 디볼버 디지털
플랫폼 : PC

관련 링크: '공감에 관한 단상들' 오픈크리틱 페이지



게임을 삶의 테마와 메시지에 맞춰 녹여내다


디컨스트럭팀이라는 이 개발팀의 이름에서 사뭇 보이는 디컨스트럭트라는 단어는 꽤나 의미심장하다. 해체하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이 단어는 오직 철학, 텍스트의 해체 분석에만 쓰이는 단어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기존 서구 철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주장한 연구 방법이자 개념에서부터 시작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 팀의 이름처럼 이들이 내놓은 이 게임은 삶의 모습을 해체해나간 뒤에, 각자가 생각하는 바에 맞춰서 10개의 단면을 따로따로 새롭게 풀어나간 모습이었다. 장르도 다 다르고, 주장하거나 표현하고 싶은 주제도 각기 달랐다.

예를 들자면 광석을 캐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지만 광석을 많이 캐면 캘수록 위로 다시 올라오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그려낸 '지하의 숙취(Underground Hangover)'는 횡스크롤 액션으로 이 과정을 표현했다. WASD와 스페이스바만 쓰는 이 게임은 S키를 눌러서 곡괭이질을 하고, 스페이스바로 로프를 고정한 뒤에 던져서 그 위에 올라타는 식으로 지형지물을 극복해나가게 된다.

▲ 로프를 던져 지형지물을 극복하고 광석을 캐야 하는데

▲ 캐면 캘수록 지형을 넘어설 수 없다

▲ 그리고 그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계속 보게 되는 건...

굉장히 단순한 조작법에 로프라는 요소를 다양하게 활용할 여지가 있게끔 스테이지가 디자인이 된 터라, 플레이를 하다보면 신이 나서 더 깊이 들어가 광석을 캐고 싶은 욕심이 셈솟는다. 그러나 깊이 들어갈수록 다시 나오기 어려워진다는 게 곧장 체감이 된다. 광석을 캐면 그 무게 때문에 점프 높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니 말이다. 광석이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리젠되니 적당한 깊이에서 반복해서 캐면 그만이지만, 그러자니 또 밋밋해서 안으로 계속 파고들고 파고든다.

어차피 광석을 모아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더 깊이 들어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이 나오기만 어려울 뿐인데 왜 본능적으로 나아가는 걸까. 플레이하다보면 이런 의문이 갑자기 들게 된다. 팻말에 종종 그런 의문을 내던지긴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 없이 오직 레벨디자인과 게임 구성만으로 이런 테마를 던졌다고 할까.

때로는 대사 없이도 그렇게 게임 구성만으로 메시지를 던지기도 하지만, 게임 방식과 그 안의 대사를 엮어내면서 테마를 바로 직설적으로 꽂아넣는 것도 있었다. '모든 위대한 사람의 뒤에서(Behind Every Great One)'는, 집안일을 하는 과정을 간단한 어드벤처와 시뮬레이션 형식으로 풀어내면서 하루하루의 일상을 짧고 직설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 "넌 어떠니? 직장 찾고 있긴 하니?" 갑자기 식사 중에 시부모가 딜을 꽂아넣는 건 동서고금 동일하다

예술가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아내가 갑자기 방문한 시부모와 월세를 못내서 쫓겨난 탓에 잠시 같이 살게 된 친동생네 가족과 같이 한 테이블에서 밥을 같이 먹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하루에 할 수 있는 행동은 제한되어있는데, 집안일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셔츠 다리고 집 청소하고 화장실 청소하고 설거지하다보면 시간이 다 가서 어김없이 "왜 오늘은 샌드위치니?"라는 핀잔이 들어온다. 이를 애써 남편이 변호해주긴 하지만 "왜 식물에 물 안 줬니?"라는 핀잔이 연달아 콤보로 들어오면 정신이 대략 혼미해진다. 그에 맞춰서 흔들리는 화면과, 흔히 나오는 "아직도 애 가질 생각이 없니"라는 마무리까지. "세상 어디나 다 똑같구나"라는 게 절로 실감이 되는 장면이다.

▲ "화초에 물 안 주니?" 그래서 물 주느라 시간 쓰면

▲ 또 뭔가 불만이 자꾸 나오는 지옥의 시집살이 체험이다

'공감에 관한 단상들'은 그렇게 공감이 쉽게 가는 내용만 담지는 않았다 사람에 따라서 공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틀리거나, 그렇게 뒤틀려버린 이유를 담아낸 게임도 있었다. 혹은 소수자의 입장을 흔히 말하는 동정심을 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 아니라 이를 유머러스하게 코미디언의 이야기로 풀어가는 등, 삶의 모습을 한 층 더 폭넓게 담아냈다.

가출소녀가 자신의 몸에 난 각종 수술자국을 보면서 그 기원을 찾아가는 '11.45 비비드 라이프'는 선택지에 따라서 정말 가슴 아픈 소녀의 사연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아예 SF로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러다 끝에서 주는 반전은 한 번 더 청소년기의 방황과 환상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보게 한다고 할까. 의수와 이빨을 보고서 자신이 개조됐다고 하거나 끊임없이 "내 창조자는 누구?"라고 물어대는 그 광경은 좀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 수술 자국을 보고 별 희한한 상상을 하는 중2병스러운 발상이라니

다만 몇몇 게임은 이렇듯, 스토리를 읽고서 음미할 필요가 있는 터라 한국어가 미지원된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특히 게임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De Tres al Cuarto'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카드로 완성해나가는 방식이라 단순히 영어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파트너가 말하는 코미디 빌드에 맞춰서 호응해줘야만 영감 수치가 오르는데, 그걸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0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그 외에도 선택지가 중요한 게임들이 몇 개 더 있는 터라, 국내에서는 이를 만족스럽게 즐기기엔 다소 언어의 압박이 좀 거셌다. 그나마 각 게임마다 게임 방식도 테마에 맞춰서 준비한 터라,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그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는 게 그나마 위안일까.

▲ 가장 마지막 이야기인 'De Tres al Cuarto'는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고르지 않은 퀄리티와 메시지에 편중된 일부 게임 구성

▲ 게임에 따라 수위가 높거나, 다루기 어려운 내용도 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큰 행위다. 그 메시지에 호응을 하고 공감을 하면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 메시지에 다 찬성하고 공감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특히나 그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면 전달할수록 반발도 커지기 마련이다. 혹은 다른 말 없이, 그 메시지만 전달하면 반박도 짧고, 대화도 크게 안 이어진 채 단절되기 일쑤 아니던가.

그렇다고 그게 두려운 나머지 메시지만 전달하기 위해서 모든 겉포장을 구성해버리면, 숨은 뜻을 읽기 싫어하는 유저들에겐 별 의미 없는 행동이 반복되는 것으로 비치기 쉽다. 아니면 메시지에만 치중한 나머지 게임플레이라는 요소를 덜어내버리거나 신경쓰지 못하면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게 된다.

공감에 관한 단상들은 각기 다른 10개의 게임이 서로 모인 것인 만큼, 개발자에 따라서 이런 실수를 피해가지 못한 케이스도 있었다. 일례로 '2021년 1월, 잉골라스터스(Engolasters, January 2021)'는 남편과 아들이 서로 싸우는 걸 화해시키려고 집에 돌아가던 아내가 갑작스런 외계인의 습격 때문에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태에서 다시 가족의 평화를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은 게임이다.

▲ 갑자기 외계인은 왜?

▲ 가뜩이나 둘이 싸워서 말리러 가야 하는데 배 찌르고 튀다니...

▲ 길 한 번 잘못 들면 그냥 뭘 어떻게 할 수 없다. 빠른 리트 가자

새하얀 눈밭과 핏방울, 그리고 계속 줄어드는 체력과 배터리를 보면서 이를 어찌저찌 활용해서 끊임없이 통화하고 길을 찾는 과정은 나름의 긴장감은 있었다. 그러나 중간에 의미 없이 배치된 오브젝트나 너무 오랫동안 이벤트 없이 방치되는 플레이는 메시지에만 몰두한 나머지 게임으로서 기대하는 요소들이 배제된 느낌이 들었다. 이미 충분히 메시지는 음미한 상황에서, 의미 없는 행동만 반복하게 해서 결국 메시지가 반감되어버렸다고 할까.

'책장 림보(The Bookshelf Limbo)'는 아들이 아버지의 병문안을 가면서 선물할 책을 고른다는 내용인데, 책을 고르면서 서평과 뒷면 추천사를 보면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을 그려낸 것은 좋았다. 그러나 그 과정이 결론적으로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 대부분 헛수고로 돌아갔다. 유저의 선택이 다른 결말을 불러온다는 상호작용이 잘 안 일어난 만큼, 아들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고뇌하는 과정은 잘 묘사했어도 '게임'으로서 기대하는 플레이는 실망스러웠다.

▲ 분위기도 주제도 다 좋은데 조작감이 뻑뻑해서 가는데 한 세월이다

'친애하는 친족에게(Dear Substance of Kin)'는 누군가의 희생에 대해 생각한다는 주제를 신비한 분위기로 풀어낸 것까진 좋았으나, 캐릭터를 원하는 대로 조작하기가 어려웠다. 클릭해도 그 방향으로 제대로 안 가고, 심지어 어딘가에 끼는 일도 잦았다. 전염병이 돌아버린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게임이고 세이브도 안 되는데, 도중에 그런 오류 때문에 게임을 다시 끄게 되면 그 이야기를 이어갈 맛이 안 난다고 할까.

'모든 위대한 사람의 뒤에서'나 '지하의 숙취' 같은 게임은 캐릭터 이동에서 별 문제가 없어서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거의 모든 게임에 세이브도 없고, 조작법에 대한 설명이나 이런 것도 없고 중간에 멈출 수도 없다보니 한 번 시작하면 무조건 끝을 봐야 하는 것도 마이너스 요소였다.





인간은 각자 다른 삶을 산다고 자주 말하지 않던가. '공감에 관한 단상들'은 그런 주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10가지의 주제에 맞춰 준비한 미니 게임들은 장르나 퀄리티 모두 다를지라도, 그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제시했다.

그 각각의 게임들을 게임이라고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아무래도 평가가 갈릴 수밖에 없다. 통상적으로 말하는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게임이라기보다는, 그 과정에 참여하면서 그 순간에 깨닫게 되는 메시지를 즐기는 인터랙티브 아트에 가까운 형태이니 말이다. 이를 의식한 듯, 개발자의 의도를 담은 비디오나 갤러리를 갖춘 터라 그 뜻을 살펴보고 메시지를 음미하는 재미는 확실히 있었다. 다만 그쪽에 치중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플레이하는 '게임'으로서는 좀 애매하다고 할까.

▲ 개발자의 기획 의도나 표현 기법까지 소개하면서 이야기와 주제를 음미하는 맛을 살렸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정서에는 안 맞는 소재나, 쉽게 말하기 어려운 사건 같은 것도 여과 없이 묘사가 되서 사람에 따라 접근하기가 힘들다. 실제로 이 게임이 성인 등급을 받은 이유는 총이 동원되는 학교폭력, 죽음, 살인 이런 무거운 이야기들을 거리낌없이 말하고 묘사가 되기 때문이고, 픽셀그래픽으로는 크게 느끼긴 어렵겠지만 꽤나 사실적이고 높은 수위로 거침없이 드러나곤 한다. 때에 따라서는 불쾌한 느낌이 들 정도랄까. 여기에 성소수자나 망상 등 쉽게 다루기 어려운 소재도 등장하니, 손을 쉽게 대기가 어렵다.

'공감에 관한 단상들'은 그런 의미에서 상당한 문제작이고,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릴 작품이다. 마치 에세이를 읽듯 어떤 메시지를 받아들여가는 과정에 주력했다면 좋은 평가를 주겠지만,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평이 갈릴 수밖에 없다. 게임마다 갈리는 완성도에 부족한 조작감, 편의성, 의미 없는 공백 등 여러 가지가 발목을 잡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아직은 한국어 지원이 안 되는 터라, 제대로 음미하기는 현재로서는 너무 어렵다. 특히 클라이막스에서는 단순한 영어회화 수준이 아니라 스탠드 업 코미디에 대한 센스도 있어야 하니, 관심이 있다고 쳐도 그런 영어 실력이 없다면 한국어 번역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는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