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가치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명작 게임들. 그런데 그 '역사적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요? 작년까지는 그 가치가 돈으로, 그것도 정말 높은 금액으로 인정받는 것처럼 보였죠. 정확히는 그렇게 보이기는 했습니다.

개봉되지 않은 게임 카트리지는 지난해까지 연일 최고 경매가를 경신했습니다. 비닐이 제거되지 않고 우수한 보관 상태마저 유지하며 수집가들의 구미를 당겼다는 점. 그리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 머문 수집가들의 장전된 총알이 게임으로 향했다는 게 눈에 보이는 이유였습니다. 더군다나 그 게임들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젤다의 전설, 슈퍼 마리오64 등 이른바 명작으로 불리는 데 부족할 게 전혀 없는 게임들이기에 비디오 게임 전체의 위상마저 높아지는 듯했고요.


2019년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10만 150달러에 낙찰됐고 이후 1년 뒤인 2020년 7월 11.4만 달러, 그리고 11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3가 15.6만 달러에 낙찰되며 가장 비싼 게임으로 기록됐습니다.

그런데 2021년 4월에는 그 기록이 66만 달러로 급상승했습니다. 그것도 불과 9개월 전에 1/5 정도였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그 기록을 경신한 거죠. 그리고 7월 젤다의 전설이 87만 달러, 같은 달 슈퍼 마리오64가 156만 달러로 1주일 만에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그리고 8월에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경매가가 200만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2년도 되지 않아 10만 달러의 게임이 약 20배 가격인 25억 원에 팔린 셈이죠.

물론 훨씬 우수한 보존 상태를 가진 상품이 등장한다면 가격이 더 높아질 수 있겠죠. 하지만 게임 경매가가 급등한 데에는 와타게임즈(WataGames)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와타는 게임의 보존 가치를 판단해 등급을 매기는 평가 기업입니다. 와타게임즈 설립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다양한 게임 보존 평가 기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매 기록이 경신된 게임 모두 와타가 등급을 매겼죠.

와타 등장 이전에 가장 높은 게임 판매 기록은 경매사이트 이베이를 통해 거래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로 알려져있습니다. 이 카피의 가격은 3만 100달러. 약, 3,800만 원 정도입니다.


게임 가격이 급등하는 과정에서 이득을 본 이들은 다름 아닌 와타와 경매가 이루어진 플랫폼 헤리티지 옥션이었습니다. 와타는 게임 등급을 매기는 데 시장 가치 일부를 수수료로 받고 헤리티지 옥션은 경매가 낙찰되면 그 가격의 20%, 판매자에게도 5% 수수료를 부과했죠. 이래서 게임 가격을 의도적으로 올렸다는 의혹을 받게 됐습니다.

기타히어로 최고 인기 플레이어의 영상 사기를 잡아내기도 했던 칼 잡스트(영상 )가 이러한 의혹을 제기하자 와타 측은 즉각 성명을 냈습니다. 그들은 근거 없는 명예 훼손이라며 칼이 자신들에게 연락하지 않은 데 유감을 표명했죠. 하지만 헤리티지 옥션의 공동 설립자가 와타의 자문 위원회에 속한 점. 신생 평가 회사 와타와 헤리티지 옥션이 독점 계약을 맺은 점 등이 밝혀지며 논란은 커졌습니다. 여기에 와타가 자신들이 등급 매긴 게임을 판매하고, 실제 보관 수준보다 높은 등급을 책정한다는 글들이 게시되기 시작하며 의혹은 커졌고요.

그렇게 의혹이 불거진 지 9개월여가 지난 올해 5월, 결국 이번 사건은 소송으로 번졌습니다.

사건의 결말은 소송으로 가려지겠지만, 확실한 건 뻥튀기된 게임 낙찰가에 명작으로 불릴 고전 게임의 카피는 투기 수단으로 쓰였습니다. 역대 최고가인 200만 달러에 팔린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랠리라는 경매 사이트에서 낙찰됐는데 이곳은 거래 항목을 마치 주식처럼 투자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췄죠. 뉴욕 타임즈는 게임에 100달러를 투자한 사람이 950달러의 순수익을 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게임의 역사적 가치나 순수성은 없었습니다. 그저 치솟은 가격 상승세와 신생 회사가 평가한 등급표만 있었을 뿐이죠.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카피의 최고 낙찰가가 3,800만 원이든, 25억 원이든 게임이 팬들에게 준 재미와 감동, 수많은 작품에 미친 영향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반대로 누가 됐든 게임을 투기 수단으로 썼다는 점은 게임 수집이라는 취미, 그리고 미디어가 가지는 순수성 부분에 분명 타격을 줄 수밖에 없고요.

그런데도 이러한 경매가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게임이 가지는 순수한 가치와 기록을 경매가 이상으로 제대로 평가하고, 남길 무언가가 마땅히 없어서기 때문이었고요.

온전히 보관되어 몇 없는 고가치를 가진 게임은 수집가의 개인 컬렉션으로 책장에 모셔질 뿐입니다. 역사적 기록이나 게임사에 남긴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줄 기관도 없죠. 게임 시상식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며 GOTY 수상 몇 회, 혹은 주요 시상식 우승이라는 딱지가 겨우 그런 아쉬움을 달래지만, 그마저도 주요 시상식 이전에 나온 고전에는 해당되지 않고요. 오히려 위키피디아에 남은 설명 한 줄이 게임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 하나로 쓰일 정도입니다.


영원히 그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미디어 콘텐츠의 장점도 그다지 살리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구동되는 기기만 있다면 분명 언제든 다시 플레이할 수 있고, 또 복각을 통해 현세대 어떤 기종에서 즐길 수 있도록 남길 수 있는 게 게임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발 권리, 유통 권리 등등을 이유로 갈기갈기 찢긴 고전 IP는 현세대 기종 출시는 고사하고 마땅히 플레이할 방법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권리를 찾아갈 만한 게임이 아니라면 제대로 된 기록화 없이 카트리지 단계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하고요.

여기에 이미 디지털화가 완료된 게임 역시 플레이에 제약이 생기기도 합니다. 다운로드 콘텐츠로 구매한 게임임에도 다음 세대 콘솔의 등장이나 판매 부진을 이유로 서버가 닫혀버리면 구매자라도 다시 게임을 플레이하기 어려워집니다. 오죽하면 저작권 침해가 될 수밖에 없는 불법 롬파일이 게임의 기록화에 가장 앞장서는 모양새가 되어버렸죠..

그래서 기어박스, 커피 스테인 스튜디오, 크리스탈 다이내믹스 등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린 유럽의 강자 엠브레이서 그룹의 투자가 더 눈에 띕니다.

엠브레이서 그룹은 최근 '엠브레이서 게임즈 아카이브(Embracer Games Archive)'라는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이름처럼 비디오 게임과 콘솔, 그리고 관련 액세서리 등을 보존, 보관하는 프로젝트죠. 대중에 공개된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회사가 있는 스웨덴의 칼스타드에 50,000개 이상의 게임과 기기를 아카이빙 했죠. 현재는 수집 단계에 있지만, 엠브레이서 게임즈 아카이브 측은 추후에는 이를 대중에 공개해 보다 가치있는 형태로 게임 팬들과 공유하길 바란다고도 했고요.

엠브레이서 게임즈 아카이브의 다비드 보스트롬 대표는 이러한 보존, 보관에 대해 '게임을 미래를 위해 보호하고 전할, 가치 있는 유산이라고 믿기에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미국의 비영리 단체 더 스트롱은 2015년 국립놀이박물관의 이름으로 세계 비디오 게임 명예의 전당을 설립하고 매년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게임을 헌액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제주도에 있는 넥슨컴퓨터박물관이 컴퓨터의 역사와 게임 기록을 아카이빙하고 있고요. 또 주요 시상식에서는 공로상을 통해 단순히 게임 개발자가 아니라 업계 전체에 영향력을 미친 인물을 기리고 그들이 작업한 게임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분명 조금씩이나마 게임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그 역사를 보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익성을 문제로 다운로드 서버를 내려 스스로 한 시대의 막을 내리는 플랫폼사. IP 개발권만 가져다 제힘으로 가치를 깎아내리는 게임사. 게임보다는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젯밥에 더 관심을 보이는 회사까지. 노력과 헌신의 결과를 더디게 하는 이들은 여전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이런 행태에 대해 업계 스스로 자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투기 수단으로 부풀려진 게임 가격이 언제고 다시 게임의 가치를 상장하게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