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쌔신 크리드의 다음 프리미엄 플래그십 타이틀은 일본이 무대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 어쌔신 크리드가 고대 그리스의 오디세이, 바이킹 시대를 다룬 발할라처럼 외전이 아니라 제대로 된 메인 시리즈의 새 작품이 된다는 의미다.

일본 무대의 새 어쌔신 크리드는 11일 유비소프트 포워드 - 어쌔신 크리드 15주년 쇼케이스를 통해 나왔다. 유비소프트는 이번 15주년 이벤트를 시작으로 시리즈를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한다. 발할라에 등장했던 바심의 과거를 다루는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기존 시리즈와는 다른 분위기를 전달할 코드네임 헥세(HEXE)에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오픈 월드 모바일, 넷플릭스 구독자를 위한 또 다른 모바일 게임까지 프랜차이즈 확장에 열을 올린다.

그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건 코드네임 레드(RED)다. 일본 에도 막부 통치기를 배경으로 닌자라고도 불리는 시노비가 새로운 암살단이다. 공개된 티저 영상 역시 일본의 높은 성과 그 위로 뛰어오르는 닌자, 연막탄, 그리고 왼손 안쪽에서 튀어나오는 암살검을 확인할 수 있다.

외전이 아니라 정식 시리즈에서 암살단이 아시아로 옮겨온다는 데 큰 의의가 있겠지만, 지나는 결에 부러움도 남는다. 저 무대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유비소프트는 본사가 있는 프랑스의 혁명기는 물론 미국 독립전쟁, 산업 혁명 이후의 영국, 신화가 삶에 더 가까웠던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바이킹 시대 등등 시기와 역사적 사건을 가리지 않고 이들을 게임에 다뤘다.

시리즈 전체로 봤을 때도 중세의 봉건제 일본은 어쌔신 크리드의 특징을 살리기 좋은 환경을 갖췄다. 티저에서도 나왔듯 전국시대를 시작으로 지방의 다이묘들이 앞다투어 지은 성은 넓게 성벽을 둘러친 우리나라 성과 달리 다이묘의 군사 시설과 궁전 정도를 지키는데 용이하도록 하고 위로 켜켜이 층을 쌓아 올린다. 효용성 부분에서는 차치하더라도 그 높이와 구조는 높은 구조물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어쌔신 크리드에는 더없이 적합한 구조다.

다만, 어쌔신 크리드는 RPG 개념을 더하며 높이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오리진의 피라미드, 오디세이의 거대 동상 등을 제외하면 인공 구조물보다는 자연환경 등반에 의한 높이 구현이 많았다. 발할라는 드넓은 평지와 고작해야 2층 높이 구조물이 대다수였다. 적당히 그려보면 토굴과 암자를 중심으로 관악산 암벽을 타고 오르며 절경을 뒤로해 신뢰의 도약을 하거나 기왓장을 밟아 지붕 위를 날래게 뛰어다니는 한국형 암살단의 모습도 충분히 가능할 법하다.

물론 그저 환경 요소만이 일본을 어쌔신 크리드 메인 타이틀의 배경으로 만든 건 아니다. 일본이 무대로 선택된 더 중요한 요인은 충분한 흥행력이 꼽힌다


쇼케이스에서도 언급됐듯, 일본 배경의 어쌔신 크리드는 서구권 커뮤니티에서도 기대하는 목소리가 큰 시대 설정이었다. 임진왜란과 직간접적으로 엮여있으며 오늘날 역사적 관계에 의해 국내에서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일본의 전국시대, 에도 막부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진 시기다.

전국시대는 중국의 주요 분열 시기처럼 권력을 잃은 쇼군과 그 자리를 대신해 수많은 지방 군웅들이 위세를 드러내고 저마다 드라마를 써낸 시대다. 그리고 이 전국시대가 서구권에서도 관심을 받는 데는 이 시기를 바탕으로 한 대중문화와 그에 따른 이미지가 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다이묘 간의 관계나 갑옷을 입고 말을 타고 갑옷을 입은 무사의 모습은 서구권에서 중국의 그것보다 더 익숙한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전국시대 뒤로 이어지는 에도 막부는 전기는 전국시대를 잇는 새 시대로, 후기는 서양 문물을 대거 받아들이며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는 격동기를 담는다. 코드네임 레드가 정확히 언제를 다룰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시기를 다루든 역사적 사실과 암살단이라는 허구를 역사와 묶어 펼쳐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기다.

그리고 이 시기가 단순 역사적 기록보다 더 가치를 가지는 건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과 결합하며 역사적 사실보다 기록에 따른 창작물로서의 무게가 더욱 실렸기 때문이다.

다양한 다이묘와 무장의 이야기를 다룬 전국시대나 몰락해가는 사무라이의 모습을 그린 에도시대는 사극뿐만 아니라 액션 영화부터 코믹 만화까지 두루 쓰였다.

▲ 에도 막부 전환기를 그린 7인의 사무라이는 스타워즈를 비롯해 많은 서구권 영화에 영향을 미친 최고의 고전으로 꼽힌다

게임에서도 그 쓰임새는 많았다. 삼국지와는 다른 요소와 시스템으로 지금까지도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는 노부나가의 야망은 코에이를 대표하는 역사 시뮬레이션이고 전국무쌍, 바사라 시리즈 등은 과장을 잔뜩 더해 인물들의 캐릭터성을 살렸다. 서구권에서 보이는 이미지를 기반으로 쇼군: 토탈워(토탈워: 쇼군2)나 섀도우 택틱스 같은 전술 게임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인이 아니어도 세계사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이미지로, 또 역사는 잘 몰라도 게임으로 일본 역사의 단편을 받아들일 기회가 충분했다는 의미다. 즉,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역사적 시기, 사건을 꼽을 때 일본의 역사는 흥행력을 갖춰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 역시 역사를 게임이라는 매체 안에 담아내려는 노력은 더러 있었다. 국내 RTS로 준수한 성과를 낸 임진록은 거상으로 이어지며 게임 무대를 확장했다. 삼국 시대를 무대로 한 천년의 신화도 있다. 다만, 근래에 들어서 역사 기반 게임은 역사에 더 무게를 뒀다. 역사 자체를 알린다는 데 집중해 게임이라는 소재로 흥미를 더한 것이지 흥미로운 소재'로' 우리 역사와 문화를 활용한 예는 찾기 어렵다.

▲ 프랑스 개발사가 만든 조선시대 배경의 게임
재미있는 게임에 우리 문화를 담아내는 노력을 오히려 외국에서 더 열심히 하는 셈

대중매체에서 역사를 다룰 때 취사선택은 꽤 중요하다. 특히 블록버스터부터 다큐멘터리까지 역사를 폭넓게 활용하는 영화를 보면 더 또렷해진다. 실제 역사를 오롯이 옮겨내는 데 집중할 수도 있지만, 역사적 기록 일부를 바탕으로 창작이 가해지기도 한다. 이준익 감독은 '동주', '박열' 등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훌륭히 극 안에 반영해냈다. 반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서부 활극의 모습을 재치 있게 담아냈다.

역사적 사건과 기록에서 어느 부분을 선택하고, 또 무엇을 솎아내 극에 녹여낼지는 전적으로 제작진의 몫이다. 그리고 상업적인 부분을 떼어놓고는 말할 수 없는 영화에서 그러한 선택이 가져올 흥행력. 즉, 관객이 이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 성공한 영화로 기록된다.

게임도 비슷하다. 어쌔신 크리드는 암살단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역사 핵심 사건 곳곳에 배치해 실존 인물들과 관계를 맺고 이에 따라 역사적 변형이 많은 시리즈다. 하지만 시대상 구현을 위한 무수한 노력이 게임 안에 드러나 있고 학습 자료로까지 쓰이는 수준의 디스커버리 투어는 이제 시리즈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시리즈 주인공인 키류를 에도 시대 초기와 말기 각각 유명했던 검호 미야모토 무사시, 근대 일본에 큰 영향력을 미친 사카모토 료마로 각각 바꾼 '용과 같이'.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며 시대의 흐름을 바꾼 오다 노부나가를 스스로 부른 별명과 같은 마왕으로 묘사한 '전국무쌍' 시리즈 등 일본도 자신들의 역사를 취할 부분만 취해 게임의 소재로 활용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역사 소재의 게임은 영화가 그러하듯 그 수를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예술성을 가진 게임도 더없이 중요하지만, 훌륭한 상업성을 갖춘 게임 역시 역사를 문화로. 또 그 문화를 재미로 치환해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일본은 그 노력을 오랜 기간 충실히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근래 현업에서는 한국의 역사를 게임으로 만드는 데 어려움을 토로한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게임을 만드는 데 적합한 내용을 고르기도 어렵거니와 여러 역사적 사건들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인물, 단체들도 역사적 재구성 도전을 쉽게 이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어쌔신 크리드에서는 워싱턴이 영국 절대 왕정의 주인이 되고 폭정을 일삼는 게 가능하지만, 긍정적 평가를 받는 우리나라 역사 속 인물로 그게 가능하기나 하겠느냐는 이야기다. 역사적 취사선택이라는 제작자의 역할 자체가 부정당하는 식이다.

흥행력이 검증된 역사 기반 게임이 없으니 당연히 대형 게임사에서의 제작 움직임도 더디다. 중국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삼국지연의 게임은 수도 없이 나오지만, 역사 기반 게임은 인디 개발사를 중심으로 겨우 손에 꼽을 정도다. 서비스에 있어 국가라는 장벽은 사라졌지만, 정작 해외에 우리 역사를 알릴 게임이 없는 상황인 셈이다. 그나마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보여준 긍정적 모습을 게임으로 옮겨낸 정도가 있으려나.

역사를 위한 게임이 아니라 재미있는 게임을 위한 역사를 우리 스스로 밖으로 내지 못한다면, 팬들은 일본, 중국을 1옵션으로 하는 아시아 역사 기반 게임을 부러움에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해외 개발사가 우리 역사를 선택해주길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쌔신 크리드 15주년을 기념한 창작 이야기 속 한국 역사의 매력이 그저 우리만 느끼는 매력이 되지 않도록 널리 알리는 노력이 없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