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토탈워: 워해머3'를 리뷰하면서 꽤 좋은 점수를 줬습니다. 3부작의 마지막 게임인 그 작품 그대로도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출시 이후 업데이트될 '불멸의 제국들(Immortal Empires)'을 위한 기반을 적당히 잘 다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각 팩션의 기믹과 전술, 병종 구성과 마법 학파까지 전반적인 영역이 2부까지 등장했던 다른 세력들과 겹치지 않았음을 주목했습니다. 이제 이 놈들이 2부까지 등장한 세력들과 얽히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었죠.

생각해 보면 재미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불멸의 제국들'에는 사실상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4X의 느낌이 나는 대전략 파트와 일반적인 RTS를 닮은 전투 파트가 나뉘어져 있고, 각기 다른 병종과 영웅, 기믹으로 구성된 23개의 팩션이 한 번 플레이하면 몇 일이 걸리는 거대한 맵에서 아옹다웅 다투는데 멀티플레이도 됩니다. 가히 전략시뮬레이션계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불러도 될법한 녀석의 기반이 바로 '토탈워: 워해머3'였던 겁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한 두 달이면 업데이트될 줄 알았던 불멸의 제국들이, 출시 이후 무려 6개월이나 시간을 잡아먹는 바람에 기껏 좋은 평가를 받았던 '토탈워: 워해머3'의 평가를 죄다 갉아먹어 버렸다는 거죠. 어쨌든, 드디어 그 날이 왔습니다.



여기, 전략시뮬레이션의 모든 것이 있다.

사전 지식이 없으신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드리자면, '불멸의 제국들'은 총 3부작으로 구성된 '토탈워: 워해머' 시리즈의 모든 세력들이 등장하는 거대한 규모의 '그랜드 캠페인'입니다. 전략 파트는 영토 점령과 건물 건설, 군단 창설과 병력 보충, 외교로 이뤄져 있고, 전투 파트는 일반적인 RTS처럼 병력을 배치하고 컨트롤해 실시간으로 싸우는 전통적인 토탈워 시리즈의 형태로 이뤄져 있죠.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토탈워 워해머' 시리즈가 전통적으로 게이머들이 '판타지'라는 세계관에 가지는 모든 매력적인 요소들을 업데이트마다 조금씩 담아왔고, 이 '불멸의 제국들'은 그간 모인 모든 로망이 폭발하는 대잔치라는 겁니다. '불멸의 제국들'에는 총 23개의 팩션이 등장하며, 그 25개의 팩션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총 23종의 팩션, 86명의 전설 군주

제국: 균형잡힌 기보 구성, 마법과 화약 무기를 활용
드워프: 느리지만 단단한 보병과 포병
그린스킨: 물량으로 승부하는 오크와 고블린
뱀파이어 백작: 원거리는 없지만 쏟아지는 물량의 언데드 군대, 강력하고 빠른 괴수들
카오스의 전사: 붙으면 다 이기는 보병들과 괴수들
비스트맨: 엄청나게 빠른 반인반수들
우드 엘프: 붙기 전에 다 두들겨패는 활의 명수들
노스카: 맘모스를 타고 다님, 리더가 욕을 잘함
브레토니아: 값싼 고기방패 농노무리 + 세계최강의 기병대
리자드맨: 공룡이 공룡을 타고 다님
하이 엘프: 싸워도 세지만 그 전에 정치질로 다 해먹는 음흉한 요정들
다크 엘프: 싸울수록 강해지는 병종 + 노예 경제
스케이븐: 물량과 화력의 대명사
툼 킹: 공짜 해골 + 건축물 취급의 괴수 병종
뱀파이어 코스트: 세계최강 대포를 지닌 뱀파이어 해적들
키슬레프: 눈밭에서도 웃통을 까고 다니는 상남자들, 얼음 마법 학파
케세이: 동양 문화의 자부심, 도자기 로봇
오거 왕국: 기본 유닛부터가 괴수인 괴수 올인 먹보들
코른: 돌격밖에 모르는 악마들
너글: 역병밖에 모르는 악마들
젠취: 마법밖에 모르는 악마들
슬라네쉬: 겁나게 빠른 변태 악마들
카오스의 악마: 위에 네 악마들이 하나로 뭉쳤다...!


이 23개의 세력만 해도 즐거운데,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각 세력에는 많게는 7명의 전설 군주가 존재하고, 이 군주 중 하나를 선택해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는데, 각 군주마다 캠페인 기믹이 모두 다릅니다.

예를 들어 제국의 황제인 '칼 프란츠'를 고르면 정치질에 여념이 없는 선제후들을 달래거나 뚝배기를 작살내고 제국을 통합하는게 지상과제이지만, 헌츠마샬인 '마르쿠스 볼프하르트'를 선택하면 리자드맨이 가득한 정글에서 시작해 괴수 위주의 팩션들과 아옹다옹하게 됩니다.

▲ 한 줄로 세워도 괜찮았던 2부 대비 늘어난 군주 수 때문에

▲ 진영 선택 UI가 변경된 3부 통합 캠페인

이런 전설 군주가 다 합치면 무려 86명입니다. 플레이어가 고를 수 있는 팩션이 86개인거죠. '문명6'와 비교하면, 맵이 고정인 대신 총 86개의 각기 다른 승리 방법과 병종 구성을 갖춘 팩션이 존재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덕분에 '불멸의 제국들'에서는 '판타지'라는 영역에 걸쳐 있기만 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전투 상황이 벌어집니다. 악마 무더기에 기사 돌진시키기, 밀려오는 좀비떼에 대포알 날리기, 남의 집에 역병 퍼붓고 구경하기, 공룡이랑 드래곤이랑 맞짱뜨게 만들기까지, 사실상 이 점이 '불멸의 제국들'의 가치이자 핵심입니다.

▲ 좀비 무더기에 코른의 칼날 꽂기

물론, 전투가 너무 힘들다면 특산품을 개발해 무역으로 자금을 확보하고, 외교를 활용해 전선을 줄이면서 차근차근 플레이하는 방법도 가능합니다. 어디까지나 '토탈워'는 대전략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다양한 플레이 방법을 가능하게 만드는 거대한 샌드박스는 이전까지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겁니다.



그리고 기대만큼 재미있다

얼추 게임을 소개했으니, 이제 이전까지의 게임을 플레이했던 분들을 위해 감상과 변경점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1~3부 통합 캠페인인 '불멸의 제국들'은 1~2부 통합 캠페인인 '필멸의 제국들'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습니다.

일단, 맵이 무척 커졌습니다. '필멸의 제국들'에 등장했던 점령 가능했던 정착지의 수가 최종 업데이트 기준으로 총 355개였는데, '불멸의 제국들'은 시작부터 533개의 정착지가 등장합니다. 단순 계산으로도 1.5배 정도 커진 셈이죠. 때문에, 전 맵을 전부 점령하는 점령 승리 플레이는 사실상 매우 힘듭니다. 어렵다기보다는 무척 시간이 많이 들죠.

▲ 유목 팩션 카오스가 정주 팩션이 되면서 더 치열해진 땅따먹기

때문에, 플레이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CA는 각 전설군주마다 짧게는 몇 시간 만에 클리어 가능한 단기 승리 목표들을 마련했습니다. '필멸의 제국들'은 승리 목표가 너무 오래 걸리는 팩션의 경우 게임 도중 알아서 자체 엔딩을 내 버리고 새 게임을 시작하는 게이머들이 많았는데, 이번엔 이쯤에서 승리하고 그만 둬도 된다는 선택지를 준 셈이죠.

이번에 시작 위치가 엘프의 섬인 울쑤안으로 바뀐 슬라네쉬를 예로 들면, 단기 캠페인 승리 조건은 에아테인, 이브레스, 아벨로른을 파괴하고 아수리얀의 사원을 포함해 35개 정착지를 점령하면 끝입니다. 사실상 울쑤안만 휩쓸면 거의 완성되는 목표라 볼 수 있죠. 하지만, 장기 목표는 모든 경쟁 카오스 세력을 끝장내고 80개의 정착지를 점령해야 완수됩니다.

▲ 단기 목표는 꽤 심플한 편, 금방 완수할 수 있다.

계속 플레이해 장기 승리 목표를 달성한다면, 이전과 달라진 후반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전까진 후반 위기 시나리오가 '엔드타임'으로 고정되어 엄청난 수의 카오스 팩션들이 쏟아져 나와 세계를 초토화 시키는 형태로 흘러갔는데, 카오스 세력의 다수가 플레이어블 팩션이 되면서 후반 위기도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가 선택되는 방식입니다. 뱀파이어들이 날뛰거나, 우드 엘프가 쏟아져나와 와일드 헌트를 시작하는 등의 후반 위기가 준비되어 있죠.

그밖에 전작들과의 차이점이라면, 굉장히 많은 영역에서 이뤄진 밸런싱과 시작 위치 변경입니다. 굉장히 많은 팩션들이 기존의 위치를 이탈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는데, 덕분에 본편이나 필멸의 제국들과 완전히 다른 초반 대립이 이뤄집니다. 쥘파니아에서 시작하던 '만프레드 폰 칼슈타인'은 사우스랜드로 이동해 나가쉬의 책을 모으는 기믹을 갖게 되었고, 브레토니아에서 무역에 열중하던 '알베릭'은 러스트리아로 이동해 리자드맨들을 상대로 싸우게 되었죠.

▲ 이전과 많이 달라진 팩션 별 시작 위치

이 과정에서 각 팩션 별 밸런싱도 매우 큰 폭으로 이뤄졌습니다. 뱀파이어 카운트는 엄청난 회복력과 레이즈 데드를 갖춰 죽여도 죽지 않는 불사군단이 되었고, 종잇장보다 조금 낫던 해골들로 초반을 견뎌야 했던 '툼 킹'도 해골 전반 스펙이 올라가면서 초반을 보다 수월히 넘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멀티플레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완벽한 밸런싱은 어렵겠지만, 기존 팩션들의 취약점을 너무 과하지 않은 선에서 보충하면서, 팩션의 매력도 살려내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죠.

그리고 그 결과, '불멸의 제국들'은 무척 재밌습니다. 좋은 게임을 꾸미는 수식어는 매우 많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표현인 '재미있다'가 아마 가장 잘 어울릴 겁니다. 게임 시작 시 팩션이 277개(각 종족 별 하위 팩션, 유랑 군단 등을 포함해)나 되어 초반엔 턴 넘기기가 오래 걸리긴 하지만, 팩션별로 잡아먹는 시간은 '토탈워: 삼국' 수준으로 줄어들었기에 턴 렉도 그리 크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제가 꿈꾸던 궁극의 게임에 다가섰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베타 기간이었기에 확답은 어렵지만, 그래도 꽤 많이 근접해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평범한 군주를 악마에 맞춰 승천시키는 시스템이 생긴 카오스의 전사



아직 남은 업데이트

물론, 불멸의 제국들이 완벽한 게임일 수는 없습니다. 이 게임의 단점은 게임 외적 영역에 있는데, 각 팩션과 병종 등이 모두 다 DLC이다 보니, 따로 할인을 받지 않으면 게임의 모든 요소(1부, 2부, 3부, 각 부에 해당하는 전설 군주나 병종 DLC)를 구매하는데 무려 40만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합니다. 저처럼 시리즈의 팬이어서 DLC가 나올때마다 신상 메뉴 맛보듯 사버린 게이머들에게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이제 막 '토탈워: 워해머' 시리즈를 알게 되고 게임을 해볼까 하는 분들에게는 이만한 장벽이 없을 겁니다.

때문에, 저 또한 이 게임을 지인에게 쉽게 권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매력을 알게 되면 그 어떤 게임보다도 큰 재미를 주지만, 그 재미를 돈으로 사서 모아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게임의 깊이가 깊은 만큼, 익숙해지는데도 시간이 필요해 초반엔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쉬움 난이도조차도 초보자에겐 막막할 때가 많죠.

▲ 솔직히 어렵고 복잡한 게임인 건 맞다

하지만, 큰 맘 먹고 게임을 제대로 시작하면, '토탈워: 워해머' 시리즈는 돈 값은 확실히 하는 게임입니다. 원작이자 게임즈워크샵의 테이블탑 게임인 '워해머 판타지'는 망해버렸습니다. 오래된 테이블탑 게임인데 신규 유저도 없고 새 모델은 팔리지도 않았거든요.

그러나 '토탈워: 워해머' 시리즈와 '버민타이드' 시리즈가 IP를 다시 견인하면서 게이머 니즈가 많아지자 게임즈워크샵은 워해머 판타지 시리즈를 '올드 월드'라는 이름으로 다시 부활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시리즈가 망했는데 미디어믹스가 흥하니 원작이 부활해버린 사례죠. 그 만큼 뛰어난 게임이라는 듯입니다.

▲ 그냥 팩션별로 한 번씩만 해도 오래 할 만 하다. 다 돈주고 사는 팩션이라 문제지...

그리고, 개발사인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는 이 '불멸의 제국들'도 꾸준히 업데이트가 이뤄질 것이란 말을 남겼습니다. 이미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거의 모든 것을 담은 이 게임에 더 추가할 게 뭐가 남았나 싶지만, 뭐 DLC는 팔아야겠죠. 이와 관련해서는 언제가 될 진 몰라도 조만간 추가 인터뷰를 진행해 볼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면, '불멸의 제국들'은 진짜입니다. 애초부터 이 캠페인의 존재를 가정하고 3편을 고평가했는데 6개월이나 늦어지는 바람에 제가 좀 애매한 상황에 처하긴 했었지만, 그 민망함을 견디고도 행복할 수 있을 정도로 이 게임은 재밌습니다. 올해 11월, 게이머들의 가슴을 울릴 대작 행진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가 오기 전까지 질리지 않고 할 만한 게임이 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말씀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