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맛 찹쌀떡 같은 귀여운 모습의 캐릭터 디자인으로 국내 게이머들에게도 잘 알려진 게임 시리즈, '별의 커비'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3월에는 시리즈 3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히 제작된 기념 타이틀인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이하 디스커버리)'가 닌텐도 스위치 플랫폼을 통해 정식 출시됐고, 출시 15주 만에 4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별의 커비' 시리즈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최다 판매량 기록을 다시 썼다.

신작 디스커버리의 가장 큰 특징은 시리즈 전통의 횡스크롤 조작 방식에서 벗어나, 최초로 '전방향 3D 액션 게임'이 됐다는 점이다. 패미컴 시절부터 본가 시리즈 작품이 12개 이상 출시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을 30주년 기념작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시도했고, 첫 번째 도전으로 지금까지의 기록을 모두 갈아치울 정도로 높은 흥행을 기록한 셈이다.

세계 각국의 게임 개발자들이 모여 개발 실무 이야기와 사례, 노하우를 소개하는 컨퍼런스인 CEDEC 2022(이하 세덱) 이틀 차 행사에서는 지난 30년간 별의 커비 시리즈를 만들어온 개발사 HAL 연구소의 개발자들이 참여하는 강연이 진행됐다.

'별의 커비 시리즈 첫 도전, 3D 액션과 현실 세계와의 융합을 실현한 아트 디렉션'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강연은 커비의 세계관에 현실 세계를 융합하는 과정에서 개발자들이 마주했던 장애물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사용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와 노하우로 알차게 채워졌다.

▲ HAL 연구소 제1개발부 모리시타 다이스케 아티스트, 파만 아트 디렉터


■ 3D로 더 귀여워진 디스커버리 속 '커비'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강연의 첫 순서는 디스커버리 개발의 기획 단계에 대한 소개로 시작됐다. 사실 별의 커비 시리즈에서 3D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3년에 출시된 외전 타이틀인 '커비의 에어라이드'에서 가장 먼저 3D가 시도됐고, 이후에도 '커비의 빨아들이기 대작전', '별의 커비 스타 얼라이즈' 등의 작품에서 3D 요소가 등장한 바 있다. HAL 연구소는 이때부터 꾸준히 3D 개발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었고, 30주년 기념작인 디스커버리를 통해 비로소 '본가 시리즈 최초의 전방향 3D 액션 게임'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디스커버리의 가장 초기 컨셉은 원작의 세계관인 '푸푸푸랜드'를 단순히 3D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커비 캐릭터에 대한 고찰이 이어졌고, '자유롭게 변형하는 고무 덩어리 같은 캐릭터가 다양한 모양으로 변하는 머금기 변형 액션'을 그리는 것으로 작품의 방향성이 정해졌다.

자연스럽게 다음 과제는 '무엇을 흡수하고, 변형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게 된다. 개발팀은 변형 액션의 대단함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가상의 마법 아이템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현실 세계의 물건이라고 판단했다. 이로써 단순히 기존 세계관을 3D로 바꾼 것이 아닌, 현실 세계의 물건이 곳곳에 널려 있는 문명과 자연이 융합된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 HAL 연구소는 3D 제작 관련 노하우를 지난 20년 전부터 차근차근 쌓아왔다

▲ 기존 시리즈에서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HAL 연구소의 개발자들이 현실 세계의 물건을 흡수하는 커비의 변형 액션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변신이 아닌 변형'을 담는 것에 있었다. 초반의 컨셉 아트에서는 자동차를 흡수한 커비의 손과 발이 자동차의 구조로 변하는 '변신' 같은 형태였는데, 이 경우에는 주체가 커비인지 알아보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가 이어졌고, 결국 얼굴의 밸런스는 유지하면서, 변형 후에도 커비의 손과 발을 표시하고, 커비의 입을 통해 흡수된 물건의 일부가 보이게 하는 것으로 기본적인 변형 공식이 갖춰지게 됐다.

이후 더 자연스러운 연출을 위해 '변형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시도가 이어졌다. 파만 디렉터는 커비가 물건을 흡수하는 과정을 표시해주는 것이 유저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며, 생각보다 더 많은 코스트가 들었지만 공을 들여서 만들어낸 부분이라고 말했다.

▲ 초반의 컨셉 아트는 마법을 활용한 '변신'에 가까웠다

▲ 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만들기 위한 시행착오가 이어졌고,

▲ 커비의 변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결정됐다

▲ 커비의 변형이 이루어지는 과정 역시 생략할 수 없는 중요한 연출 중 하나다

흡수할 물건도 정했고, 물건을 흡수한 다음의 모습도 떠올렸으니, 다음으로 고려할 것은 변형이 이루어진 이후의 액션이다. 파만 디렉터는 임팩트가 있는 커비의 외형, 그리고 외형에 걸맞은 귀여운 움직임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디스커버리의 커비는 작은 물체를 먹으면 촘촘하고 빠르게 움직이고, 거대한 물체를 먹은 뒤에는 느리고 무겁게 움직인다. 동시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에 다소 위태롭고 불안감이 느껴지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파만 디렉터는 커비의 모습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소 기괴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10명 중 7명은 귀엽다고 느끼고, 나머지 셋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점점 애정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 커비 디자인의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 어떻게 흡수했느냐에 따라 보여지는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

▲ 흡수한 물건에 따라 움직임이 달라지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

▲ 디스커버리에서는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하는 커비를 만날 수 있다



■ 더 넓어진 세상, 커비가 활약하는 '신세계의 3D 비주얼'을 만들다


디스커버리라는 작품을 정의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현실세계'다. 기존의 커비는 마법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비교적 배경의 자유도가 높았고, 담당 배경 아티스트의 개성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디스커버리에서는 기존의 배경과는 다른 '현실세계'가 그려지므로,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HAL 연구소의 개발진이 잡은 중요 포인트는 배경에 현실의 모습을 담아내면서도, 어디까지나 '커비 게임'이라는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에 있었다. 현실세계에 없을 것 같은 이상한 물건은 가능한 배제 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게임 속에 커비만 덩그러니 놓아둔 것 같은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커비다움'을 함께 배치하는 식이다.

개발팀은 '1) 배경 전체를 풀이나 꽃 등 자연물로 덮기', '2) 건축물은 파괴된 것 대신, 풍화로 무너진 표현으로', '3) 빛바랜 색 대신 가능한 선명한 색으로', '4) 심도를 강하게 넣어 미니어처 느낌 살리기'까지 총 네 가지 규칙을 미리 정한 뒤, 이를 게임에 반영하면서 비로소 현실적인 배경 속에 녹아든 커비다운 배경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 '사람이 살던 장소에 커비가 있다면?'이라는 발상으로 놀라움과 설렘의 재미를 담았다

디스커버리에는 이외에도 3D로 변한 세상에서 커비가 더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여러 디테일이 포함되어 있다. 첫 번째는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알기 쉽도록, 3D용으로 조정된 전용 모션과 모델링이다. 측면 시점으로만 진행됐던 전작 '스타 얼라이즈'와 달리 디스커버리에서는 커비가 전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므로, 커비의 방향성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도록 모션 수정, 이펙트 추가 등 추가 공정이 이뤄졌다. 파만 디렉터는 어찌보면 잘 드러나지도 않고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의 편의를 위해 꼭 필요한 작업들이었다고 설명했다.

가시성을 높여주는 추가 디테일로 언제 어디서나 커비의 정확한 위치를 보여주는 데칼 섀도우, 어두운 곳에서도 주요 오브젝트와 캐릭터를 강조해주는 캐릭터 라이트 보정, 배경의 색에 현실적으로 녹아들면서도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는 채도 보정 등 게임 속에 반영된 여러 기능들이 함께 소개됐다.

▲ 한 손으로 던지던 폭탄을 양손으로 들고, 슬라이딩에 이펙트를 넣는 등 사소한 배려가 다양하게 반영됐다

▲ 커비가 어느 축에 위치하는지 항상 특정해주는 데칼 섀도우. 그림자 안에 있더라도 항상 표시된다

이러한 노력 탓에 디스커버리의 배경 개발에 들어간 인력은 전작의 배에 달하게 됐다. 파만 디렉터는 배경 요소로만 8개의 구역, 시리즈 최대 볼륨이라 할 수 있는 97개의 스테이지, 250개의 맵이 새롭게 만들어졌으니, 당연히 제작 비용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그들이 채택한 방법은 사용하는 개발 툴과 기능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표현의 폭을 통일하여 빠른 진행을 실현하고, '3D 액션이 된 커비에서 유저들이 요구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며 우선 사항을 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보스 스테이지나 '보여주기 위한 맵'에서는 그러한 규칙이나 결박을 없애고, 아티스트의 표현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함께 제공하여 작품의 퀄리티를 유지해나갔다. 파만 디렉터는 "모든 스태프가 최고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적정한 범위에서 규칙이나 방침을 마련하여 팀이 최고의 스펙을 낼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레벨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의 연계가 매력적인 배경을 만든다


HAL 연구소의 개발팀은 디스커버리의 개발 작업에 레벨 디자인과 아티스트의 연계가 특히 많이 일어났고, 이 덕에 이미 다 완성된 콘텐츠에 단순히 비주얼을 채우는 것이 아닌, 비주얼에서 콘텐츠가 발생하는 흐름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강연을 통해 공개된 이미지를 보면, 컨셉아트에 포함된 주요 비주얼 요소가 레벨 디자인에 적용되어 저마다의 매력을 만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백화점 맵이라면 에스컬레이터가, 유원지 맵이라면 퍼레이드가 실제 게임 속 주요 콘텐츠로 활용되는 식이다.

그중에는 컨셉아트의 느낌을 그래도 살리기 위해 콘텐츠보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포커스를 둔 '보여주기 맵'도 존재한다. 해당 장소는 고정 카메라 시점을 통해 유저에게 전달하고 싶은 아름다운 비주얼을 전하고, 등장하는 적이나 기믹의 빈도를 줄여 유저가 게임 속 세상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물론 이런 '보여주기 맵'의 빈도가 너무 잦고 길면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 있으므로, 금방 유저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믹이 등장하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가 함께 적용됐다.

▲ 컨셉 아트를 그대로 옮긴 것 같은 맵이 자주 등장한다

▲ 비주얼 부분의 매력을 강조하는 '보여주기 맵'

이처럼 매력적인 맵을 만들 때 가장 자주 발생하는 문제가 있으니, 바로 주인공이 나아가야할 길을 제대로 표시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다. 파만 디렉터는 게임의 비주얼을 더 좋게 하려다 결국 플레이 경험에 방해를 주는 일도 많으므로, 특히 조심해야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디스커버리에서 개발진이 사용한 대안은 '주요 루트를 가리는 장애물을 배치하지 않기', '물건의 그림자나 엠비언트 라이트로 길을 표시하기', '주요 루트 주변에는 신경 쓰이는 오브젝트를 배치하지 않기', '상호작용이 가능한 오브젝트를 늘어놓아 길을 유도하기' 등이 있다.

▲ 자연스럽게 나아가야할 방향을 안내할 수 있도록 여러 고민이 들어갔다

강연의 마지막 순서로 게임의 비주얼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HAL 연구소에서 진행했던 여러 고민들이 소개됐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커비의 눈 색깔이 파란색 외에 다양한 색으로 비춰진더거나, 물 속에 들어갔던 커비가 물밖으로 나왔을 때 위에서부터 천천히 마르기 시작하고, 그림자와 안개 표현을 통해 장소의 분위기가 더 효과적으로 강조되는 등 개발자의 애정이 담긴 여러 사소한 디테일을 게임 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파만 디렉터는 커비의 '머금기 변형 액션'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새로운 무대와 비주얼을 고민했고, 3D 환경에서도 어색함 없이 플레이할 수 있도록 비주얼면에서도 여러 기능을 적용했으며, 사실적인 모습과 고증을 강조하기보다 '인상'을 남기는 것을 더 중시했기에 지금의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말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