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 샌드박스 카트라이더팀의 영원한 주장 박인수와 결정적 순간 언제나 든든하게 팀을 지켜주던 정승하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팀을 떠난다. 너무나도 갑작스레 결정된 입대지만, 제법 덤덤한 두 선수였다.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라는 새로운 게임의 프리시즌, 그것도 대회 후반부에 정해진 소식에 팀 관계자는 물론 팬들 역시 굉장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렇게 KDL 프리시즌1을 끝으로 박인수와 정승하의 카트라이더 선수 활동은 마침표, 혹은 쉼표를 찍게 됐다.

그동안 리브 샌드박스는 5번의 우승, 그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고, 카트라이더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두 선수의 노고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KDL 프리시즌1 결승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두 선수의 현재 심정, 그리고 팬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 등, 많은 것을 들어볼 수 있었다.


Q.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이번 KDL 프리시즌1에 임하는 각오도 남다르게 느껴졌다.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전체적인 총평을 부탁한다.

박인수 : KDL 프리시즌1이 시작할 때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 다 같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고, 리그 도중에 상황이 벌어졌다. 일정도 굉장히 바빴는데, 결승전이 끝난 뒤에 준우승을 차지했어도 생각보다 덤덤했다. 지면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눈물도 나지 않았고 '이제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동안 프로게이머 생활을 했던 나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스스로 건네고 싶다.

정승하 : 즐기자는 생각으로 임했던 시즌이다. 그런데 부상도 있어 참여하지 못한 적도 있고, 군대 소식을 시즌 중반 이후에 접해 당황스러웠다. 상대가 적응을 더 잘했기 때문에 준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뭔가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이제 좀 쉴 수 있다는 생각도 있다. 준우승 이후에 '지민' (김)지민이가 정말 많이 울었다.

박인수 : 지민이가 리브 샌드박스에 들어와서 나와 정승하 선수가 갑자기 빠지게 되어 당황스러울 것 같다. 알게 모르게 피해를 준 것 같아 미안한 감정도 있다. 앞으로 선수 생활을 해야 하는데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Q. 또 다른 팀원들은 별말이 없었나?

정승하 : '닐'은 경기가 끝난 뒤 멍하게 대형 스크린만 바라보고 있고, 나랑 인수의 눈을 못 보더라. 미안한 감정이 느껴졌다. '지민'이는 1페이즈 아이템전에서 실수가 있었는데 그 뒤부터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느껴졌다. 감정적으로 많이 격해졌던 것 같다. 두 선수의 경우 스피드전, 아이템전 하나만 뛰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미안하다고 했던 것 같다.

박인수 : 현수 같은 경우는 그동안 중요한 경기, 어려운 상황을 함께 겪고 오랜 기간 팀 동료로 뛰었다. 그래서 서로 격려를 많이 했고, '닐'은 나를 정말 존중해 주고, 한국에 오기 전부터 서로 인정하는 사이였고, 한국에 온 뒤에 피드백도 많이 했다. 그리고 자기한테 알려주고 그런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면서 우리를 기다리겠다고 하더라.


Q. 2015년 데뷔해 2019년 리브 샌드박스라는 날개를 달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박인수 : 리브 샌드박스에서 활동을 시작할 때 팀과 나의 생각이 동일했다.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극복하고 우승도 많이 하고, 정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리브 샌드박스가 있다. 내가 처음 팀에 들어왔을 때 원했던 팀으로 성장해서 뿌듯하고, 현재 리브 샌드박스라는 팀의 아이콘을 만드는 데 기여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정말 기쁘다.

리브 샌드박스 소속으로 처음 결승에 갔을 때 그런 말을 했다. '카트 리그에 뭔가 기여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어느 정도는 그 말을 지킨 것 같다.


Q. 듀얼 레이스를 기점으로 경기력이 폭발했다. 엄청 공격적인 주행으로 주목 받고, 문호준-유영혁 시대를 바꾼 장본인인데?

박인수 : 언론이나 주변의 분위기에 따라 세대교체의 선두 주자라는 말을 중계진도 그렇고 많이 해주셨다. 그런데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걸 이루기 위해 묵묵하게 노력해 왔다. 팬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내 나름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카트 리그를 위해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Q. 정승하 선수는 Oz, 긱스타, 아프리카 프릭스를 거쳐 2020년 리브 샌드박스에 합류했다.

정승하 : 은퇴를 했다가 아프리카 프릭스에 복귀했을 때, 정말 힘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부족했던 상태인데 리브 샌드박스에서 나를 믿어줬다. 그래서 리브 샌드박스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고, 나도 팀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우승도 많이 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 팀에 감사함이 크다. 팀에 와서 내가 이루고 싶었던 목표는 다 이룬 것 같다.


Q. 두 선수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정승하 : 듀얼레이스2 였던 것 같다. 나는 무명이고 예선도 탈락했는데, 인수한테 연락이 많이 왔다. 그러다가 2017년 처음 롯데월드에서 만났는데 그때 친해졌다. 당시에도 같은 팀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으나 내가 거절했다. 나보다 형인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말을 놓고 지냈고, 이후 형이라고 부른 적이 있는데 너무 어색하더라. 그래서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박인수 : 온라인에서 승하가 게임을 하는 걸 보고 신인의 플레이가 아니라고 느꼈다. 당시 나보다 잘한다고 생각해서 제안을 했었다. 친하게 지내고 싶기도 했고. 내가 한 살 형이지만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다. 그리고 찐친이 되면서 승하가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걸 보고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Q. 그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박인수 : 화정 체육관에서 결승전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의 함성을 처음 느꼈다. 오픈 부스 형태였는데 함성으로 인해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스럽게 다시 느꼈고 그 순간이 정말 기억이 남는다.

정승하 : 우승했을 때도 좋긴 한데, 카트라이더 역주행이 시작되고 광운대에서 개인전 결승전을 치르러 갔던 적이 있다. 그때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Q.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박인수 : 모든 개인전 마지막 2인 대결이다. 특히 카트라이더 서비스 종료되기 전 마지막 결승전은 꼭 우승을 차지하고 싶었는데, 그걸 달성하지 못해 정말 아쉽다.

정승하 : 데뷔했을 때 개인전 4인까지 갔는데 경험이 부족해서 대처를 못해서 4위를 차지했다. 그때 올라갔다면 내 카트 인생 중 개인전 입상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지 않나 싶다.


Q. 함께 했던 선수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박인수 : 한 명만 언급하기는 어렵고, 네 명 정도가 생각한다. 제일 먼저 (이)중선이 형이다. 게임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준 게 중선이 형이다. 키보드 잡는 방법부터 모든 걸 따라했던 기억이 남는다. 같은 팀을 뛰면서 꿈을 이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열정의 원동력이 된 선수다.

그리고 '닐'. '닐'의 심정이 어떨지 지금도 예측이 되질 않는다. 먼 타지에 와서 활동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정말 대견한 것 같다. 마인드도 배울 점이 많다. 그리고 팬들에게도 '닐'이 어떤 마음으로 한국에 와서 활동하는지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면 좋겠다.

현수는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무슨 믿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할 것 같은 확신이 있었다. 지금은 주장을 이어 받을만한 선수로 성장한 것 같아 기특하고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 감정도 있다. 앞으로 팀을 잘 이끌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유창현이다. 같은 팀을 하기 전, 사는 곳이 가까워 우리 집에서 자기도 하고 정말 많이 챙겨주고 친동생처럼 아꼈던 기억이 있다.

정승하 : 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 세 명 정도가 기억에 남는데 정승민 형은 성격도 비슷하고, 나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봐준 형이다. 그리고 전대웅 형, 최윤서 선수다. 둘과 팀을 하면서 정말 재밌던 기억이 남는다. 대웅이 형은 카트라이더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 팀을 함께 하기 전에 뭔가 예민하고 나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정말 많이 챙겨줬다.

생각해 보니 유영혁 형도 기억에 남는다. 나의 롤모델이었다. 같이 한다는 게 정말 처음에는 떨렸고, 생활을 하면서 재밌기도 했다. 당시 3위였는데 성적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즐거운 기억이 많이 남는다.


Q. 매번 경기 이후 팬미팅을 하면 정말 많은 팬들이 몰린다. 기억에 남는 팬이나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박인수 : 정말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고 있다는 걸 항상 느끼고 있다.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것만으로 팬들에게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이다.

정승하 : KDL 준우승 후 팬미팅을 기다리고 있는데 팬들이 많이 울고 계시더라. 우리를 정말 많이 응원하고 사랑하고 계신다는 게 느껴졌다.


Q. 추후 계획이 있다면?

박인수 : 개인적으로 학창 시절 때부터 카트 리그가 없는 삶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할 시간이 될 것 같고, 기약은 없지만 돌아올 수도 있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프로게이머가 아니라도 SNS나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소통은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정승하 : 그만두는 순간 SNS나 모든 것들을 탈퇴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말 많은 분들이 반대를 하시더라. 그래서 일단 남겨두긴 할 것 같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상황이나 조건이 맞다면 다시 선수로 도전할 수도 있고, 가능성은 어떤 방향이든 열려 있다.


Q. 끝으로 팬들에게 인사 부탁한다.

박인수 : KDL 결승 후 팬미팅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그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열정, 노력에 대한 부분을 나를 통해서 배웠다'고 감사 인사를 건네는 팬들이 많았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팬들에게는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계속 해도 모자라다. 팬들도 항상 힘차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정승하 : 팬들에게 고생했고, 수고했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프로게이머를 하기 전에 팬들과 똑같은 게임 좋아하는 일반인이었는데 그냥 게임을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할 뿐이다. 그런데 그 이유로 많은 팬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