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사막이 서비스를 시작한 시기는 2015년 7월 23일. 이듬해인 2016년 6월에 모바일로도 개발을 진행하겠다는 발표 이후 약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검은사막 모바일이 2주 이내로 CBT 진행 일정을 공개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공지했다. 현재 사전 예약 신청자 수 200만 명을 돌파하며 올해 오픈 예정인 신작 중 매우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원작인 PC판 검은사막을 미리 플레이 해본 유저들도 있지만, 원작을 플레이하지 않고 이번에 처음 접하는 유저들도 존재한다. 하여 CBT 일정 공개 전에, 검은사막 모바일의 세계관을 먼저 파악하고 플레이 하는것이 게임 진행에 이해를 돕고 스토리 진행에 관심을 갖도록 검은사막 모바일의 세계관을 알아보려 한다. '검은사막 모바일'은 PC판 검은사막과 동일한 세계관으로 스토리가 그대로 옮겨져 기존 원작을 플레이 해본 유저들도 이질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 검은사막 모바일은 검은사막의 세계관을 따르며, 세계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검은사막 공식 홈페이지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기사의 내용은 서비스 오픈 이후 다소 차이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 일반적인 사막이랑 다를 게 없는데, 왜 검은사막이라고 불릴까


칼페온과 발렌시아, 검은 돌에 얽힌 사연
재앙의 발단과 그것을 두고 둘러싼 연합군과 발렌시아의 전쟁

"사막은 아알의 영역이오, 오아시스는 청량함이며, 검은 돌은 풍족함이라." - 이무르 네세르

'검은사막'의 배경은 기본적으로 '칼페온'과 '발렌시아' 두 국가 경계에 있는 사막에서 벌어진 '검은 돌'을 두고 다툰 전쟁과 그 주변국인 '세렌디아', '메디아', '카마실비아'와 관련된 이야기다. 검은 돌은 고대 문명의 원동력으로 문명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신비로운 돌이었다. 하지만 인공적인 화학작용으로 인해 고대인들을 타락시켰으며, 종국에는 고대인들과 문명을 멸망시킨 위험한 물건이기도 했다.

이러한 돌이 두 국가 경계 사이에 있는 사막에 다량으로 묻혀있음을 알게 된 칼페온은 그 사막을 '검은 사막'이라 명칭하고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상대국인 발렌시아 왕국에서는 이 전쟁에서 병사들이 많은 피를 흘렸다고 하여 '붉은 사막'이라 칭한다. 이것이 '검은사막' 스토리의 설정이고, 게임의 도입부이기도 하다.

칼페온은 왜 검은 돌을 차지하려 했을까. 칼페온의 세계관을 살펴보면 국가를 덮친 '검은 죽음'이라는 피부가 검게 썩어가는 재앙에 칼페온을 비롯한 서대륙 국가의 인구의 절반이 몰살당했다. 이러한 불안 속에서 귀족과 사제 고위 계급들의 지위가 불안정해지자 '발렌시아가 검은 돌로 연금한 마법으로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검은 돌을 차지해야 한다'고 하층민 계급들을 선동해 부역에도 없던 급료까지 약속하며 전쟁을 일으킨다.

▲ 검은 사막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이 검은 돌 때문이었다

발렌시아는 과연 재앙의 가해자였을까. 발렌시아는 '아크만'이라는 고대 문명을 수호하는 부족과 네세르 왕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 사막의 고대 유물이 왕족에게 귀속되는 것을 원치 않는 중립적인 태도를 건국 이래로부터 고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처럼 끊임없이 이어져 14대 국왕인 이무르 네세르의 시대 까지 이르러왔다.

이무르 국왕은 일생동안 부족의 규합을 유일한 과제로 여겨 수 차례 회유를 시도해 왔었다. 하지만 모두 거절당하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이무르 국왕은 참지 못하고 결국 군대를 보내 아크만 부족을 학살하고 말았다. 끔찍한 학살 속에서도 끝내 굴복하지 않은 아크만 부족들이 모습을 감춘 후, 참담한 재앙이 서대륙을 뒤덮었는데 바로 '검은 죽음'이었던 것이다. 이 '검은 죽음'에 이무르 국왕은 사랑하는 왕비를 잃기까지 한다.

발렌시아의 백성들은 왕이 아크만 부족을 학살한 죄의 댓가라며 두려워했다. 그러나 서대륙의 다른 국가에서는 발렌시아가 검은 돌을 이용해 재앙을 불러일으킨 것이라며 선동을 한 것이었다. 칼페온의 국왕 '가이 세릭'을 맹주로 한 서대륙의 연합군은 정의로운 명분을 앞세워 기세 등등하게 사막에 올랐다. 그러나 이를 예측이라도 한 듯 오직 이무르 국왕을 위해 존재하는 발렌시아의 정예군이 사막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뿐 만 아니라 발렌시아군에 비하면 연합군은 급조된 오합지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 세릭의 고집에 전쟁은 삼십 년간 지속됐다.

전쟁을 끝낸건 한 쪽의 승리가 아닌 자연의 섭리였다. 사막에 뒤엉켜 있던 칼페온 연합군과 발렌시아군을 사막의 폭풍이 뒤덮은 것이다. 발렌시아에서도 전례가 없었던 일이었고, 이 전쟁으로 칼페온 연합군은 수 만의 군사를 잃고 더 이상 사막에 발을 들이지 않게 된다.

이무르 네세르 국왕은 희생된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사막을 '붉은 사막'이라 칭하고, 전쟁이 승리하게 된 것은 '아알'이라는 신의 덕분이라며 감사제를 올린다.

▲ 재앙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한 전쟁, 그 명분이 옳았는지는 결과가 말해주었다


세렌디아, 내키지 않던 원정의 실패와 포로로 잡힌 국왕
칼페온의 압박 속에서 지낸 불행의 역사. 반전을 꿈꾸는 크루시오 도몬가트

하이델의 왕위를 물려받은 크루시오 도몬가트는 원정의 명분을 찾지 못했다. 부왕과 달리 엘리언교의 신도를 자처하지도 않았고 재앙으로 인한 하층 계급들의 동요도 수그러졌기 때문이다. 다른 것보다도 칼페온의 왕 다하드 세릭이 자신을 하대하는 것도 못마땅했다. 결국 크루시오는 더 이상의 원정은 없다고 칼페온에 통보했다.

답답해진 것은 칼페온의 사제들이었다. 무리한 선동으로 신앙심에 반발이 생긴 상황에서 급작스런 원정 중단은 교단의 권위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사제들은 크루시오에게 경고하는 한편 다하드를 종용해 전쟁을 부추겼다. 칼페온과의 전쟁은 어려운 선택이고 군부에는 부왕을 따르던 엘리언교 신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크루시오는 수 차례 밀사가 다녀간 끝에 다하드의 제안으로 결국 원정을 결심한다.

검은 사막으로 향하는 길, 메디아에 다다를 때 즈음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모래 소용돌이가 일어 낯선 성벽 아래에 주둔지를 세운 후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바람이 잦아들어 메디아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을 때 하이델의 상단을 통해 말로만 들었던 것보다 메디아의 모습이 많이 달라져있었다. 성벽이 높진 않지만 도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곳곳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쉼없이 피어올랐다. 의문점이 굴뚝같은 크루시오를 모르는듯 다하드는 원정길을 재촉했다.

▲ 불편한 원정길, 이 원정의 비참한 결말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긴 행렬이 검은 사막에 이르렀을 무렵 바람이 다시 일었다. 그때 누군가 붉은 깃발을 보았다고 외쳤다. 그것은 발렌시아의 깃발이었다. 종군하던 엘리언 사제들이 모두 하늘을 향해 승전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오랜 적과의 일전을 위해 바람을 등지고 주둔지가 세워졌다.

폭풍우가 몰아쳤다. 모래 구덩이에서 크루시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을 살펴보니 다하드는 간 곳 없었다. 진영에 나뒹구는 붉은 깃발들을 보면 발렌시아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원정은 고사하고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이 설 때 즈음 다시 검은 구름이 사방에 깔렸다.

귀환 길은 험했다. 계속된 모래 폭풍과 지반 침하가 살아남은 원정대를 괴롭혔고, 데미 강 하류에 이르러서는 바다처럼 불어난 강물이 길을 막았다. 한 달을 꼬박 기다리고 난 뒤 강 하류에 생겨난 거대한 삼각주를 건너서야 크루시오는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원정을 후회했다. 마지막 원정은 그렇게 끝났다.

▲ 결판짓지 못한 전쟁을 비웃 듯이, 사막의 폭풍이 단숨에 종결 지어버렸다

하이델의 상인 조합이 메디아를 방문했다. 7년 만에 다시 찾은 메디아는 놀랄만큼 발전해 있었다. 크루시오는 메디아가 발전한 이유를 찾으라 명령했고, 이내 흑결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칼페온의 압박에 불행했던 원정에 나선 과거를 되갚을 확실한 열쇠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흑결정을 찾아 나선 것은 칼페온도 마찬가지였다. 케플란의 채석장에 이어 세렌디아에도 흑결정이 발견됐다는 전령의 보고에 새롭게 즉위한 칼페온의 젊은 왕 '가이 세릭'은 지체하지 않고 세렌디아로 출정을 나선다. 크루시오는 칼페온의 기습에 허무하게 성을 잃고 포로가 되었다. 하지만 크루시오는 항복을 거절했다. 안부를 묻기 위해 온 하이델의 전령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목숨에 개의치 말고 결전할 것'을 명했다.

크루시오의 명령을 받든 하이델의 장수 '클리프'의 군대가 케플란을 두고 공방을 거듭했고 '암스트롱'이 데미 강 계곡을 거슬러 칼페온 평원에 병력을 배치했다. 이미 많은 피를 흘렸지만, 이대로라면 더 큰 피를 흘리게 되는 상황이다. 칼페온이 승리한다 할지라도 두 용장의 분투에 칼페온의 피해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이 세릭은 생각을 바꿨다. 필요한 것은 흑결정이었기에 항복 문서 대신 조약서를 내밀었다. 일말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조약을 받아들이고 1년 후, 크루시오가 하이델로 돌아왔다. 하이델의 백성들과 칼페온에 대항했던 두 장수들은 크루시오의 결정을 존중했다. 비겁자라 수근대던 이들도 적지는 않았지만 크루시오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칼페온의 추출장이 세렌디아의 습지에 들어서는 것이 더 가슴 아팠다. 크루시오가 병을 앓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가이 세릭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게돼 서대륙이 술렁거렸다. 갓 서른의 젊고 강인하던 청년이었기에 괴질에 갑작스런 사망이라는 발표에도 독살에 당했을 것이라는 입소문이 무성했다. 크루시오는 예상보다 빨리 온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다. 권력 암투에 의해 칼페온이 무력해질 것을 예상한 크루시오는 서부의 클리프를 불러 조약 파기에 관해 상의했다. 클리프는 조금 더 지켜보자고 건의했다.

이 논의에는 전쟁 후 건강이 악화된 크루시오를 보좌하던 '조르다인'도 이 자리에 있었다. 조르다인은 가이 세릭의 죽음이 왕실 내부의 권력 암투가 아닌 교단과 동조하는 상인 세력이 벌인 일이기 때문에 현재 칼페온은 결집할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 크루시오는 동의했지만 우선 클리프의 의견을 따랐다.

하지만 칼페온의 혼란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정되고 의회정이 성립하면서 이전보다 국력이 강해졌다. 조르다인은 크루시오에게 5년 이내에 칼페온의 교단이 교세 확장에 몰두하면서 의회정이 무너질 것이라며 국력을 다져 군비를 확충할 것을 건의한다. 크루시오는 이에 동의하고 국가 재건에 박차를 가한다.

▲ 비록 포로 신세가 되었지만, 결연한 의지를 품은 듯 하다


흑결정 교역으로 번성한 메디아, 야만족의 침략을 받다.
우유부단한 국왕을 대신해 탄력적 외교로 번성한 상인 연합회. 그들이 맞이한 불편한 동침

칼페온이 전쟁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자, 메디아 국왕인 바리즈 2세는 사전에 전쟁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칼페온에는 발렌시아로 향하는 길을 터주고 발렌시아에는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소극적인 외교를 대신해 흐름을 간파한 사람이 있었다. 연금술사이자 메디아 상인 연합회를 꾸리고 있었던 '네루다 셴'이었다.

셴은 기술 좋은 대장장이들을 모아 칼페온과 교역을 했다. 상인회가 칼페온 연합에 물자를 지원하는 대신, 칼페온은 물자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검은 돌, 흑결정을 주기로 했다. 칼페온은 흑결정의 가치를 몰랐기에 거래는 흔쾌히 성립됐다. 셴 상인회는 메디아의 용암 동굴의 지형을 이용해 천연 용광로로 사용하고 있었다. 동굴 속 용암은 칼페온보다도 빠른 속도로 무기를 제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빠른 생산력에 감탄한 칼페온은 생산해낸 무기의 양만큼의 흑결정으로 보답했다.

칼페온은 원정에 급급한 나머지 발렌시아 외교 사절단이 메디아를 은밀히 다녀간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메디아 상인회는 칼페온과의 교역으로 받은 대가의 일부를 발렌시아에 지급하고, 발렌시아는 메디아 상인회의 교역권과 보호를 약속했다. 이때 종교가 자유로웠던 메디아에 발렌시아의 신 '아알'을 섬기는 종교가 전파된 것은, 발렌시아와의 본격적인 외교를 표명한 것이다.

메디아 상인회는 칼페온과 발렌시아 사이에서의 탄력적인 교역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자, 수도를 건설하고 성을 쌓기 시작했다. 중심지가 없었던 메디아에 수도 '알티노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성벽이 점차 높아지자 상인들을 포함한 백성들이 탄성을 자아내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이 폭풍 전야가 되리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 용암 동굴의 자연적인 지형은 천연 용광로가 되어주었다

▲ 칼페온과의 흑결정 교역으로 메디아는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교역으로 부를 축적하던 메디아도 잇따른 태풍과 가뭄과 같은 재해에는 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다. 고원과 사막 너머 부락을 형성하던 야만족을 움직여 피해가 덜한 메디아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머지 않아 용암 동굴과 철광산이 야만족에 의해 공격을 받아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재앙의 발단은 메디아 서부의 작은 마을, 타리프에서 시작됐다. 타리프 마을은 '소서러'들의 보금자리로 대대로 외부와 단절된 독자적인 마을이었다. 약 삼백 년전, 동쪽의 땅에서 소서러 '카르티안'이 무리를 이끌고 메디아에 정착했고 카르티안이 죽기 전에 마법서인 '카르티안서'를 작성해 마을의 규율을 세웠다. 이 마법서에는 소서러가 지켜야 할 규범과 카르티안의 힘이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카르티안서는 감당하지 못할 강한 힘이었고, 먼 곳으로 터전을 옮긴 소서러들은 조금씩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소서러들은 카르티안서의 규율과 힘을 습득할수록 신체, 정신적으로 손상이 지속되자, 카르티안서를 새롭게 작성하고 원본을 봉인한다. 그리고 강한 지도자가 새롭게 나타날 수록 소서러의 파멸을 꺼내볼 수 없도록 카르티안서의 결계를 더욱 강화했다.

타리프 마을의 '아혼 키루스'의 다음 지도자로 지목된 여인 '일레즈라'가 규율을 어기고 금기의 영역이었던 봉인된 카르티안서를 탐했다. 자멸하면서 까지 카르티안서에 적힌 힘을 습득하는 데 성공한 일레즈라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만 가까스로 타리프를 탈출한다.

탈출한 일레즈라는 타락한 신을 섬기는 엘릭 신도들을 부추겨 야만족을 제압하고 메디아 북부 끝자락에 탑을 지었다. 높은 탑이 지어졌을 때, 일레즈라는 수도 알티노바를 침공하고 메디아 성이 불바다가 되었다. 상인회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던 메디아 성과 보잘것 없던 왕정이 단숨에 무너지고 알티노바의 백성들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바리즈 2세는 목숨을 잃었고 일레즈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소문만 무성했다.

하지만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에는 일레즈라의 이름을 앞세운 폐철광산 인근에 거주하던 야만족들이었다.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줄 알았던 이들은 알티노바를 차지하겠다며 알티노바로 향하는 발길에 메디아 북서쪽 숲 속에 거주하던 '세제크 사냥꾼' 집단도 알티노바로 몰려들어 아수라장이 되었다. 메디아 상인회는 이러한 거친 무리들과 불편한 공존을 시작하게 됐다.

▲ 소서러들의 거주 공간이 되어준 타리프 마을

▲ 교역으로 부흥했었던 만큼 처참함이 느껴지는 불타는 메디아 성


천혜의 요새 카마실비아, 세상으로의 첫 걸음
순수의 땅 카마실비아에 닥친 재앙과 혼돈, 젊은 여왕 '브롤리나 오네트'의 등장과 혼란 수습

카마실비아는 검은사막 세계의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인 태초의 시대에 숲의 가장 높은 자리에 신단수가 뿌리내리자 여신 '실비아'가 자연의 정령들과 함께 내려와 그 신단수에 '카마실브'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여신의 축복으로 태양과 달의 기운을 받은 쌍둥이 자매, 가넬과 베디르가 탄생하고 그 나무를 중심으로 성장한 작은 국가였다.

가넬과 베디르는 둘도 없이 우애가 돈독했다. 그러나 자연 속의 카마실비아도 '검은 죽음'을 피하지는 못했다. 재앙이 시작되고 그들의 우애를 시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풍요만 누렸던 자손들에게 닥친 첫 번째 시련은 그렇게 가혹했다. 산과 숲, 초원에 어둠의 정령들이 자리를 잡았고, 시간이 흐를 수록 쌓이는 것은 희생 뿐이었다. 실비아의 자손들은 오직 신단수 카마실브의 힘에 의존했었다. 계속되는 대자연의 비명에 자손들은 재앙을 멈춰달라 기도했지만 여신은 응답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미래를 보는 숲 '툴리아'의 예언은 '머지 않아 수도가 잿더미로 잠식될 것'이라고 했었고, 그 예언이 들어맞기 시작하고 있었다. 베디르는 어둠의 정령을 넘어설 힘을 강구하고 있었다. 수많은 시도를 해왔지만 카마실비아에는 신단수 카마실브를 초월하는 힘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때, 카마실브를 태워 발현되는 힘을 생각해냈고 기대하게 됐다. 그 기대값은 실로 굉장했다. 카마실브가 타들어가며 발현된 생명의 힘은 실로 파괴적이었기 때문이다.

▲ 카마실비아의 신단수, 카마실브

하지만 카마실브는 이후로 소멸하였고 자손들의 상실감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어둠의 정령들이 사라졌지만, 다시는 여신의 기운을 빌릴 수 없다는 것은 더 큰 불안으로 다가왔다. 이번의 시련 이후로도 또 다시 위기가 닥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위기를 느낀 자손들은 소멸한 카마실브의 가지에 정령의 힘을 더해 무기를 만들어내고, 다루는 법을 익혀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연구해냈다. 활과 검을 사용하는 '레인저' 상비군, 그리고 성역을 지키는 '아케르 근위대'를 창설한다.

아케르 근위대는 수도를 주둔하며 국경과 통하는 관문을 닫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그 후로 부터 가넬과 베디르는 서서히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정령의 힘을 다루는 방식이나 사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두 자매의 갈등의 시작은 아케르 근위대에 대적하며 등장한 '아히브' 세력이다. 이들은 베디르의 자손들로 이루어졌으며, 초자연적인 힘을 갈구하는 세력이다. 카마실브를 태워 얻은 거대한 힘에 취한 그들은 스스로를 그 힘에 의해 창시 됐다고 말한다. 독선적이고 오만한 그들을 카마실비아는 이단으로 칭하면서 베디르 자체를 부정하려 했다.

일부 베디르의 자손들은 중립을 선언하며 레인저들처럼 고대 카마실브의 의식을 계승하고 수호하기로 계약을 자처한 이들이 바로 '다크 나이트'였다. 카마실비아는 카마실브를 잃은 후 내부의 분열이 생기면서 구심점을 잃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마실비아의 분열을 수습하려는 젊은 여왕이 즉위하였으니, 그녀가 '브롤리나 오네트'다. 잠든 카마실브를 깨우기 위해 사제들을 양성하고 특별한 수련을 거쳐 성인이 된 사제들은 바깥 세상에 나가 각지의 정령의 힘을 빌리고 담아내오면서 대자연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브롤리나 여왕은 모든 길과 관문을 개방하고 칼페온과 드리간에 전령을 보낸다.

▲ 자연을 소중히! 게임 일지라도 마음은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