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레드포스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차곡차곡 승리를 쌓아가더니 어느새 1위 젠지 e스포츠와 같은 9승 고지에 오르며 '2강'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듣고 있다. 6위에 머물렀던 스프링 스플릿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농심 레드포스가 무서운 건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보여주고 있는 경기력은 가히 폭발적이다. 특히, 완벽한 팀합에서 나오는 농심 레드포스의 한타는 마치 예술과도 같다. 해설진의 감탄사가 쏟아지고, 온라인으로 응원하는 팬들도 열렬한 환호를 보낸다.


아쉽게 끝난 스프링, 회심의 리빌딩
임혜성 코치 및 미드 '고리' 영입

사실 앞서 말했듯 농심 레드포스는 스프링 스플릿까지만 해도 큰 기대를 받지 못했다. '피넛' 한왕호와 '덕담' 서대길-'켈린' 김형규가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메타의 중심에 있는 상체의 힘이 너무 약했다. '리치' 이재원은 급격하게 떨어진 폼을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고, '베이' 박준병은 한마디로 준비되지 않은 신인이었다. 때문에 플레이오프권인 6위, 딱 거기까지가 농심 레드포스의 위치였다.


하지만, 농심 레드포스는 6위에 만족하지 않았다. 더 높은 곳을 노려보겠다는 듯 휴식기 동안 전력을 보강했다. 짧고 굵은 리빌딩이었다. '코멧' 임혜성 코치를 영입했고, 미드 주전을 '베이'에서 '고리' 김태우로 바꿨다.

2017 시즌부터 코치 생활을 시작한 임혜성 코치는 진에어 그린윙스, 아프리카 프릭스, 쑤닝(LPL), 샌드박스 게이밍, T1 등 다양한 팀에서 활동하며 경험치를 쌓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쑤닝을 제외한 모든 LCK 팀은 임혜성 코치가 떠나면 리빌딩 여부와 관계없이 다음해 반드시 성적이 떨어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어떻게 보면 재평가의 아이콘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리'는 2019년 T1에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다. 서머 스플릿에 로스터에 등록되며 중간에 데뷔전을 치르긴 했으나, 주전 '페이커' 이상혁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그렇게 2020년 서머를 앞두고 T1을 떠났고, 올해 EDG에 입단했으나 '스카웃' 이예찬에 밀려 역시나 출전하지 못했다. 결국, 새로운 기회를 찾아 스프링 종료 후 EDG를 떠난 '고리'가 안착한 곳이 바로 농심 레드포스였다.


그리고, 이 뉴페이스 둘은 농심 레드포스와 기대 이상의 시너지를 내며 구원투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일단, 첫 경기부터 범상치 않은 포스로 굉장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고리'는 POG 포인트 1위라는 지표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약간의 기복이 있긴 하나, 플레이메이킹 능력이나 한타력이 매우 뛰어나다. 최근에는 '쇼메이커' 허수를 상대로 미드 차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코치의 역할은 성적을 제외하곤 수치로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통 관계자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성적과 관계자 평가, 임혜성 코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고 있다. 성적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들리는 이야기가 칭찬 일색이다. 농심 레드포스의 오지환 대표는 "팀에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메꿔준 코치"라고 했고, 한 감독은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물 만난 '리치' - 노력하면 기회는 온다
"잘 되어야 하는 선수, 잘 될 수밖에 없는 선수"

'리치'는 농심 레드포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농심 레드포스가 팀 다이나믹스이던 시절, 자신의 시그니처 챔피언인 아트록스로 팀을 승격시켰다. '승격시켰다'고 표현이 잘 어울릴 정도로 정말 무지막지한 캐리력이었다. 이어진 LCK 데뷔 시즌에도 팀 성적(8위)과 별개로 인상깊은 경기를 보여주며 POG 포인트를 900점(6위)이나 쌓았다.

그런 '리치'에게도 슬럼프는 찾아왔다. '덕담'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멤버들과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2021년 스프링, '리치'는 '베이'와 함께 패배 지분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팀의 에이스에서 명백한 약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부진은 이번 서머 스플릿까지도 이어졌다. 개막부터 팀은 3연승을 달리고 있었지만, '리치'의 라인전은 여전히 너무 약했다. 결국, 시즌 네 번째 경기인 프레딧 브리온전에서 농심 레드포스는 쓰라린 패배를 맛봤다.


이처럼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 폼 때문에 혹평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리치'는 묵묵하게 연습에 몰두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바로 챔피언 풀이다. LCK서 비에고를 가장 처음 활용하기도 했고, 팀의 밴픽 전략이나 메타에 맞춰 여러 스타일의 챔피언을 고루 기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챔피언 풀을 늘리는 건 프로 선수들에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솔로 랭크라 하더라도 본인에게 익숙하고, 승리할 확률이 높은 걸 찾는 게 보통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임혜성 코치는 '리치'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참 모범적인 선수'. '리치'의 생활 태도는 흠 잡을 데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늘 열심히 하고, 언제나 긍정적이며, 팀에 협조적인 선수라고. 한 업계 관계자는 '리치'가 가진 프로게이머로서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리치' 같은 선수가 잘 되어야 한다"고 극찬에 가까운 표현을 하기도 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통한 걸까. 1라운드 막바지부터 솔로 랭크 점수와 함께 '리치'의 폼이 점점 올라오기 시작했다. 솔로 킬이나 상대 갱킹을 쉽게 허용하던 '리치'의 라인전에 조금씩 힘이 생겼고, 한타야 원래도 잘하던 선수다 보니 경기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라인전을 이긴 '리치''라는 밈도 생겼다. 아직 최상위라고 보기는 어렵긴 하지만, 분명한 건 '리치'의 폼이 상승 가도를 탔다는 것이다.


여전한 '피넛'과 '덕켈' 듀오
변함없는 캐리 라인

이처럼 서머 스플릿에 들어서 여러 변화를 맞이한 농심 레드포스인데, 변하지 않은 게 있다. 바로 팀의 캐리 라인, 정글과 봇 듀오다. 이전에도 잘했고, 여전히 잘해서 더이상 할 말이 없는 팀의 에이스다.

'피넛'은 농심 레드포스의 '믿을맨'이다. 단순 성장형 정글 캐리 메타가 아님에도 라이너들은 '피넛'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보내고, '피넛'은 승리로 이에 화답한다. '피넛'이 더 대단한 이유는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일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게임 리더의 중요성은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팀이 흔들릴 때 기둥을 세워주어야 하고, 방향성을 잃어버리면 찾아줘야 한다. '피넛'은 긴 프로 경력과 뛰어난 게임 이해도를 바탕으로 이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경력이 짧은 농심 레드포스 선수들은 '피넛'을 중심으로 단단하게 한데 뭉쳐서 게임을 풀어간다.


'덕담'과 '켈린'은 다양한 방법으로 라인전이 다소 약한 상체를 커버해준다. 라인전 주도권을 꽉 잡아주는 경우도 있고, '피넛'과 호흡을 맞춰 갱킹이나 다이브로 게임의 흐름을 가져오기도 한다. '덕담'의 후반 캐리력은 이미 여러 번의 경기를 통해 보증된 수표고, '켈린'의 화려한 챔피언 풀과 높은 숙련도는 농심 레드포스 밴픽의 마지막 퍼즐과도 같다.

특히, 조합에서 유일한 AP 대미지를 담당할 때의 '피넛'과 이즈리얼이나 아펠리오스를 잡은 '덕담'은 농심 레드포스의 승리 공식 중 하나다. 잡았다 하면 명장면을 꼭 한 번쯤은 연출한다. 농심 레드포스가 자랑하는 한타의 힘도 이 두 선수의 뛰어난 캐리력이 단단한 밑바탕이 된다. 그 위에 다른 선수들의 한타 집중력과 팀합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한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농심에게 남은 과제는?
1라운드의 복수, 그리고 롤드컵

이제 농심 레드포스는 정규 시즌을 단 6경기만 남겨뒀다. 차례대로 프레딧 브리온-리브 샌드박스-한화생명e스포츠-아프리카 프릭스-DRX-젠지 e스포츠를 만날 예정이다. 그런 농심 레드포스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덕담'의 인터뷰에서도 엿볼 수 있듯, 1라운드서 자신들에게 패배를 안겼던 세 팀, 프레딧 브리온-한화생명e스포츠-젠지 e스포츠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다.


1위까지 바라보고 있는 농심 레드포스의 입장에서 무엇보다 아쉬운 건 하위권으로 처져 있는 프레딧 브리온과 한화생명e스포츠에게 일격을 맞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2라운드에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와야 한다. 젠지 e스포츠와는 마지막 날 대결을 펼치는데, 현재 흐름대로 간다면 정규 시즌 1위를 가르는 순위 결정전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농심 레드포스에게는 2라운드 중 가장 중요한 매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 과제는 서머 스플릿 우승과 롤드컵 직행이다. 서머 스플릿서 상위권에 오르는 팀은 롤드컵에 진출할 확률도 매우 높다. 더군다나 올해는 시드권이 한 장 늘어나 확률이 더 올라갔다. 다만, 스프링 스플릿서 6위에 머무르며 여타 상위권 팀에 비해 챔피언십 포인트가 적은 농심 레드포스라, 서머 스플릿 우승으로 일찌감치 롤드컵을 확정하고 싶을 것이다. 롤드컵 선발전은 변수가 꽤나 많은 대회다.

이런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당연한 말이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 현재 농심 레드포스의 약점이라면, 아무래도 상체의 체급이다. '리치'의 폼이 많이 올라왔다고는 하나, 여전히 라인전 능력이 탑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고리'도 라인전에서 주도권을 내주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그리고, 이게 세트 패배로 이어질 때도 있다. 만약 상체의 라인전 능력이 보다 더 단단해진다면, 농심 레드포스의 주가는 과연 어디까지 상승할 수 있을까.

효과적인 리빌딩으로 최상위권까지 도약한 농심 레드포스. LCK에 커다란 볼거리를 안겨주고 있는 농심 레드포스가 2021 시즌서 어떤 엔딩을 맞이하게 될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 2021 LCK 서머 스플릿 농심 레드포스 잔여 경기 일정

vs 프레딧 브리온 - 7월 23일 2경기
vs 리브 샌드박스 - 7월 30일 1경기
vs 한화생명e스포츠 - 8월 1일 1경기
vs 아프리카 프릭스 - 8월 7일 1경기
vs DRX - 8월 12일 2경기
vs 젠지 e스포츠 - 8월 15일 2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