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권 시장에서는 '콜오브듀티' 시리즈가 헤일로나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맞먹는 건파이트 멀티플레이 게임으로 인식되는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실상 콜오브듀티 시리즈의 아이코닉한 요소는 캠페인 플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리즈의 시작부터가 그랬죠. 총도 없이 총알만 보급받은 채 전장으로 달려가는 소련군 A부터 얼떨결에 최전방에 배치된 미군 B에 이르기까지 콜오브듀티 시리즈의 초기작들은 2차 대전의 다양한 전장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가감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냉전, 현대전, 근미래, 우주에 이르기까지 전장의 배경이 바뀌었고, 이에 따라 디테일한 설정도 여럿 바뀌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싱글 플레이 캠페인은 콜오브듀티 시리즈의 핵심이었습니다. 가끔은 스토리에서 개판을 치기도 했고, 블랙 옵스4 처럼 아예 캠페인을 빼버리는 외도를 하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린 2018년 '모던 워페어'의 리부트 이후 '블랙 옵스 콜드 워', 그리고 이번 작품인 '콜오브듀티 뱅가드(이하 뱅가드)'에 이르기까지 고퀄리티의 시네마틱 영상과 연출을 가미한 싱글 플레이 캠페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최근 세 작품은 한국어 더빙까지 들어가 있죠.



그렇기에, '뱅가드'를 기대하신 분들 중 많은 분들이 바로 이 '캠페인'을 기대하셨으리라 짐작합니다. 기본 설정은 참 좋습니다. 2차 대전기에 최초로 구성된 특수부대의 이야기를 담겠다며 네 명의 주인공을 내세웠고 이 주인공들은 2차 대전기의 주요 전선이었던 서부, 동부, 북아프리카, 태평양 전선에서 골고루 활약해온 이들입니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전장의 한복판에서 활약해온 역전의 용사들이 한 팀으로 모여 궁극의 작전을 진행한다. 이 얼마나 가슴이 웅장해지는 설정입니까.

오늘은 이 뱅가드의 캠페인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해보려 합니다. 뱅가드는 캠페인 외에도 멀티플레이와 좀비 모드를 포함하고 있지만, 멀티 플레이는 이미 이전에 따로 기사에서 다룬 바 있었고, 좀비 모드는 사실 크게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니까요. 72,000원이라는 다소 부담되는 가격에도 망설임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기자이기 이전에 콜오브듀티 시리즈의 팬인 게이머이자 2차 대전기에 굉장한 관심을 지닌 밀덕이 제 정체성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콜오브듀티 뱅가드'의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 본 리뷰에는 많은 양의 스토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원치 않는 분들은 가장 끝 결말부만 읽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게임명: 콜오브듀티 뱅가드
장르명: 1인칭 슈터
출시일: 2021. 11. 5.
개발사: 슬레지해머 게임즈
서비스: 액티비전 블리자드
플랫폼: 스팀 / XBOX / PS



시리즈 이름값은 톡톡히 하는 연출과 영상미

작년 이맘때, '블랙 옵스 콜드 워'를 플레이하면서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게임 플레이나 시스템이야 뭐 그냥 콜오브듀티였지만, 인게임 영상에서는 정말 놀랐어요. 특히 시네마틱 컷씬에서 구현된 레이건 대통령의 얼굴은 진짜 레이건 대통령을 데려다 놓은 느낌이었습니다. 우즈와 메이슨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기에 가상이라는 느낌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참 대단한 비주얼이었습니다.

▲ '블랙 옵스 콜드 워'의 레이건 대통령

그리고, '뱅가드'에서도 이와 같은 높은 그래픽 퀄리티는 그대로입니다. 뱅가드의 캠페인은 플레이와 시네마틱 영상의 교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미션을 클리어하면 영상이 나오면서 서사가 진행되고, 이 반복으로 캠페인이 구성되는 형태죠. 그만큼 많은 영상이 준비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영상의 퀄리티도 매우 훌륭합니다. 게임 플레이 부분을 그냥 영상화해서 쭉 이어붙였으면, 꽤 괜찮은 2차 대전 영화가 나올 정도죠.

▲ 비주얼 퀄리티는 대단한 수준

그런가 하면, 게임 플레이 디자인도 시리즈의 명성에 걸맞게 훌륭합니다. '레일 슈터'라는 장르는 특성 상 변수가 무척 적어 쉽게 지루해질 수 있기에 일반적으로 레일 슈터의 개발사는 슈팅 게임에서 쓸 수 있는 기믹이란 기믹은 전부 긁어다 넣어두곤 합니다. '뱅가드'는 2차 대전의 4대 주요 전장을 모두 다루기에, 이와 같은 기믹을 더 다양하게 활용한 캠페인 구성을 보여주죠.

팀의 리더이자 영국군 흑인 장교인 '아서 킹슬리'의 파트는 백병전과 전투 지휘로 이뤄집니다. 예하 병력과 함께 진격해 명령을 내리고, 전술 목적 달성을 위해 때론 최전선에서 총격전을 벌입니다. 소련군의 여성 저격수인 '폴리나 페트로바'의 파트는 잠입과 저격이 주를 이루죠. 일반적으로 미디어에서는 동부 전선을 무지막지한 수의 소련군이 인해전술로 전선을 밀어붙이는 형태로 묘사하곤 합니다만, 본작의 동부 전선은 스탈린그라드의 폐허에서 숨어다니며 적의 숨통을 조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 주드 로가 분한 '바실리 자이체프'의 모습과 굉장히 유사하죠.

▲ 이런 다양한 경험은 참 좋다.

미군 파일럿인 '웨이드 잭슨'의 파트는 또 다릅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활약한 파일럿이라는 설정 답게 그의 파트는 급강하 폭격기의 조종과 제로센과의 도그파이트, 그리고 불시착한 정글에서의 생존과 탈출기를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멤버인 '루카스 릭스'는 호주군 출신으로 영국군에게 차별대우를 받으면서도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주요 전술 목표들을 사보타주하는 활약상을 보이죠.

이렇듯, 다양한 전장을 다루는 만큼 각각의 전장에서 볼 수 있는 광경들을 뱅가드의 캠페인은 모두 담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미디어에서 연출된 공수 작전의 격렬함부터 점령된 스탈린그라드 참혹함, 수백대의 항공기가 동원되는 공중전과 사막의 전차전, 그리고 베를린을 무대로 한 시가전까지 2차 대전기를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환장할 만한 요소들이 아무 야물딱지게 구현되어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평면적으로 스토리를 이해해가면서 쏘고 부수다 보면 과연 시리즈 명성에 걸맞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죠.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뱅가드'는 굉장한 소재들과 훌륭한 기믹들, 그리고 둘째 가라면 서러운 비주얼 퀄리티로 무장한 게임이지만, 결코 완벽한 게임은 아닙니다. 게이머가 스토리에 대해, 그리고 게임 내 구현된 여러 요소에 대해 '뭐야 이거 왜 이래?'라는 의문을 품는 순간, 게임이 너무나 이상해지기 때문입니다.



깊게 들여다 볼수록 너무나 이상한 게임 속 세계

뱅가드 캠페인의 좋은 부분들을 말씀드렸으니, 이제 반대 부분을 논해 봅시다. 아주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에서도 한 번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 시리즈의 팬입니다만, 그것만으로 용납하기엔 게임에 너무 문제가 많습니다. 그것도 굉장히 치명적인 문제들이 게임 곳곳이 산재되어 있습니다.

일단, 역사 기반 슈팅 게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총기 고증부터가 엉망진창입니다. 콜오브듀티 멀티플레이의 핵심 시스템 중 하나가 총기의 마개조인 만큼 다양한 총기 개조가 등장하는 것 쯤이야 게임적 허용이라 볼 수 있습니다만, 엄연히 시대적 배경이 굳어 있는 캠페인에서도 이 총기 개조는 너무 무분별하게 등장합니다. 게다가 시대 및 공간 배경에도 맞지 않는 총기가 너무 많이 등장하죠.

▲ 개발 자체가 1944년에 이뤄진 폴크슈투름게베어(VG 1-5), 게임 속 배경은 1942년 엘 알라메인 전투다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독일군의 걸작 중 하나인 'StG44' 소총은 돌격 소총의 장을 열어젖힌 명총입니다만, 이름에서 볼 수 있듯 1944년도에 이르러서야 전선 배치가 이뤄지는 소총입니다. 하지만 게임 내에선 1942년에 일어난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도 수많은 독일군이 이 총을 사용하고, 1943년엔 저 멀리 태평양 전선의 일본군들이 주력 무기로 사용합니다.

StG44의 초기 버전은 1942년에 생산이 되었으니 어떻게든 설명하고자 하면 할 수 있겠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이 무기에다 드럼 탄창을 끼운 버전, 빠른 교체용 단축 탄창을 낀 버전들이 버젓이 게임 내에 널려 있습니다. 그것도 일본군이 써요. 100식 기관단총이나 아리사카 소총도 있기야 하지만 적을 섬멸한 후에 무기를 노획하려고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StG44가 그렇게 많이 굴러다닙니다.

총기 개조가 게임의 핵심 시스템 중 하나인만큼 캠페인에서 여러 버전을 사용해볼 수 있다는 건 좋게 해석할 수 있지만, 고증과 사실성을 중시하는 게이머들에게는 분명 아쉬운 점으로 다가오는 부분입니다.

그런가 하면 스토리 면에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종결은 포위된 독일 6군을 구하기 위한 겨울폭풍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6군의 파울루스 원수가 소련군에게 항복하며 이뤄지게 됩니다. 하지만 게임 내에서는 무적초인 폴리나 페트로바가 저격총과 단검으로 독일군을 하나하나 없애고 최종 보스인 슈타이너와의 숨바꼭질 끝에 그에게 세 번의 칼침을 놓으며 끝이 납니다.

▲ 일기토로 도시를 되찾는 폴리나 페트로바

일단 전 슈타이너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2차 대전기의 유명한 장군들이나 지휘관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때문에 그냥 6군 내 장교 중 한명이겠지 싶은데, 그러자니 미션 후 나오는 영상이 너무 의미심장합니다. 스탈린그라드가 다 무너져가다가 폴리나 페트로바의 빛나는 선전에 힘입어 독일군을 몰아내고 지켜낼 수 있었다는 식의 영상이 나오죠.

영상만 보면, 독일군이 다 이겨놓은 전쟁을 폴리나가 영혼의 일기토로 뒤집은 것 처럼 보입니다. 이쪽에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이들이야 '아 판타지구먼' 하고 넘어가겠지만, 2차 대전을 잘 모르는 이들에겐 '폴리나 페트로바라는 여성 저격수가 스탈린그라드를 지켜냈다'라는 잘못된 지식을 심어줄 수 있는 역사 왜곡입니다.

또한, 스토리 디테일만큼이나 전체 미션 구성도 뭔가 애매합니다. 뱅가드의 스토리 흐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작전 -> 체포당함 -> 탈출 -> 최종장' 그리고 중간중간 회상을 통해 등장인물 4인이 어떤 전쟁을 치렀고 어떤 활약을 했는지 보여주는 형태죠. 문제는, 그 회상씬이 너무 비중이 크다 보니 현재 시점의 스토리에 빈틈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 팀원의 서사에 집중하느라 정작 팀 자체에 대한 분량이 없다

뱅가드의 캐치프레이즈이자 핵심 소재는 '최초의 특수부대'입니다. 각 전장에서 활약한 각국 최강의 에이스들이 모여 만든 드림팀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들이 어쩌다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팀이 되었는지, 그리고 팀의 이름은 뭐고 편제는 어떻게 되며 지휘 체계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중간에 챕터나 영상으로 넣어줄만 한데도 전혀 이에 대한 묘사가 없죠.

게다가 딱히 훌륭한 군인들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애초에 이들이 베를린에 잠입한 목적은 '프로젝트 피닉스'라는 비밀 작전에 대한 정보를 캐기 위해서이고, 이를 위해 멤버들을 희생하기까지 합니다만, 결국 그 비밀을 쥐고 있는 열쇠인 '헤르만 프레징거'를 너무 쉽게 없애버립니다. 이를 말려야 할 대장인 아서 킹슬리는 대원들을 제지하는 척도 하지 않고 다 끝난 이후 비행기를 타고 탈출하며 환하게 웃으며 '우리는 뱅가드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죠.

▲ 고경표 닮은게 유일한 장점인 악역 헤르만 프레징거

죽여선 안 될 적의 수괴를 그냥 없애버리는 건 아마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패러디로 보입니다만, 그 긴 영화사에서도 손꼽히는 존재감을 뽐냈던 바스터즈의 한스 란다에 비해 프레징거는 무게감도 너무 없고, 바스터즈에 비해 뱅가드의 서사는 너무 빈약하기 짝이 없다 보니 그림이 영 이상합니다. 게이머들이야 악역인 프레징거의 씬을 보면서 대충 뭔지 감을 잡지만, 이들은 아직 알아야 할 게 많은데도 말이죠. 임무 하나 제대로 못 하면서 뭐가 뱅가드라며 폼을 잡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문제라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스토리에 빈틈이 많고 고증이 엉망진창인 것 쯤이야 하루이틀 있었던 문제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어설픔을 넘어 일부 게이머들에겐 불쾌함을 줄 수 있는 문제가 남아 있으니까요.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사상 표현

중제를 보셨으면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 게임은 게이머를 가르치려 합니다. 아주 온 힘을 다해 정치적 올바름을 수행하려는 열정까지 느껴지죠. 게임 내에서, 이런 의도는 매우 빈번히 드러납니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내용까지 주절주절 내뱉으며 게이머들에게 제발 좀 알아두라는 듯이 연출해 두었죠.

먼저, '인종차별'에 대한 주제는 정말 꾸준히 등장합니다. 대장인 아서 킹슬리는 흑인입니다. 인종 차별이 분명 존재했던 시기인 것은 맞습니다만, 선역인 대원들은 고분고분 킹슬리의 명을 따르고, 킹슬리의 능력을 믿는다고 말하는 반면 악역인 나치는 킹슬리를 볼 때마다 깜둥이 깜둥이 노래를 부르죠. '나치는 악역이다 -> 악역은 인종차별을 한다' 로 표현되는 단순한 연출입니다. 다만 사악하긴 한데 지능은 모자라는지 감옥에 가두면서 폴리나의 단검은 못 찾았습니다.

▲ 맞는 말이긴 한데 이거 보려고 게임하는게 아닌데

반면, 멍청하고 사악한 악역들과 달리 선역의 끝인 킹슬리 본인은 매우 다재다능합니다. 나치 간부의 억양만 듣고도 상대의 인생사를 유추해내며, 러시아어도 유창하게 합니다. 다만, 이쪽도 지능은 다소 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일군이 우글거리는 상황에서 폴리나에게 러시아어로 지령을 내리는데, 누가 알아듣기라도 하면 다 죽은 목숨이었을 겁니다. 킹슬리의 대단함을 드러내기 위해 넣어둔 작위적 연출이죠.

게임의 주요 등장 인물인 '폴리나 페트로바'도 문제적 인물입니다. 노골적인 알파걸로 묘사된 폴리나는 다른 세 명의 남자 대원과 비교해도 특출난 전투력을 지녔다고 묘사되며, 실제로 게임 내에서도 가장 초인적인 움직임을 보입니다. 허리보다 낮은 높이의 공간도 달리듯 빠르게 움직이고, 튀어나온 벽돌만 있으면 건물의 옥상까지 벽을 타고 오르는가 하면, 게임 중 사망할 경우 출력되는 플레이버 텍스트에도 '폴리나는 엄청 세다', '딱 보는 순간 폴리나가 강하다는 걸 알았다'는 식으로 무분별한 찬양이 이어집니다.

▲ 방패만 안 들었지 거의 뭐 캡틴 소비에트

폴리나 자체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쟁 때문에 가족을 모두 잃고, 남은게 복수심뿐인 복수귀라는 성격은 다른 작품에도 숱하게 등장했고, 여성이라 해도 적절한 훈련과 경험이 겸비된다면 충분히 실제 폴리나같은 활약을 펼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를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너무 노골적으로 폴리나의 대단함을 띄워주는 장치들이 게임 내에 수도 없이 보이는데다 마치 전쟁의 흐름을 바꾼 대영웅인 것 처럼 묘사해 두었죠. '메리 수'라는 개념의 표본이라 볼 수 있습니다.

멀티플레이에 등장하는 오퍼레이터들도 어떻게든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해 온갖 요상한 설정들이 덕지덕지 붙은 인물들로 넘쳐납니다. 음악과 시를 사랑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총을 든(?) 인도 여군 파드마바티는 약과입니다. '콘스탄츠'는 독일 여군이지만 폴란드 여성과 사랑에 빠진 후 같은 독일인들을 기관총으로 갈아버리는데, 이 장면에 '반성과 성찰'이라는 대사가 붙죠. 나치가 나쁜놈들이긴 하지만 대다수 병사들은 큰 잘못도 없습니다. 게다가 동향 사람들인 이들을 죄다 죽여대면서 하는 말이 반성과 성찰이라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싶습니다.

▲ 이름하야 독일의 트레이서 되시겠다

인종차별은 사라져야 합니다. 성 평등도 이뤄져야 하죠. 하지만,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라면 이를 보다 세련된 방법으로 표현할 만한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2차 대전기는 단순히 인종이나 성차별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 자체가 바닥으로 추락해 있던 시기였습니다. 우생학이나 유태인 학살 등 인권의 개념을 재고하게 만든 충격적인 사건들도 엄연히 존재하던 시대죠.

하지만, 이런 사례에 대한 언급도, 똑같이 인종차별을 당하는 동양인에 대한 묘사도 전혀 없이 오로지 여성과 흑인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이런 형태는 설득력이 너무 약합니다. 애초에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메시지도 명확하지 않은데다 표현 방법도 어설프기 그지없죠. '정치적 올바름'이 그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엇이 되었든 사상의 범주에 포함되는 개념이라면 이를 본인이 스스로 깨닫게끔 만들어야지 불합리한 상황만을 드러내면서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건 매우 보편타당한 진실입니다. 그렇기에, 뱅가드의 캠페인은 자못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 저 좋은 그래픽으로 왜 계속 깜둥이 타령을



게임계의 '바스터즈'를 꿈꿨으나...

정리하자면, '콜오브듀티 뱅가드'는 여러모로 아쉬운 모습을 보이는 게임입니다. 다른 모드들은 일단 기본은 해 주고 특히 멀티플레이는 전작인 '콜드 워'가 너무 혹평을 받았기에 상대적으로 나아진 모습입니다만, 콜오브듀티 시리즈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싱글 플레이 캠페인에서는 아쉬운 점들이 너무나 많이 드러납니다.

안타까운 점은, 게임에 쓰인 영상의 퀄리티나 시각 연출, 그리고 배경 묘사가 너무 훌륭하다는 겁니다. 이들은 충분히 대단한 걸작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과 자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빈약하면서 구멍까지 펑펑 뚫린 서사에 노골적인 사상 강요까지 끼얹다 보니 '생각 안하고 하면 재밌는데, 생각하기 시작하면 재미없어지는' 괴이한 게임이 탄생해 버렸습니다. 어느 순간 이후, 그나마 남은 재미라도 느껴보려고 필사적으로 생각하길 거부하는 제 모습을 보며 느껴버렸죠. '아 안되겠구나...'


▲ 조금만 더 고민했어도 참 좋은 게임이 되었을 것 같은데

그렇기에, 이 게임을 살지 고민하시고 계신다면 본인이 무엇에 중점을 두는지를 먼저 생각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콜오브듀티의 멀티 플레이를 중시한다면, 구매해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72,000원이라는 가격이 좀 부담되긴 하지만, 요즘은 AAA급 게임들의 가격이 전체적으로 상승하는 시기이기 때문이기에 아쉬운 대로 참작은 가능한 가격 설정입니다.

하지만, 싱글 플레이 캠페인을 생각하고 게임을 구매하는 건 한번 더 고민을 해 보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뱅가드엔 9개의 챕터가 존재하고, 각 챕터당 플레이 시간은 길게 잡아도 30분이기에 몇 번씩 죽으면서 게임을 해도 5시간 안에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플레이할 캠페인은 아무리 포장해도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죠.

▲ 좋게 말해도 길다고 할 수 없는 플레이 타임

몇달 전, '뱅가드'의 최초 발표를 보았을 때 내심 기대했습니다.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를 매우 인상깊게 보았는데, 게임의 설정이나 들리는 풍문 등을 들었을 때 내심 비슷한 성향의 작품이 등장하리라 예상했거든요. 그리고, 이 예상이 반쯤은 맞은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의 큰 줄기나 여러 장면들의 오마주, 몇몇 인물의 성향 등은 바스터즈와 꽤 유사했으니까요. 제작진도 바스터즈와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긴 했었나 봅니다.

다만, 이를 이뤄내기에 그들의 각본은 너무 부실했고, 넣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았습니다. '콜오브듀티 뱅가드'가 예상보다 더 아쉬운 작품으로 등장한 이유가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