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량(여름철에 더위를 피하여 서늘한 기운을 느낌) 특집, 또는 특선은 어린 시절 여름날, TV에서 항상 볼 수 있던 단어였습니다. 무서운 것을 보면 느끼는 서늘한 감각을 무더위를 이기는 데 사용하는, 옛 성현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무서운 것은 여름에'라는 일종의 공식은 어느 콘텐츠에나 적용되는 것이라고만 여겨왔는데, 올해 게임 산업에서는 조금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더위가 가시고 슬슬 찬바람이 불어올 즈음부터 호러 게임들이 잇달아 출시를 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호러 게임들이 출시된 10월, 11월은 거의 매년 대형 프랜차이즈 신작들이 출시되는 시점입니다. 원채 대중적이지 않은 '호러'장르로서는 이미 더 크고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은 게임들과 경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셈입니다.

오늘은 이처럼 얼핏 시기를 잘못 타고 출시된 것만 같은, 쌀쌀한 계절에 모습을 드러낸 호러 게임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출시 시기가 조금 지나간 것, 눈이 가는 게임이 있다면 다음 할인을 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할인할 때 사서 하는 것, 그게 또 호러 게임의 매력이니까요.


본편과 함께 3인칭으로 돌아온 DLC, '섀도우 오브 로즈'


가장 먼저 소개할 호러 게임은 날이 선선해지기 시작한 10월 28일에 출시된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의 새 DLC, '섀도우 오브 로즈'입니다. 본편인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에 3인칭 시점을 추가하고, '머시너리 모드'에 새로운 캐릭터가 추가된 확장팩인 '윈터즈 익스팬션 팩'에 포함된 작품이죠.

섀도우 오브 로즈는 본편의 사건으로부터 약 16년 후, 어느새 갓난아기에서 어엿한 청소년으로 성장한 '로즈마리 윈터스'가 겪는 일련의 사건을 다룹니다. 본편과 달리 3인칭 시점으로만 진행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며, 로즈만이 가지고 있는 균근의 힘을 통해 적을 물리치고, 퍼즐을 풀어나가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섀도우 오브 로즈'는 본편에서 아버지인 '에단 윈터스'가 딸을 구하기 위해 겪어 온 장소들을 성장한 딸의 시점에서 하나씩 되짚어 나가는 묘한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DLC 콘텐츠인 만큼 전체적인 플레이타임이 긴 편은 아니지만, 본편과 같은 공간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퍼즐 요소들은 또 다른 매력을 갖추고 있죠.

거기에 본편이 그랬듯 오싹한 공포 파트 또한 준비되어 있으니, 서바이벌 호러 팬들이라면 한 번쯤 눈여겨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 본편도 3인칭으로 할 수 있는 건 덤



독특한 콘셉트가 돋보인 인디 호러, '더 챈트'


'더 챈트'는 캐나다의 인디 게임 개발사 브래스 토큰(Brass Token)에서 개발한 호러 어드벤쳐입니다. 지난 11월 3일 정식 출시되었으며, Xbox와 PS5, 스팀 등을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과거 미국에서 유행하던 컬트 집단을 소재로 하는데, 벗어나기 힘든 트라우마를 겪는 주인공이 친구의 권유에 따라 외딴 섬에 위치한 수련원에 향하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게임의 전반적인 만듦새는 인디 게임인 만큼 부족한 점도 엿보이지만, 사이비 컬트 종교, 그리고 심신 수련(?)이라는 소재를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녹여낸 개발사의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플레이어는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잘 신경써 가며 게임을 진행해야 하는데, 정신력 게이지가 0에 다다를수록 눈앞에 헛것이 보이거나, 화면이 어두워지는 등 주인공이 패닉에 빠지는 상황을 잘 표현해 냈습니다.

▲ 호러의 탈을 쓴 사이비 퇴마 게임 '더 챈트'

수련원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특유의 아이템과, 사이키델릭한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이런 몬스터들을 '퇴치하는 방법'을 하나둘씩 알아가게 되는데, 세이지 향초나 소금과 같이 오컬트 분위기가 풍기는 아이템을 활용해 이들을 물리치게 됩니다. 거기에 명상 자세를 취하면, 영혼 게이지를 일부 소모해 정신력 게이지를 채우는 등 콘셉트에 철저한 게임플레이가 돋보입니다.

공포 분위기의 어드벤쳐 형태로 진행될 것 같았던 첫인상과는 달리, '더 챈트'는 회피 동작을 활용해 적들의 공격을 현란하게 회피하고, 이들의 약점을 찾아 공략하는 요소가 강조된 서바이벌 액션에 더욱 가깝습니다. 귀신과 괴물에게 쫒기는 것보다 오히려 맞서 싸우는 것이 스타일에 맞는 게이머라면, '더 챈트'는 후자에 가까운 게임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잠시만, 나 명상좀 하고



실제 연쇄살인마를 바탕으로 한 호러 어드벤쳐, '더 데빌 인 미'


슈퍼매시브 게임즈의 시리즈형 호러 타이틀,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첫 시즌의 마지막 작품 '데빌 인 미' 또한 지난 11월 18일에 정식 출시됐습니다. 국내에서는 지스타 2022가 한창일 당시에 출시를 알린 사례로, 여러 모로 주목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번 '데빌 인 미'는 미국 최초의 연쇄살인범 헨리 하워드 홈스(H.H.홈스)와 그의 호텔을 소재로, 플레이어는 각종 살인 장치들이 즐비한 호텔에서 탈출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됩니다. '언틸 던'부터 시작해 다양한 호러 분위기의 어드벤처 작품을 개발하는 슈퍼매시브의 작품인 만큼, 일련의 선택지를 통해 주인공 중 누구도 죽지 않을수도, 그 반대로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은 공통적입니다.

다소 현실에서 동떨어진, 초자연적인 공포 소재를 보여준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의 전작들과 다르게, '데빌 인 미'의 경우 실존했던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시카고에 숙박 시설을 만들어 관광객을 살해하던 H.H.홈스의 실제 사건과, 시간이 흐른 뒤 이를 토대로 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는 주인공 일행. 이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인지는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 4부로 마무리된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시즌1, 합본도 곧 나오지 않을지?



눈보라치는 칼리스토와 계절을 맞추고 싶었나?


다 추워진 겨울의 시작과 함께 발매된 게임으로는 크래프톤 산하 개발사,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스튜디오의 '칼리스토 프로토콜'을 빼놓을 수 없겠죠. '데드 스페이스'의 아버지인 글렌 스코필드가 개발하는 서바이벌 호러로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지난 주 출시 이후 이미 많은 분들이 게임을 접혀보셨으리라 생각하지만, '칼리스토 프로토콜'에서는 개발사가 자신들의 전작인 '데드 스페이스'와의 차별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여러 부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시 전 인터뷰에서도 밝힌 대로 근접 전투의 활용 빈도와 중요성을 높였고, 회피와 그립 등 요소의 도입으로 색다른 감각의 게임플레이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다만, 액션이 강화될수록 공포 측면은 줄어들게 마련인지, 이번 작품에서는 크게 '무서웠다'고 기억에 남는 구간은 확실히 많지 않은 편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방심하지는 마시길, 개발자들이 '데드 스페이스'에서 보여준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는 능력은 어디 가지 않았으니까요.

현재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적들의 종류와 패턴이 모자라다거나 PC버전의 최적화 문제 등에 대해서 여러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피드백을 통한 개선이 이뤄지고, 디럭스 에디션에서 약속한 시즌 패스 콘텐츠가 추가된다면 지금의 홍역을 딛고 일어나 얼마 되지 않는 서바이벌 호러 게임의 하나로 당당히 기억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동료 기자는 '행복 주머니'라고 부르던데...



'할인할 때' 즐기는 것도 공포 게임의 매력

▲ "쿼리를 단돈 3만 원대에!"

공포 게임 장르의 또 다른 장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지속적으로 서비스가 이어지는 다른 게임들과 달리 출시 직후에 기를 쓰고 플레이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딱히 끌리지 않는다면, 오랜 시간 뒤에 약간의 긴장감이나 서늘함이 필요할 때까지 묵혀놓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죠.

기사를 작성하는 현 시점에서 진행되는 큼직한 할인 프로모션은 PS 스토어에서 진행중인 '연말 세일'과, '더 게임 어워드 2022'가 있습니다. 두 프로모션 모두 지난 6월 출시된 슈퍼매시브 게임즈의 호러 게임 '더 쿼리'를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데, PS스토에서는 디럭스 에디션을 50% 할인된 가격인 43,500원에, 스팀에서는 38,000원(스탠다드 에디션은 32,000원)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특히, PS스토어의 경우 PS4 독점으로 2015년 출시된 게임 '언틸 던'을 65% 할인된 가격인 7,980원에 판매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플레이하지 않은 게이머라면 천천히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좀비물이나 액션이 강조된 서바이벌 호러가 취향에 맞는 플레이어라면 PS 스토어 연말 세일을 통해 '더 이블 위딘2'나 '데이즈 곤'에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입니다. 연말 세일 기간 중 각각 8,900원, 13,400원(스탠다드 에디션 기준)에 판매되고 있으니 합리적인 가격에 연말을 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PS 스토어 연말 할인은 오는 12월 21일까지, 스팀은 12월 20일까지 할인을 진행하고 있으니 다른 게임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호러의 고전 '언틸 던'은 7,980원에 구매할 기회

앞으로도 많은 기대작 호러 게임들이 출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영영 볼 수 없을 것만 같던 사일런트 힐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소식도 들렸고, 고전 호러 시리즈 중 하나인 '어둠 속에 나홀로' 또한 신작이 개발되고 있고요. 내년 3월에는 시리즈 사상 가장 높은 메타크리틱 점수를 기록한 '바이오하자드4'의 리메이크 작품이 출시를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공중파 등을 통해 일상에서 흔히 듣던 '납량 특집'이라는 단어도 어느새 잘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등을 통해 언제나 보고 싶은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된 오늘날엔 공포 영화를 보기 위해 굳이 여름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어졌죠. 이같은 사례를 보면, 공포 게임의 출시와 계절도 앞으로는 크게 상관이 없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열치열의 반대는 이냉치냉, 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고집하는 사람이 있듯, 분명 누군가에겐 겨울에 등장한 호러 게임들이 뜻밖의 기쁜 소식이 되어주었으리라 믿습니다. 이불 속에 꽁꽁 숨어 즐기는 한겨울밤의 호러, 여러분도 한 번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